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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45)화 (645/1,004)

645화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은 서남에서 이틀 머문 뒤, 범 가주가 말한 사흘의 마지막 날에서야 추수와 육삼, 육사, 육오 등 네 명을 데리고 청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편지를 써서 범 가주에게 전했다. 범 가주와 사흘 뒤에 청주 상회에서 이 일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때면 범 가주가 청주의 상인과 관리를 출석시켜 이 일을 입증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범 가주는 마지막 날에 월령안의 편지를 받고서 기분이 썩 좋지 못했지만 월령안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월령안은 범씨 가문의 자제가 아니었다. 그가 마음대로 오라, 가라 휘두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사흘 안에 그에게 회답을 준 것만으로도 그의 체면을 살핀 것이었다.

편지를 받은 뒤, 범 가주는 이 소식을 청주의 그 노친네들에게 보내고 사흘 동안 조용히 기다렸다.

월령안은 서남에서 청주로 돌아오는 데만 이틀을 소모했다.

월씨 저택에 도착하자 집사는 바로 배첩을 잔뜩 가져왔다. 모두 청주의 상인들이 그녀를 만나려는 것이었고 이 이틀 안에 보내온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모두 월령안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월령안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집사는 월령안이 볼 시간이 없는 것을 알고 먼저 말했다.

"큰아가씨, 이 사람들은 대부분 약정금을 내고 양식을 재촉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다른 소상인들은 우리에게 기대려고 찾아온 것입니다. 금나라의 대황자도 배첩을 보내왔는데 아가씨를 뵙고 싶답니다."

"바쁘니까 내일 얘기하지."

월령안은 배첩을 하나도 보지 않았다. 그녀는 쉬지 않고 앞으로 다가갔다.

"상천은? 어디 있느냐?"

"큰아가씨, 상천은 서재에서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집사는 배첩을 거두고 물러갔다.

월령안은 응한 뒤, 집사더러 육삼을 비롯한 친위대를 잘 안내하라고 하고 성큼성큼 서재로 향했다.

"큰아가씨!"

상천은 서재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줄곧 침착하던 얼굴은 조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말하거라. 무슨 일이냐?"

월령안은 길에서 상천의 소식을 받았다. 그가 중요한 일로 만나서 보고하겠다는 것이었다.

월령안은 큰일이 생겼기에 상천이 이토록 통제력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앉아 차분하게 물었다.

변경을 떠나, 황제의 억압에서 벗어난 그녀는 아무리 큰일도 감당할 수 있었다!

"큰아가씨, 우리가 사적으로 병기를 만들던 공방이 조정에 발각되었습니다! 도(杜)장인과 석(石) 장인 등 몇 사람이 즉석에서 잡혔습니다."

상천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 말을 전했다.

병기 공방이 발각되었다는 것은 철광을 몰래 캐고, 병기를 몰래 제조했던 일을 감출 수 없었다는 뜻이었다.

전에 황제는 줄곧 그들을 의심했다. 다만 증거가 없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증인, 물증이 구비되었고 그들은 발을 뺄 수가 없게 되었다.

월령안은 멈칫하더니 물었다.

"금나라가 손을 쓴 것이냐?"

그녀의 병기 공방은 주나라와 금나라의 경계선에 있었다.

그녀는 지난 삼 년 동안, 금나라에서 많은 병기를 샀다. 금나라에서 그녀의 공방을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네!"

상천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소인이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큰아가씨께서 벌을 내려 주십시오!"

"일어나거라. 이건 네 잘못이 아니다. 이건 금나라 대황자가 나에게 주는 경고다."

월령안은 완안경이 그녀에게 배첩을 보냈다는 집사의 말을 떠올리자 납득이 되었다.

완안경이 배첩을 보낸 것은 그녀를 만나려는 게 아니라 그녀가 고집을 부린 결과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월령안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최 승상에게 말을 전하거라. 뇌공, 청주의 지주와 서남으로 들어간 공로로 도 장인과 석 장인의 목숨을 바꾸자고. 최 승상더러 폐하 앞에서 힘을 써 주어 두 사람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부탁해 달라고 전하거라. 그리고 소 승상에게도 말을 전하거라. 그가 손을 쓴다면 소함연이 서남에서 죽지 않게 하겠다고."

