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660)화 (660/1,004)

660화 나가지 못한다고 누가 그래

월령안은 피 묻은 칼을 들고 차갑게 웃었다.

"당신은 나를 죽여야 했어. 나를 농락하려고 하지 말고."

말이 떨어지자 월령안은 다시 칼로 내려찍어 조운충의 다른 한 손을 손목에서부터 절단했다.

"손 하나에 사람 한 명을 바꾼다고 했죠. 손 두 개로 사람 둘을 바꿉시다. 조 세자, 제가 공평하죠?"

월령안의 손은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든 칼에서도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피는 그녀의 발밑에서 피 못을 이루었다.

그녀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 있었으나 옆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있었다. 이는 마치 그녀를 절반으로 나누어 놓은 것만 같았다.

번개가 번쩍이며 그녀의 손에 든 큰 칼을 비추었다. 피로 얼룩진 칼이 살벌하게 무서워 보였다.

번갯불은 동시에 그녀의 눈에 서린 평온한 광기를 비춰 주었다.

이는 미치광이였다. 냉정하고 자제할 줄 아는 미치광이였다.

조운충은 드디어 아버지가 왜 월씨 가문의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월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미치광이였다.

아니다. 그들은 미치광이보다도 더 무서웠다.

조운충은 두 손이 잘리자 아프고도 후회되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그는 방금 전에 월령안을 죽여 버렸을 것이다.

"월령안, 네가 내 손을 잘랐어. 내 아버지께서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조운충은 목에 가는 철사가 깊게 파고들어 아픈 나머지 눈물,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감히 더 이상 몸부림치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는 이 원한을 반드시 갚을 것이다.

그는 반드시 월령안을 토막 낼 것이다.

"제가 겁낼 것 같나요?"

월령안은 조운충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차 그를 억지로 무릎 꿇게 하고 다시 칼을 들었다.

"방금 전에 제 형부가 되고 싶다고 했죠?"

"아니, 아니, 그런 말 하지 않았어…… 내가 잘못했어. 월령안, 내가 잘못했다. 좀 놓아 줘, 날 좀 놓아 줘!"

조운충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용서를 빌었다.

"해독약! 네가 금방 복용한 독약은 서역 성독종(聖毒宗)에서 나온 거야. 성독종의 보물로 나만 해독약을 가지고 있어. 날 놓아주면 해독약을 줄게. 어때?"

지금 이 순간 조운충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냥 월령안이 그를 놓아주기만 바랐다.

그는 후회되었다. 기회가 생기면 단칼에 월령안을 죽이라던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그는 월령안을 장악하려는 헛된 망상을 품지 말았어야 했다.

"듣지 마…… 월 낭자, 저 사람 말을 듣지 말아요. 성독종의 혈옥주(血玉珠)는 해독약이 없어요. 한 달에 한 번씩 해독약을 먹어 완화할 수밖에 없어요."

아포는 추수에게 구조되어 다시 자유를 얻었다. 일어서자마자 조운충의 말을 듣고 월령안이 속을까 두려워 다급히 입을 열었다.

"네, 알겠어요."

월령안은 아포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그더러 마음을 놓으라고 했다.

그녀는 아포의 귀띔이 필요 없었다. 그녀는 혈옥주가 어떤 독인지 훤히 알고 있었다.

조운충의 사람이 혈옥주를 가져오는 순간 그녀는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훤히 파악했다.

조의박은 인물이지만 아들에 대한 가르침은 실패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조운충은 너무 어리석었다.

조운충은 유일한 희망이 좌절되자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차게 됐다. 그는 달려들어 아포를 찢어 버리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월령안, 너는 감히 나를 죽일 수 없어!"

월령안은 독약을 복용했다. 그를 이용해 해독약을 바꿔야 한다. 그녀는 감히 그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조운충은 이 점을 깨닫게 되자 믿는 데가 있어 목에 감긴 명줄을 무시하고 몸부림쳐 땅바닥에서 기어 일어섰다.

