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9화 조 세자의 소원을 들어 드리죠
상천은 조운충의 패이다. 사람을 보지 못하면 그녀는 조운충과 어떤 대화도 하지 않을 것이다.
조운충은 얼굴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는 노하여 시선을 거두더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데려오너라!"
"아가씨……!"
"월, 월 낭자……!"
"상천……!"
추수가 울먹이며 앞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조운충의 사람들이 막아섰다.
육삼은 아주 냉정했다.
"독왕 아포!"
조운충의 사람들은 상천과 독왕 아포를 끌고 왔다.
두 사람은 핍박에 의해 땅바닥에 꿇어앉았다. 상천은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병사가 손을 놓자 꿇어앉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엎어졌다.
아포의 상황은 상천보다 조금 나아 보였다. 몸이 비에 맞았을 뿐, 목소리도 기운이 있었다.
조운충의 사람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두 사람이 달아날까 두려워 줄곧 두 사람의 목에 칼을 대고 있었다.
"하나를 샀는데 하나를 덤으로 주다니. 놀랍고 기쁘지 않아?"
조운충은 비열하기 그지없게 웃었다.
월령안은 시선을 거두고 조운충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엇을 원하죠?"
"손 하나로 사람 하나씩 바꾸면 어때?"
조운충은 농담하듯 입을 열었다.
"좋아요."
월령안은 망설임 없이 조운충의 눈앞에 오른손을 내밀었다.
"칼을 가져오너라!"
조운충이 손을 흔들자 병사가 그에게 큰 칼을 건넸다.
조운충은 농담하는 모습이었지만 칼을 들자마자 내리찍었다.
"월 낭자의 이 손을…… 내가 남겨야겠군."
"아가씨, 안 돼요……."
"큰아가씨!"
조운충은 시종일관 월령안과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육삼과 추수는 조운충이 월령안을 위협하는 줄로만 여겼다. 그가 감히 내리찍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두 사람은 혼비백산하여 달려들었으나 양쪽의 병사들에게 막혀 버렸다. 눈을 빤히 뜨고 조운충 수중의 칼이 월령안의 손목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안 돼. 하지 마……."
땅바닥에 엎어졌던 상천은 일어나려고 버둥거렸다.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두 눈은 피가 뚝뚝 떨어질 것처럼 새빨개졌다.
오직 손을 내민 월령안만이 담담한 표정으로 조운충의 칼이 떨어지게 내버려 두었다. 그녀는 눈도 깜박하지 않았다.
조운충도 전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칼이 떨어졌다.
조운충은 손에 칼을 들고 월령안의 손목을 내리찍었다. 속도를 전혀 늦추지 않았고 손을 멈출 여지도 없었다.
"안 돼……!"
상천은 땅바닥에 엎드린 채 얼굴이 일그러지고 험상궂게 고함을 쳤다.
"아가씨!"
"큰아가씨."
추수와 육삼은 이미 병사들의 제압을 뿌리치고 조운충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달려드는 순간, 조운충은 손목을 움직였다.
칼날이 월령안의 손목에 닿으려는 찰나, 칼끝의 방향을 바꾸었다.
칼끝이 손목에 닿은 그 순간 아래에서 위쪽으로 넘어가면서 월령안 팔뚝의 살갗을 벗겨 버렸다.
탁!
그런 소리와 함께 그 살갗은 불더미에 떨어지며 순간 불꽃에 삼켜졌다. 곧이어 살갗이 그을리는 냄새가 났다.
피가 용솟음치자 월령안은 아파서 신음 소리를 내었다.
다음 순간, 조운충은 들고 있던 칼을 바로 그녀의 목에 대었다.
월령안은 몸이 살짝 굳어졌지만, 곧장 평온을 되찾았다.
그녀는 오기 전부터 최악의 결과를 예상했었다. 지금은 그나마 괜찮았다.
그녀의 예상대로 조운충은 그녀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물러나라. 뒤로 물러서라!"
