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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71)화 (671/1,004)

671화 그냥 분부대로 하시면 됩니다

조의박은 육 대장군이든, 육 대장군이 뒤를 봐주는 월령안이든 모두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 같은 보통 상인들을 손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육장봉이 완안경을 서둘러 변경으로 보내 버린 이유는 완안경을 풀어주지 않는 동시에 조의박을 압박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떠나보낸 지 하루가 되어도 조의박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육장봉은 육삼의 보고를 듣고 저도 모르게 냉소했다.

"인내심은 대단하군."

"조의박은…… 확실히 인내심이 대단해요."

월령안은 조의박이 오랜 세월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전혀 조급해하지 않고 모의한 것을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과거에는 수중에 병마가 부족해서 조정과 북요의 전쟁을 틈타 천천히 발전시켜야 했어요. 그 당시 인내한 것은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그는 분명 금나라와 관계를 맺어 조정에서도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고 있어요. 일반인을 넘어서는 인내심을 가진 사람은 도모하는 것도 범상치 않을 거예요."

그녀가 조의박을 과소평가한 듯했다.

월령안은 추측만 했지만, 육장봉은 단언했다.

"청주는 너무 작아 조 수비의 야심을 채울 수가 없소."

"조왕 전하께서 뭐라도 조사해 낸 건가요?"

월령안은 놀라지 않았다.

만약 조의박이 청주의 왕이 되는 것에 만족했다면 금나라와 결탁할 이유가 없었다.

적국과 결탁하면 결코 좋은 명성을 얻을 수가 없었다.

"조의박의 수비부는 황궁 구도에 따라 지은 것이오. 그곳에는 용포와 옥새도 있다고 하오. 이것 외에도 그는 고종 황제의 죄증을 수집했다오.

조계안은 심지어 수비부에서 고종 황제를 주나라의 죄인이라고 힐책하며 그와 그의 자손들은 황제가 될 자격이 없다고 쓴 격문도 발견했다고 했소."

육장봉은 조소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월령안은 잠깐 침묵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강산을 훔치고자 하다니. 조 수비는 정말로 야망이 있군요."

말을 마친 그녀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그가 강산을 탈취할 생각이 있다면 조운충 이 패는 그야말로 진귀하군요. 힘들게 강산을 탈취해도 조운충이 없다면 그에게는 계승자가 없을 거 아니에요. 남 좋은 일이나 하면 얼마나 아쉬운가요."

그녀는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조의박은 속생각이 깊고 이익을 중히 여기죠. 수중의 것들을 무엇보다도 아껴요. 보아하니 한 번 더 압력을 넣어야 할 것 같아요."

월령안이 말하자마자 육장봉은 곧 그녀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청주를 떠날 생각이오?"

"청주의 일은 제가 이미 판을 다 짜놓았어요. 더 이상 청주에 남아 있어도 크게 의미가 없네요. 관성에 한번 찾아가서 현지 주둔군과 관성을 건설하고, 그곳에 상업 무역지역을 설립할 데에 관해 이야기해야 해요. 그다음 서역에 가서 해독약을 구해야 해요. 혈옥주 독은 사람을 힘들게는 하지 않지만 해독하지 않으면 어디까지나 골칫덩이예요. 한번 다녀오면 저도 마음이 놓이고요."

월령안은 이 말들을 하면서 육장봉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는 이번 일을 빌려 육장봉의 태도를 알아보려고 결정했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려 하니 또 육장봉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녀는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상하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잘못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육장봉의 선택을 알고 싶었다.

월령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육장봉이 먼저 말했다.

"서역에는 나도 같이 갈 거요. 그쪽에 나도 일부 세력이 있소."

"그건…… 그때 가서 이야기해요. 지금은 좀 이른 감이 있군요."

육장봉이 마음을 쓸수록 월령안은 더욱 불편했다.

