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화 세 통의 편지
조정에서 흠차 대신을 파견한 것은 동 지주가 청주의 재해 상황을 속인 사실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다. 흠차 대신이 조사하면 그녀는 당연히 증거를 올릴 것이다. 흠차 대신이 증거를 수집하기 쉽게 하고, 겸사겸사 동 지주도 무너뜨릴 수 있었다.
"다시 사람을 성안에 보내 소문을 퍼트려라. 조정에서 흠차 대신을 파견해 왔다고 해라. 관아에서 재해 상황을 숨기기 위해 양식 가게에서 계속 양식을 팔게 하는 거라고. 사실 관아의 남은 양식도 이제 거의 바닥났다고 해라. 양식을 보면 꼭 많이 사두어야 한다고 일러라.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돈이 있어도 양식을 사지 못할 거라고 말해라."
그녀가 양식을 팔지 않으면 청주의 관리들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반드시 양식을 내놓아 민심을 안정시킬 것이다. 그녀가 이것까지 저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형세를 혼란시켜 백성들이 미친 듯이 양식을 사재기하게 할 수 있었다.
조정의 흠차 대신은 본래 청주의 관료 사회에 칼을 대려고 온 것이다. 그들에게 청주의 관료 사회를 파헤칠 기회만 준다면 그들은 청주의 관리들을 모두 한번 척결할 수 있었다.
"예, 아가씨."
추수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 의의도 없었다.
설령 마음속으로 월령안의 명령이 일단 전달되면 청주에 대란이 일어날 것을 알아도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청주의 일을 분부하고 나서 월령안은 한마디 물었다.
"상천에게서 소식이 왔느냐?"
"아가씨께 알려드립니다. 상천은 변경에 간다는 말만 남긴 뒤로 아직 소식을 전해 오지 않았습니다."
상천이 변경으로 간 일에 대해서 추수는 진작에 월령안에 보고했었다. 다만 당시 월령안은 상회 사람들과 서남의 장사를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보니 듣고는 잠시 잊었었다.
"변경의 동향을 예의 주시해라. 조정에서 주조방(鑄造坊)의 장인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중점을 두고. 그리고……."
월령안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숨을 고르고서야 말을 이었다.
"연복궁의 소식을 알아야겠다."
그녀는 노인의 생사를 알고 싶었다.
말을 마치고 추수가 대답하기 전에 월령안은 또 재빨리 물었다.
"서 아저씨에게서는 소식이 왔느냐? 관성(關城)에 도착했다더냐?"
"서 선생께서는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변경에서는 장군왕 세자와 최 공자, 유 공자의 편지밖에 온 게 없습니다."
추수는 수중의 편지를 올렸다.
이 편지 세 통은 요 며칠 사이에 연이어 청주에 도착한 것이었다.
다만 월령안이 줄곧 동분서주하고 있었고 편지도 그리 급한 것이 아니라 추수는 그녀에게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됐다. 먼저 물러가거라."
월령안은 편지를 건네받았다. 추수를 물러가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편지를 뜯기 시작했다.
장군왕 세자의 편지가 맨 위에 놓여 있었다.
월령안은 손에 잡히는 대로 뜯어 한 번 훑어보았다.
장군왕 세자는 편지에서 자신의 술 가게 장사가 아주 잘 된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육장봉과 최씨 가문의 주문이 있자 문관, 무장들이 모두 덩달아 그의 가게에서만 술을 산다고 했다.
그의 가게 술은 품질이 좋고 가격도 적당해 황궁에서도 사람을 보내 적지 않게 샀다고 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술 가게는 또 한 번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했다. 그가 판매량을 조절하지 않았더라면 월령안이 경성에 보내준 술은 진작에 매진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영녕후부의 술 가게는 그의 장사에 밀려 거의 문을 닫기 일보 직전이라고 했다. 더하여 영녕후의 두 아들이 연달아 변을 당했기에 영녕후부는 점점 더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장군왕 세자는 편지를 무려 석 장이나 썼다. 모두 술 가게 장사가 잘된다는 것을 자랑한 것이었다.
