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9화 이래도 괜찮은 겁니까?
완안경이 잠깐 멈칫했다. 육장봉의 호위병 육삼이 관졸들을 이끌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완안경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관졸들은 일제히 달려들어 그에게 긴 창을 겨누었다.
육삼은 다가서서 완안경을 훑어보더니 물었다.
"금나라의 대황자이신가요?"
완안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육삼을 힐끗 쳐다보고 다시 육장봉에게 하찮다는 눈빛을 보냈다.
"이게 당신 능력인가?"
육장봉은 한 손을 뒷짐 지고 서서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에는 조소가 어려 있었다.
"금나라 대황자 완안경, 주나라의 허락도 없이 몰래 주나라에 입국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금나라에서 파견한 첩자라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대황자, 저희와 함께 다녀오셔야겠습니다."
육삼은 엄숙한 표정으로 등 뒤 관졸더러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한편 좋은 마음으로 완안경에게 주의를 주었다.
"대황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이 손쓰게 하지 마십시오."
완안경은 얼굴빛이 크게 변하며 뒤로 한발 물러섰다. 이를 부득부득 갈며 노하여 소리쳤다.
"육장봉, 나는 금나라 대황자이다. 너희들이 감히 나를 건드린단 말이냐."
"바로 당신, 금나라 대황자를 잡는 것입니다."
육장봉의 대답이 필요 없었다. 육삼이 대신 그에게 대답해 주었다.
"대황자, 변경에 가면 주나라 관리에게 잘 해명해야 할 겁니다. 국서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주나라의 국토에 들어왔는지, 사적으로 몰래 주나라에 들어와 무엇을 하려 했는지 말입니다."
육삼은 완안경이 무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대장군이 한바탕 혼내 주었지만 평범한 관졸은 그를 잡을 수가 없었다.
육삼도 헛짓을 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서자마자 발로 걷어차서 완안경을 무릎 꿇게 했다. 그런 다음에야 관졸들더러 완안경을 잡으라고 했다.
완안경은 땅바닥에 꿇어앉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관졸은 급히 다가와 그를 억눌렀다.
"육장봉……!"
완안경은 얼굴이 땅에 닿자 수치스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그는 무진 애를 쓰며 몸부림을 쳤으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육장봉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한 걸음 다가서서 조소가 어린 눈빛으로 완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금나라 대황자, 당신은 기도해야 할 거야. 금나라 황제인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을 많이 아끼기를 말이다. 아니면…… 내가 약속하는데 당신은 평생 주나라에서 감옥살이를 해야 할 거야."
완안경은 주나라 세력 범위에서 제멋대로 날뛴 것도 모자라 감히 육장봉의 아내에게 구혼까지 했다.
'이 자식 눈에는 내가 죽은 사람으로 보이나?'
금나라 대황자 완안경이 잡혔다.
육장봉은 완안경이 사사로이 주나라에 들어왔기에 첩자로 의심된다는 죄명으로 감옥에 잡아넣고 누구도 면회하지 못하게 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전체 청주의 세도가들은 모두 멍해졌다.
"이럴 수도 있습니까?"
흠차 대신 곡 대인과 구 대인은 대경실색한 표정으로 인계하러 온 육삼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정말 이런 죄명으로 완안경을 변경으로 압송해도 괜찮은 겁니까?"
구 대인은 그나마 괜찮았다. 그는 청주에 남아 부임해야 하기에 정말 완안경을 변경으로 압송한다 해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곡 대인은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왜 안 됩니까?"
육삼이 되물었다.
곡 대인은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금나라의 대황자입니다. 저희가 마땅한 이유 없이 잡아들이면 금나라의 불만을 사지는 않을까요?"
완안경은 월령안의 연회에 모습을 드러낸 뒤 줄곧 이목을 끌었다. 심지어 거리낌 없이 수비부에 머물렀다.
그들은 완안경이 청주의 그 몇 노친네와 가까이 지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도 완안경을 잡으려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쨌든 완안경은 금나라의 황자였다. 그들이 이렇게 사람을 잡아들이고 또 떠들썩하게 변경까지 압송하는 것은 금나라의 체면을 짓밟고 일부러 두 나라의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육삼은 다시 물었다. 얼굴에는 차갑고 도도한 기운이 서렸다.
"금나라의 불만이 아주 중요한가요?"
"우리 주나라와 금나라는 아직 동맹 관계입니다."
곡 대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이제 막 북요와의 전쟁을 치렀습니다. 단시일 내에 다시 전쟁을 벌이는 것은 무리입니다."
"동맹관계이면 금나라 대황자가 주나라에 올 때, 직접 조정에 국서를 보내면 됩니다. 수상하게 청주에 몰래 올 이유가 있습니까?"
육삼은 팔짱을 끼고서 거만하게 곡 대인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차가운 조소가 서려 있었다.
"상대방이 나쁜 의도를 가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맞아들이고 그가 우리 주나라 지역에서 세도를 부리게 내버려 둔단 말입니까. 곡 대인, 당신 같은 학자들은 평소에도 이처럼 기개가 없는 겁니까?"
곡 대인은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노하여 고함을 질렀다.
"금나라 대황자가 사적으로 몰래 청주에 온 것은 틀린 행동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들이 사람을 모욕하고 변경까지 압송해 갈 수 있는 이유는 아니죠.
제가 보기에 당신들은 일부러 양국의 전쟁을 도발하고 기회를 틈타 출세하고 돈을 벌려는 것 같군요. 당신네 무장들은 무력을 남용해 전쟁을 일삼으며 백성이 죽거나 말거나 상관하지도 않죠. 당신들이 무슨 속셈인지 당신들 스스로 모르십니까?"
