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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74)화 (674/1,004)

674화 성중성(城中城)

"월 회장이라고 부르면 너무 남 같잖아요. 제수씨……!"

척연은 월령안의 난처함을 알아채지 못하고 여전히 말끝마다 제수씨라고 불렀다. 그는 온조가 몰래 노려보자 깜짝 놀라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조는 만족스럽게 시선을 거두고 다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좀 전의 화기애애하던 표정은 사라지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월 회장, 우리와 무슨 장사를 하려는 겁니까?"

그는 사적인 교분을 맺고 인정을 봐주며 공적인 것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좀 전에도 무슨 일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월령안이 정말 들러붙어 입을 열었다면 그는 육장봉의 체면을 봐서 그녀를 한 번쯤 도와줬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설령 육장봉이 그녀에게 장가들었다고 해도 그녀를 자기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월령안은 먼저 장사를 하러 왔다 하면서 청주상회 회장의 신분으로 그와 이야기하려 했다. 육장봉과 애매한 관계가 있는 여자로서 그와 대화하면서 사사로운 정에 호소하지 않았다. 이 점은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는 여성을 경멸하지 않지만, 여성이라는 자체적 우세를 이용하여 지름길을 가려는 여인을 경멸했다.

"저는 대인과…… 성중성(城中城 - 성 안의 성)을 짓는 장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온조가 거절하지 않고 공적인 일을 원칙적으로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월령안에게 있어서는 충분했다.

온조가 그녀에게 기회만 준다면 그녀는 일견 온화하지만 실제로는 강경한 온 태수를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성중성을 만든다고요?"

온조는 의심이 서린 눈빛으로 월령안을 바라봤다.

"관성에서요?"

월령안은 도대체 관성의 상황을 아는가 모르는가.

그는 월령안이 재신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관성에 성중성을 짓는다?'

월령안은 돈이 너무 많아서 쓸 데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돈을 태워 던지려니 말이다.

"맞습니다. 관성에 성중성을 지으려고 합니다."

월령안은 긍정적으로 말했다.

"관성의 상황에 대해 아십니까?"

그는 육장봉의 체면을 봐서라도 결코 월령안이 손해 보게 할 수는 없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습니다. 관성은 서하(西夏), 요동(遼東) 그리고 금나라의 북쪽과 접해 있습니다. 특수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접경지대에서 자주 마찰이 생기죠. 관성에는 군대 이십만 이상이 장기적으로 주둔하고 있습니다. 관성은 백성과 병사들이 수시로 전시 상황에 처하여 있고 온전히 전쟁을 위해 생겨난 성곽이죠.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관성은 언제든지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성입니다. 하지만 상인에게는 아주 잠재력이 있는 성이기도 합니다."

월령안이 관성을 선택한 것은 그녀만의 이유가 있었다.

다만 그녀는 육장봉이 관성의 수비, 태수와 아는 사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천천히 진행할 필요가 없이 직접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온조와 척연이 육장봉의 좋은 친구라는 점 때문에 월령안은 자신이 관성을 선택한 이유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관성은 교통이 편리하고 네 개 나라와 통하며 더욱이 상주인구가 백만 명 이상입니다.

이렇게 좋은 지리적 위치를 가지고 있고 많은 인구가 성안에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조건이면 관성은 충분히 새로운 풍요의 성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관성에서 호시(互市 - 두 나라 사이의 교역)를 열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시군요!"

온조는 냉소를 지었다. 찬성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온 대인, 과분한 말씀입니다. 저는 단지 관성의 백성과 여러 장병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우면서 더불어 저도 돈을 좀 벌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월령안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온조가 그녀의 판단에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았다. 그가 자기 수하 병사들과 백성을 아끼어 관성 백성들의 생활이 나아지기를 원하면 되었다.

"관성은 국경 요충지입니다. 땅이 척박하고 전쟁이 잦습니다. 관성의 백성들은 가난하고 관성을 지키는 장병들도 생활이 힘듭니다.

저는 정사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하지만 한번 관리가 되면 한 지역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포부가 있는 관리라면 누구든지 치하의 백성이 부유하고 편안하기를 바라는 법입니다."

온조는 포부와 이상이 있는 관리가 분명했다.

"저는 병사들의 훈련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피를 적게 흘리려면 평소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려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목숨을 바쳐 싸우게 하려면 배불리 먹이고 근심 걱정이 없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정에서 매년 각지 주둔군에 보내는 군량과 마초 그리고 급료가 얼마나 되고 여러 대인의 손에까지 들어올 때에 얼마나 남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자리에 계신 여러분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조정의 문관들이 얼마나 악랄한지는 그녀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육장봉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조정은 무장들에 대해 극심하게 불친절했다.

황제가 의도적으로 무장을 억누르는 것을 믿고 조정의 문관들은 각지의 주둔군을 말 잘 듣는 가축 정도로 생각했다. 그들에게 풀만 먹이고도 전쟁터에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기를 바랐다.

조정에서 군량과 급료를 올려 주기를 바라기는커녕 매년 예정된 시간에 배정된 숫자대로 정확하게 군량과 마초를 조달받아도 각지의 주둔군은 감지덕지해야 했다.

월령안은 척연, 척 수비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관성의 형편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관성의 상황이 나쁠수록 그녀의 우세는 더욱 커질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월령안은 더욱 여유가 있었다.

"모두 알다시피 조정에서 주는 군량과 마초나 급료만으로는 장병들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입니다.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고사하고 일상적인 훈련도 힘듭니다. 군대가 강하고 수하의 장병들이 전력을 다해 싸우게 하려면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 많이 훈련시키고 근심이 없이 싸움터에서 싸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돈이 필요하죠. 그리고 장병들의 병기, 갑옷 이런 것들도 모두 돈이 필요합니다. 조정에서 보내는 돈으로는 어림도 없을 겁니다."