편지 말미에 짧게 한마디 했다.
'아버지께서 알려 주라고 했어. 영녕후가 요즘 들어 장강 회하 지역의 수군과 빈번히 연계하니 예의 주시하라고 했어.'
"수군이라? 영녕후는 무엇을 하려는 걸까?"
그녀는 수중에 상선이 없어 당분간 상선을 조직해 출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군왕이 귀띔했으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월령안은 이 일을 기록하고 나서 장군왕 세자의 편지를 한쪽에 놓아두고 두 번째 편지를 뜯었다.
두 번째 편지는 유경장이 보낸 것이었다. 종이 반 장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이었다.
유경장은 편지에서 올해 과거 시험에서 이갑(二甲) 중 열여섯 번째에 합격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지방에 가서 경험을 쌓아야 하는지 아니면 변경에 남아 경력을 쌓아야 하는지 물었다.
유경장의 편지는 월령안을 매우 골치 아프게 했다.
그녀가 애당초 유경장을 경제적으로 후원할 때는 확실히 인재를 끌어들이려는 생각이 있었다.
월씨 가문은 본래부터 학자를 후원하는 관례가 있었다.
그러나 월씨 가문에서 학자를 후원하는 것은 결코 그들이 득세한 뒤에 월씨 가문을 도와 달라는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이 후원한 정을 봐서라도 득세한 뒤에 월씨 가문을 가혹하게 착취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유경장은 성씨와 재능 그리고 활달한 성격 등 원인으로 인해 그녀가 좀 더 가깝게 지냈다. 물론 그에 대한 지원도 좀 더 많았다. 하지만…….
월령안은 한 번도 유경장에게 월씨 가문의 도장을 찍을 생각이 없었다. 그를 월씨 가문과 한데 묶어 그더러 월씨 가문을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하려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월씨 가문은 황제에게 줄곧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유경장이 그녀와 너무 가까이하면 그에게는 아무 좋은 점도 없었다.
유경장도 이런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렇게 행동했다.
월령안의 눈에 유경장의 이 거동은 정과 의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지혜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유경장은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 이에 대해 월령안은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능만 있고 정치적 지혜가 없는 사람은 관료 사회에서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
유경장이 그녀에게 보내온 편지만 보고도 그녀는 그의 미래를 좋게 보지 않았다.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붓을 들었다가 다시 놓았다.
유경장이 또 어리석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녀는 답장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마지막으로 최일의 편지를 뜯었다.
최일의 편지는 장군왕 세자처럼 톡톡 튀지도, 유경장처럼 직접적으로 마음을 나누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의 편지는 적당했으며 글에서 예의를 차리고 거리를 두는 것이 느껴졌다. 단어 사용마저도 엄숙하고 단정하여 가까운 느낌이 전혀 없었다.
최일의 편지를 보고 다시 유경장의 편지를 보면 월령안은 더욱 속상했다.
유경장은 너무 방자했다. 명성을 떨친 재야인사로 지내면 괜찮으나 조정에 들어가 벼슬을 하려면 아직도 한참 배워야 했다.
최일은 편지에서 간단하게 과거에 대해 말했다.
그러면서 티가 나지 않게 장 오공자도 과거에 통과되었으며, 황제는 궁전에서 장 오공자에게 조부의 풍격을 엿볼 수 있다고 칭찬했다고 알려 주었다.
최일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그냥 언급만 했다.
하지만 월령안은 이 한마디에서 황제가 평형을 유지하려고 일부러 장 오공자 또는 장씨 가문을 밀어주어 최씨 가문이 혼자 커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제왕이고 관료 사회였다. 여태껏 한 가문이 단독으로 커지게 놔둔 적이 없었다. 한 가문이 단독으로 커져 권력이 최고봉에 이르면 그다음은 쇠락하기 마련이다.