"네, 큰아가씨!"

월령안은 손에 들어온 이익을 희생하면서도 공방의 장인들은 살리는 것을 선택했다. 상천이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는 도 장인과 석 장인의 안위가 걱정되지 않았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큰아가씨, 공방이 발각되어 우리가 사적으로 철광을 캔 일도 분명 감출 수 없을 것입니다. 황제 쪽에는……. 어떻게 해야 하죠?"

"걱정할 게 뭐가 있어? 내가 경성에 있는 것도 아닌데 설마 나를 불러들여 벌을 내리겠어?"

월령안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변경을 떠난 이상, 그분이 날 어찌하겠느냐? 지금에 와서 날 바꾸기라도 하겠느냐?"

상천은 멍해졌다가 곧 긴장을 풀었다.

"소인의 생각이 과했습니다."

"가거라. 만약 최 승상이 사람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네가 변경으로 가서 수 맹주더러 그들을 탈옥시키라고 하거라."

그 결과에 대해서는?

'폐하가 날 잡아들인 후,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자고.'

"네, 큰아가씨!"

상천은 이제 전혀 머뭇거리지 않았다.

상천은 명을 받고 물러갔다. 월령안은 서재에서 급한 용무를 처리하고 방으로 쉬러 들어갔다.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월령안은 잊지 않고 집사더러 금나라 대황자 완안경의 배첩을 돌려주라고 말했다. 또 동시에 앞으로 월씨 가문은 완안경의 배첩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완안경에게 전하는 답변이었다.

'나 월령안은 완안경과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고 금나라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 * *

다음날 아침, 월령안은 일찍 일어나 추수와 육삼을 데리고 청주 상회로 떠났다.

월씨 가문의 마차가 멈추자마자 상회의 심부름꾼이 편지를 들고 왔다. 그리고 월령안이 직접 열어 보라고 했다.

월령안이 열어 보자 위에는 네 글자만 써져 있었다.

'유씨의 관!'

"날 위협하려고?"

월령안은 한번 힐끗 쓸어보고는 편지를 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냉랭하게 불렀다.

"추수!"

"큰아가씨!"

추후가 포권하며 앞으로 다가섰다.

"양 토사, 송 토사에게 전갈을 보내라. 그 두 가문의 장정을 빌려 써야겠다고!"

월령안은 편지를 전하는 사람 앞에서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고는 상대방을 밀쳐 내고 육삼을 거느린 채 청주 상회로 걸어갔다.

감히 그녀를 위협한다면 그녀의 보복을 감당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청주 상회 대청에는 그날 월씨 가문 연회에 참했던 청주 상인들이 모두 와 있었다. 그들은 두 열로 나뉘어 앉아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상석에는 범씨 가문 가주와 관아를 대표하여 증인으로 나선 조운천 백작 나리가 함께 앉아 있었다.

월령안은 육삼을 거느리고 빛을 등지고 들어섰다.

그녀의 체구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나타나자 대청 내부는 삽시간에 어둠침침해졌다. 유일한 빛은 오로지 빛을 등지고 걸어 들어오는 월령안이었다.

"월씨 조카."

"월 가주!"

"령안 조카!"

월령안이 들어오자 양측의 상인들이 일제히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예의를 갖춘 말투에 화기애애한 모습이었다.

월령안도 그들의 체면을 봐주어 일일이 웃으면서 답례했다.

그 모습을 본 범씨 가문 가주는 눈꺼풀을 치켜들었다.

"월 가주 왔군. 앉게!"

상회 대청에서 왼편 아래쪽에만 빈자리 하나가 있었다. 그 자리는 월령안을 위해 남겨 둔 게 분명했다.

월령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범씨 가문 가주를 바라보았다.

"범 가주, 제가 잘못 기억한 게 아니라면 제가 바로 청주 상회의 회장입니다만?"

