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1화 아버지의 편지
그녀는 서남과의 상업 경로에 대한 가닥을 겨우 잡아 놓은 다음, 숨 돌릴 틈도 없이 부삼의 초대에 응해 서둘러 와호산으로 달려갔다.
부삼은 와호산에서 청주, 촉주, 장강(長江)에서 회하(淮河) 지역에 이르는 녹림 인사들을 연회에 초대했다. 부삼이 초대한 사람 중 녹림 인사가 아닌 사람은 오직 월령안뿐이었다.
그는 연회 자리에 초대된 사람들 앞에서 부모님이 살아 있을 때 월령안을 가장 아끼셨고 그녀를 부씨 가문 며느리로 삼으려 했다고 말했다.
오늘날 그의 부모님, 동생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월령안은 비록 부씨 가문 며느리가 될 수 없지만 부삼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이미 부씨 가문 사람이었다. 만약 누구든지 그녀를 괴롭히면 그건 부삼과 맞서려는 것이다.
부삼은 이 거친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까 걱정스러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 부삼이 살아 있는 건 바로 내 가족을 위해서다. 누구든지 내 가족을 건드리면 그 온 가족을 멸할 것이다."
장강에서 회하까지 지역의 녹림 인사들은 그래도 괜찮았다.
청주, 촉주의 녹림 인사들은 부삼이 그때 당시 직접 원수를 능지처참하던 모습을 떠올리고 하나같이 벌벌 떨었다. 누구도 감히 월령안에게 무례하게 굴지 못했다.
부삼도 전기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부씨 가문은 청주 현지 명문가였다. 시와 서예를 대대로 이어 오면서 청주에서 명성이 아주 높았다.
십오 년 전, 당시 청주 지주였던 매(梅) 대인은 호색한인데다가 포악하기까지 했다.
어쩌다 부씨 가문 가주 부인을 눈독 들이게 되었다.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부삼 일가를 적과 내통했다고 모함해 가족 서른여섯 명을 전부 투옥시켰다.
부삼의 어머니, 누나, 여동생, 그리고 고모까지 모두 능욕을 당하고 죽었다. 조부, 숙부, 아버지, 형님, 동생은 모두 옥중에서 참사했다.
유독 부삼만이 월령안 아버지의 도움으로 겨우 도망쳐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죽은 사람은 변명할 방법이 없다. 부씨 가문은 스스로 결백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부씨 가문 전체가 옥중에서 죽었지만 적과 내통했다는 죄명은 벗을 길이 없었다.
부삼은 도망친 뒤 청주를 떠났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모두들 신분도 없고 광명정대하게 다닐 수도 없는, 연약한 서생으로서 게다가 씻을 수 없는 죄명까지 들썼으니 설령 그가 밖에서 죽지 않더라도 평생을 겨우 연명이나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씨 가문을 위해 누명을 씻는 것은 불가능하고 여겼다.
하지만 뜻밖에도 삼 년 뒤, 부삼이 돌아왔다.
화적의 이름으로 청주로 다시 돌아왔다.
그해 매 지주는 청주에서 임기를 마쳤다. 연속 몇 년간 치적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어 조정에서 변경으로 불러들여 경성 관리가 되었다.
부삼은 사람들을 이끌고 거웅령에 잠복해 있다가 매 지주 일가를 모두 잡아들였다. 그리고 매 지주 눈앞에서 매 지주의 온 가족을 살해했다.
그런 다음 연약해 보이기만 했던 부삼은 직접 손을 써서 매 지주를 산 채로 살점을 한 칼 한 칼 도려내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매 지주는 연일 열흘 동안 울부짖었고, 몸의 살점이 모두 떨어지고 피가 다 마르고 나서야 겨우 숨이 끊겼다고 한다.
그 열흘 동안, 청주의 관졸이든 군대든 마치 벙어리, 귀머거리가 된 듯이 한 사람도 나와 보지 않았다.
이로부터 부삼의 능력을 알 수 있었다.