황제가 장씨 가문을 밀어주는 것은 최씨 가문에도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최일은 또 나 토사의 장남이 변경에 이르러 소함연을 맞아들인 일에 대해 썼다.
나 토사의 아들은 소함연을 몹시 중히 여기고 소 승상도 이 혼사에 매우 만족해한다고 했다.
두어 마디 말이 끝나고 최일은 또 북요 대황자 야율융진은 변경에 남아서 볼모가 되었으며 황제는 진왕부의 군주(郡主)를 그에게 비로 점지해 주었다고 했다.
북요 황녀 야율아한은 황제가 유휴 종실에 점지해 주었다고 했다. 북요 상장군 소영화는 불만족했지만 승낙했다.
황제는 삼황자 야율헌일이 북요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시간을 따져 보면 그녀가 편지를 받을 무렵이면 야율헌일도 이미 길을 떠났을 것이다. 만약 우연의 일치라도 생긴다면 혹시 관성에서 만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최일은 사사건건 모두 한마디씩만 하고 깊이 말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다하고 나서 최일은 강남의 풍경에 대해 말하며 강남에 가서 부임하기를 아주 기대한다고 했다. 강남의 경치와 번창한 하천 운수를 직접 보기를 바란다고 했다.
최일의 편지는 단독으로 봤을 때는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장군왕 세자의 귀띔까지 곁들이면 월령안은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하천 운수……!"
월령안은 '번창한 하천 운수'라는 글귀 위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마음이 살짝 내려앉았다.
장군왕과 최일 모두 강남의 하천 운수를 이야기했다. 강남의 하천 운수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가.
월령안은 잠깐 생각해 보았으나 아무런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곧 한쪽에 밀어 두었다.
"그냥 생각만 해서는 소용없어. 우선 사람을 보내 조사해 보자."
좌우지간 단시일 내에 그녀는 강남에 가지 않을 것이다. 확실하게 조사할 시간은 충분했다.
* * *
월령안은 육십이를 불러들이고 더는 대외적으로 양식을 팔지 않았다. 이는 백성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관아에서 대외적으로 양식을 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각 양식 가게들이 잇달아 문을 열고 양식 가게들마다 양식으로 넘쳤으므로 가격도 하락했다.
청주의 백성들은 이를 보자 전에는 괜히 놀란 거라고 여겨 더욱 안심했다. 누군가 말하지 않으면 그들은 재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거의 잊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평온함은 단지 이틀만 유지되었다.
누군가 앞장서서 양식을 대량 구매하고 사재기한 뒤, 전체 청주의 백성들은 무엇을 발견한 듯이 집에 양식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미친 듯이 양식을 사들였다.
대다수 백성들은 군중심리를 지니고 있다. 남이 양식을 마구 사재기하는 것을 보고 덩달아 사지 않으면 자신이 손해를 본 것만 같은 것이다.
하나둘씩 덩달아 사다 보니 얼마 안 되어 청주의 백성들은 모두 양식을 빼앗으며 사재기하고 있었다.
심지어 월령안이 부채질할 필요도 없이 시장에는 소문이 파다했다.
청주에는 양식이 없다. 양식 가게에서 양식을 파는 것은 조정의 흠차 대신이 왔기 때문이다. 관아에서는 그들이 재해 상황을 숨긴 것을 흠차 대신이 조사할까 두려워 양식을 푼 것이다. 흠차 대신이 떠나는 순간, 그들은 돈이 있어도 양식을 사지 못할 것이다.
지금 서둘러 양식을 좀 더 사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정의 흠차 대신이 가는 순간, 그들은 돈이 있어도 양식을 사지 못하고 그냥 굶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황은 역병처럼 전염된다.
청주의 관리들이 전혀 모르는 사이, 청주의 백성들은 양식을 미친 듯이 사들이기 시작했다.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어서 양식을 사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끊임없이 주의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