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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46)화 (646/1,004)

646화 간이 어지간히 크시군요

"그런데 감히 제 어머니 관을 건드리셨네요?"

월령안은 한순간 기세를 내뿜었다. 목소리에는 뼈를 에는 듯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

"조 백작 나리께서는 간이 어지간히 크시군요. 저를 대신해서 당신네 조상 십팔 대까지 안부를 전해 주세요."

"너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조운천은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자신이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가까스로 월령안과 눈길을 마주했다.

하지만 월령안은 그를 보지 않았다.

순식간에 월령안은 겉으로 드러내던 기세를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활짝 미소를 지으며 범씨 가문 가주를 바라보았다.

"범 가주, 제가 당신네 조부 무덤, 아니면 증조부 무덤부터 팔까요? 아니면 모두 팔까요. 어때요?"

범씨 가문 가주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안, 안 돼…… 그러면 안 돼! 남의 조상 무덤을 파면 천벌을 받을 거야."

"그럼 우리 한번 내기할까요. 제가 천벌을 받는 게 먼저일지, 장신네 조상 십팔 대의 무덤이 파헤쳐지는 게 먼저일지."

그녀의 어머니 관을 건드리면서 이 사람들은 천벌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가 왜 무서워하겠는가.

"자네…… 어쩌려는 건가?"

범씨 가문 가주는 월령안이 정말로 손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감히 내기할 수는 없었다.

그 사람들은 유씨 관을 건드릴 때, 왜 그들도 청주에 조상들이 묻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두 시간 뒤에 제 어머니 관을 봐야겠어요."

월령안은 원래 인내심을 가지고 범씨 가문과 형식적인 절차를 밟으며 그들의 체면을 얼마간 남겨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입구에서 그 편지를 받는 순간 그녀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범씨 가문은 이기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형평성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저와 범씨 가문 다섯 도련님과의 십 년 가주 쟁탈전에 대해서는요? 의논할 필요가 없어요. 범씨 가문 전체가 함께 경쟁해도 됩니다. 당신들이 마음속 깊이 승복하게 만들 테니까."

월령안은 말을 끝내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범씨 가문에서 거절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범씨 가문은 전체 가문이 힘을 다해 그녀와 싸울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표면에 드러내 놓고 시작하는 것이 나았다.

이렇게 되면, 그녀는 승리도 더욱 빛날 것이다.

"월령안, 거기 서거라!"

조운천은 월령안이 방자하여 자신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을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뒤늦게 탁자를 치면서 일어섰다.

월령안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의 체면을 봐주어 고개를 돌렸다.

"조 백작 나리, 조 수비께 한마디 전해 주세요. 그분이 저와 범씨 가문의 일에 끼어들려고 하면 저는 육장봉에게 또 한 번 시집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거예요. 아무튼 삼 년밖에 안 돼요. 저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거든요."

월령안은 조운천에게 대충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훌쩍 떠나갔다.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

쟁탈전 서막을 보라고 초청받아 왔던 청주 상인들은 이 광경을 보고 저도 모르게 서로서로 쳐다보기만 했다. 모두들 멍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무엇 하러 왔는가?'

월령안은 청주상회에 온 지 일각도 못 되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났다. 전혀 뭇사람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정말로 오만방자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상인들은 아무도 그녀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군."

조운천은 난처해지자 욕을 한마디 하고는 옷소매를 젖히고 자리를 떴다. 그는 월령안과 맞설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감히 직접적으로 맞서지 못하는 것이었다.

조운천의 이 거동은 분명히 나약함을 드러낸 것이었다. 뭇 상인들도 더는 남아 있으려 하지 않았다.

"여러분, 봐야 할 건 다 본 것 같은데, 저는 이만 먼저 가 보겠네."

안 대상인은 범씨 가문 가주에게 공수했다. 눈길로 범씨 가문 다섯 공자를 한번 훑고는 돌아서 걸어 나갔다.