부삼은 능력이 있었지만 가족들을 위해 복수가 끝난 다음 반쯤 은퇴하고 더는 세상일에 참견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손쓴 것은 십 년 전, 월씨 모녀를 보호하여 동행한 것이었다. 월씨 가문에서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랬던 부삼이 지금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월령안을 부씨 가문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는 녹림 인사들에게 이번에 다시 강호에 나선 것은 월령안을 위해서라고 분명하게 알려 주는 것이었다.
부삼의 이 말이 있으니 청주, 촉주, 장강-회하 지역의 녹림 인사들은 죽을 생각이 없는 이상, 절대 월령안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 자리에 모인 녹림 인사들은 부삼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다. 부삼이 의사를 밝힌 뒤, 모두 부삼의 가족이면 자신들의 가족과 다름없다며 반드시 부삼과 함께할 것임을 밝혔다.
뭇사람들의 협조하에 연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녹림호걸들은 어깨동무하며 호형호제했다. 술이 세 순배를 돌자 부삼은 술을 많이 마셨다는 이유로 먼저 자리를 뜨면서 월령안도 데려갔다.
사실 부삼은 술 세 사발밖에 마시지 않았다.
시작하면서 한 사발을 비워 뭇사람들을 권했다.
가운데 월령안과 술 한 사발을 마셨다.
자리에서 일어설 때 한 사발을 비워 뭇사람들에게 사과했다.
오히려 월령안이 많은 사람들이 권하는 바람에 술 두 잔을 더 마시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주량이 세서, 볼이 살짝 붉어졌을 뿐이었다. 세수한 뒤 짙은 차 두 잔을 마시자 전혀 영향이 없었다.
"셋째 두령!"
월령안은 씻고 나서야 부삼을 찾아갔다.
부삼은 손을 씻고 있었다. 월령안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탁자 위에 편지는 네 부친께서 남기신 것이다."
"아버지께서요?"
월령안은 깜짝 놀라 멍해졌다.
"보면 알 것이다."
부삼은 손을 닦으면서 월령안에게 걸어왔다.
월령안은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탁자 위에 편지를 보고 은근히 기대감이 생겼다. 편지를 뜯는 손도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편지를 읽어 보고 실망해야 할지 아니면 한바탕 울어야 할지 몰랐다.
편지는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남겨 준 것이었다. 하지만 편지에는 단지 공적인 일만 이야기했을 뿐, 당부나 관심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편지는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그녀를 위한 생각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고 난 월령안은 몰래 몇 번이나 숨을 고르고서야 겨우 마음속의 놀라움과 감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녀는 애써 평온을 유지하며 말했다.
"셋째 두령, 감사합니다."
서남의 작물은 그녀의 부친이 가져온 것이었다. 두 가지 작물의 한 뙈기에 수확량이 수천 근이나 되므로 양식으로 쓸 수 있었다.
이 편지는 딱히 그녀만을 특정하여 남긴 것은 아니었다. 월씨 가문 가주 혹은 그녀의 오라버니에게 남긴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편지에 두 가지 작물의 생산량과 재배 방법을 상세하게 썼다. 그리고 월씨 가문에서 그 작물을 황제에게 바치면 월령안 한 사람의 자유를 얻어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는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찾아 준 또 다른 퇴로였다.
설령 아버지와 오라버니 둘이서 두 배의 가산을 벌지 못해 그녀가 오라버니와 함께 월씨 가문 가주가 될 수 없다고 해도 이 두 생산량이 높은 작물을 바치면 그녀는 황실에 감금될 필요가 없었다.
편지에는 사랑과 온정에 관한 글은 한 글자도 없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이 편지가 천근이나 되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위해 모든 심혈을 기울였다.
금나라와의 혼약, 그리고 이 편지 모두 그녀를 위해 계산한 것이었다.
"일찍 돌아가라.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아오너라. 한집안 식구끼리 서먹해 할 필요 없다."
부삼은 월령안을 잡지도, 길게 말하지도 않았다.
피맺힌 원수는 당연히 자기 손으로 갚아야 한다.
청주의 그 노친네 몇은 월씨 가문이 무너지는 틈을 타 이득을 보았다.
