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3화 기대해도 되겠네요
육장봉이 나간 뒤, 월령안은 추수를 불러 세수하는 시중을 들게 했다.
어젯밤 멧돼지에 깔린 그녀는 비록 급소를 다친 것은 아니었으나 가슴팍이 여전히 묵직하게 아팠다. 누워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일어서니 괴로웠다.
"아가씨, 좀 더 누워 계실래요?"
추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누우면 더 힘들어. 어젯밤, 내가 잠든 뒤로 대장군은 뭘 하셨느냐?"
"아가씨께 아룁니다. 양 토사와 송 토사가 어젯밤에 사과를 하러 왔었는데 육 대장군에게 거절당했습니다. 그 후, 대장군은 진주와 병사들에게 몽산으로 올라가라고 명했습니다. 어젯밤 몽산에서 아주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진주 그들은 몽산에서 흙이 묻은 알과 황금색의 방망이를 아주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는지는 소인도 몰라요."
추수는 아주 가볍게 월령안의 머리를 빗겨 주었다.
"아가씨, 대장군의 친위대도 어젯밤 도착했습니다."
"오자마자 약탈이라니. 정말 강도의 풍격이구나. 청주의 그 몇몇 노친네들은 약이 잔뜩 올랐을 거야."
월령안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더는 몽산의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추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좀 늦게 양 토사의 집에 한번 다녀오거라. 양 토사에게 난 괜찮다고, 이틀 정도만 쉬면 된다고 말하거라. 그리고 요리산의 풍경이 좋으니 그더러 가지라고 하거라. 나씨 가문 좋은 일을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말이다."
"예, 아가씨."
추수는 비녀로 월령안의 머리를 고정시켰다. 그리고 탁자를 정리하고 나가려는 순간, 탁자 위의 깨진 옥을 보고 잠깐 멈췄다. 그녀는 월령안과 이것들을 치울지 물어보았다.
"괜찮아, 두거라."
월령안은 일어서서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깨진 옥 한 조각을 들고 보았다. 옥 위에 채 닦지 못한 핏자국을 보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쩐지 옥을 조각하다가 손을 베었는데도 육 대장군이 아무런 반응이 없다 했어. 익숙해진 것이었구나.'
"정말 당신을 힘들게 만들었네요."
월령안은 손에 든 옥을 꼭 움켜쥐고 웃었다.
그녀는 갑자기 왜 사람들이 분명 가치가 얼마 되지 않는 물건을 보물 취급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는 이 깨진 옥들이 바로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많은 보물을 주어도 그녀는 바꾸고 싶지 않았다.
월령안이 육장봉더러 산천수를 길어 오라고 한 것은 비록 그를 놀리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물을 낭비하지도 않았다.
물을 길어 온 뒤, 월령안은 산천수로 쌀죽을 끓였다. 그 죽은 칠 할이 육장봉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육장봉이 한 첫마디는 이러했다.
"난 후회되오."
'애초에 우리 혼인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고 당신의 좋은 점을 일찍 발견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오. 우리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을 놓친 것이 후회되오.'
월령안은 그를 힐끗 보고 말했다.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은 없어요."
놓치면 놓친 것이었다. 마음속에도, 눈에도 온통 육장봉이고 육장봉 주변만 맴돌며 살던 예전의 그 월령안은 이미 죽었다.
지금의 그녀는 마음속에도, 눈 안에도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여전히 육장봉이 있다 해도 그는 더 이상 그녀의 마음속 끝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예전처럼 모든 일에서 육장봉을 최우선에 둘 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상처를 받을까 두려웠다.
"그럼 나중은 기대해도 되오?"
육장봉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점심식사를 기대해도 되겠네요."