그녀는 자신이 두려움을 드러내 육장봉이 이상한 기미를 알아챌까 끊임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난 그냥 육장봉의 선택이 궁금할 뿐이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절대 탓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육장봉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약속하자, 그녀는 제 발이 저린 느낌이 들었다.

육장봉의 당당함과 비교하면 그녀는 소인배와 다름없었다.

물론 그녀는 군자인 적도 없었다. 여태껏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장사 수단으로 육장봉과 그의 감정을 이용하려니 그녀는 육장봉을 당당하게 마주할 수가 없었다.

육장봉은 그녀의 이상한 기미를 눈치채지 못하고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늦으면 혹 변고가 생길지도 모르오. 서역에 가는 일은 절대 미루지 맙시다. 당신 몸의 독은 시간을 끌면 안 되오."

육장봉이 그녀가 복용한 독약에 신경을 쓰고 걱정할수록 그녀는 더욱더 속이 켕겼다. 그녀는 대충 얼버무려 대답하고는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집사에게 조왕 전하께 명첩을 보내라고 할게요. 어서 빨리 저와 범씨 가문의 십 년 쟁탈전을 결정지음으로써 이것으로 조의박이 타협하게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저도 청주를 좀 더 빨리 떠날 수 있고요."

십 년 쟁탈전이 일단 확정되면 그녀는 청주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도 당연히 청주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다.

조의박이 조운충을 구하려면 반드시 십 년 쟁탈전이 확정되기 전에 취사선택해야 한다.

유일한 후계자인지, 아니면 얼마 되지 않는 이익인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내가 가서 조계안하고 말하겠소."

육장봉은 이 일을 그녀로부터 넘겨받았다.

그는 절대 월령안에게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뒤부터 그는 조계안과 월령안의 만남이 싫었다.

월령안에 대한 조계안의 마음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그는 경계해야만 했다.

조계안은 일 처리가 빨랐다. 그날로 월씨, 범씨 두 가문에 전갈을 보냈다.

이틀 뒤, 월령안과 범씨 가문 가주 둘 다 지주부로 가서 두 가문의 십 년 쟁탈전에 대해 상의할 거라고 전했다.

월령안은 소식을 받고 매우 담담했다.

이틀 동안 조의박이 취사선택을 하지 못할 경우, 그녀는 조의박의 결정을 도와 줄 것이다.

범씨 가문 가주는 뜻밖이었지만 그렇다고 놀라지는 않았다.

조만간의 일이었다. 좀 일찍 일이 결정하면 그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어쨌든 월령안이 범씨 가문 전체가 그녀와 다투는 것을 허락한다고는 말했지만 그것은 단지 구두 약속일 뿐이었다. 문서로 작성되지 않은 이상, 그녀는 수시로 약속을 뒤집고 인정하지 않을 수 있었다.

"월씨 가문 어린 아가씨가 체면을 중히 여겨 그때 가서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범씨 가문 가주는 월령안이 청주에 도착하자마자 기세등등하던 모습을 떠올리고는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그는 이제 정말 늙었다. 월령안의 끊임없는 강압적 수단 앞에서 그는 전혀 막아 낼 힘이 없고 수동적으로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이번 청주 양식난만 해도 그랬다. 분명 일찍부터 조짐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중시하지 않았다. 월령안의 거동을 어린 아가씨의 장난쯤으로 생각했다.

청주는 이미 세상이 바뀌어 더는 월씨 가문의 청주가 아니라 그들의 청주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월령안이 하는 모든 일은 헛짓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다시 뒤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그녀가 짠 판에 휘말린 후였다.

청주에서 대란이 일어나고 양식이 모자랐다. 일부 상인들이 기회를 엿보고 혼란한 틈을 타서 사재기를 했다.

그는 월령안의 움직임에 따라 대응할 뿐 다른 해결책은 찾을 수가 없었다.

