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7화 우리를 위해 길을 뚫어주신다
같은 시각, 육장봉은 이미 진주 등을 거느리고 청주에서 서남 방향으로 통하는 관도에 올라섰다. 이제 곧 청주 수비군과 정면으로 맞서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때, 육일이 와서 보고했다.
"대장군, 누군가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조운충이 오늘 밤 거웅령에서 판을 짜고 마님을 유인한다고 합니다. 마님은 지금 이 시각 거웅령으로 가는 길에 있다고 합니다."
육일이 육장봉에게 보고한 소식은 급하고도 갑작스러웠다. 게다가 누가 전해 주었는지도 몰랐다. 전갈에 대한 진위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소식에 대해 노련한 육일이 육장봉에게 보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월령안에 관련된 일이라 육일은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이 소식이 가짜일 가능성이 높고 대장군을 거웅령으로 유인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대장군에게 보고해야 했다.
"조운충이 돌아온 것이냐?"
육장봉은 온몸이 흠뻑 젖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냉랭한 오관은 번갯불에 비춰지면서 음침하고 싸늘한 살기를 발산했다.
육일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소인은 소식을 받지 못했습니다. 황금당에서 아무 소식도 없었습니다."
조운충이 거액을 걸고 황금당을 청해 월령안을 죽이려 했다.
월령안과 황금당은 판을 짜고 가짜 죽음을 연출하여 조운충을 속이고는 그더러 돈을 지불하라고 했다.
조운충이 거절하고 돈을 지불하지 않자 황금당에서는 줄곧 조운충을 쫓아가 죽이려 했다.
황금당은 일찍 황금과 조운충의 머리 사이에서 하나는 꼭 남길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가 전에 받은 소식은 줄곧 황금당이 조운충을 귀찮게 쫓아다닌다는 것이었다. 조운충이 청주에 돌아왔다는 소식은 전혀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이 전갈이 대장군을 거웅령으로 유인하려는 함정이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다.
큰비 속에서 육장봉은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검을 쥔 손의 근육이 불거져 나왔다. 거의 일순간에 그는 결정을 내렸다.
"여기는 너한테 맡기겠다. 꼭 이 돌을 청주에서 내보내야 한다. 알겠느냐?"
육일은 진주가 아니었다. 그는 육장봉이 그들에게 내보내라고 하는 돌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군례를 올렸다.
"죽기를 맹세코 임무를 완성하겠습니다. 대장군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양 토사, 송 토사, 심지어 진주까지도 대장군이 양식 종자를 내려놓고 돌을 바꿔 싣는 것은 조의박 등을 속이기 위한 것인 줄 알았다.
오직 직접 그 돌들을 개조하는 데 참가한 육이만이 그 돌들은 개조한 것으로 안에는 모두 양식 종자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편지를 써 몽산 두 가지 양식의 생산량과 재배 방법에 대해 알려 주었다. 동시에 이 양식 종자를 내보내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이 양식 종자의 생산량은 대단했다.
가령 청주의 십만 수비군을 동원해서라도 조의박은 절대로 육장봉이 몽산의 양식 종자를 청주에서 내보내지 못하게 할 것이다.
한 알, 두 알 정도면 괜찮지만 몇 광주리, 심지어 수십 광주리의 양식 종자를 청주에서 내보내고도 조의박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금나라와 북요가 주나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에 조정은 청주에 출병할 수 없었다.
육장봉의 청주에 있는 인력으로는 십만 대군과 맞설 수가 없었다.
그들이 양식 종자를 청주에서 내보내려 한다면 계략을 써야지 억지로 맞서서는 안 되었다.
월령안은 편지에서 육장봉에게 옥석을 만드는 상인들을 찾아보라고 알려 주었다.
서남에서는 옥돌이 많이 나왔다. 어떤 옥돌은 직접 서남 현지에서 가공했다.
그리고 어떤 상인들은 옥석 그대로 운송해 가서 옥석 내기에 제공하기를 좋아했다.
심지어 서남에서도 해마다 성대한 옥석 내기 대회가 열렸다.
옥석 내기는 매우 큰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단칼에 어떤 사람은 벼락부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가산을 탕진했다.
옥석 내기는 유행이 되었다. 따라서 가짜 옥석을 만드는 산업도 생겨났다.
월령안은 청주 출신이므로 당연히 가짜 옥석을 만드는 산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일부 손재간이 뛰어난 기술자들은 잘못 잘라낸 옥석을 원래대로 완벽하게 복구하여 아무 이상도 보아낼 수 없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옥석을 한데 붙여 표면에 잘라낸 자국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월령안은 육장봉더러 그들을 찾아가 가짜 옥석을 만들라고 했다. 다음 양식 종자를 돌 속에 숨기고 청주 상인들이 옥석을 운반하는 경로를 빌려 양식 종자를 운송해 가라고 알려주었다.
월령안은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육장봉이 적당한 시기를 택해 떠들썩하게 양식 종자를 밖으로 내보내는 모습을 보여 주어 조의박의 주의력을 끌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그녀는 암암리에 상인을 찾아 양식 종자가 든 옥석을 밖으로 내보내면 되었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움직이는 날, 갑자기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이런 악천후를 뚫고 육장봉이 양식 종자를 운송하는 척한다고 해도 조의박 등은 믿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날씨라면 어느 상인도 산사태를 무릅쓰고 원석을 운송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치대로라면 오늘 밤 계획은 마땅히 취소해야만 했다.
하지만 육장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예정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가 직접 사람을 거느리고 양식 종자가 들어 있는 옥석을 운송하기로 했다.
