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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70)화 (670/1,004)

670화 조씨 삼형제 시대가 저문 건가?

조의박은 명첩을 보낸 뒤 하인에게 행차를 준비하도록 명했다.

그가 명첩까지 보냈는데 육장봉이 그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청주에는 그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없고,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가는 도중에 조의박의 마차는 명첩을 전달하던 하인에게 막히고 말았다.

"대인, 월씨 가문의 하인이 명첩을 받지 않습니다. 말로는 육 대장군께서 나리를 만날 틈이 없다고 합니다. 나리를…… 나리를……."

"나를 뭐라고 하더냐?"

당황하고 분노하는 하인을 보고 조의박은 이번 걸음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청주였다.

육장봉이 아무리 날뛰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나리더러 왔던 곳으로 꺼지라고 하셨습니다."

하인은 얼굴이 하얗게 바래 감히 조의박을 쳐다보지 못했다.

"허!"

조의박은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비웃음 섞인 소리를 내었다.

"육장봉!"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탁자의 모서리가 끊어져 나갔다.

하인은 깜짝 놀라서 벌벌 떨었다.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조의박은 하인을 힐끗 흘겨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끌어내 개한테 먹여."

"대인……!"

하인은 놀라서 고함을 질렀다. 다음 순간 입을 막히고 그대로 끌려갔다.

마차 주위는 금세 조용해졌다. 누구도 감히 입을 열어 조의박의 심기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한참 지난 뒤에야 조의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월씨 대저택으로 가자."

"네!"

호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반 시진이 지나 마차는 월씨 대저택 앞에 멈추었다.

조의박은 사람을 시켜 문을 두드리고 월령안을 만나겠다고 전하게 했다.

당당한 청주의 수비이자 고종 황제의 수양아들인 그가 자세를 낮추어 일개 여 상인을 찾아왔다. 여 상인이 감히 그를 만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월령안은 확실히 조의박을 만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집사의 보고를 듣고 쓴웃음만 지었다.

결국 누구든 만만한 사람을 고르기 마련이다. 조의박은 육장봉 앞에서는 감히 건방지게 굴지 못하고 그녀를 찾아왔다. 그녀가 어찌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그녀가 육장봉을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었다. 심지어 육장봉을 앞으로 내몰 수도 없었다.

일각 전에 조계안이 갑자기 육장봉을 찾아왔다.

지금 이 시각, 두 사람은 서재에 있었다. 조의박이 이 시간에 집으로 찾아오면 그녀가 만나는 수밖에 없었다.

"조 수비더러 잠깐만 기다리라고 해라. 곧 갈 것이다."

그녀는 조운충을 건드렸다. 조의박은 어차피 조만간 그녀를 찾을 것이다.

그녀는 비록 언짢았지만 정신을 바싹 차리고 화청에 나가 조의박을 만났다.

조의박은 등이 살짝 굽었다. 평상복 차림에 허름한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 손에 찻잔을 들고서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이 일견 농사꾼처럼 아무 위험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월령안은 곧장 경계심을 곤두세웠다.

"조 수비 대인을 뵙습니다."

조의박은 친아들이 변을 당하고 그 '범인'인 그녀를 만났는데도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조의박을 비범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월 낭자, 앉으시지."

조의박은 마치 자기가 이 자리의 주인인 것처럼 도리어 월령안에게 자리를 권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아들자식을 대신해 월 낭자께 사과하기 위해서라네. 일전에 적잖은 무례한 일이 있으면 월 낭자께서 부디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라네. 사과의 뜻으로 대신 약 한 알을 가지고 왔다네. 월 낭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

조의박은 앞에 놓인 비단함을 열어 투명한 흰 알약을 보여 주었다.

이 알약은 육장봉이 전에 가져온 혈옥주를 완화시키는 해독제와 똑같았다.

월령안은 힐끗 바라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조 대인은 잊으신 모양입니다. 당신 수중의 혈옥주는 우리 월씨 가문에서 빼앗아 간 것입니다. 당신은 저에게 해독약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조의박은 정말로 안하무인이고 유아독존인 자기 아들이 내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 나를 강요해 혈옥주를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지?'

"월 낭자는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세상에서 보지 못한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내 이 선물이 너무 약소해서 부끄럽게 되었구먼. 월 낭자, 자네도 알 테지만 내가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네. 갑자기 부귀하게 되다 보니 내놓을 물건이 많지 않다네. 만약 무언가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말하게나. 내가 할 수 있다면 절대 딴소리하지 않고 내어 줄 것이네."

조의박은 변함없는 표정으로 비단함을 거두어들였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뜻밖이군. 혈옥주로도 월령안을 포섭할 수 없다니. 괘씸하구먼.'

"수비 대인께서 시원시원하시니 저도 체면을 차리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십 년간 제 수익의 일 할을 돌려받고 더하여…… 범씨 가문 앞으로 십 년 동안 수익의 일 할을 제게 주십시오."

월령안은 조의박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의박의 유일한 아들로서 조운충의 몸값은 절대로 낮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그녀가 구입한 서역 초약보다 싸서는 안 되었다.

염명경 귀시에서의 일에 대해 조의박과 범씨 가문 가주는 혹여 잊었을지 몰라도 그녀는 하루라도 잊은 적이 없었다.

"역시 월 낭자는 부유하면서도 권세가 있군. 이 가격은…… 너무 비싸서 감당할 수가 없네."