"월령안, 나를 놓아주지 않으면 너도 살 수 없어. 거웅령에는 모두 내 사람뿐이다. 너는 여기를 못 떠날 거야…… 하하하! 여봐라……."

"월령안이 나가지 못한다고 누가 그래."

폭우가 억수같이 내리는 어두운 밤중, 육장봉은 말을 타고 긴 창을 든 채 어두운 밤과 폭우를 뚫고 분지로 돌진했다.

우르릉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우레와 번개가 어둠을 가르며 육장봉이 오는 방향을 밝혀 주었다.

"육장봉!"

조운충은 순간 멈칫하고 몸부림치는 것도 잊었다. 멍해져서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 육장봉의 사람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이다. 고작 너 같은 건 막을 수가 없지."

육장봉은 캄캄한 밤하늘과 몰아치는 폭풍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타고 나는 듯이 달려왔다.

조운충이 마구 몸부림치는 바람에 월령안은 하마터면 그를 제압하지 못할 뻔했다. 조운충이 굳어져서야 그녀는 비로소 달려온 사람을 볼 여유가 생겼다.

어둠 속에서 나는 듯이 질주하여 달려오는 육장봉을 바라보면서 월령안은 씽긋 가볍게 웃었다.

비록 육장봉이 없었어도 그녀 혼자서 잘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육장봉이 달려오는 모습을 본 순간, 그녀는 매우 기뻤다.

"내가 왔소. 괜찮소!"

말하면서 육장봉은 이미 초가집 앞까지 달려왔다. 그는 손목을 살짝 움직여 긴 창을 휘두르며 눈앞의 장대비를 거두고 말에서 뛰어내렸다.

병사가 앞에서 막으려고 나서자 육장봉은 손에 든 창으로 그 병사를 찔러 날려 버렸다.

피가 조운충의 얼굴에 흩뿌려졌다. 조운충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신호를 보내! 신호를 보내! 육장봉을 죽여라. 육장봉을 죽여. 그자를 이리 오지 못하게 해. 이리 오지 못하게 해……."

"늦었어. 령안, 뒤로 물러서시오."

육장봉이 창을 들고 초가집에 뛰어들었다.

월령안은 손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그자가 내게 독약을 먹였어요. 목숨만 살려 두세요."

"좋소!"

육장봉은 긴 창을 휘둘러 조운충의 머리를 내리쳤다.

"안 돼……."

조운충은 비명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쓰러지면서 의식을 잃었다.

육삼은 한창 힘을 다해 조운충이 데려온 병사를 막고 있었다. 육장봉이 쳐들어오자 흥분해서 칼을 더 빨리 휘둘렀다.

'우리네 장군께서 오셨어. 이런 일은 다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육삼은 너무 일찍 기뻐했다.

조운충의 사람이 신호를 보내기 전에 초가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는 순간, 조운충이 수림 속에 숨겨 두었던 병마가 뛰쳐나왔다.

앞장선 사람은 초가집 불더미의 불빛 아래에 피를 흥건하게 흘리며 쓰러져 있는 조운충을 보게 되었다.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큰 소리로 명령했다.

"어서, 세자를 구해야 한다!"

"네."

병사는 명을 받고 초가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육삼과 추수는 즉시 손을 빼어 앞으로 달려가 저지했다.

육장봉은 빠른 걸음으로 월령안에게 걸어갔다. 그녀를 데리고 떠나려다가 피범벅이 된 그녀의 오른손을 보게 되었다.

육장봉은 잠깐 굳어졌다. 조심스레 피범벅이 된 그녀의 손을 받쳐 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 손은……."

초가집 밖에서 추수와 육삼은 이미 조운충의 사람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조운충이 데리고 온 사람은 천 명은 안 돼도 팔백 명 정도는 되었다. 추수와 육삼이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사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월령안은 냉정하게 손을 뺐다.

"피부와 살만 다쳤을 뿐이에요. 우리 먼저 뚫고 나간 다음 다시 말해요."

