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5화 내 시녀에게 눈독을 들이다니
월씨 가문은 청주에서 세력이 작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십 년을 떠나 있었다. 그때 당시 심어 두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추수가 조사해 낼 수 없는 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월령안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셋째 나리께 전갈을 보내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라. 될 수 있으면 사람을 구해 오는 즉시 청주를 떠나게 해라."
그녀는 아포의 손을 빌려 양 토사의 장남을 해코지했다.
양 토사는 비록 얼마간 짐작하고 있지만 그녀가 아포와 드러내 놓고 왕래하지 않는 한, 겉으로 그 의심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예, 아가씨!"
추수는 월령안의 명령을 받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추수는 입구에서 마주 걸어오는 육삼을 만났다. 예의상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한쪽으로 반걸음 정도 옮겨 길을 양보했다.
"육삼 장군."
지금까지 육삼은 추수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고 예의를 차리는 동시에 거리감이 느껴지게 '추수 낭자'라고 한마디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육삼은 걸음을 멈추었다. 검고 냉담한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추수 낭자, 지금 바쁘신가 보군요?"
그녀는 왠지 굉장히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추수는 육삼의 잔인해 보이는 웃음을 보고는 말없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네, 육삼 장군."
"그럼 추수 낭자를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요즘 저는 좀 한가합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낭자께서 말씀하십시오. 제가 언제든 나서서 도와드릴게요."
육삼은 더욱 친절한 미소를 지으려고 애썼지만, 그럴수록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져 어찌 봐도 등골이 오싹해 보이는 표정이 되었다.
추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음속으로 더 크게 경계했다. 그리고 은근히 속으로 육삼 등 몇 사람을 경계해야겠다고 되뇌었다.
무슨 일이든 한입에 배부를 수는 없다.
육삼은 추수와 두어 마디 하고는 이미 충분히 만족해 한발 먼저 자리를 떴다.
"큰아가씨, 대장군의 편지입니다."
육삼은 서재에 가서 월령안을 만났다.
육 대장군은 서남에 있으면서도 매일 월령안에게 편지를 써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육장봉은 편지에 모두 자질구레한 일들을 적었다. 월령안은 편지마다 모두 읽으며 가끔 답장도 보냈다.
육장봉이 옛날에 그녀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해서 그 보복으로 그러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너무 바빴다.
육삼에게서 편지를 건네받고 미처 뜯기도 전에, 월 집사가 찾아와 흠차 대인이 명첩을 보내왔다고 보고했다. 월령안을 관아 만찬회에 초대한 것이다.
"만찬회라고? 오늘?"
월령안은 창밖의 곧 지는 해를 흘끔 바라보았다. 이는 틀림없이 흠차 대인의 뜻이 아니고 십중팔구는 조계안의 뜻일 것이다.
오직 조계안만이 이렇게 방자하게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월령안은 관아의 명첩을 감히 소홀히 하지 못했다. 급히 씻고 옷도 갈아입었다. 그녀는 육장봉의 편지를 길에서 읽으려고 몸에 지니고 갔다.
월령안은 육삼을 비롯한 친위대들을 부르지 않고 추수와 월씨 가문 호위만 데리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문밖에 나가 보니 육삼이 마부의 자리에 앉아 말을 몰려 하는 것이 보였다.
"큰아가씨, 추수 낭자!"
육삼은 월령안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예를 올렸다. 눈길은 추수에게 보내며 허허 하고 실없이 웃었다.
월령안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육삼과 추수를 번갈아 보았다. 추수가 냉담한 얼굴에 어떤 이상도 없는 것을 보고 그녀는 곧 알아차렸다.
월령안은 거짓 웃음을 지으며 몰래 육삼을 노려보았다.
"수고하십니다, 육삼 장군!"
'내 시녀에게 눈독을 들이다니. 육삼, 간이 부었군.'
"힘들지 않아요. 힘들지 않습니다. 큰아가씨, 차에 오르십시오…… 추수 낭자, 마차가 높으니 조심하세요. 제가 도와줄게요."
육삼은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의 친절함은 상대를 잘못 찾았다.
그가 부축하려고 손을 내밀려는 순간, 추수는 한발 앞서 마차에 뛰어오르더니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문 뒤에 숨어서 훔쳐보던 육사와 육오는 육삼이 좌절당하는 것을 보자 입을 가리고 몰래 웃었다.
그들 셋째 형은 세상 물정에 훤했다.
마님에게 관련된 일에서는 십이나 둘째 형, 심지어 큰형까지도 모두 장군에게서 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오직 셋째 형만 장군에게서 벌을 받은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새삼 높이 평가받았다.
그들은 셋째 형이 계속 오만방자할 줄 알았다. 그에게도 오늘 같은 날이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돌아가서 큰형과 둘째 형에게 얘기하면 둘 다 기뻐할 거야."
육오는 킥킥 대며 웃었다. 육사는 그의 이마를 한 대 쥐어박았다.
"왜 좋아하는 거야? 잘 생각해 봐…… 마님 곁에서 시중드는 단 한 명밖에 없는 추수 낭자다. 만약 정말로 셋째 형이 추수 낭자를 맞아들인다고 하자. 너 자세히 생각해 봐……."
"셋째 형이 정말 추수 낭자를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을까?"
육오는 다리에 힘이 빠져 문틀에 기대지 않았더라면 넘어졌을 것이다.
"누가 알겠니. 셋째 형이 추수 낭자에게 구애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기회가 없을 거야. 하지만 지금 셋째 형이 구애를 시작했어. 적어도 오 할의 가능성은 있는 거지."
육사는 자세히 생각해 보았다. 셋째 형의 모습을 구경할 수는 있지만 그를 팔아서는 절대 안 되었다.