"보아하니 우리는 서로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군요."
육삼은 곡 대인과 더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곧바로 육장봉이 그에게 준 영패를 꺼내 보이며 냉혹하게 명령했다.
"추밀사령(樞密使令)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흠차 사신단은 추밀원이 인계한다. 곡 대인, 구 대인, 명령에 따르시오."
곡 대인과 구 대인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육삼 수중의 영패를 보았다.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들은 육 대장군이 일품 대장군일 뿐만 아니라 추밀사였던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비록 그들의 직속 상관은 아니지만 추밀원은 백관을 감찰할 권리도, 관리들을 처벌할 권리도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추밀원의 '감사'를 받게 된 건가.
"곡 대인, 구 대인. 두 분께서는 또 다른 문제라도 있습니까?"
육삼은 두 사람이 멍해 서서 움직이지 않자 성격 좋게 한마디 일깨워 주었다.
곡 대인과 구 대인은 서로 마주하여 쓴웃음을 짓고는 손을 들어 예를 올렸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대인께서 분부하십시오."
직급이 하나라도 더 높으면 사람을 짓눌러 죽일 수 있다.
육삼은 비록 호위병이지만 그의 배후에는 추밀사 육 대장군이 있었다. 그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은 오직 금나라가 전쟁을 일으키지 말기를 기대할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정말 주나라의 죄인이 될 것이다.
곡 대인과 구 대인은 수심에 잠겼다.
하지만 육삼을 어찌할 수가 없어 눈을 뻔하게 뜨고 그가 완안경을 지하 감옥에 집어넣고 심문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다. 정말로 심문이었다.
밧줄로 매달아 놓고 한마디도 묻지 않은 채 곧장 채찍으로 후려치는 심문이었다.
채찍에 맞아 선혈이 낭자하고 죽어가는 금나라 대황자를 보면서 곡 대인과 구 대인은 근심이 태산 같았다.
그들이 아무리 아둔하더라도 육 대장군이 금나라와 주나라 사이 전쟁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심지어 고의로 전쟁을 도발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 조정에서 문관들이 손잡고 육 대장군에게 병권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던 것을 떠올리자 두 사람은 일시에 음모론으로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육 대장군은 병권을 내놓기 싫어 일부러 금나라와 주나라 사이 분쟁을 일으키고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
이 일은 절대 참아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육 대장군을 막을 수 없지만, 한 사람은 막을 수 있었다.
구 대인과 곡 대인은 서로 눈 맞춤을 했다.
육삼이 심문에 열중하고 있자 곡 대인은 잠깐 망설이다가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는 조왕 그리고 황제에게 보고할 것이다. 육 대장군의 음모가 이루어지게 해서는 절대 안 되었다.
* * *
조계안은 그동안 지주부에서 부상 치료를 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이러했다.
곡 대인은 매우 순조롭게 조계안을 만났다. 침통한 표정으로 보고하며 잊지 않고 자신의 추측도 덧붙였다.
"전하, 육장봉은 야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절대 그의 야망이 이루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알았다."
조계안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별로 마음에 담아 두는 모습이 아니었다.
곡 대인은 참지 못하고 다시금 설득했다.
"전하, 육장봉의 사람들이 이미 금나라 대황자에게 형벌을 가했습니다. 지금 저지시키지 않으시면……."
"내가 말했잖아! 알았다고!"
조계안은 갑자기 울화통을 터트렸다. 음침한 눈동자로 곡 대인을 노려보며 으스스하게 말했다.
"다른 일이 있나? 곡 대인?"
"아니, 아니. 없습니다……."
곡 대인은 겁에 질려 얼굴이 새하얘졌다. 흠칫 떨고 고개를 저으면서 은근히 후회했다.
조왕 전하는 그동안 내내 단독으로 행동하고 그들에게도 예의를 차린 편이었다. 일순간 조왕 전하가 육 대장군보다 더 모시기 힘든 사람이라는 것을 깜빡 잊었다.
"없으면 그냥 꺼져."
조계안은 곡 대인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직접 호위더러 곡 대인을 내던져 버리게 했다.
곡 대인은 볼썽사납게 땅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가 절망에 빠진 가운데 조계안이 갑자기 명을 내렸다.
"말을 준비해라. 월씨 대저택에 갈 것이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곡 대인은 조계안의 말을 듣고 감동해 마지않았다.
그는 조왕 전하께서 결코 육장봉이 무력을 휘두르며 조정을 위험에 빠뜨리게 가만두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 * *
육장봉이 완안경을 잡아들이자마자 조의박은 소식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적어도 청주에서 그는 절대적으로 자신만만했다.
육장봉은 결코 완안경을 청주 밖으로 데려 내갈 수 없었다.
완안경이 육장봉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기껏해야 조금 고통을 겪는 정도일 거다.
그리고 그는 분명 완안경을 구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천박하다.
육장봉이 완안경을 잡자마자 그가 구해 내온다면 완안경은 제대로 고통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그의 도움에 대해서도 감사한 마음이 덜할 것이다. 혹시라도 자그마한 억울함을 당하고도 오히려 그가 늦게 구출했다고 탓할지도 모른다.
그는 완안경을 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완안경이 육장봉에게 실컷 모욕당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 손을 내밀어 구할 것이다. 오직 그렇게 되어야만 완안경의 전적인 감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주부의 정탐꾼이 육장봉의 사람들이 완안경을 고문해 그가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는 소식을 전한 다음, 조의박은 움직였다.
그는 월씨 대저택에 육 대장군을 만나겠다고 명첩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