이는 매우 모험적이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자신이 직접 지휘하면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청주 사람들이 그가 운송하는 것이 돌멩이라는 것을 알면 경계심을 늦추게 될 것이다.
육장봉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심지어 최악의 사태까지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독 이 시간에 월령안이 거웅령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육장봉은 이 소식이 가짜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월령안에 관한 일이라 그는 감히 모험할 수가 없었다.
거의 생각할 사이도 없이 육장봉은 가장 빠른 시간에 이곳의 일을 육일에게 맡기고 말을 타고 폭우 속에 뛰어들어 거웅령으로 달려갔다.
설령 음모와 함정일지라도 그는 반드시 다녀와야 했다.
육장봉은 속도가 너무 빨라 병사들은 미처 반응하지도 못했다. 그가 비의 장막 속에 뛰어들고 나서야 그들은 대장군이 간 것을 알게 되었다.
"대장군께서는……!"
진주는 곧장 멍해졌다.
청주 수비군은 그들과 불과 삼 리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대장군께서는 혼자서 길을 뚫어내려는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진주는 날듯이 기뻐하며 흥분하여 소리쳤다.
"대장군께서 홀로 앞장서서 우리를 위해 길을 뚫어주신다. 우리도 절대 대장군을 망신시켜서는 안 돼."
육일은 사람들에게 대장군이 공적인 일을 제쳐 두고 거웅령으로 달려간 사실을 해명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진주의 말을 듣고 혀끝까지 밀려왔던 말을 도로 삼키고 말았다.
사람들을 오해하게 하는 것이 크게 나쁠 게 없었다.
그리고 대장군이 거웅령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전방의 방어선을 뚫어야 했다. 확실히 진주가 말한 것처럼 육장봉은 단독으로 앞장서서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 준 것이다.
"모두 나를 따르라. 돌격!"
육일은 칼을 높이 들고 선두에 섰다. 폭우가 몸에 쏟아져 내려도 관계치 않았다.
그의 뒤를 이어 진주 등은 그와 마찬가지로 억수로 쏟아지는 장대비를 무시하고 두려움 없이 용감하게 앞으로 돌진했다.
그들 뒤로는 수레를 밀어 주러 온 양씨, 송씨 두 씨족의 청장년들이 따르고 있었다.
육일과 진주 같은 장군들의 용맹함을 본 청년들은 하나같이 열기가 뜨거웠다.
"대장군께서 북요의 기병들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이유가 여기 있었군. 대장군이 용맹하기 이를 데 없으니 그가 거느린 병사들도 똑같네!"
"우리도 빨리 따라가자. 우리 서남 사람들의 체면을 잃으면 안 되지! 대장군과 대장군의 병사들에게 우리 서남의 사나이들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자고."
양씨, 송씨 두 씨족의 청장년들은 하나같이 흥분되어 진주 등과 함께 최전방에 가서 적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양문종은 양 토사 몰래 청장년들을 따라 폭풍우 속에서 간신히 마차를 밀고 있었다. 앞장서서 돌진하는 육가군을 바라보던 검고 밝은 눈동자가 점차 빛을 잃었다.
그는 자신이 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십 년이 아니라 이십 년, 삼십 년을 더 준다고 해도 육 대장군이 지금 이룩한 성과를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해 준 말씀이 맞기도 했다. 육 대장군과 같은 막강한 연적에게 졌으니 비록 패해도 영광인 것이다.
* * *
월령안은 동 지주를 원망하지 않았다. 또한 동 지주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녀가 애써 동 지주를 끌어내린 것은 단지 동 지주가 조의박의 사람이어서 자연스럽게 그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 지주가 그녀를 만나기를 거절하고, 그녀에게 엄포를 놓은 것은 다만 그녀에게 손쓸 구실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설령 동 지주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지라도 그녀는 방법을 강구해 동 지주를 끌어내리고 영리한 사람으로 바꾸려 했을 것이다.
동 지주를 끌어내린 것은 이익 극대화를 고려한 것이지 개인감정은 그리 많이 섞이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조계안이 동 지주더러 그녀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하는 것을 보자 그냥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상대방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화풀이할 필요가 없었다.
동 지주가 용서를 구하는 것을 무시하고 월령안은 조계안에게 읍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전하, 동 지주는 조정의 관리입니다. 어떻게 처리할지는 조정의 일이죠. 저는 그를 처벌할 권리도, 살려 줄 권리도 없습니다."
동 지주가 그 말을 들일 리가 없었다. 여전히 땅바닥에 꿇어앉아 끊임없이 용서를 빌었다.
"월 가주, 제가 눈뜬장님이고 사람 보는 안목이 없어 함부로 무시했습니다. 월 가주께 이렇게 빕니다. 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로 잘못했습니다……."
집 밖에서 억수로 쏟아지는 폭우와 동 지주가 용서를 비는 소리와 함께 어울려 마치 아비규환처럼 귀청을 때렸다.
월령안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다시 조계안에게 읍했다.
"전하, 시간이 늦었습니다. 소인 이만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비가 오네!"
조계안이 입을 여는 순간, 번개가 번쩍하며 갑자기 밝은 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그 빛은 마치 그의 온몸을 갈라놓은 듯 반절만 밝게 비췄고, 나머지 부분은 그에 대비되어 어두웠다. 거기에 음침하고 가라앉은 목소리까지 더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사람을 두렵게 했다.
조계안이 입을 열 필요도 없이 문밖의 호위가 다가와서 죽은 개를 끌듯이 동 지주를 끌고 갔다.
동 지주는 절망에 차서 큰소리로 아우성쳤다.
"전하, 전하…… 전하 살려 주십시오. 전하……."
그러나 곧 동 지주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폭풍우 소리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