조운충은 양손으로 칼을 든 채 추수와 육삼을 조소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추수와 육삼은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육삼은 추수를 등 뒤에 보내고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눈동자가 새빨개졌다.
"조 세자! 제가 우리네 대장군 대신 기억해 두겠습니다."
"육 대장군이 청주에서 한 일을 나도 기억할 거다."
조운충은 육삼을 아예 안중에 두지 않았다. 담담하게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선은 다시 월령안에게 떨어졌다. 쭉 째진 눈에는 경악스러움과 의혹이 서려 있었다.
"나는 네가 피할 줄 알았는데."
"전 당신이 감히 찍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월령안은 팔뚝에 커다랗게 한 조각의 살갗이 베어졌다. 상처는 곧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녀는 통증 때문에 연신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손을 옆으로 떨어뜨려 몰래 꽉 쥐었다가 푸는 것으로 주의력을 분산시켰다.
"죽은 너는 나한테 아무 가치도 없거든."
조운충은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을 튕겨 큰 소리를 내었다.
"가져오너라."
"전하!"
조운충의 사람이 비단 함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 함을 열자 그 안에는 주홍색 알약이 들어 있었다.
알약은 은은하고 그윽한 향을 풍겨 사람으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긴장을 늦추게 했다.
하지만 비단함을 열자마자 아포는 얼굴빛이 바뀌었다. 그는 목에 댄 칼을 무시하고 일어나려고 몸부림쳤다.
"월 낭자, 독약이야! 안 돼. 당신 안 돼요……!"
"입 닥쳐! 무릎이나 꿇고 있어."
아포를 지키던 호위는 발로 걷어차 그를 땅에 넘어뜨리더니 발로 얼굴을 밟아 말을 못 하게 했다.
"우…… 우……!"
아포는 땅바닥에 옆으로 엎드린 채 입을 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얼굴 전체가 새빨개졌다.
월령안은 그를 힐끗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건…… 성(聖)…… 독(毒)……!"
아포는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월령안에게 이 알약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려 주고 싶었다.
월령안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알약을 먹는 순간, 죽지 않는 이상 그녀는 앞으로 계속 남에게 지배당할 것이다.
"견혈봉후(見血封喉 - 유퍼스 나무, 맹독의 한 종류)의 독이라도 먹어야죠. 그러면 일각이라도 더 살 수 있으니까요."
월령안은 자신의 목을 겨냥한 칼을 가리키며 아포에게 고개를 끄덕여 긴장하지 말라고 전했다.
그녀는 조운충보다도 이 알약의 약효를 더 잘 알고 있었다.
조운충이 일반적인 물건을 그녀 앞에 내놓지는 않을 것이다.
조운충은 그녀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능력을 보여 줘야 할 것이다.
"아가씨, 모두 제 탓이에요……."
상천은 땅바닥에 엎드려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다. 그대로 죽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추수와 육삼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월령안의 목을 겨냥한 칼 때문에 결국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애간장을 태울 수밖에 없었다.
"월 가주, 어서 드시지."
조운충은 길게 째진 눈을 가늘게 떴다. 눈에는 득의양양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는 상당히 만족스러워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월령안이 아연실색하는 모습을 못 본 것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월령안이 이 알약을 복용하기만 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그의 말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그가 월령안에게 무엇을 시키든지 그녀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평온했다.
"좋아요."
피는 월령안의 손목을 따라 아래로 흘렀다. 방울방울 빗물에 떨어져서 재빨리 흩어졌다.
이 시각 월령안의 발밑은 온통 핏물이었다.
조운충은 방자하게 웃었다. 손을 들자 알약을 받쳐 든 병사가 앞으로 다가와 알약을 월령안에게 건넸다.
월령안은 상하지 않은 손을 들어 알약을 취하려 했다. 손이 막 알약에 닿으려는 순간, 조운충이 갑자기 외쳤다.
"잠깐만, 내가 할게!"
월령안은 손끝이 이미 알약이 닿았다. 그녀는 동작을 멈추고 조운충을 바라보았다.
