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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49)화 (649/1,004)

649화 가는 길을 배웅하고 싶구나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육삼은 알 리가 없었다.

월령안의 시선이 조계안에게 닿자 육삼은 긴장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큰아가씨, 조 대인께서 많이 다쳤습니다. 제가 먼저 조 대인을 모시고 내려가겠습니다."

"좋아요."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마음을 정리하고 부삼에게 포권하여 예를 올렸다.

"셋째 두령, 오늘 밤의 일은 정말 감사합니다."

"저 사람이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냐?"

부삼은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착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월령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왕 전하입니다."

"황실의 종친이었구나. 그러니까 값이 나가지."

부삼 나리는 시선을 거두었다. 말속에 은근히 약간의 조소가 배어 있었다.

월령안은 웃으며 말을 받지 않았다.

부삼 나리도 이야기를 잇지 않았다. 그는 부하더러 관과 조정의 흠차 대신을 월령안에게 넘겨주게 했다.

"이곳은 나에게 맡기고 일찍 돌아가거라. 자당(慈堂 - 타인의 어머니의 존칭)의 장례를 치르는 날, 잊지 말고 불러. 자당께서 가는 길을 배웅하고 싶구나."

"셋째 두령, 수고해 주십시오."

월령안은 사양하지 않았다.

일이 다 끝났으니 그녀는 오래 머물 필요가 없었다.

청주 녹림 인물을 쓸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끝까지 함께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겠다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가거라."

부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디찬 달빛이 그에게 쏟아지자 그의 눈빛에 얼마간의 부드러움이 묻어났다.

월령안은 육삼 등을 거느리고 관을 메고 청주 표국으로 돌아갔다.

* * *

이와 동시에 청주의 노친네들도 월령안이 부삼을 찾아 사람을 거느리고 거웅령에 들어가 조계안을 구하고 유씨 관을 빼앗았다는 소식을 받았다.

"부삼 두령이 손을 쓰다니?"

조의박은 이 소식을 듣고 격분을 금치 못하는 동시에 놀라기도 했다.

그는 일찍부터 월령안과 녹림 인사들의 접촉을 경계하고 있었다. 월령안이 청주에 오기 전에 그는 선수를 쳐 암흑가의 잘 알려진 몇몇 사람들을 매수했다.

하지만 유독 부삼은 당근도 채찍도 통하지 않았다.

물론 그도 부삼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청주 지역에는 청주가 혼란에 빠지는가 안 빠지는가는 부삼 나리가 결정하고, 부삼 나리가 언짢아하면 지주의 자리도 내놓아야 한다는 설이 있었다.

그런데 부삼은 줄곧 도도하고 매정했다. 그는 이런 속세의 사소한 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암흑가의 전설로만 전해질 뿐이었다. 오랫동안 그를 본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부삼이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조의박은 아연해졌다.

"큰형님, 부씨 가문과 월씨 가문은 대대로 교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월령안을 위해서가 아닐까요?"

조운천 백작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조운천은 범씨, 월씨 두 가문의 싸움에서 월령안을 누르지 못해 조의박의 불만을 자아냈다. 지금 조의박 앞에서 말할 때도 무척 조심스러웠다.

"큰형님, 이렇게 부삼 두령이 사람을 구해 가게 놔둘 거예요?"

조의박의 셋째 동생인 조기충은 군대에 있었다. 거웅령에서 조정의 흠차 대신을 포위해 죽이려 한 것은 그가 꾸민 일이었다. 그는 이 일에 더욱 관심을 돌렸다.

"부삼 두령의 체면을 봐주어야 한다. 관 하나일 뿐이야. 월령안을 위협하지 못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조의박은 주름투성이 얼굴에 음침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양 토사와 송 토사는 여전히 양보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냐?"

조기충은 성난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은 육장봉이 버팀목이 되어 주는 걸 믿고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 길을 빌리려 할 뿐만 아니라 일 할의 세만 바치겠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산속의 진귀하고 희귀한 물건들이 서남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승낙하거라."

조의박은 눈을 감아 눈 속의 차가운 빛을 숨겼다. 그러고는 음침하고 차갑게 말했다.

"나 대신 부삼 두령과 약속을 잡거라. 내가 그를 만나야겠다."

그는 월령안이 부삼에게 줄 수 있는 것의 배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조의박은 부삼을 만나지 못했다. 월령안이 한발 먼저 조의박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 * *

월령안은 조계안을 잘 챙긴 다음 어머니의 관에 향을 한 주 올렸다.

그러고는 바로 수비부를 찾아 조의박을 만났다.

월령안과 조의박은 여러 차례 맞섰지만 직접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조의박은 회색 옷차림에 등이 약간 굽었으며 매우 소박해 평범한 노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월령안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며 사탕까지 권했다.

하지만 월령안은 조의박을 감히 얕보지 않았다. 더욱이 조의박을 보통 노인으로 대할 수가 없었다.

청주 조씨 삼형제 가운데서 정말 가주 역할을 하는 사람은 오직 조의박 한 사람뿐이었다.

조운천과 조기충은 모두 조의박의 말을 따랐다.

보건대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노친네야말로 청주의 진정한 집권자였다.

월령안은 물론 얕보아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조의박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조의박 이 늙은 여우와 시간을 끌 인내심이 없었다. 예를 마치자마자 그녀는 입을 열었다.

"조 수비, 저는 나이가 어려서 관료 사회에서 통용되는 사탕발림 소리는 잘하지 못합니다. 제가 하는 말이 좀 듣기 거북하셔도 조 수비께서 많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월령안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말했다.