안 대상인이 떠나자 나머지 사람들도 따라서 나갔다.

몇몇 범씨 가문과 마음이 맞지 않은 이들은 많은 이들 앞에서 범씨 가문 가주를 난감하게 했다.

"앞으로 십 년 동안, 저희는 범 가주만 지켜볼 것입니다."

가문 전체의 힘으로 한 어린 아가씨와 싸우다니. 만약 지게 되면, 정말 볼만할 구경거리일 것이다.

이기더라도 낯 뜨거운 일이었다.

먼저 자리를 뜬 상인들은 월령안과 동맹을 맺었거나 범씨 가문과는 마음이 맞지 않는 이들이었다. 하나같이 무슨 좋은 구경거리나 생긴 표정이었다.

청주상회의 회장은 이미 바뀌었다. 하지만 범씨 가문 가주는 여전히 상회의 회관을 장악하고서 여태껏 내놓지 않았다.

범씨 가문 가주는 청주 상회 회관에서 더구나 주인처럼 행세하며 뭇사람들을 초대했다. 자리에 있던 상인과 조운천 백작 나리도 모두 범씨 가문에서 모셔온 것이었다.

여하튼 오늘은 모두 범씨 가문이 주도했다.

하지만 월령안이 오자마자 범씨 가문에 한방 거하게 먹였다. 그녀는 범씨 가문 가주에게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려 주었다.

범씨 가문에서 회관을 차지하고 내놓지 않는 것이 오히려 월령안에게 일을 해 주는 잡부 같아 보였다.

물론 범씨 가문 편에 서서 함께 월령안에 대해 적개심을 품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급히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남아 범씨 가문 가주와 추후의 일을 의논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색이 다 된 범씨 가문 가주를 보자 다른 말은 못 하고 위로를 건넬 뿐이었다.

"범 나리, 어린애의 말일 뿐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려서 아직 하늘이 높은 줄을 몰라 그럽니다. 이제 두어 번 실패도 하고, 손해도 봐야 아마 무서운 줄을 알 겁니다."

"그 애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도 범 나리께 감히 이리 얘기하지 못했어요. 범 나리, 부디 인정사정 봐 주지 마십시오. 세상 물정 모르는 계집애를 따끔하게 혼내 주세요."

"너무 제멋대로이군요. 계집애가 조만간 큰코다칠 겁니다."

뭇사람들의 말이 위로가 되었는지 아니면 스스로 생각을 고쳐먹었는지 범씨 가문 가주는 얼굴빛이 점점 좋아져 가까스로 사람들을 배웅했다.

그러고 나서야 안채로 돌아와 조운천에게 죄를 청했다.

"백작 나리, 오늘 이 일은 제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수비께 직접 찾아가 죄를 청할 것입니다."

"자네, 확실히 찾아가서 죄를 청해야 할 거야. 그토록 큰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유씨의 관을 잡아 둘 수 있었다. 그런데 자네는 일을 이따위로 해? 너무 실망스럽군."

조운천은 범씨 가문 가주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탁자 위에 놓인 물 주전자를 들어 그에게 냅다 던졌다.

"우리가 이번에 졌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범씨 가문 가주는 온몸이 물에 흠뻑 젖어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다만 고개를 숙이고 굴욕적으로 변명했다.

"월령안이 모든 이들 앞에서 전체 범씨 가문이 자기와 경쟁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목적을 달성한 셈이잖습니까."

"하! 자네 상인들은 정말 철면피하구먼. 월령안이 자네 범씨 가문 체면을 바닥에 팽개치고 마구 짓밟는데도 자네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하는군."

조운천은 화가 나서 웃고 말았다.

범씨 가문 가주는 분노하지도, 기뻐하지도 않고 말했다.

"목적만 달성하면 됩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네 범씨 가문이 체면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가족 전체의 힘을 모아 월령안과 싸우겠다고 나섰네. 그러면 능력을 발휘해 월령안을 완전히 밟아 죽이란 말이네. 다시는 일어날 기회를 주지 말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을 써서 범씨 가문을 그냥 없애 버릴 거네."

