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661)화 (661/1,004)

661화 거웅령 탈출

조운충의 사람들이 조운충을 구하려면 먼저 육장봉의 방어를 뚫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육장봉에게 접근하자마자 그의 긴 창에 맞아 쓰러졌다. 방어를 뚫기는커녕 말 다리 근처에도 접근하기 어려웠다.

우두머리는 육장봉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자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쇠뇌차를 써야 한다! 가서 쇠뇌차를 가져오너라!"

쇠뇌차를 가져오라는 소리에 부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참장, 세자 나리께서 아직 그들 수중에 있습니다."

우두머리 눈에는 잠깐 갈등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먼저 육장봉과 월령안을 막아야 해. 그들이 도망가게 해서는 안 된다."

"세자를 다치게 하면 어떡할 겁니까?"

부수는 목에 힘을 주며 큰 소리로 물었다.

"참장, 세자 나리의 안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순간, 비바람이 거센 탓에 두 사람은 말 등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큰 소리로 말하자 우두머리와 함께 육장봉도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육장봉은 손에 든 긴 창을 오른쪽으로 한번 쓸어 달려들던 병사들을 물러서게 하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어찌 이렇게 때마침 올 수 있었는지 아느냐?"

우두머리가 고함을 질렀다.

"어서 쇠뇌차를 끌고 오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들을 막고 세자 나리를 구해야 한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육장봉의 목소리가 빗줄기를 뚫고 울려 퍼졌다.

"바로 너희들 가운데서 누군가가 내게 편지를 보내고 또한 너희 쪽에서 고의로 길을 터 주었기 때문이다!"

앞서 청주와 서남 사이 관문에서 그는 혼자 길을 뚫으며 청주 수비군과 악전고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상대방은 전력으로 그를 막지 않았다. 몇 회 정도 막는 척만 하다 수만 대군이 미리 쳐 놓은 방어선을 뚫게 했다.

방어선을 뚫고 나오는 순간, 그는 육일이 전한 소식이 함정이 아니라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육일이 소식을 받게 된 것은 상대방이 그의 손을 빌려 조운충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 소식이 사실임을 확인하자 그는 조금이라도 늦을까 두려워 나는 듯이 달려왔다.

그러나 두 곳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가 있는 힘을 다해 달려왔지만 한 걸음 늦고 말았다. 월령안은 부상을 입었고 심지어 독약도 복용했다.

월령안의 손에 난 상처, 그리고 조운충이 월령안에게 독을 쓴 사실을 떠올리자 육장봉은 일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갑자기 긴 창을 거두고 명령을 내리던 장군에게 물었다.

"넌 누구의 사람이냐? 네 주인이 조운충의 목숨을 원하는 것이냐?"

"아니, 아니…… 나는 아니야!"

우두머리 장군은 육장봉이 긴 창으로 겨누자 당황해서 고개를 저으며 극구 변명했다.

"나는 당신을 막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세자가 당신 손에 있으니까 당신을 막아야지. 당신……."

"그럼 너는 죽어야겠군."

육장봉은 긴 창을 움직여 창날로 땅바닥을 짚더니 우두머리를 겨냥했다.

"참장……!"

그의 옆에 있던 호위병이 앞에 막아 나서려 했으나 부수가 단칼에 죽여 버렸다.

"너희들이 감히 세자를 배신하다니!"

"슈욱!"

육장봉이 던진 창날이 곧장 우두머리 장군의 가슴에 꽂혔다.

"당신……!"

우두머리 장군은 상처를 부여잡은 채 눈을 부릅뜨고 곁에 있는 부수를 바라보았다.

"넌 누구의 사람이냐?"

안타깝게도 그의 뒷말은 목소리가 너무 작아 끊임없이 쏟아지는 빗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그 자신을 제외하고 누구도 듣지 못했다.

"쇠뇌차를 써서는 안 된다! 세자 전하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우두머리 장군은 비참하게 죽었다.

