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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50)화 (650/1,004)

650화 네가 본 사람이 나였다면

"오."

육장봉이 화가 난 게 그녀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월령안은 목이 칼칼했다. 육장봉을 피해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저 목말라요."

육장봉은 마지못해 말했다.

"……기다리시오."

그는 이를 악물고 집안 한가운데로 가서 먼저 촛불을 밝혔다. 그러고는 다시 물 한 잔을 따라 월령안의 손에 거칠게 쥐여 주었다.

월령안은 잔을 받쳐 들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한 모금씩 천천히 물을 다 마신 다음에야 물었다.

"저에게 화난 거예요?"

화가 났다고 서남에서 청주로 하루만에 달려와서는 그녀에게 따지려는 모양이었다.

"음."

육 대장군은 말을 무척이나 아꼈다.

"어젯밤 일 때문인가요?"

월령안이 재차 물었다.

"음."

육장봉은 침대 가에 앉더니 월령안을 안아 자신의 다리에 올려놓았다.

"난 그들보다 싸움을 엄청 더 잘하오. 그러고 돈을 쓸 필요도 없지."

그가 암위에게서 그녀가 와호산에서 다른 사람과 맞섰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얼마나 두려웠는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오."

월령안은 짤막한 음으로 대답했다. 육장봉을 달랠 뜻이 없는 게 분명했다.

"월령안, 좀 진지하면 안 되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화낼 거란 말이오.'

"조계안이 왔어요. 이변이 없으면 저는 곧 청주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육장봉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육장봉도 자신이 왜 굳이 암흑가의 사람들을 썼는지를 알 거라고 생각했다.

어젯밤에 육장봉과 그 수하들을 썼다고 치자. 그러면 그녀가 청주를 떠난 뒤에는 어떡해야 하는가.

아니면 앞으로 그녀가 어디로 가든지 육장봉이 따라다닐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어떤 일에 봉착해도 육장봉이 모두 나서서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했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육장봉에게 의지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손에 쥐여진 힘을 더 믿었다.

* * *

조계안은 그날 부상을 적잖게 입었으나 대부분이 외상이었다.

월씨 저택에는 다른 건 없어도 좋은 외상 치료약은 많았다.

월령안은 조계안을 보살피고, 조정에서 온 사람들이 청주에서 일 처리를 하는 데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그날로 조계안 일행을 성내의 월씨 가문 대저택으로 모셨다.

조계안 일행을 입성시키는 데는 부삼의 연줄을 이용했다.

조의박이 그 일을 알게 되었을 때, 조계안 일행은 이미 무사히 성내로 들어왔다. 조의박이 손을 쓰려 해도 기회가 없었다.

조계안은 하인의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아 이틀이 채 안 되어 깨어났다.

그는 깨어나서 가장 먼저 월령안더러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했다.

서남의 일이 합의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고많은 복잡한 일들이 모두 월령안의 손을 거쳐야만 했다. 그녀는 바빠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날 하루 종일 단잠을 잔 뒤로 그녀는 매일 두 시진도 자지 못하고 밖에서 동분서주했다.

막 저택에서 나가려는데 하인이 와서 조계안이 그녀를 만나려 한다고 보고했다.

월령안은 하는 수 없이 걸음을 멈췄다. 하인에게 상회에 가서 뭇사람들을 해산시키고 후에 다시 의논할 거라 전하라고 명령했다.

조계안은 잠시 월씨 저택 동쪽 건물에 머물렀다. 청주에서 조계안은 사람들이 그의 외모를 볼까 두렵지 않기에 가면을 쓰지 않았다.

중상에서 이제 막 깨어난 그는 안색이 창백하고 몸이 수척했다. 전체적으로 병색이 완연했지만 두 눈은 오히려 생기가 넘쳤다.

그는 긴 외투를 걸치고 건물 밖 탁자에 앉아 있었다. 팔꿈치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손으로 턱을 괸 채 바둑을 두고 있었다. 소탈하고 방자하며 느긋하고 나른한 모습이었다.

월령안은 안으로 들어서면서 풍채가 뛰어나고 온화하며 친절한 조계안을 보았다.

순간 머릿속에는 저도 모르게 육장봉이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던 날, 그녀가 조계안에게 강요당해 갈 길이 없게 되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삽시간에 머리에서 경적이 크게 울리며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대인을 뵙습니다."

월령안은 읍하여 예를 올리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몰래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계안은 변덕이 심하고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설사 마음속으로 경계한다 해도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

"앉아라."

조계안은 바로 앉으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대인 감사합니다."

월령안은 조계안의 맞은편에 앉았다.

조계안은 느긋하게 탁자 위의 바둑돌을 정리하더니 흑돌을 월령안의 앞으로 밀어 주었다.

"한판 두자."

조 대인이 '친절하게' 명령을 내렸다.

월령안은 그와 함께 바둑을 두는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의 바둑은 노인이 직접 가르쳤다.

하지만 노인의 한 수를 두면 백 수를 내다보는, 치밀하고 세밀한 풍격과 달리 그녀의 풍격은 파격적이고 종횡무진하며 살기등등했다. 꼼수가 적고 시원한 멋이 있었다.

이는 월령안 성격의 일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노인이 일부러 양성시킨 결과였다.

노인은 일찍 이 세상에서 일부 총명한 사람들은 바둑으로 인품을 평가하기 좋아한다고 말해 주었다.

만약 문인일 경우, 생각이 신중하고 주도면밀하면 세인들은 그를 기민하고 침착하며 큰일을 맡을 수 있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상인의 자식이 계산을 잘하면 세인들은 그를 속생각이 깊고 교활하여 친구로 사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총명한 사람이 많고 총명한 사람일수록 자기의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총명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가 없다면,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뿐이다.

