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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54)화 (654/1,004)

654화 이 거래를 꼭 해야겠습니까?

월령안은 청주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월씨 가문이 다년간 쌓아 온 덕을 이용해 겨우 청주에 발을 붙였다. 청주의 뭇사람들이 감히 얕보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 대상인의 지지가 없었다면 그녀가 신속하게 국면을 타개하고 상회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그들을 한데 뭉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청주상회 회장은 이름뿐이지 만약 뭇 상인들의 지지가 없으면 한낱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안 대상인은 가장 먼저 나서서 그녀를 지지해 준 사람이었다. 상업계의 말로 하면 그녀는 안 대상인에게 인정 빚을 진 것이었다.

만약 안 대상인이 입을 열어서 자신의 이익을 손상시키지 않는 이상, 그녀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양식 문제는 나라의 근본과 관계되기에 그녀는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숙부님, 정말로 시세 두 배의 가격으로 십만 석의 양식을 사실 건가요?"

월령안은 마음속으로 걱정되었다. 하지만 안 대상인 앞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설령 안 대상인이 십만 석이나 되는 양식을 요구해도 그녀는 전혀 얼굴빛이 바뀌지 않았다. 도리어 더 화사한 미소를 짓고 말끝마다 숙부를 부르며 모리배 같은 상인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선금도 가져왔단다. 거짓일 리가 없지."

안 대상인은 수중의 함을 월령안 앞에 밀어 놓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령안 조카, 보게."

월령안이 열어 보니 함 속에는 액면가가 십만 냥인 은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월령안은 이렇게 큰 액면가의 은표를 처음 봤지만 전혀 설렘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함을 닫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숙부께서 모처럼 입을 열었는데 제가 거절해서는 안 되겠지요. 다만 십만 석의 양식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에요. 제가 그만큼 준비할 것 같지 않네요. 이 장사는 아마 하지 못할 거 같군요."

청주가 반란을 일으키든, 금나라가 주나라를 칠 의사가 있든, 모두 군량과 마초가 필요했다.

만약 안 대상인이 양식을 만 석, 이만 석 정도만 요구한다면 그녀는 안 대상인이 안목이 좋아 이다음 양식 가격이 오를 것을 알고 먼저 양식을 사재기해 나라의 재난을 이용해 돈을 벌려 할 것이라고 자신을 속일 수 있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십만 석이라는 숫자를 듣는 순간, 안 대상인이 큰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뜻밖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월씨 가문은 당시 금나라의 황자이자 지금 금나라 황제에게 투자해 금나라에서 장사가 일사천리로 잘되었다. 하는 족족 모두 돈을 벌 수 있었다.

돈을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월씨 가문에서는 황후 한 명이 나올 수도 있었다.

월씨 가문 본보기가 앞에 있기에 청주 상인들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

줄을 바꿔 서는 것은 상인들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매력이었다. 아무리 큰 모험을 한다 하더라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월령안은 은표가 든 나무함을 안 대상인에게 돌려주었다.

"세숙, 죄송합니다."

안 대상인은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령안 조카, 급히 돌려줄 필요는 없네. 얼마 전에 진(陳)씨 그들 몇이 계약을 파기했잖는가? 그 몫을 내게 주고 다시…… 만약 이 숙부가 잘못 기억한 게 아니라면 서남 양씨, 송씨 두 씨족만 해도 양식 재고량이 십만 석은 넘을 것이네. 조카가 이 장사를 성사시키려면 그냥 손을 한번 들어 주면 되는 일이 아닌가."

안 대상인은 숨을 고르고서 말을 이었다.

"이렇게 쉬운 일도 조카가 나를 도와주려 하지 않는단 말인가? 조카가 청주에 처음 왔을 때, 이 세숙은 조카를 적지 않게 도왔구먼."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안 대상인은 인정 빚을 꺼내 월령안을 억누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 얼굴의 미소를 거두었다.

"안 나리께서는 제가 꼭 이 장사를 꼭 성사시키기를 원하십니까?"

그녀는 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번만 돕고 앞으로 월씨, 안씨 두 가문은 더 이상 친분이 없을 것이고 절대로 다시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안 대상인은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말했다.

"월 가주, 계약서를 작성하게. 이 양식을 늦어도 한 달 뒤에는 꼭 봐야겠네."

청주, 아니 전체 주나라에서 이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월령안뿐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도 월령안에게 밉보일 위험을 감수하고 찾아와서 이 거래를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월씨 가문의 명성, 월령안의 수단과 교제 능력은 뭇 상인들이 견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설령 그들이 서남에 양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서남 나씨, 전씨 두 씨족이 조 수비에게 넘어갔다고 해도 그들은 남은 양식을 조 수비에게 팔지 않을 것이다.

서남은 교통이 불편하여 모든 물자의 출입을 모두 청주에 통제당했다.

서남에서 만약 양식 비축이 충족하지 못하면 큰일이었다. 일단 청주가 관문을 막고 양식이 서남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서남은 그냥 굶어 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남의 양식은 여태껏 들어가기만 하고 나가지 않았다.

설령 곰팡이가 끼고 악취가 나더라도 그들은 바깥에 팔지 않았다. 선례를 남겨 서남의 근본을 해치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유일하게 서남 사람들이 전례를 깨뜨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월령안뿐이었다.

때문에 그가 그 사람을 도와 이 양식을 얻어 내려면 월령안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육 대장군께서 청주에 계십니다. 육 대장군이 있으면 서역의 장사도 할 수 있어요. 안 나리, 정말로 결정했습니까?"