아무튼 그녀는 오늘 외출하지 못할 것이다. 서남의 식재료는 풍부하고 맛도 좋았다. 다만 추수의 손맛이 너무 별로인 탓에 그녀는 스스로 먹을 것을 하려고 했다. 육장봉 좋은 일을 하는 셈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월령안은 진주에게 불려 앞뜰로 나왔다. 그들이 몽산에서 업고 내려온 흙 묻은 알과 황금색 방망이를 살펴보았다.
월령안은 두 품종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육장봉은 보고 난 뒤, 황제가 전에 두 가지 양식을 그에게 보여 줬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월 삼낭이 청주에서 가져온 것인데 한 뙈기 당 천 근씩 수확한다는 양식이었다.
"대장군께 아룁니다. 만약 이 두 작물이 정말 양식이라면 정말 밭 한 뙈기당 천 근의 수확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소인이 어젯밤 그들이 흙 묻은 알을 땅에서 파내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이 천 근이 넘는 흙 묻은 알이 바로 땅 한 뙈기에서 수확한 것입니다."
진주는 흥분된 얼굴로 대답했다.
월령안도 기쁜 얼굴을 했다.
"만약 정말 한 뙈기당 천 근씩 수확할 수 있고, 또 먹을 수도 있다면 정말 좋은 물건이네요."
수확량이 많은 작물의 중요성을 그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삼 년간, 육장봉을 위해 양식을 모으면서 그녀는 정말 무진 애를 썼다. 심지어 서남 이 외딴곳도 지나치지 않았다.
육장봉도 더없이 신중했다.
"먼저 익히고 개에게 먹여 보거라. 괜찮다면 저녁에 사람이 먹어 볼 것이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재배 방법을 파악한 뒤, 절반은 변방에 보내고 절반은 변경에 보낸다."
"예, 대장군."
진주는 높은 소리로 대답했다.
"육일은 어디 있느냐?"
육장봉은 한번 훑어보았지만 친위대 수령을 보지 못하자 물어보았다.
육이는 줄곧 존재감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육장봉의 말을 듣자 억지로 앞에 다가가 보고했다.
"대장군께 아룁니다. 큰형은 십이를 도와 양식을 판매하러 청주로 갔습니다."
똑같이 구석에 숨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다가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마주친 육삼은 육이에 비해 훨씬 영리했다. 그는 다가오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고 월령안에게 큰절을 올렸다.
"소인이 마님을 뵙습니다!"
육사, 육오 등 사람들도 느리지 않았다. 육삼이 무릎을 꿇자마자 그들도 따라서 꿇어앉았다.
그래서 열 명의 호위병 중에서 육이만 꿇지 않았다. 아홉 명 앞에 서 있는 육이는 마치 닭 무리에 있는 학처럼 눈에 띄었다.
"음."
육장봉은 만족스럽게 육삼 등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선을 육이에게 떨구고는 불쾌하게 목을 가다듬었다.
육이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떨었다.
'매일 날 엿 먹일 생각만 하는 형제들이 있는데 나더러 어떻게 살라는 거야? 이제 와서 무릎을 꿇어도 되나?'
"마님, 소인이……."
육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고 무릎을 꿇으려는 순간, 월령안이 미소 띤 얼굴로 돌아서서 떠나는 것이 보였다.
"추후에 훈련장에서 보지."
육장봉은 육이의 어깨를 두드리고 돌아서서 떠나갔다.
육이는 몸이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육이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둘째 형님, 수고하셨어요!"
육삼이 일어나더니 마찬가지로 육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육사, 육오는 이럴 용기가 없어 육이에게 포권만 했다.
"둘째 형님, 수고하셨어요."
육이는 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희들이 날 비웃는 걸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하지 마.'
* * *
육장봉은 빠른 걸음으로 월령안을 따라잡았다.
"기분이 나쁘오?"
"당신의 그 깨진 옥은 계속 쓰실 건가요? 안 쓰신다면 전 버리겠어요."
기분이 나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당연하다는 듯이 '마님'이라는 말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육장봉이 '명분'을 가지려면 어디 그렇게 쉽겠는가?
