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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53)화 (653/1,004)

653화 상인의 법도로 보아야죠

백성은 먹을거리를 하늘처럼 여긴다. 양식은 근본이다. 먹을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설령 가짜 소식이라 하더라도 양식을 좀 더 사 두면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양식의 가격이 저렴해졌다. 지금 사면 비싸게 사는 것이 아니기에 더 많이 사면 이롭기만 할 뿐 해롭지는 않을 것이다.

뭇사람들이 마구 사재기하자 양식 가게의 양식이 금방 바닥났다. 앞서 양식 상인들이 가슴을 치며 양식이 충분하다고 말한 것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싶었다.

양식 가게는 다시금 양식이 동이 났다.

청주의 백성들은 더욱 공황에 빠졌고 양식을 사들이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그들은 초조한 나머지 수중의 모든 돈을 양식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그때가 되니 양식 가게에 양식이 얼마나 있든지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매진되었다.

청주 각 양식 가게의 사장들은 즉시 범씨 가문 가주를 찾아가서 양식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가게를 닫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들 수중의 양식은 관아에 판 지 오래되었고 수중의 양식 재고량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이 그동안 판 양식은 모두 범씨 가문 가주가 제공한 것이었다.

범씨 가문이 그들에게 대외적으로 양식을 계속 팔라고 하려면 양식을 내놓아야 했다. 여하를 막론하고 그들 수중의 양식은 이 시기에 절대 팔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 기회에 양식을 적지 않게 거둬들였다.

청주에 양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들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시기에 범씨 가문에서 대외로 양식을 풀면서 가격이 평소와 똑같다. 만일 양식을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바보인 것이다.

여러 대상인들은 모두 손을 써서 양식을 거둬들였다. 만약 관아에서 추후에 따지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그들은 범씨 가문에서 양식을 얼마 내놓든지 모두 사들일 수 있었다.

이것은 청주의 양식이 금방 동이 나는 원인이기도 했다.

범씨 가문 가주는 본인이 상인으로서 그 속사정을 모를 수 없었다. 그래서 뭇 양식 상인들에게 엄한 경고를 했고 또 여러 가지 규칙도 세웠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익이 충분할 때, 상인들은 담력이 하늘을 찔렀다. 범씨 가문 가주의 경고는 말할 것도 없고, 조정과 관아의 말도 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범씨 가문 가주가 어떻게 규범화하고 어떻게 경고해도 상인들이 양식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범씨 가문 가주가 이 양식 상인들을 막을 수 있다 하더라도 다른 상인들, 특히 월령안은 저지할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양식을 예약 판매하여 거액의 예약금을 받았다.

일부분은 육십이에게 주고 양 토사와 송 토사에게는 얼마 안 되는 예약금만 지불했다.

그녀의 수중에는 돈이 적지 않게 남아 있었다.

돈을 손에 쥐고만 있으면 불릴 수가 없다. 청주 관아에서 양식을 풀자 월령안은 청주 상인들이 애당초 그녀에게 준 예약금을 가지고 대량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범씨 가문이 대외적으로 양식을 얼마 정도 풀면 월령안은 그것들을 모두 사들였다. 손에 돈이 모자라자 그녀는 양 토사와 송 토사를 찾아가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 양식을 사들였다.

시장은 신기한 데가 있다.

모두가 한 가지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하기 시작할 때, 시장에 물건이 아무리 많아도 누군가가 모두 사들인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 가격은 점점 오르며 정점을 찍는다. 거의 동시에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상인들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보유하던 물건을 될수록 빨리 팔아 치우려 한다. 그러면 파는 사람이 많아 사는 사람이 다 사들일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게 되고 가격은 점점 더 내려가게 된다. 가격이 떨어질수록 상인들은 더 겁을 내며 팔려 한다. 파는 사람이 많을수록 가격은 더 내려가게 된다.

상례대로라면 청주의 양식은 아직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가격도 미친 듯이 올라야 했다.

하지만 범씨 가문 또는 범씨 가문 배후의 관아가 청주의 안정을 위해 줄곧 원래 가격대로 대외에 양식을 풂으로써 청주의 양식 가격은 오르지 않았다.

관아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옳은 처사였다. 양식은 다른 것과 달라 백성 생활의 필수품이다.

백성을 안심시키기 위해, 상인들이 이익을 위해 백성들의 생존을 돌보지 않고 합심하여 양식 가격을 인상시키려 할 때 대량의 양식을 풀어 양식의 가격을 안정시켜야 했다.

하지만 양식을 많이 푸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양식은 다른 상품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양식은 필수품으로 상인들이 거래할 때 돈과 마찬가지로 결제도 할 수 있으며 지어 어떤 경우에는 돈보다 더 값질 수도 있었다.

청주에 양식이 모자라는 지금이 아니라, 평소라도 범씨 가문에서 양식 가격을 올리지 않고 양식을 풀기만 한다면 상인들은 푸는 족족 다 사들일 수 있었다.

상인들의 구매력은 백성보다 백 배 이상은 강했다.

범씨 가문이나 그 배후의 관아가 나서서 양식을 사재기하는 불법 상인들을 엄하게 징벌하지 않으면 양식을 얼마를 풀어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청주의 세수는 전적으로 상인에 의지했다. 만약 관아에서 상인들을 엄하게 징벌한다면 청주의 세수는 적자가 될 것이며 관아도 돈이 없게 된다.