육장봉을 안심시키기 위해 월령안은 칼로 천 조각을 잘라 손을 대충 싸맸다.

"조운충을 데려가야 해요. 그가 내게 독약을 썼어요. 그를 해독약과 바꿔야 해요."

월령안은 매우 아팠다. 특히 상처에 빗물이 떨어지면 이가 떨릴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상처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들은 먼저 뚫고 나가야 했다.

"조운충이 상처 낸 거요?"

육장봉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으로 조운충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그마한 상처라도 낼까 노심초사하는 사람에게 조운충이 감히 이렇게 큰 상처를 내다니.

육장봉은 월령안의 손등에 난 상처 때문에 화가 치밀었다. 그녀가 설득하기 전에 육장봉 수중의 긴 창이 날아가더니 조운충의 옆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살갗을 커다랗게 깎아 냈다. 뼈가 보일 정도의 깊은 상처였다.

"아악……!"

정신을 잃고 있던 조운충은 아픔에 깨어났다가 또다시 혼절하고 말았다.

월령안은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좌우지간 조운충은 이제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였다. 육장봉이 화풀이하고 싶은 대로 해도 별문제가 없었다.

"육삼, 사람을 데리고 가거라. 여기는 내게 맡겨."

육장봉은 조운충에게 긴 창을 날려 간신히 화풀이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을 와락 끌어안았다.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걱정하지 않을게요."

월령안은 육장봉이 당기는 대로 그의 품에 기대었다.

육장봉 몸의 더운 열기가 그녀 온몸의 한기를 밀어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참 따뜻하구나!'

"추수, 우리는 사람을 데리고 먼저 갑시다. 여기서 대장군께 폐를 끼치지 말고요."

육삼은 육장봉의 명을 받자 초가집 안으로 물러가 조운충을 어깨에 멨다. 또 아포와 상천을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추수가 여전히 앞쪽에서 싸우고 있자, 육삼이 한마디 일러 주었다.

고작 천 명 정도의 사람들로 대장군을 막을 생각을 하다니. 그야말로 꿈꾸는 것이다.

대장군은 일찍 천군만마 속을 세 번씩이나 오가면서 북요 장군 세 명의 수급을 직접 베었다.

조운충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구원병으로는 도저히 그의 목숨을 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추수는 육삼의 말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월령안이 입을 열어 명하고 나서야 그녀는 더는 싸우지 않고 초가집으로 물러갔다. 그리고 육삼에게서 상천을 넘겨받고는 그를 부축해 말에 태웠다.

아포는?

그녀는 아포가 따라오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아포를 여기에 내던지지 않고 데리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인의를 다한 것이었다. 언젠가 아포가 아가씨를 구한다면 혹여 그녀가 아포를 부축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추수와 육삼이 물러나 초가집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조운충의 사람들은 초가집에 쳐들어가지 않았다.

육장봉이 뛰쳐나왔던 것이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안고 손에 긴 창을 든 채 말 등에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앞을 막는 병사들을 완전 무시하고 곧장 돌진했다.

"어서! 어서 막아라!"

조운충의 사람들은 육장봉이 뛰쳐나오는 순간, 맞붙기도 전에 이미 그의 기세에 눌려 잠시 굳어졌다. 바로 이 한순간의 머뭇거림 덕에 육장봉은 이미 병사들의 포위망을 뚫고 끊임없이 앞으로 돌진했다.

"반드시 그들을 막아야 해. 그들이 도망가게 해서는 안 된다."

우두머리 장군이 결정적인 시각에 정신을 차리고 급히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가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부수(副手 - 보좌)가 귀띔했다.

"참장(參將 - 장군의 직함 중 하나), 세자 나리를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맞다. 세자 나리! 어서 세자 나리를 구해라."

우두머리는 그제야 육장봉을 막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들이 정신을 차렸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육삼은 조운충을 메고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육장봉의 뒤를 바싹 쫓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