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656)화 (656/1,004)

656화 청주는 우리의 것이다

곡 대인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았다. 말을 마치고 또 잔을 들어 혼자 들이키고는 감사하다고 한마디 했다.

거절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한 것이다.

월령안은 청주 모든 이들이 조의박을 따르는 것을 막기 위해 '재해를 입었다'는 명의로 청주의 관리들을 흔들려고 했을 뿐이었다. 혼란을 틈타 돈을 벌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던 터라 곧바로 동조했다.

"제가 양식 천 석을 기부하겠습니다. 내일 보내드리겠습니다."

월령안은 청주상회 회장으로서 양식 천 석을 기부했다.

다른 사람들은 일부러 월령안을 무안 주려는 것이 아니라면 더 많이 기부할 필요가 없었다.

자리에 있는 상인들 중에 월령안과 경쟁 관계에 놓인 사람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자기의 돈을 아꼈다.

범씨 가문 가주마저도 이 시기에 월령안과 서로 경쟁하려 하지 않았다. 월령안이 천 석을 기부한다고 하자 그도 의사 표시로 천 석을 기부했다.

다른 상인들도 그 광경을 보고 잇달아 숫자를 말했다. 대부분은 일이백 석 정도로 많다고 말할 수 없었다. 겨우 청주의 양식 압력을 완화할 수 있을 뿐이었다.

곡 대인은 시종일관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만족하는지 안 하는지는 누구도 몰랐다.

월령안의 위쪽에 앉은 구 대인은 시종일관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월령안이 천 석을 기부한 다음, 다른 사람들은 더욱 적게 기부하는 것을 듣자 표정이 더욱 일그러지더니 심지어 욕까지 한마디 했다.

"나라의 좀 같은 것들."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월령안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월령안은 그래도 미래의 청주 관리와 친분을 쌓으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의 호의를 무시하는 사람과 교제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구 대인의 전망을 좋게 보지도 않았다.

청주는 다른 지방과는 달리 상업을 위주로 했다. 구 대인이 이렇듯 상인을 업신여긴다면 조만간에 쓴맛을 보게 될 것이다.

월령안은 오히려 정사 곡 대인을 새삼 높게 평가했다.

이분의 모습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어쨌든 곡 대인은 겉치레라도 했다.

그들이 양식을 기부하면 거듭 고맙다고 인사했고 적게 헌납했다고 싫어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도 자연스럽게 어지간히 후련해졌다.

어쨌든 누구의 돈도 손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재난이 닥치면 그녀는 양식도, 돈도 기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돈도, 힘도 냈는데 감사하다는 인사는커녕 적게 기부했다고 싫은 티를 내면 누구든지 기뻐할 수 없었다.

연회가 반쯤 지났을 무렵, 하인 한 명이 갑자기 월령안의 뒤에 나타나더니 그녀에게 조 대인이 찾는다고 서쪽 건물로 청했다.

월령안은 상대방을 흘끗 바라보았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상대방이 조계안의 영패를 꺼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고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 하인과 함께 서쪽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안, 조계안은 왼쪽 다리로 의자를 딛고 오른손으로 검을 쥐어 거꾸로 땅에 꽂았다. 방자한 자세로 태사의(太師椅)에 앉은 모습은 분명 현 황실의 조왕 전하지만 전혀 품위가 없어 보였다.

머리를 산발한 동 지주는 조계안 앞에 꿇어앉아 끊임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월령안이 들어서자마자 조계안은 입구의 월령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인에게 빌어라. 저 여인이 너를 놓아주겠다고 하면 내가 네 목숨만은 살려 주지."

월령안은 발걸음을 멈칫했다. 방안의 광경을 보고 웃으려는데 갑자기 천둥이 울렸다.

천둥이 치고 곧이어 번개가 번쩍이더니 삽시간에 폭우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했다.

* * *

"대장군, 빗줄기가 너무 거셉니다. 방수포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양 토사와 송 토사는 오늘 밤에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진주는 얼굴을 훔치고 목청을 돋우어 소리쳤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말소리가 빗소리에 가려졌다.

오늘 저녁, 흠차 대신 곡 대인이 청주에서 연회를 열어 청주의 상인들을 접대했다. 그들은 소식을 받고 오늘 밤 행동하기로 계획했다. 몽산에서 받은 양식 종자를 밖으로 내가려 했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편지를 받아 보고 몽산의 감자가 한 뙈기당 수확량이 천 근에 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이 두 양식 종자를 될수록 빨리 밖으로 내보내려고 준비했다.

양식은 한 나라의 근본이다. 이런 수확량이 많은 양식 종자를 일찍 내보낼수록 조정과 백성에게는 모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다. 그들은 만반의 준비를 다 했지만 하늘이 갑자기 변덕을 부렸다.

금방 전까지 날씨가 무더웠는데 갑자기 광풍이 휘몰아치고 폭우가 억수로 쏟아졌다.

이렇게 큰비가 내리면 청주에서 막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은 양식 종자를 아무 손상도 없이 내보낼 방법이 없었다. 오늘 밤의 준비는 헛수고가 되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미리 준비해 둔 돌로 바꾼다. 계획대로 진행한다."

육장봉이 말하는 돌은 친위대더러 준비하게 한 것이었다.

진주는 그 돌들을 무엇에 쓰는지 몰랐다. 하지만 육장봉이 명을 내리면 그에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얼마 안 되어 마차의 양식 종자는 몽땅 옮겨졌다.

그리고 다시 바닥에는 마른 풀과 넝마를 깔고 가운데에는 커다란 돌 세 개를 놓았다. 다시 위에는 나뭇가지로 지탱해 놓고 방수포를 덮었다. 까만 밤에서는 좀 전과 무엇이 다른지 보아낼 수 없었다.