월령안이 능력이 없어 되찾아올 수 없을 때 가서 그가 다시 손써도 늦지 않을 것이다.
"예, 셋째 두령."
월령안은 손에 든 편지를 꼭 쥐고 고개를 숙여 눈물을 감추었다.
설령 지금 이 순간까지도, 돌아가신 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그녀를 위해 비바람을 막아 주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 * *
월령안은 월씨 가문 대저택으로 돌아왔다. 서재에 꾹 박혀 편지를 몇 번이고 더 읽어 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의 안타까움을 억누르고 편지를 태워 버렸다.
몽산의 생산량이 높은 두 가지 작물은 그녀의 아버지가 찾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청주의 그 몇 노친네들의 손에 들어갔으므로 그녀의 아버지가 작물을 찾은 공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 편지는 너무 늦게 나타났다.
만약 십 년 전에 그녀가 이 편지를 받았더라면 황제의 수중에서 어떤 좋은 점을 바꿔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서 편지가 알려지면 그녀의 아버지는 사심 때문에 천하의 백성을 돌보지 않고 생산량이 높은 작물을 감춘 것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그녀는 반드시 이 편지를 태워야 했다.
편지를 소각한 후 월령안은 잿더미를 잠깐 지켜보다가 은근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붓을 들어 부친이 편지에 쓴 재배 방법과 무당 수확고를 일일이 기록했다.
조의박을 비롯한 세 노친네가 그녀의 아버지가 찾아낸 생산량이 높은 작물을 빼앗았다.
그녀는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되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우세를 꺾어 버리고 내막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세 노친네들이 몽산에 여러 해 동안 작물을 심었으면 어떤가.
몽산이 아무리 크고 청주가 아무리 크고 서남이 아무리 크더라도 주나라의 강산보다는 크지 못하다.
그들이 청주에서 여러 해를 재배했다 하더라도 황제가 명을 내려 나라에 널리 보급하면 주나라 전체의 일 년의 생산량보다도 못할 것이다.
세 노친네는 양식 종자와 재배 방법을 한사코 감추려 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재배 방법을 조정에 보내어 그 노친네들의 내막을 까발릴 것이다.
월령안은 편지를 쓴 다음 봉랍으로 봉했다. 육삼을 불러 육장봉에게 편지를 보내라고 했다.
감자와 옥수수는 밭 한 뙈기에 수확량이 천 근씩이나 되며 또한 척박한 땅에서도 자랄 수 있다고 했다.
육장봉이 멍청한 게 아닌 이상, 어떡해서든지 청주의 그 노친네들 손에서 양식 종자를 좀 더 많이 빼앗아 하루빨리 변경에 보낼 것이다.
지금 양식 종자를 변경에 보내면 파종을 할 수 있다. 조금 더 늦으면 올해에는 안 되고 명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워낙 많지 않았던 종자가 더 적어질 것이다.
편지를 보낸 후의 일에는 육장봉이 힘쓸 것이므로 월령안은 이 일을 내려놓았다. 대신 청주의 일에 전념했다.
* * *
청주 사람들은 여전히 양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월령안이 매일 청주에서 곡식을 팔자 청주의 백성들은 며칠간 걱정하다가 다시 평온해졌다.
관아에서도 더는 시장 관리에 나서지 않았다.
이건 바로 월령안이 원하던 것이었다.
흠차 대신이 왔으니 청주는 혼란에 빠져야 했다.
그녀는 선행을 원하지만 상인으로서 우선 이익을 좇았다.
각자 자기의 직책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양식 가격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의 생활 요구를 만족시키며 백성들을 먹을 양식이 없다는 두려움에 떨지 않게 하는 것은 조정과 관아에서 할 일이었다.
그녀는 일개 상인으로서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었다.
월령안은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추수에게 명을 내렸다.
"십이 그들을 불러오너라. 내일부터 가게에서 양식을 팔지 않을 것이다. 양 토사, 송 토사에게 전갈을 보내라. 최근 한동안 서남쪽의 양식이 청주로 흘러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