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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65)화 (665/1,004)

665화 쓸모라고는 없는 놈!

조기충은 말할수록 목소리가 낮아졌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줄곧 고개를 숙이고 감히 사람을 쳐다보지 못했다.

"어찌 된 일이냐? 물건을 운송해 나가게 했단 말이냐?"

잇단 두 가지 나쁜 소식에 조의박은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탁, 소리 나게 팔걸이를 잡으며 성난 목소리로 문책했다.

"너는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

"큰형님, 어젯밤 저희 행동이 세어나갔습니다. 어젯밤, 육장봉은 두 갈래로 나뉘어 행동했습니다. 한 갈래는 그가 직접 사람들을 이끌고 서남에서 출발하여 우리와 정면으로 싸웠습니다. 또 다른 한 갈래는 상인으로 분장해 검문소를 강제로 뚫고 나갔습니다. 제가 소식을 듣고 쫓아갔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땅바닥에 널려 있는 부서진 돌들만 보았을 뿐입니다."

조기충은 자기가 무능한 것이 아니라 육장봉이 너무 교활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급급히 변명했다.

그러나 조의박은 전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탁자 위 물 주전자를 잡아 조기충에게 냅다 던지며 노발대발했다.

"쓸모라고는 없는 놈! 그 양식 종자가 조정에 전달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

"기충이 직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큰형님께서 벌을 내려 주십시오."

조기충은 감히 말을 더 하지 못했다. 다만 고개를 숙여 잘못을 인정할 뿐이었다.

"벌을 내려? 양식 종자가 조정에 전달돼 우리의 계획을 망치면 너를 천만 번 더 죽여도 시원치 않을 거다."

조의박은 육장봉의 손아귀에 떨어진 아들을 떠올리자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조기충에게 좋은 낯빛을 보일 수가 없었다.

어젯밤에는 조기충도 이용당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기충이 무고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어젯밤에 육장봉을 막지 못해 거웅령까지 쳐들어가게 한 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했다.

"너는 이만 명을 거느리고 육장봉의 백 명도 막아내지 못했다. 셋째야, 난 너의 군대 통솔 능력이 의심스럽구나."

조의박의 말은 경쾌했다. 하지만 그 속뜻에 조기충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조기충은 급히 고개를 들었다.

"큰형님……!"

그가 입을 열자마자 조의박의 가벼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셋째, 넌 돌아가서 한동안 반성해라. 그동안…… 군 사무는 둘째에게 맡겨라."

"큰…… 형님……!"

조기충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얼굴빛이 백지장같이 하얗게 바랬다.

'큰형님이 나를 믿지 않는 건가? 내 권리를 빼앗으려는 건가?'

조의박은 냉담한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았다.

"왜? 내 처벌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냐?"

"아닙니다. 기충이 어찌 감히."

조기충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내려가거라!"

조의박은 손을 들어 보이며 짜증을 드러냈다.

조기충은 대답하고 나서 망연자실해 수비부를 빠져나왔다.

조기충이 나가자마자 조의박의 눈에는 다시 서슬 퍼런 빛이 떠올랐다. 그는 텅 빈 대청에 대고 한마디 분부했다.

"셋째를 지켜봐라."

"네."

극히 가벼운 소리가 울리더니 곧 바람처럼 흩어졌다.

조기충은 수비부를 나서자마자 소식을 받고 찾아오는 조운천에게 가로막혔다.

"셋째야, 이 형이 그럼 사양하지 않으마."

조운천은 득의양양해 조기충에게 공수했다. 만면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조기충은 그를 사납게 노려봤다.

'별말씀을. 내 것을 그렇게 쉽게 얻을 수는 없을걸.'

조운천은 더욱 환하게 웃었다.

"셋째, 네가 청운의 꿈을 가지고 있는 건 형인 내가 막을 수도 없고 막지도 않을 거다. 걱정하지 마. 네 수중의 십만 대군은 이 형이 너를 대신해 잘 지키고 있을 테니까."