그래서 노인은 월령안을 가르칠 때 자신이 잘하는 풍격을 버리고 그녀가 배워야 할 풍격만 가르쳤다.

상인의 여식으로서 월령안은 뼛속에서부터 계산에 능숙하지만 동시에 실용적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금기서화는 모두 소일거리일 뿐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배우면 당연히 자신에게 유익한 것만 배웠다.

월령안은 바둑에서 승부욕이 없었다. 때문에 대국을 시작하자 깔끔하고 거의 사색하는 시간이 없다 보니 덩달아 조계안도 빨리 두게 되었다. 이각이 채 되지 않아 한 판이 끝났다.

이변이 없이 조계안이 대승을 거뒀다. 그는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 말했다.

"령안과의 대결은 참으로 통쾌하구나."

그러나 즐거움 뒤에 슬픔이 뒤따른다고 조계안은 웃자마자 기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상처에 무리가 갔고 한참 동안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참으려 해도 결국 아파서 몸을 웅크렸다.

"대인, 차를 드세요."

월령안은 조계안에게 물 한 잔을 따랐다. 잠깐 망설이다가 또 약 한 병을 꺼내 건네며 말했다.

"대인, 이것은 손 신의가 만든 익체환(益體丸)입니다."

"쿨럭쿨럭……!"

조계안은 찻잔을 받아 둬 모금을 마시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월령안의 수중에서 약병을 건네받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게 약을 주다니. 난 또 네가 내 죽음을 바라는가 했다."

"대인께서는 웬 농담을."

만약 조계안이 그녀의 직속상관도 아니고 황제의 동생도 아니었다면 그녀는 정말 조계안을 한바탕 두들겨 주고 싶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자기의 죽음을 바란다고?'

이런 말은 마음속으로 알면 되지 굳이 입 밖으로 뱉어낼 필요가 없었다.

사실 그녀는 낯가죽이 두꺼워 조계안이 입 밖으로 뱉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조계안은 전처럼 그렇게 기세등등하지 않았다. 따듯한 물로 약 두 알을 복용하자 얼굴빛이 다소 좋아졌다.

월령안은 조계안이 공적인 일을 말할 때가 된 것을 알고 정신을 바싹 차리고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조계안이 말문을 뗐다.

"십 년 전, 청주에 온 사람은 육장봉 한 사람이 아니었어. 나도 청주에 왔었다."

월령안은 조계안을 흘끔 바라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 대인은 머리를 다친 건가?'

월령안의 침묵은 결코 조계안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그는 뜨거운 눈빛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십 년 전, 네가 본 사람이 나였다면…… 나한테 시집올 수 있었어?"

월령안은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녀는 조 대인이 역시 머리를 다쳤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처럼 바보 같은 질문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인……."

상인으로서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 것은 그녀의 행동 규범이었다.

이에 따라 그녀는 이도 저도 아닌, 조계안을 위로할 수 있는 답을 말해야 했다.

하지만 그 말이 혀끝까지 밀려온 순간, 그녀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대인, 대인은 조씨입니다. 주나라 황족의 성인 조씨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월씨입니다."

월씨 가문의 비극적 운명은 모두 조씨 황족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어떻게 원수와 결혼을 할 수 있겠는가.

조계안은 미쳤지만 그녀는 미치지 않았다.

"월씨 가문에서 먼저 신의를 저버린 거잖아."

조계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얼굴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줄곧 음침하여 기분을 알 수 없던 눈동자에는 마치 끝없는 폭풍이 일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월령안은 붉은 입술을 가볍게 벌려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대인께서 월씨 가문이 제왕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월씨 가문의 구족을 멸하면 됩니다."

'조계안은 월씨 가문 사람들이 황실의 은덕에 감지덕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조씨 황족은 여태껏 월씨 가문을 신임한 적이 없었다. 월씨 가문은 조씨 황족에게 있어서 결코 살아 있는 사람인 것이 아니라 쓰기 좋고 손에 익은 도구일 뿐이었다.

조씨는 군주이고 월씨 가문은 백성이다. 월씨 가문이 그때 당시 신의를 저버렸다지만 조씨 황족도 월씨 가문에 대해 자비롭고 관대하지 않았다.

월씨 가문이 그녀 대까지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조씨 일족의 연민과 관용이 아니라 수많은 돈과 월씨 가문의 수많은 목숨으로 바꾸어 온 것이었다.

월씨 가문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조씨 황족에게서 한 가닥 살길을 쟁취한 것뿐이었다.

월령안은 월씨 가문이 조씨 황족에 감지덕지하고 일편단심으로 죽을 때까지 그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씨 황족은 월씨 가문에게 은혜가 없었다.

조씨 황족이 월씨 가문의 능력을 알아봐 준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조씨 황족과 월씨 가문은 하늘에 사무치는 원한을 가진 사이였다.

월령안과 조계안의 대화는 조계안의 각혈로 끝났다.

그날부터 조계안은 두문불출하고 상처를 치료하면서 더는 월령안을 만나지 않았다.

월령안은 조계안이 몸조리를 다 하고 흠차 대신과 함께 떠나서 다시 정정당당하게 청주에 진입할 때까지도 다시 보지 못했다.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와 조 대인 사이에는 오직 공적인 일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공적인 일만 이야기하면 됐다. 그 외의 것들을 이야기하면 서로 감정만 상할 뿐이었다.

조계안이 월씨 가문 대저택에서 나가 흠차 대신과 함께 청주로 들어서던 그날, 청주의 관리와 갑부들은 모두 성 밖에 나가 맞이했다.

하지만 월령안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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