부수는 곧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그는 우두머리 장군과는 완전히 다른 명령을 내렸다.

쇠뇌차를 끌고 오던 병사는 그 자리에 멍하게 있었다. 한동안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세자 전하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너희들은 반란을 일으킬 생각이냐?"

부수는 병사들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더니 반란을 언급하여 그들을 다시 휘어잡았다.

"저 사람은 당신 사람이오?"

육장봉은 상대방의 장군이 죽고 부수가 지휘를 제대로 하기까지 전장이 잠깐 술렁이는 이 틈을 타, 또다시 얼마간 앞으로 나아갔다. 동시에 막아 나서는 병사들을 쳐냈다.

육삼과 추수는 육장봉의 뒤를 따르며 그물에서 빠진 몇몇에게 칼을 날려 뒤를 지켰다.

"아니에요."

육장봉은 월령안의 허리를 잡고서 그녀를 단단히 품에 가두었다.

월령안은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부수의 반응은 확실히 어딘가 이상했다. 하지만 정말 그는 그녀의 사람이 아니었다.

월씨 가문은 청주를 떠난 지 너무 오래되었다. 설령 애당초 조의박 쪽에 사람을 심어 두었다 해도 시간이 많이 흘러 쓸 수가 없었다.

그녀도 이미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과거 월씨 가문에서 수비부에 심어 두었던 정탐꾼 중에서 그녀에게 응답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당신의 사람이 아니라면 나도 인정사정 볼 필요가 없겠군."

적군을 대적할 때 임시로 장군을 바꾸는 것은 금기이다.

부수는 일시에 뭇사람을 승복시킬 수 없었다. 병사들은 누구의 명령을 들어야 할지 몰라 제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육장봉이 포위를 돌파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부수의 능력은 강한 편이었다. 권력을 탈취한 뒤, 즉시 대응했지만 결국 늦고 말았다.

부수가 대세를 안정시켰을 때, 육장봉은 이미 혼란을 틈타 포위권을 뚫었다. 또한 육삼과 추수를 위해 시간을 쟁취해 주었다.

"너희 둘은 사람을 데리고 먼저 가거라. 내가 뒤를 막을 것이다."

육삼은 두말없이 말을 몰아 떠나갔다. 추수는 멈칫하며 불렀다.

"아가씨……!"

육삼은 채찍을 휘둘려 추수의 말 등을 후려치며 말했다.

"추수, 저희 장군이 계십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육삼과 추수는 조운충과 상천을 데리고 분지에서 뛰쳐나와 거웅령 밖으로 진격했다.

아포는 그들 둘보다 한 발짝 뒤떨어져 비틀거리며 질주했다.

육장봉은 말 머리를 돌려 추격해 오는 병사들을 가로막았다. 긴 창을 한번 휩쓸면 한 무더기씩 나가떨어져 그들에게 가까이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나뉘어져서 뒤쫓아라! 육 대장군은 상관하지 말고 세자를 구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 한다!"

부수는 조운충의 안전을 중히 여기는 것으로 지휘권을 차지하고 정세를 안정시켰다. 지금 이 순간, 조운충의 안전을 높이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육장봉과 월령안에게 돌진하던 병사들은 즉시 나뉘어 양측으로 분지를 벗어나 육삼과 추수를 쫓아갔다.

육장봉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뿐이라 모든 병사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육삼을 뒤쫓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자 월령안은 탄식하고 말았다.

"방금 전에 저를 먼저 보냈어야 했어요. 제가 남아 있으니 짐만 되네요."

"당신은 영원히 짐이 아니오."

육장봉은 월령안의 머리를 껴안고 다시 말 머리를 돌려 거웅령 밖으로 달려갔다.

이 사람들이 그를 막지 않는 이상, 그 역시 그들과 실랑이질할 필요가 없었다.