조의박은 나름 산전수전을 다 겪은 편이었다. 그래도 월령안의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숨을 한껏 들이켰다.

'월령안은 어찌 감히 이렇게 나오지? 미친 거 아닌가?'

"괜찮습니다. 거래가 성사되지 않아도 인의는 저버리지 말아야죠. 장사니까요. 거래는 쌍방이 모두 원해야 해요."

그녀는 조의박이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고 믿을 수 있었다.

확실히 그는 옹색했다.

그녀는 애당초 염명경 귀시에서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투정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지금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건가?'

조의박은 마음속 노기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성격 좋게 물었다.

"월 낭자, 다른 가격을 불러 보시지."

월령안은 코웃음을 쳤다.

"수비 대인, 염명경 귀시에서 제가 당신들에게…… 다른 가격을 제시하라고 하던가요?"

애당초 그녀는 흥정조차 하지 않고 범씨 가문에서 부르는 가격대로 승낙했다. 쓸데없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도마에 오른 고기로서 유린당할 자각은 되어 있어야 한다.

조의박은 노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말했다.

"내가 범씨 가문 가주 대신 결정할 수 없다네. 아니면 범 가주를 모셔서 월 낭자와 둘이서 의논하는 건 어떤가?"

"수비 대인, 이 장사는 제가 하려는 게 아닙니다."

'조의박은 무슨 좋은 생각을 하는 거야?'

남에게 도움을 청하면 도움을 청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십여 년 동안 청주에 들어박혀 있으면서 위에서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정말로 자기가 황제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자기 말이면 누구나 다 듣는 줄 아나.'

"월 낭자…… 지금 내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겠다는 말인가?"

조의박은 갑자기 안색이 변하더니 손에 든 잔을 탁자 위에 냅다 던졌다.

"월령안은 내 체면도 안 봐주는 상인입니다. 조 수비께서는 저보다 더 체면이 있는 모양이군요."

육장봉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이야기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조 수비께서 저를 만나려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제가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저를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육장봉은 상석에 앉았다. 완전히 집주인의 자세였다.

"대장군께서 공무로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감히 폐를 끼치지 못했습니다."

조의박은 월령안을 만나면 육장봉이 반드시 나타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육장봉은 모습을 비췄지만 그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들어서자마자 그에게 엄포를 놓았다.

"이미 폐를 끼쳤습니다."

육장봉은 조의박에 대한 혐오감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겉치레도 하지 않았다.

"당신이 온 목적은 어지간히 짐작이 가는군요. 저는 당신과 꼼수를 부리거나 쓸데없는 말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오늘 말을 제대로 해 두죠. 당신들이 과거 염명경 귀시에서 월령안을 강요하였던 그대로 돌려줄 것입니다. 당신들이 아포를 시켜 최일에게 독을 쓸 수 있듯이 저도 마찬가지로 아포를 시켜 조운충에게 독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조운충을 구해도 아무 소용이 없죠."

육장봉은 조의박을 싫어했다. 조의박이 청주를 점령하고 조정과 맞서며, 수차례나 월령안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 원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욱이는 십 년 전 일 때문이었다.

십 년 전, 그와 조계안이 북요에서 변을 당해 월령안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연루시킨 일에서 조의박은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조의박에게 좋은 낯빛을 보이기는커녕 그가 칼을 들고 찾아가서 조의박을 죽이지 않은 것도 이미 아주 이성적인 처사였다.

조의박은 월씨 대저택에서 일각도 안 되어 육 대장군에게 쫓겨났다.

다만 조의박은 원체 시치미를 잘 떼는 사람이었기에 남들은 그가 월씨 대저택에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남들은 월씨 대저택 집사가 예의를 차려 그를 문밖으로 배웅하는 것만 볼 수 있었다.

조의박이 월씨 대저택에서 나오자 청주의 명사들은 몰래 육 대장군이 언제쯤이면 완안경을 풀어줄지 짐작했다.

한 시진, 반나절 또는 하루 이틀 정도로 짐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이의 예상과 달리, 이튿날 아침 일찍 조정에서 파견된 흠차 대신 곡 대인은 완안경과 동 지주를 끌고 변경에 돌아가 복명했다.

"지금 이는 무슨 상황이지?"

뭇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조의박이 직접 월씨 저택을 찾아갔는데도 육 대장군은 사람을 풀어주지 않았다.

"아니면 청주에서의 조씨 삼형제 시대가 저문 건가?"

어떤 사람은 저도 모르게 대담하게 추측했다.

하지만 청주에 주둔하고 있는 십만 병마 그리고 청주와 왕래가 밀접한 금나라를 떠올리자 사태를 살피던 사람들은 그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말았다.

조씨 삼형제는 수중에 군대가 있었다. 육 대장군이 지금 청주에서 이목을 끌고 잘나간다 하더라도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육 대장군이 가고 나면 청주는 여전히 조씨 삼형제의 청주였다.

청주 지역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들로서는 여전히 조씨 삼형제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뭇사람들은 육 대장군에게 줄을 대려던 생각을 내려놓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그들 같은 사람은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상책이었다.

청주의 명사, 상인들은 금세 구경꾼으로서의 마음을 접고 문을 닫아걸었다. 꼭 필요한 일 외에는 일절 외출하지 않았다.

커다란 청주성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평소 양식을 사재기하며 기회를 틈타 횡재하려던 상인들마저 조용해졌다. 자칫 조의박의 심기를 건드려 일벌백계로 잡혀 죽을까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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