범씨 가문 가주는 월령안이 청주에 온 뒤의 여러 가지 거동을 떠올리자 마음속으로 놀랍고 두렵기만 했다.

월령안은 그조차 상대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의 아들들, 응석받이로 자란 도련님들이 어떻게 온갖 고초를 다 겪고도 마냥 꽃을 피울 수 있는 겨울 매화 같은 월령안과 맞설 수 있겠는가.

월씨, 범씨 두 가문의 십 년 쟁탈전은 절대 월령안과 그의 아들들의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반드시 월령안이 말했던 것을 기정사실화해 월씨, 범씨 두 가문의 싸움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오직 전 가문의 힘을 모아야만 월령안을 이길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십 년 전의 월씨 가문의 말로가 곧바로 그들 범씨 가문의 내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 범씨 가문의 가주가 걱정에 잠겨 있을 무렵, 범씨 가문에 조의박의 편지가 도착했다.

조의박은 편지에서 그에게 월령안이 주기로 약속했던 수익의 일 할을 그녀에게 돌려줄 것을 명령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앞으로 십 년 동안 범씨 가문 소득의 일 할을 월령안에게 넘기라고 했다.

"이것은…… 정녕 조 수비 대인의 뜻인 건가?"

범씨 가문 가주의 손은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얇은 종이 한 장이 지금 그에게는 천근만근이 되는 듯싶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편지를 가져온 사람을 바라보았다. 극구 노력해서야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고 수중에 든 편지를 그 사람의 얼굴에 내던지지 않을 수 있었다.

조의박은 미친 것이 아닌가. 일 할의 소득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단 말인가.

그와 월령안은 경쟁 관계이다. 그런데 소득의 일 할을 월령안에게 주면 그녀의 수익을 올려 주는 반면 자신의 실력을 삭감하는 것이었다.

월씨 가문 쪽은 수익이 늘어나고 그들 쪽은 반대로 줄어든다. 그러면 그가 어떻게 월령안을 이길 수 있겠는가.

조의박은 지금 범씨 가문을 알아서 자멸할 버린 바둑돌로 치부하는 것인가.

"네."

편지를 가져온 사람은 냉담하고 도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범씨 가문 가주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머뭇거리며 느리게 편지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시는지 물어도 되는가?"

"당신이 참견할 일이 아닙니다. 그냥 분부대로 하시면 됩니다."

편지를 가져온 사람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서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대인께서 편지에 쓴 두 가지 요구는 당신이 승낙한 다음, 두 가문의 십 년 쟁탈전 계약서에 쓸 것입니다. 물론 당신도 손해 보지 않을 것입니다. 월령안은 십 년 쟁탈전이 그녀와 당신 아들들 간의 쟁탈전이 아닌 월씨, 범씨 두 가문의 쟁탈전이라는 데에 동의했습니다. 대인께서 계시는 한, 범씨 가문이 질 걱정은 없습니다. 대인께서는 절대 범씨 가문이 월령안에게 지게 하지 않을 겁니다."

편지를 가져온 사람은 말을 마치고 범씨 가문 가주가 한참 동안 대답이 없자 또 한마디 위협했다.

"대인께서는 당신을 박대하지 않았습니다. 대인을 실망시키지 마십시오."

"허! 허!"

범씨 가문 가주는 마치 누군가에게 목이 졸린 듯한 소리를 내었다. 그는 쉰 목소리로 자조를 내뱉었다.

무엇이 그더러 손해를 보지 않게 했단 말인가. 무엇이 그를 박대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조의박의 이 행동은 월씨 가문에 대한 황실의 처사와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결국 두 가문 모두 함부로 희생시킬 수 있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범씨 가문 가주는 슬픔에 잠겼으나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조의박의 명령이 아무리 엄하고 어처구니없다고 해도 그에게는 승낙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편지를 가져온 사람은 만족할 만한 답을 얻고서는 범씨 가문 가주의 생사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뒤돌아서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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