관아에 돈이 없으면 조의박 그들은 병마를 기를 수가 없을 것이다.

때문에 상인들이 양식을 사재기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조의박 등은 청주의 상인들을 잡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화와 복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조의박이 상인의 돈에 의지해 병마를 기를 때, 그 역시 상인의 견제를 받게 되는 것이다.

다만 월령안이 오기 전에 조의박의 수중에는 군사가 있었고 그동안 쌓은 위세 또한 대단했다.

청주의 상인들은 조의박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십여 년 동안 서로 탈 없이 잘 지냈던 것이다.

조의박은 고종의 수양아들, 청주의 수비인 자신이 어느 날인가 상인들의 견제를 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로부터 강대하고 힘 있는 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월령안과는 무관했다.

지금 청주의 양식 가격은 아직 오르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 사들이는 가격은 극히 낮았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상인으로서 그녀는 미친 듯이 양식 가격을 높이지 않고 양식 주문을 받은 상인들에게 되팔기만 해도 돈을 벌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일을 왜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월령안이 은표를 흔들면서 미친 듯이 양식을 거두어들이고 있을 때, 전에 그녀에게 양식을 주문했던 상인들이 찾아왔다.

"큰아가씨, 진(陳) 나리, 허(許) 나리, 제(齊) 나리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월씨 저택의 집사가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화청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세요."

월령안은 뜻밖으로 여기지 않았다. 손님을 만나기에 앞서 집사더러 계약서와 은표를 준비하게 했다.

그녀가 당시에 판 양식 가격은 지금의 두 배였다. 그 상인들은 계약을 파기하고 돈을 가지고 시장에 나온 양식을 거두어들여도 계속하여 그녀와 거래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찾아온 이들은 계약을 파기하고 돈을 돌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 그들은 월령안과 약속했다. 계약을 파기할 경우 총가격의 삼 할을 위약금으로 물어야 한다고 규정했던 것이다.

그들은 약정 기한이 곧 다가오자 지금 가격의 배가 되는 가격으로 양식을 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손잡고 계약을 해지하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월령안은 그들이 찾아온 목적을 알고 있었다. 상대방이 계약을 해지할 것을 제기했다. 그녀는 상대방이 입을 열어 요구하기 전에 먼저 위약금을 이 할 반으로 낮출 것을 제안했다.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사라는 것은 쌍방이 합의해야 한다. 그 당시 그녀는 높은 가격으로 양식을 사라고 그들을 강요하지 않았다.

상인으로서 돈을 벌기는커녕 밑지기까지 하면 아무도 마음이 내켜 하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이 먼저 위약금을 낮춰 주어도 상인들은 불만족해 여전히 흥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월령안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분, 장사를 할 때는 상인의 법도로 보아야죠. 이 일은 제가 불성실하게 처리한 것이 아닙니다. 그전까지 저는 범씨 가문 수중에 이렇게 많은 양식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또한 이렇게 끊임없이 풀지도 몰랐고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빈손으로 청주에 돌아왔습니다. 우리 월씨 가문에는 비축해 둔 양식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선금을 받은 후, 다시 다른 대형 양식 상인들과 양식을 주문해야 했습니다. 당시 급히 주문했기에 가격이 전혀 낮지 않습니다. 이제 양식이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여러분들은 계약을 파기하고 양식을 사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상인은 신용을 가장 중히 여깁니다. 저쪽에서 양식을 모두 운송해 왔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처럼 입만 열어서 계약을 파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사지 않으면 그 양식들을 제가 직접 사야 합니다. 만약 못 팔거나 비싸게 팔 수 없다면 그 양식들은 제 손에서 썩힐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이 정도 위약금을 받는 것은 과한 게 아닙니다."

월령안은 아주 심각하게 말했다. 하지만 자리에 있는 상인들은 다 세상 물정에 훤한 사람들이라 믿지 않았다.

월령안은 이제 서남 양 토사, 송 토사와 각별한 사이다. 양식이 모자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월령안이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장사를 할 때는 상인의 법도로 보아야 한다. 계약은 그들 스스로 체결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더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자 계약을 파기하려는 것이다. 확실히 그들의 잘못이었다.

게다가 월령안은 먼저 위약금 오 푼을 낮춰 주었다. 비록 많이 낮춰 준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마음의 위로라도 되는 것이다.

먼저 온 상인 세 사람은 두말없이 즉석에서 계약을 해지했다.

그들 셋은 애당초 전액을 지불했다. 계약을 해지하면 칠 할 반의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 돈으로 양식을 사들이면 월령안과 거래하는 것보다는 더 많이 벌 수 있었다.

선례가 생겼다. 상인 셋이 월령안과 계약을 해지했다는 소식을 듣자 범씨 가문을 도와 주문했던 몇몇 사람을 제외한 상인들은 너도나도 찾아와 계약을 해지할 것을 요구했다.

월령안도 시원스럽게 처리했다. 모든 이들에게 위약금 반 할을 낮춰 주고 그 자리에서 원 계약을 파기하고 다시 계약 해지 계약서를 체결했다.

월령안 수중의 돈은 양식을 사들이는 데 대부분 사용했다.

모든 사람이 계약을 파기하자 그녀 수중의 돈도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바로 이때 안 대상인이 찾아왔다. 두 배나 되는 고가로 그녀에게서 양식을 주문하려 했다.

이 시기에 두 배나 되는 가격으로 양식을 주문하다니. 안 대상인이 예지력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것인가.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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