육장봉 수하의 병사들이 용감무쌍하고 싸움에 능한 것은 육장봉이 군사훈련을 잘 시킨 것도 있지만 금전적인 지원도 받쳐 주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군사를 양성하는 데는 돈을 들여야 한다.

용맹하고 잘 싸우는 병마를 길러내려면 많은 돈을 들여 먼저 병마를 튼튼히 기른 다음 죽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그래서……."

월령안은 여유 있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온 대인, 척 대인, 두 분께서는 정말로 이 장사를 해 보실 생각이 없습니까?"

"해야지. 당연히 해야지. 제……!"

척연은 흥분하여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입을 열자마자 곧 온조의 눈길에 제압당했다.

온조는 반은 진지하게, 반은 농담조로 말했다.

"장사에 관해서는 저나 척연이나 둘 다 잘 모릅니다. 하지만 월 회장이 우리에게 돈을 가져다주고, 관성의 장병들을 도와준다고 하면 우리는 당연히 환영할 겁니다."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돈을 가져다준다니. 보아하니 온 대인의 마음을 움직이기가 여간 힘들 것 같지 않았다. 아니면 그가 싫은 작태를 보이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온조는 종잡을 수 없는 태도를 보이며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그가 정말로 흥미를 가지지 않는 건지 아니면 그런 척하며 주도권을 차지하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월령안은 잠깐 생각에 잠긴 듯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그냥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보아하니 온 대인께서는 흥미가 없는 모양이군요."

온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관심이 없습니다. 월 회장이 한 이야기들은 저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역부족입니다. 오랜 시간을 내려오면서 관성은 줄곧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관성의 백성들과 장병들은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척연이 급급히 훼방을 놓았다.

"제수씨, 온씨가 흥미가 없지만 저는 있습니다…… 제수씨, 온씨하고 이야기하지 마시고 우리끼리 이야기합시다. 우리 둘이 이야기합시다."

월령안은 잠깐 어안이 벙벙했다.

척 수비가 이렇게 나온다면 온 대인도 더 이상 관심 없는 척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방법을 대기 전에 척 수비가 온 대인을 한 방 먹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좋았다. 참으로 무장다웠다.

육장봉은 들러리 역을 잘 소화하고 있었다. 설령 온조가 월령안을 거절해도 입을 열어 그녀를 위해 말해 주지 않았고 표정도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구경을 해도 은밀하게 했다.

하지만 척연이 온조에게 이렇듯 시원하게 한방을 먹이자 육장봉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육장봉의 웃음으로 인해 화청의 분위기는 일순간에 누그러졌다. 온조도 터준 길을 따라 물러서며 일부러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탄식했다.

"너희 두 사람, 그만해."

이렇게 대놓고 우스갯거리로 삼다니. 육장봉은 어지간히 못된 게 아니었다.

척연은 그에게 전혀 체면을 남겨 주지 않고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되긴 뭐가 됐어. 온씨 너야말로 그만해! 관성이 어떤 상황인지 네가 모를 수 있어? 성안의 백성은 몰라도, 내 수하 병사만 해도 지난겨울에 얼어 죽은 사람이 얼만데? 우리가 호부에 상주서를 적게 보냈어? 호부 관리 중 한 명이라도 우리를 거들떠봤어?"

보복이라도 하듯이 그는 온조에게 눈을 부라렸다.

"온씨, 너한테 말하는데 제수씨는 돌도 금으로 만들 수 있는 재신이야. 네가 그리 턱을 쳐들고 고집불통인 모습을 보이다가 재신이 놀라서 도망가면 어쩔 거냐?"

온조는 그만 어이가 없었다.

'제기랄, 속사정이 다 까밝혀졌으니 어떻게 흥정을 한단 말인가.'

문관으로서의 체면도 잊고 그는 거의 참지 못하고 욕을 퍼부을 뻔했다. 그의 기분이 어느 정도 허탈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척연은 한 방 먹이는 건 먹이는 거고 차려야 할 속셈은 다 차렸다.

"온씨, 자네 그 웃기는 술수는 다 걷어치워. 제수씨는 우리 사람이야. 우리를 손해 보게 할 수 없지. 걱정하지 말라고. 제수씨, 제 말이 맞죠?"

월령안은 말문이 막혔다. 심적으로 너무 피곤했다.

그녀가 인정으로 시작하려 하자 온 태수는 공적인 일은 원칙적으로 처리하자고 했다. 이제 그녀가 원칙적으로 하자 하니 척 수비는 또다시 인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손발이 너무 잘 맞았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그들이 알아서 다 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협상 자리에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때 내내 수수방관하고 앉아 있던 육장봉이 입을 열었다.

"누가 자기 사람이냐. 공적인 일이니 사적인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두기로 하지 않았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가 뒷거래를 하며 인정을 따진다고 싫어하지 않았는가.

그는 진작 온조와 척연의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는 듯한 눈빛을 보아냈다.

"육씨…… 우리 셋이 어떤 친분인데. 자네 이 말은 너무 속상하군그래."

척연은 뻔뻔스러운 얼굴로 술잔을 들고 육장봉의 옆에 가 비집고 앉았다. 그러고는 그의 차가운 얼굴을 무시하고 탁자 위에 놓아둔 그의 술잔에 억지로 부딪히며 건배를 들었다.

"온씨는 말재주가 없잖아. 우리 온씨하고 따지지 말자고. 자네가 우리를 형제라고 생각해서 재신을 우리 관성으로 데려온 것을 내가 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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