세상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삼 년 전만 해도 그들은 대장군께서 마님을 싸고돌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육오는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육사를 잡고서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넷째 형, 말해 보세요…… 제가 추수 낭자에게 구애하면 어때요?"
'이래도 되는 거야?'
육사는 육오를 노려보더니 와락 밀쳐 한쪽으로 내쳐 버렸다.
"별로야!"
'다섯째의 생각이 괜찮은데. 아니면 나도 한번 시험해 볼까?'
만찬회는 청주부의 명원(茗園)에서 열렸다.
명원은 관아의 정원이었다.
애당초 월씨 가문에서 출자하여 지었고 다 지은 다음 당시의 지주에게 바쳤다.
조정의 흠차 대신들을 초대하는 데 사용했고 평소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오늘 밤 조정의 흠차 대신이 주최하는 만찬회는 비록 급하게 통지했지만 청주의 크고 작은 상인들은 모두 참석했다.
월령안은 그리 늦게 도착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리에 들어설 때쯤엔 삼 할 정도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녀의 맞은편과 아래쪽 자리는 모두 비어 있었다.
"대인을 뵙습니다."
월령안은 그녀의 윗자리에 앉은, 오품 관복을 입은 중년 남자에게 예를 올렸다.
"월 낭자,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중년 남자는 거리감이 느껴지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전 일은 월 낭자께 감사드립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 고개를 돌려 월령안을 외면했다.
월령안은 잠깐 멍해 있었다.
'내가 미움을 산 건가? 그런데 어쩜 이렇게 훤히 드러나 보이게 싫어하지? 좀 너무하네!'
조정의 관리들은 모두 그녀에게 생명이 구해진 인정 빚을 지고 있었다. 아무리 상인을 싫어하더라도 생명의 은인에게는 좀 정중해야 하지 않는가.
얼마 안 되어 월령안은 그녀의 윗자리에 앉은 대인이 구(歐)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 대인은 그녀 하나만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싫어했다.
상대적으로 구 대인은 그녀에게 나름 예의를 차린 것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예를 올렸을 때, 한마디라도 했으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예를 올려도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월령안은 코를 문지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쩌면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만약 그녀가 조정의 사람이라면 상인들이 혼란한 틈을 타서 양식을 사재기해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보면 언짢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곧 나머지 손님들도 속속 도착했다. 범씨 가문 가주는 그녀의 맞은편 빈자리에 앉고 안 대상인은 그녀의 아래쪽에 앉았다.
범씨 가문의 가주와 안 대상인은 동시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내내 웃음꽃을 피우며 막역지교를 나누는 듯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슬며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운 담담하게 미소를 유지하며 결코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익 때문에 서로 사이가 좋은 사람은 당연히 이익 때문에 갈라서기도 한다.
그녀가 오랫동안 장사를 하면서 아직도 이런 '배신'에 영향을 받는다면 지금까지 헛산 것이다.
뭇 상인들은 본래 월령안이 당황하거나 분해하는 모습을 구경거리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것을 보고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난처해했다. 너도나도 얼굴을 돌린 채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난감함을 해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흠차 대인이 현지 관리들의 수행 하에 연회장에 들어섰다.
"소인이 대인을 뵙습니다."
뭇사람들은 너도나도 일어나서 흠차 대신에게 예를 올렸다.
"여러분 예를 거두시오."
얼굴에 '나는 당신네 상인들을 싫어한다'고 써 놓다시피 한 구 대인과 달리, 흠차 정사(正使)는 상인들에게 무척 예의를 차렸다. 걸어오는 내내 시시때때로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그가 친밀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자 몇몇 상인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월령안은 마음속으로 몰래 웃었다.
역시 궁둥이가 머리를 결정한다.
조정에서 이번에 파견해 온 정사는 성이 곡(曲)씨고 사품 관리로서 형부 시랑 직을 맡고 있었다. 그가 이번에 청주에 온 것은 청주의 재해 상황을 조사하기 위한 것으로 일이 끝나는 대로 변경에 돌아갈 것이다.
월령안의 윗자리에 앉은 구 대인은 이름은 흠차 부사(副使)였으나 사실상 동 지주의 자리를 인계받게 되었다.
청주의 상인들은 기회를 틈타 양식을 사재기하여 청주에 양식이 동 나게 했다. 무의식중에 청주의 재해 상황을 사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는 곡 대인으로 하여금 적은 노력을 들이고 큰 성과를 얻게 했다. 당연히 곡 대인은 뭇 상인들에게 싹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 대인은 달랐다.
구 대인은 청주 지주의 자리를 곧 이어받게 되었다.
위로는 조의박이라는 수비가 버티고 앉아 덫을 놓을 것이고 아래로는 이익만 좇는 상인들이 그를 무너뜨리려 할 것이다. 그가 기뻐하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곡 대인이 자리에 앉자 때마침 가무 소리가 울리며 하인들도 사람들에게 술상을 올렸다.
하지만 사람들이 수저를 들기도 전에 곡 대인은 잔을 들어 모두에게 한잔 권하며 오늘 밤 연회의 목적을 말했다.
"청주는 재난을 입었습니다. 동 지주는 현지 청주의 관리로서 치적을 위해 폐하를 속이고 숨기면서 보고하지 않고 백성들이 자생 자멸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이 일을 들으시고 화를 금치 못하셨고 특별히 저에게 명해 이 사건을 엄밀하게 조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재해 상황을 숨긴 관리들은 쉽게 조사할 수 있지만 청주의 재해 상황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청주가 재해를 입고 수십만 명이 양식이 없어 배를 곯는 이상한 상황입니다.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들은 모두 청주의 명망 있는 분들이십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아낌없이 기부해 청주 백성 그리고 청주를 도와 어려운 고비를 넘겼으면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는 정말 감사히 여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