조기충은 금세 얼굴빛이 바뀌며 대경실색하여 조운천을 바라보았다.

조운천은 박장대소하며 앞으로 다가서더니 조기충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고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게 귓속말을 했다.

"셋째, 우리는 형제야. 네 그 속셈을 감출 수가 있다고 생각해? 어젯밤 일에서 내가 네 편의를 봐주지 않았으면 성사됐을 것 같으냐?"

조기충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조운천을 바라봤다.

"당신……!"

그의 눈에 어리석고 독하기만 하고, 맏이 말만 들으며 개처럼 부림을 받던 둘째가 결국 속셈이 가장 깊은 사람이었단 말인가.

그러나 조운천은 그에게 더 물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득의양양해서 그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훌쩍 떠나갔다.

청주는 그리 크지 않았다. 병권이 교체되는 이런 큰일은 전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날로 청주의 모든 이들은 조기충이 병권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운천은 대외적으로 조기충이 병권을 내놓은 것은 신체적인 원인으로 다른 일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이유에 대해 청주의 명망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거리의 백성들도 믿지 않았다.

사람들은 곧 어젯밤에 생긴 일들을 알게 되었다.

육 대장군의 사람들이 청주의 방어를 뚫고 서남으로부터 양식을 운반해 갔다.

월령안이 조운충을 폐인으로 만들었다.

두 가지 일은 모두 조기충의 무능함을 드러내었다. 그를 바꾸지 않으면 누구를 바꾸겠는가.

"월씨 가문의 그 어린 아가씨가 참으로 독하구나!"

육장봉의 사람이 양식을 운송해 간 데 대해 사람들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육장봉이 누구인가. 북요를 물리치고 북요를 핍박해 무릎을 꿇린 대장군이었다. 그가 거느리는 병사들도 당연히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그가 조씨 삼형제의 방어선을 뚫고 양식을 운송해 갈 수 있는 데 대해 청주의 상인들은 전혀 뜻밖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이 의외로 여기는 것은 월령안이었다.

조운충이 누구인가. 그는 청주의 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월령안은 청주 지역에서 청주의 태자 나리를 폐인으로 만들었다. 능력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우선 담력만 해도 보통 사람들은 발꿈치도 못 따를 것이다.

"조운충을 폐인으로 만든 것은 작은 일이지. 조운충을 폐인으로 만들고도 그분이 화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능력이지."

온 하루가 지나가도 수비부에서는 월령안을 찾아가서 괴롭히지 않았다.

청주의 상인들은 훤히 알게 되었다.

조의박은 월령안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 * *

청주 상인들이 이 일을 논하고 있을 때, 안 대상인도 금나라 대황자 완안경에게 어젯밤 움직임에 대해 보고하고 있었다.

"대황자 전하, 육 대장군의 사람들이 어젯밤에 운송해 간 양식은 모두 몽산에서 빼앗아 온 것입니다. 서남쪽의 정탐꾼이 보고한 데 의하면 청주 사람들은 그것을 감자와 옥수수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우리 사람들이 어젯밤 혼란한 틈을 타서 숨긴 것입니다."

완안경의 앞에는 감자 한 알과 옥수수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두 가지 양식 종자의 생산량이 정말 그렇게 높은 것이냐?"

완안경은 탁자 위의 양식 종자를 가늠해 보며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가 이번에 청주에 온 목적은 월령안을 위해서 그리고 조의박과 합작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청주의 양식 때문이었다.

청주는 주나라에 봉쇄되어 작물이 거의 들어올 수 없었다. 하지만 조의박 삼형제는 청주 이 작은 지역에서 십만 대군을 먹여 살렸다. 누구나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금나라는 청주의 상인들과 가장 많이 왕래했다. 그들은 청주의 상인들이 밖에서 양식을 산 적이 없고 서남에서도 청주에 양식을 판 적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조의박 삼형제는 무엇으로 십만 병마를 먹여 살렸는가.