"당신이 옥을 조각할 줄 아시오?"
어젯밤 분해한 옥은 전부 그의 손에서 망가지고 아기 주먹만 한 옥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건드리지 못할 것 같았다.
"아니요, 전 나무만 조각할 줄 알아요."
그녀는 조각에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그녀가 나무를 조각할 줄 아는 것은 노인이 가르친 것이었다.
노인이 그녀를 구리파에서 구해 냈을 때, 그녀의 상태는 아주 좋지 못했다. 마음속에 증오와 살기만 가득하여 매일 귀족 자제를 죽일 생각만 했다.
노인은 그녀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녀의 성미를 키우려고 나무를 조각하는 것을 가르쳤다. 그녀더러 원수의 모습대로 하나하나, 한 획, 한 획 깎아 내게 했다.
그녀는 울분과 살기를 가득 담고 나무를 조각하는 법을 배웠다. 원수에 대한 증오를 전부 그 하나하나의 파인 홈에 담았다. 그렇게 천천히, 그녀는 정말 마음을 가라앉히게 되었다.
한 줄, 한 줄, 불에 타던 나무 인간들을 떠올리자 월령안은 끝내 참지 못하고 묻고 말았다.
"구리파의 사건은 어떻게 처리되었나요?"
그녀는 원래 묻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었다.
구리파의 사건은 결국 귀족 자제들이 인신매매를 당한 하인 몇 명을 놀다가 죽인 것이었다. 이 하인들이 어떻게 죽었든지, 죽기 전에 어떤 수모를 당했든지, 주인은 모두 이 사건으로 목숨을 내놓을 필요가 없었다. 기껏해야 옥살이를 몇 년 하거나 돈을 좀 물어 주고 끝날 일이었다.
이건 그녀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손에 증거가 있어도 관아에 고발하러 가지 않은 것이었다.
법률로 그들을 심판하기에는 그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작았다.
"염 황숙께서 직접 그들을 처리하셨소. 사건에 연루된 자들이 사교와 접촉하는 등, 바르지 못한 마음을 품은 것으로 의심되어 즉시 참수했소."
육장봉은 구리파가 월령안에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는지라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낮아졌다.
"즉시 참수했다고요? 그때…… 그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고요?"
월령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육장봉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육장봉의 확답을 들은 월령안은 바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영감님은 역시 영감님이시네요. 역시 영감님이 저를 가장 잘 알아요! 그자들은 확실히 죽어 마땅해요!"
월령안은 기뻐하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극도로 흥분하여 말했다.
"이건 좋은 소식이에요. 이건 세상 좋은 소식이에요! 전 지지에게 편지를 쓸 거예요. 전 그 편지를 태워서 지지에게 보내 줄 거예요. 지지에게 우리의 원수가 모두 죽었다고 말해 줄 거예요."
월령안은 무척 흥분해서 그렇게 외쳤다. 그녀는 방으로 돌아온 뒤, 긴 편지를 쓰고 또 태웠다.
일찍 죽은 지지를 향해 편지를 태워서 날려 보냈다.
월령안은 정말로 흥분되었다. 그녀는 홀로 방안에 앉아 타서 재가 된 잿더미를 바라보며 많은 말을 했다. 그녀가 마음을 가라앉혔을 때는 이미 점심식사 시간을 훌쩍 넘긴 뒤였다. 월령안도 음식을 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점심식사는 월령안이 한 것이 아니라 추수가 한 것이 나왔다.
육장봉은 한 상 가득 차려진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바라보며 풀 한 포기, 나무 하나까지 완전히 자기의 취향대로 꾸며져 있던 대장군부를 떠올렸다. 또 전부 그의 입에 맞는 음식으로만 차려져 있던 식탁을 떠올리자 그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전에 그에게는 마음 가득, 눈에 가득 그만 담고 있고 영원히 그를 마음 가장자리에 둔 령안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너무 세심하지 못한 탓에 그만 그의 령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