양씨와 송씨 두 씨족의 사나이들이 그들을 도왔기에 얼마 안 되어 전부 바꾸었다.

"대장군, 과연 그들이 속을까요?"

차에 다 실은 다음 양 토사는 얼굴을 훔치며 물었다.

육장봉은 처마 밑에 서서 먼 곳의 번개와 우레를 바라보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양 토사마저도 그가 운송해 내가는 이 돌들을 미끼라고 생각했다. 보아하니 청주 그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할 것이다.

'내 령안이는 과연 똑똑하군.'

"이렇게 할 필요가 있나요? 이 돌들을 운송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들과 한판 싸우자고 그러는 건가요?"

양문종은 한쪽에 서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에는 일말의 불평이 서려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월 누이가 좋아하는 사람은 육 대장군이라고 했다. 그가 월 누이의 마음을 얻으려면 육 대장군을 이겨야 했다. 그런데 육 대장군을 이기려면 우선 먼저 그에 대해 알아야 했다.

때문에 며칠 동안 그는 줄곧 육 대장군을 따라다녔다.

그는 월 누이의 안목이 매우 좋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육 대장군은 월 누이의 호감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확실히 남달리 출중한 데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가 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아직 젊었다. 그에게 십 년의 시간을 준다면 절대 육 대장군보다 못할 리 없었다. 육 대장군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도 할 수 있었다.

육장봉은 양문종을 힐끗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애일 뿐이었다. 양 토사의 체면을 봐서도 어린애와 따지지 않기로 했다.

양문종은 잘생긴 눈매를 찡그리며 다시 물었다.

"대장군, 이렇게 해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음."

육장봉은 담담하게 단마디 명창을 하고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출발하라!"

"대……!"

양문종이 쫓아가려 하는데 양 토사가 붙잡았다.

"대장군은 할 일이 있단다. 말썽부리지 마."

"아버지……!"

양문종이 변명하려 했으나 양 토사는 전혀 듣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양문종은 아직 어린애였다. 어른들이 일을 할 때 어린애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양문종은 마음이 울적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다가가서 도와주려 해도 양 토사가 어린애를 달래듯 돌려보내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후방을 지키게 되었다.

* * *

육장봉의 사람들이 몽산에서 양식 종자를 빼앗은 다음부터 조의박은 사람을 보내 서남을 예의 주시했다. 육장봉이 움직이자마자 그는 소식을 받았다.

"셋째, 사람을 끌고 가서 마차를 막아라. 절대 육장봉이 물건을 내보내게 해서는 안 된다."

"큰형님, 서남은 푹푹 찌는 날씨입니다. 그 양식 종자는 물이 묻으면 금방 썩어요. 오늘 같이 큰비가 내리는 날이라면 육장봉이 우리를 속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운송하는 것은 절대 몽산에서 얻은 양식 종자가 아닐 겁니다."

청주 조씨네 삼 형제 가운데서 조의박은 수비 직을 맡고 대권을 틀어쥐었다. 정무는 둘째 조운천이 책임지고 병마는 셋째 조기충이 관리했다.

군대를 거느린 까닭인지 조기충은 말이 거칠고 둘째 조운천처럼 조의박의 말을 잘 따르려 하지도 않았다.

"우리를 속이거나 오늘 밤에 폐철을 운송한다 해도 그가 물건을 청주에서 내보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조의박은 평온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셋째, 기억해라! 청주는 우리의 청주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풀 한 포기도 가지고 나가지 못할 것이다. 알겠느냐?"

육장봉과 월령안은 확실히 능력이 있었다. 청주에 도착하자마자 청주와 서남을 마구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게 뭐가 어떻다는 말인가.

그가 청주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으니 청주 안에서라면 월령안과 육장봉은 아무리 일을 벌여도 소용없었다. 그는 언제든지 혼란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오늘 밤 그는 육장봉에게 이 청주에서 오직 조의박만이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알겠어요, 큰형님."

조기충은 표정이 차가워졌다.

"큰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육장봉에게 청주에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할 겁니다."

"음. 가거라. 내가 운충더러 너를 도우라고 할 것이다."

조의박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표정은 담담했다.

조기충은 조운충의 이름을 듣자 눈빛에 사나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조운충!'

조운천의 '운' 자에, 조기충의 '충' 자.

그는 둘째 멍청이가 아니었다. 큰형이 아들에게 조운충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 무슨 뜻인지 그는 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뜻을 알기에 마음속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분명 이 청주는 그가 싸워서 차지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여전히 쓰기 좋은 칼에 불과했다.

큰형은 그들 형제와 권세를 나눌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그들더러 조운충을 지지하라고 요구했다.

어린 녀석이 그와 둘째의 이름 자를 쓸 뿐만 아니라 그들 두 사람이 어린 녀석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야 한다니. 큰형은 참 제 좋은 생각만 하는 것이다.

조기충은 수비부에서 나갔다. 눈동자에는 어두운 빛이 숨어 있었다.

'만약 조운충이 죽는다면?'

"여봐라!"

조기충은 수비부를 나오자마자 심복을 불러 몇 마디 귓속말을 헸다.

심복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고는 급히 비의 장막 속에 걸어 들어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조기충은 사람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입술을 오므리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큰형, 당신이 어질지 못했으니 제가 의롭지 않다고 탓하지 마세요!'

"대인, 병마가 집합했습니다."

호위병이 투구와 검을 들고 조기충의 앞에 걸어왔다.

조기충은 투구를 머리에 쓰고 검을 든 채 빗속에 뛰어들었다. 밖에 정연하게 서 있는 병사들을 본 조기충은 몸을 날려 말에 올라탔다.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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