"저희 월씨 가문은 대대로 상업에 종사해 왔습니다. 비록 황실을 위해 재물을 긁어모으지만 황실의 개가 아닙니다. 청주와 조정의 겨룸은 조정의 일이므로 월씨 가문에서는 끼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월씨 가문과 범씨 가문의 십 년 가주 쟁탈전은 상업계의 일입니다. 바라건대 이 겨룸에서 조 수비께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제 어머니의 관을 건드리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합니다."

월령안은 말투가 담백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월씨 가문은 흙탕물에 뛰어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흙탕물에 뛰어들기를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어제 제가 상회에서 조 백작 나리께 말했듯이 저는 육 대장군에게 다시 한번 시집가는 것도 개의치 않을 겁니다.

오늘 제가 다시 한번 조 수비께 말씀드립니다. 제가 월령안인 한, 육 대장군이 없으면 이 대장군, 주 대장군, 심지어 완안 대장군, 야율 대장군까지도 있을 겁니다. 저는 그 어떤 싸움도 두려워한 적이 없습니다. 만일 수비 대인께서 저와 싸우려 하신다면 꼭 맞서 싸울 겁니다."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는 일어서서 조의박에게 읍했다.

"조 수비께서는 공무가 바쁘실 테니 이제 폐는 그만 끼치고 물러가겠습니다."

예를 마치자마자 그녀는 뒤돌아서 가 버렸다. 조의박의 반응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조의박이 그녀를 철저히 조정 쪽으로 떠밀려는 생각이 없는 한, 그녀의 말에 따를 것을 알고 있었다.

월령안이 나간 다음, 조의박은 병풍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전하, 정녕 이 여식이 아니면 안 되겠습니까?"

"정말 멋있지 않나요?"

금실로 수놓은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은 완안경이 병풍 뒤에서 걸어 나왔다.

"저는 그녀의 완안 대장군이 되고 싶습니다."

조의박은 잠깐 멈칫한 뒤 희미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 * *

월령안은 수비부를 떠나 범씨 저택을 찾아가 범씨 가문 가주에게 말했다.

"상업계에서는 각자 자기 능력으로 겨루는 거예요. 서남의 장사는 월씨 가문에서 점찍었어요. 그 대신 월씨 가문은 금나라에서 잠시 물러날 거예요. 앞으로 금나라와의 무역은 각자 능력에 따라 하게 될 거예요."

월령안은 금나라의 전망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기에 금나라와 장사를 계속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범씨 가문은 금나라와의 장사 기회를 중히 여겼다.

금나라의 장사는 서남의 장사보다 규모가 몇 배 더 컸다.

월령안이 왜 금나라의 장사를 내놓았든지 범씨 가문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범씨 가문 가주는 월령안이 내민 이 당근이 설령 독이 있다고 해도 아까워 뱉어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서남의 장사에서 범씨 가문이 물러섰다.

이때 범씨 가문은 조 수비를 대리한 것이었다. 범씨 가문이 물러선 것은 곧 조 수비가 물러선 것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청주 상업계의 사람들은 모두 아연해졌다. 부삼 역시 잠깐 멍해졌다.

"버팀목이 되어 주려 했더니만 생각 밖으로 내가 이득을 보게 되었군."

청주 암흑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칭찬했다.

"월 가주가 대단히 의롭군. 오늘부터 월 가주는 우리 형제다. 앞으로 청주 암흑가에서 월 가주를 괴롭히는 사람은 바로 우리 형제와 맞서는 것이다."

서남에 있던 양 토사, 송 토사는 씨족의 병마를 거느리고 서남과 청주와 접경지대에 주둔했다. 청주 수비군과 격전을 벌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그들이 칼을 채 갈고 닦기도 전에 월령안이 일을 해결해 버렸다.

양 토사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월 가주는 참 일 처리가 대단하군.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잖아. 우리한테 속하는 그 이익을 챙기기도 좀 쑥스럽구먼."

"저도 한바탕 격전이 있으려니 생각했다니까요. 그러니 대장군은 오지도 않았죠. 아마 일찍부터 싸우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나 보네요."

송 토사도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잘된 일이야!"

양 토사는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협력 대상이 강하고 유능하면 그들에게는 유리할 뿐 해가 없었다.

청주 상회의 상인들도 너도나도 이는 좋은 일이라고 한목소리를 내었다.

그들은 월령안을 청주 상회의 회장으로 추대했다. 월령안이 강하면서 능력도 있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좋은 일이었다.

적어도 월령안이 고기를 먹으면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들은 틀림없이 고깃국 국물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각, 뭇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월령안은 월씨 가문의 대저택에서 세상모르고 단잠을 자고 있었다.

그녀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그런데 깨자마자 침대 가에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월령안은 깜짝 놀라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거의 동시에 그녀는 손을 들어 수중의 빙침을 그 사람에게 쏘았다.

그 사람은 훌쩍 뛰어 피하더니 말했다.

"나요."

"육장봉?"

월령안은 숨을 고르고는 도로 누워 버렸다. 놀란 가슴이 가라앉지 않은 채 말했다.

"하마터면 놀라 죽을 뻔했잖아요."

육장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대 가에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빙침에 맞았어요?"

월령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어나 앉았다.

"아니오."

'월령안은 내 무예 수준을 어떻게 보는 거지?'

"오."

월령안은 입술을 핥았다.

"저 물 좀 마시고 싶어요."

"……."

육장봉은 묵묵부답이었다.

월령안은 말하고 나서 육장봉이 여전히 꼼짝 않고 앉아 있자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마시려 했다. 침대에서 내리자마자 육장봉이 막아 나섰다.

"나는 지금 화가 났소."

"화가 나요?"

'무슨 화를? 내가 아직 잠이 덜 깼나?'

"맞소. 화났소."

'당신이 달래야 풀릴 정도로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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