금나라는 양식이 모자랐다. 특히 그들이 북요와 손잡고 주나라를 공격하려는 지금, 양식은 더욱 중요해졌다.

그리하여 완안경이 온 것이다.

청주에 와서 조의박 삼형제와 협력 문제를 논하는 동시에 청주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서남에서 전해 온 소식에 의하면 이 두 가지 작물의 수확량은 밭 한 뙈기에 이천여 근에 달한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 비옥한 땅이 아니고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는데, 단지 수확량이 좀 낮아지는 정도라고 합니다."

안 대상인은 허리를 굽힌 채 공손히 말했다.

"네가 보건대 내가 조의박에게 이야기하면 그가 이 두 가지 작물을 나한테 팔 것 같으냐?"

완안경은 옥수수를 든 채 빙긋 웃었다. 다만 그 미소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알이 옹골지고 황금빛에 옥처럼 투명하니 옥미(玉米 - 옥수수)라는 이름에 부합하는구나."

"저 옥수수는 말린 뒤에 갈아서 가루로 만들 수 있습니다. 만약 대황자 전하께서 사려고 하신다면 청주 쪽에서는 옥수수를 갈아 가루로 전하께 팔 겁니다."

안 대상인은 상인의 입장에서 완안경에게 설명하고 대답했다.

조정에 옥수수와 감자가 전달되었으니 이제 더는 비밀이 아니었다.

완안경이 그것을 사려면 돈만 지불하면 되었다.

조의박은 금나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분명 팔 것이다. 하지만 종자는 절대 팔지 않을 것이다.

안 대상인은 몰래 완안경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의 낯빛이 어두운 것을 보고는 아차 싶어 급히 한마디 덧붙였다.

"이 두 가지 양식 종자는 해외에서 온 것입니다. 대전하께서 사람을 보내 해외에서 구할 수도 있습니다."

"해외라고? 한번 바다에 나가면 이삼 년은 보내야 한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완안경은 옥수수를 탁자 위에 도로 던졌다.

"월령안을 찾아가서 압력을 넣어라. 그녀더러 앞당겨 양식을 내놓으라고 해. 만약 그만큼 내놓지 못하면 몽산의 새로운 양식 종자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해. 양식 종자 한 석을 백 석으로 쳐 주겠다고 말이야."

"대황자 전하, 그건……."

안 대상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왜? 할 수 없는 것이냐?"

완안경은 온몸의 분위기가 금세 변했다. 마치 사람을 삼켜 버릴 것 같은 호랑이로 변해 안 대상인을 노려보았다.

"됩니다. 됩니다……."

안 대상인은 자기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할 수 있으면 좋겠군. 아, 맞아. 그리고 월령안의 지금 상황을 알아보아라. 나는 어젯밤 소식이 정확한지 알고 싶구나."

완안경은 시선도 주지 않고 경쾌하게 명령을 내리고는 옷소매를 젖히며 자리를 떴다.

한참 지나 안 대상인은 기어 일어나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군주를 모시는 건 호랑이 옆에 있는 것과 같구나."

* * *

안 대상인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완안경에게서 떠나 곧장 월씨 대저택으로 달려갔다. 월령안을 찾아서는 단도직입적으로 찾아온 의사를 밝혔다.

월령안은 말을 다 듣고 나서 화난 나머지 활짝 웃고 말았다.

"안 나리, 처음 장사하시는 건 아니잖습니까? 한 달 뒤에 받기로 한 물건을 갑자기 앞당기겠다고 하시다니.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안 대상인은 애걸복걸했다.

"월씨 조카……!"

"이러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조카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네요!"

월령안은 전혀 체면을 봐주지 않고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월씨 가문은 다년간 장사를 하면서 줄곧 신용을 지켰습니다.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쓰인 계약서가 있습니다. 안 나리께서 잊으신 것 같으니 계약서를 가져와서 읽으라고 분부하지요."

그녀가 안씨 가문에 진 인정 빚은 이미 갚았다. 안 대상인이 아무리 불쌍한 척해도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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