조운충의 사람들은 부수의 명령에 따라 육장봉을 막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다. 오로지 조운충을 데리고 간 육삼만 쫓아갔다

육장봉도 즐거운 마음으로 월령안을 데리고 거웅령 밖으로 달려 나갔다.

도중에 추격을 당하면 그는 사정없이 긴 창으로 한 번에 하나씩 쓰러뜨렸다.

거웅령 입구에 다다른 두 사람은 싸우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육삼과 추수가 조운충의 사람들에게 막혔음을 알 수 있었다.

육장봉이 긴 창을 채찍으로 삼아 말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말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말은 두 사람을 태우고 쏜살같이 거웅령 밖으로 돌진했다.

그들이 거웅령에서 뛰쳐나가는 순간, 갑자기 비가 멎더니 햇빛이 구름을 뚫고 대지를 비췄다.

두 사람은 대춧빛 큰 말을 타고 질주하고 있었다. 앞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이, 뒤에는 캄캄한 삼림이 펼쳐져 있었다. 이는 마치 신선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후 어둠에서 벗어나 빛 속으로 달려가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이 날아 나오는 순간, 육장봉은 긴 창을 들어 말 앞에 가로막고 있던 병사 한 명을 찔러 날려 버렸다. 병사가 날아가면서 허공에 피를 흩뿌렸다.

이는 두 사람의 등장에 강렬한 색채를 더해 주었다.

"대장군!"

"아가씨!"

육삼과 추수가 고개를 돌려 이 장면을 보게 되었다. 눈은 온통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순간, 평소 육 대장군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추수도 한순간이지만 월령안에게 그가 더없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부삼은 거웅령 밖에 서서 두 사람이 질주해 오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말 등에 앉은 두 사람은 그들이 삼림 속에서 나는 듯이 달려 나오는 그 순간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전혀 몰랐다.

말이 멈춰 서자 육장봉은 병사와 싸우는 강호인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찌 된 일이오?"

"셋째 두령?"

월령안은 육장봉의 품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거친 옷을 입고 나타난 와호방 무리가 보였다. 다시 고개를 돌리니 청색 피풍의를 걸치고 무리 밖에 서 있는 부삼이 보였다.

월령안은 육장봉의 품에서 벗어나 말 등에서 뛰어내렸다.

육장봉은 막으려 하다가 결국 참고 말에서 내려 월령안과 함께 부삼에게 걸어갔다.

"셋째 두령, 감사합니다."

월령안은 부삼의 앞에 이르러 읍을 하며 예를 올렸다.

"손은 어찌 된 것이냐?"

부삼의 눈길은 우선 먼저 월령안의 손에 떨어졌다.

"스읍……!"

부삼이 말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으나 말하자마자 그녀는 뼈저린 아픔을 느꼈다. 한껏 숨을 들이켜 통증을 완화시키고는 곧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손을 흔들더니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피부와 살만 상했어요."

월령안은 이 정도 상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아포가 경고했던 비할 바 없이 무서운 혈옥주마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녀는 즉석에서 목숨을 앗아가는 견혈봉후(見血封喉) 정도가 아니라면 어느 것도 두렵지 않았다.

때문에 조운충이 독약을 꺼내는 것을 보고도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심지어 냉정하게 기회를 엿보다가 역으로 조운충을 제압했다.

그때 그 상황에서는 그녀가 독약을 복용해야만, 조운충의 경계심을 늦출 수 있었다. 그래야만 조운충을 제압할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만일 그녀가 그 독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그렇게 쉽게 복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목숨을 매우 아꼈다.

그러나 부삼은 월령안이 신경 쓰지 않는 작은 상처에도 퍽 마음이 쓰였다.

그는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날카로운 눈길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이렇게 령안을 보호하는 것인가?"

육장봉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냉담하게 부삼을 힐끗 스쳐보았다.

"청주에 난리가 날지 안 날지, 그 마음에 달렸다는 부삼도 뭐 그저 그렇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