"오늘은 자네와 우리 아들이 십 년 가주 쟁탈전을 시작하는 날이네. 월 가주는 쟁탈전에 참가하면서 주최까지 하려는 것인가?"

범씨 가문 가주의 목소리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온화했다. 하지만 태도는 단호하여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았다.

반면 월령안은 기세등등하고 차가우며 도도했다.

"저와 당신네 범씨 자제들이 다투는 걸 알면서도 범 가주께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나요? 범 가주께서는 설마 당신 아들이 저와 공적인 일을 의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월령안은 말하면서 오른편 아래쪽에 앉아 있는 범씨 가문 아들 다섯을 힐끗 쓸어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눈빛에는 조소가 서려 있었다.

"내 아들들이 자네와 경쟁하네. 걔들이 어찌 자격이 없겠는가."

범씨 가문 가주는 얼굴빛이 살짝 변하더니 이를 갈며 말했다.

월령안은 그의 손자보다 고작 한두 살 많았다. 하지만 청주 상업계에서의 발언권은 그와 막상막하였다.

그의 아들들은 나이가 월령안보다 많지만 상업계에서의 지위는 그녀보다 훨씬 못했다.

그가 자기의 아들들을 월령안과 동등한 지위에 올려놓지 못한다면 그들은 도저히 월령안과 경쟁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하죠. 범 가주께서는 저한테 편지를 건넬 자격도, 저의 편지를 받을 자격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아들들은 없거든요."

월령안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왼쪽 아래에 앉았다.

아래쪽에 앉아도 월령안은 여전히 주인의 기백으로 손을 들며 말했다.

"육삼, 가서 범 가주를 아래쪽에 앉히세요."

"범 가주, 어서 움직여 주십시오."

육삼이 앞으로 다가가 손목을 움직였다. 범씨 가문 가주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냥 손쓰려는 태세였다.

범씨 가문 가주는 가볍게 웃으며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오늘은 지켜봐야겠군. 누가 감히……."

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삼은 곧장 손을 내밀어 범씨 가문 가주를 들어 올렸다.

모든 이들이 놀라 멍해진 사이 범씨 가문 가주를 오른쪽 아래에 들고 가더니 자리에 앉아 있는 범씨 대공자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던져 놓았다.

"감히, 네가 감히!"

육삼은 범씨 가문 가주를 억지로 의자에 눌러 앉혔다. 범씨 가문 가주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수시로 기절해 넘어갈 모양새였다.

월령안이 어찌 감히 이리 날뛸 수가 있는가.

"월령안, 여기는 청주다!"

상석에 앉아 있던 조운천은 월령안이 이처럼 방자하게 나올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범씨 가문 가주가 들려 간 다음에야 정신을 차리고 대노하여 소리를 질렀다.

월령안은 조롱 섞인 미소를 짓더니 비웃었다.

"조 백작 나리께서도 여기가 청주인 것을 아시는군요."

"넌 무섭지도 않느냐……."

조운천은 이를 갈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월령안이 편지를 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제가 두려울 게 뭐가 있어요?"

월령안은 가볍게 치맛자락의 구김살을 펴며 느긋하게 말했다.

"조 백작 나리께서는 제 아버지와 상대하신 적은 있어도 저와 상대한 적은 없으시죠. 그래서 아마 제 성격을 알지 못하시는 것 같군요.

제 아버지께서는 의리를 중히 여기고 웃는 얼굴이 부를 가져다준다고 믿는 분이시죠. 그래서 남의 어려운 점을 늘 이해하시며, 가능하면 누구하고도 원한을 맺지 않으려고 하셨어요. 남이 선을 넘어도 항상 덕으로 원한을 갚으려 하셨죠. 하지만……."

월령안의 말투는 갑자기 차가워졌다. 그녀는 서리가 내린 듯한 표정으로 조운천을 바라보았다.

"전 달라요. 저는 항상 원한이 있으면 원수를 갚고 은혜가 있으면 은혜에 보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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