어쨌든 애초에 그녀를 도와주었던 사람이었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한마디 더 권했다.

서역 각 약소국에서는 보석, 향료 등을 많이 생산했다. 주나라의 비단, 차, 그리고 자기 등은 서역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상업 경로가 열리기만 하면 결코 십만 냥에 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 대상인은 여전히 확고하게 버텼다.

"결정했네."

"알겠어요. 그럼 이 거래를 제가 할게요."

월령안은 나무함을 도로 거두어들이고 집사를 불러 계약을 체결하게 했다.

집사는 시선을 살짝 들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붓을 들어 계약서를 써서 월령안에게 건넸다.

계약서는 모두 세 부로 월령안과 안 대상인이 각각 한 부씩 갖고 다른 한 부는 청주상회에 맡겨 보관하게 했다.

"이번 장사는 월 가주가 비밀에 부쳐 주었으면 하네."

안 대상인은 계약서가 틀림없음을 확인하고 즉석에서 도장을 찍었다. 분명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찾아온 것이었다.

"물론이에요."

월령안은 계약서 두 부를 받고 안 대상인을 배웅하지 않았다. 그가 나간 직후에 곧 추수를 불렀다.

"안 대상인을 지켜보거라."

추수는 명을 받고 나갔다. 입구를 지나다가 육삼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육삼은 그런 추수를 돌아보더니 오래토록 멍하게 서 있기만 했다.

육사는 육삼이 넋이 나간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툭 쳤다.

"셋째 형, 이제 안 보일 정도로 멀리 갔거든요. 그만 보세요. 눈알이 튀어나오겠어요."

육삼은 시선을 거두고 여전히 깊은 생각에 빠졌다.

"넷째야, 내가 추수를 너희들 셋째 형수로 맞아들이면 좋을 것 같지 않냐?"

"셋, 셋째 형? 괜찮죠?"

육사는 육삼의 어깨에 걸쳤던 손이 미끄러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육삼은 화가 나서 육사를 노려보았다.

"못났기는!"

육사는 몸을 가누고 서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셋째 형, 추수 낭자는 마님의 시녀예요."

육사는 '시녀'라는 두 글자를 강조하며 소리 없이 육삼을 일깨웠다.

"시녀가 어때서? 마님의 시녀가 웬만한 시녀일 수 있어? 내가 추수를 맞아들이면 너희들이 감히 싫어할 테냐?"

육삼은 아래턱을 문지르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주 신통한 일 같았다.

"마님께서는 추수를 아주 높이 사셔. 마님은 추수를 팽이처럼 돌리면서도 우리한테 일을 맡기지 않잖아. 내가 만약 추수한테 장가가면 곧 마님의 사람이 되잖아. 마님의 걱정을 덜어 주지는 못해도 틀림없이 추수의 걱정을 덜어 줄 수는 있어.

그러면 나는 장군을 도와 월씨 내부에 들어간 거잖아. 또 마님 앞에서 장군의 덕담을 할 수도 있고. 그때가 되면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장군께서 나를 중용하지 않을까. 너희들 말해 봐. 아니야?"

육사와 육오는 육삼이 점점 더 허황한 꿈을 꾸자 허허 하고 냉소를 지었다.

"셋째 형, 넷째의 뜻은 형이 추수 낭자를 꺼리는가 아닌가 문제가 아니고, 추수 낭자가 형을 탐탁하게 여길 거라는 말이에요."

육삼은 말문이 막혔다.

육사와 육오는 이 말도 모자란 것 같아 한마디 덧붙였다.

"셋째 형, 상천 형님과 추수 낭자는 죽마고우예요. 똑같이 마님의 수족으로서 상천 형님도 형님 못지않아요. 형님이 추수 낭자한테 장가들겠다고요. 형 생각에 추수 낭자가 형님을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나요?"

육삼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

안 대상인은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월씨 가문 대저택에서 나간 뒤 곧장 수비부로 갔다.

"아가씨, 수비부의 경비가 삼엄합니다. 소인은 따라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들어간 뒤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추수는 자책하며 말했다.

"괜찮다. 누구인지 알 것 같구나."

수비부에 들어갔다고 해서 꼭 조의박을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었다. 금나라 대황자 완안경도 수비부에 있었다.

완안경이 국경 지대에 있는 그녀의 병기 주조방을 백일하에 까발리자 그녀는 금나라와의 모든 협력을 단절했다.

그녀가 이렇게 한 것은 금나라를 압박하거나, 금나라의 상업을 흔들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라 앞에서 그까짓 일개 상인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금나라와의 왕래를 끊은 것은 오직 금나라와 주나라에 그녀의 태도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어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을 위해 미리 예방하는 차원이었다.

금나라 또는 완안경도 대답을 주었다.

월령안은 대체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금나라와의 거래를 취소했다. 금나라는 뒤돌아서자마자 대체자를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그녀보다 부리기 쉽고 재력도, 세력도 더 나았다.

월령안은 안 대상인과 금나라 사이 협력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상인은 피비린내를 맡은 상어 떼와 같다. 금나라 시장의 문이 열리면 얼마나 많은 상인들이 뛰어드는지 알 수 없다. 안 대상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범씨 가문이 청주 상황 때문에 묶여 먼저 금나라 시장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월령안은 재빨리 이 일을 제쳐 놓고 물었다.

"아포는 어떻게 되었느냐? 소식이 왔어?"

"수비부가 너무 삼엄해서 우리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알아냈습니다."

추수는 고개를 더 푹 숙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조사했지만 아포가 어디에 갇혔는지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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