조운충은 그녀에게 입을 오므리며 웃어 보였다.
"나는 월 가주를 믿지 않는다네."
그는 말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칼을 옆으로 움직였다. 월령안 앞에 걸어오더니 비단 함 속 알약을 집어 월령안의 입가에 내밀었다.
"입 벌려."
월령안은 그를 바라보며 조소 섞인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입을 벌렸다. 조운충이 그녀의 입에 알약을 넣게 내버려 두었다.
알약은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아 버렸다. 월령안은 그윽한 향기가 입술 사이에 퍼지는 것을 느꼈을 뿐인데 알약이 녹아 없어졌다.
조운충은 약을 다 먹이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월령안의 입술을 매만졌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네 입술은…… 핏기가 없이 하얗게 질려 있어. 입맞춤하기에 딱 좋을 것 같군."
조운충의 손가락은 차갑고 미끈거리는 것이 차가운 뱀 같았다. 월령안은 눈으로 혐오의 빛을 드러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난 네 냉정함이 너무 좋아. 앞으로 날마다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운충은 손에 쥔 칼을 여전히 월령안의 목에 대고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서 몸을 기울여 입맞춤하려 했다.
육삼은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조운충, 네가 감히!"
월령안은 여전히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냉담하게 조운충을 바라보며 그가 그녀와 점점 가까워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드디어 조운충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바로 그 순간, 월령안은 갑자기 피범벅이 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슉!
그런 소리와 함께 빙침이 그녀의 손끝에서 나가 칼을 쥔 조운충의 손에 꽂혔다.
"조 세자, 이제 끝장이군요."
"네가 어떻게……."
조운충은 오른손이 순간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얼굴빛이 급변하면서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반전은 한순간에 일어났다.
월령안은 알약을 들고 있던 병사를 발로 걷어찼다. 곧이어 왼쪽 손목에 찬 팔찌를 와락 당겨 그 속의 가는 철사를 끌어내더니 조운충의 목에 휘감았다. 그런 다음 몸을 빠르게 돌려 그의 목을 졸랐다.
"너……!"
조운충은 한순간 질식하고 말았다. 철사가 목을 파고드는 찌릿찌릿한 아픔에 공포감이 몰려왔다. 그는 당황해서 부하들에게 그를 구하라고 명령하려 했다. 하지만 입을 열 틈이 없었다.
추수와 육삼이 달려들어 그의 주변 사람을 일일이 쓰러뜨렸다.
"조 세자, 손 하나에 사람 하나씩 바꾼다 했죠? 좋아요. 그럼 제가 조 세자의 소원을 들어 드릴게요."
월령안은 조운충 수중의 칼을 와락 빼앗아 들더니 곧장 내리쳤다.
"내 아버지는 조의박이시다. 네가 감히!"
조운충은 당황스러운 나머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보세요. 제가 감히 하는지, 못 하는지!"
월령안은 조운충처럼 허세나 허튼 수작을 부리고 일부러 사람을 놀리지도 않았다. 그녀는 깔끔하게 단칼에 내리찍었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고 아무 술수도 쓰지 않았다.
칼이 떨어지는 순간, 조운충의 손은 손목부터 완전히 끊어졌다. 무서울 정도로 새하얀 손바닥이 땅바닥에 떨어져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악!"
조운충은 심한 통증에 냉정을 잃었다. 온몸을 떨면서 가슴이 찢어지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목에 감긴 가는 철사는 죽음을 부르는 명줄이었다. 그가 움직이면 목에 감긴 가는 철사가 살 속에 더 깊이 파고들어 당장 죽고 싶게 만들었다.
"월령안! 죽여 버리겠어!"
조운충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험상궂어 보이는 표정은 어둠과 불빛에 번갈아 드러나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처럼 보였다.
꽈르릉, 꽈르릉…….
천둥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고 번개가 하늘을 갈랐다. 언뜻언뜻 하늘빛이 월령안과 조운충 두 사람을 비췄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평온하고 한 사람은 광기가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