조운천은 범씨 가문 가주 곁으로 다가가서 그에게 목을 긋는 살벌한 손짓을 해 보였다.

범씨 가문 가주가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당황하자 그제야 득의양양하여 자리를 떴다.

조운천이 간 다음, 범씨 가문 가주는 순식간에 수십 년은 감수한 것 같았다. 힘없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 * *

월령안은 회관을 나서자마자 마부더러 차를 몰아 성 밖으로 나가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청주성 밖의 표국으로 가려고 했다.

육삼은 잠깐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마…… 큰아가씨, 일손이 필요하면 소인이 진주와 병사들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들을 부를 필요가 없어요!"

월령안은 말을 더 하고 싶지 않아 마차 문을 닫아 버렸다.

육삼은 그러면 대장군께 오늘 일을 알려도 되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마차를 흘끔 살펴보고는 묵묵히 이 생각을 뇌리에서 지웠다.

마님은 대장군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몰래 대장군에게 보고하는 것은 틀림없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두 번째 육일이 되고 싶지 않았다.

육삼은 묵묵히 월령안을 따라 성 밖의 청주 표국으로 향했다.

월령안이 다시 청주 표국을 찾았다. 이번에는 대문이 열리고 뭇사람들이 영접하는 장면이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뒷문으로 들어가 웅 표사만 만났다.

"한 시진 뒤에, 제 어머니의 관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군요."

그녀는 그들이 아무 조건 없이 어머니의 관을 돌려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어머니의 관이 정말 그들 수중에 있는지도 의심되었다.

"네, 큰아가씨."

웅 표사는 낯빛이 살짝 변하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월령안은 또 말했다.

"모든 형제들을 소집해 싸울 준비를 하세요. 또한 녹림 형제들에게 녹림령(綠林令)을 보내세요. 오늘 유시(酉時 - 오후 다섯 시부터 일곱 시 사이)에 제가 와호산(臥虎山)에서 기다린다고 하세요."

청주의 그 노친네 몇의 배후에 십만 수비군이 있으면 어떤가.

그녀에게는 청주 전체 녹림의 힘이 있고 더하여 지금은 서남 절반의 세력이 있었다.

그 노친네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한, 그들 수중의 십만 대군은 그냥 위협용이었다. 경솔하게 움직일 수 없었고 감히 움직여서도 안 되었다.

"네, 큰아가씨!"

웅 표사는 잠깐 멍해 있다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큰아가씨께서 한번 큰 판을 벌이시려는군.'

"내려가세요!"

월령안은 눈매가 차갑고 도도하며 날카로움을 한껏 드러내었다. 권리를 장악한 자만이 지닌 거만함과 강세를 지니고 있었다.

월령안은 웅 표사를 손을 저어 물러가게 하고서 잠시 숨을 돌렸다. 그러고는 앉아서 붓에 먹을 묻혀 금나라 황제에게 편지를 썼다.

그녀는 이미 일부러 기세를 거두었다. 하지만 종이에 쓴 글은 여전히 예리하고 날카로워 살기가 서려 있었다.

월령안은 편지에서 우선 먼저 금나라 황제에게 간단히 인사말을 건넸다.

곧이어 월씨 가문이 금나라에 투자한 모든 자금을 회수하고 석 달 뒤에는 금나라와의 거래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편지는 길지 않았다. 한 장뿐이었다.

그녀는 편지를 다 쓴 뒤 읽어 보지도 않았다. 그냥 지니고 다니던 인감을 끌어 편지 끝머리에 개인 도장을 찍고 봉투를 봉했다.

"하나같이 자신이 황제인 줄 아는가 보군. 내 명줄을 쥐고 마음대로 나를 주무르겠다고? 당신들 우리 월씨 가문을 너무 우습게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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