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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42)화 (642/1,004)

642화 물을 떠 주세요

"이것이 원래 땅에서 파내는 거였구나. 어쩐지 우리가 서너 번 다녀왔는데도 저들이 심은 양식이 여기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지."

진주는 한걸음 늦게 산에 올랐다. 그는 여기저기 구멍이 난 땅을 보며 화를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들은 진작에 세 번 정도 은밀히 산에 들어왔었다.

그러나 그들은 운이 없었다. 그들은 칠흑 같은 산에서 반나절 맴돌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길을 잘못 든 줄 알았다. 실은 보물산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 빈손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이런 것도 있네. 금색이 나는 것은 종자군. 꽃이 아닌가?"

"이 사람들도 양식을 심을 줄 너무 몰라. 동에 한 포기, 서에 한 포기. 난 또 서남의 꽃인 줄로 알고 있었잖아."

"마침 제때에 와서 다행이야. 조금만 늦었으면 이 자식들이 산에 심은 양식을 전부 옮겨 가서 우리는 정말 저들이 산에 뭘 심었는지 찾지 못했을 거야."

진주와 병사들은 파낸 양식을 보면서 더없이 다행으로 여겼다. 진주는 더욱 빠른 속도로 명령을 내렸다.

"어서, 저들이 모두 우리를 위해 옮기기 쉽게 준비해 두었다. 낭비하지 말고 모두 가져간다. 어쩌면 종자로 쓰일지도 모르니. 종자로 쓰이지 못한다 해도 마님께 부탁하여 팔아서 돈으로 바꿀 수 있다."

"이만하면 됐어. 저들의 지원병이 곧 올 거야. 행동을 빨리하라고. 먼저 물건을 가지고 산을 내려가."

육일은 시위가 이쪽으로 달려오자 진주 쪽에 한마디 귀띔했다.

'진주 이 몇은 욕심이 너무 많아. 상자에 넣은 양식을 보자 한 사람이 상자 하나씩 메다니. 그러고도 팔아서 돈 벌 생각까지 하고. 참 교활해. 역시, 마님 곁에 오래 있더니 하나같이 돈 욕심이 많아졌어.'

"저희 먼저 가겠습니다. 뒤를 봐주십시오."

진주는 육일에게 손짓을 해 보이고 양식이 들어간 상자를 업은 채, 사람을 거느리고 나는 듯이 산을 내려갔다.

"걱정 말아라!"

달빛 아래서, 온 얼굴에 멍든 육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칼을 옆으로 들고 있었는데 시선에는 차가운 살기가 번뜩였다.

육이와 나머지 친위대원들도 뒤처질세라 하나같이 큰 칼을 들고 살기가 내뿜었다. 그들에게는 전쟁의 기운이 다분했다.

분명 열한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함께 서 있으니 십만 대군이 직접 강림한 듯한 기세가 느껴졌다.

지원하러 온 청주의 수비군이 쳐들어온 순간, 열한 명의 기세에 겁을 먹어 다리가 나른해질 뻔했다. 그들은 대진하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는 잠깐의 멈춘 시간만으로도 사람 목숨을 취할 수 있었다.

"찾아왔으니 사양하지 않겠다!"

육일은 사양하지 않고 칼을 든 채, 앞으로 뛰쳐 갔다.

몽산에서는 선혈이 낭자하게 날리고 전쟁의 불길이 피어올랐다. 육일은 호위병을 거느리고 사람들을 죽이며 산으로 올라갔다가 또 사람을 죽이며 내려왔다.

* * *

몽산 아래, 양씨 옛 저택은 따스했다.

육장봉은 진주 등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 낮에 그가 직접 찾고, 분해한 옥을 들고 월령안의 방으로 돌아왔다.

옥을 탁자 위에 놓은 뒤, 육장봉은 월령안이 선물한 그 조각칼을 꺼내 들었다.

그 조각칼을 받은 뒤로 육장봉은 줄곧 몸에 지니고 다녔다. 가끔 여유가 생겼을 때, 그는 나무토막을 찾아 연습했다. 나중에 직접 월령안에게 선물을 만들어 줄 것을 대비했다.

낮에 이 옥을 분해할 때, 그는 이 조각칼이 떠올라 직접 월령안에게 선물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월령안이 뭐라고 하든, 그는 이 옥을 강에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이었다.

촛불을 빌려 육장봉은 느긋하게 손에 든 옥을 천천히 깎았다. 모서리에 있는 잡티도 골라내어 옥밖에 남지 않게 했다.

월령안이 말한 대로, 육장봉의 이 옥은 품질이 좋지 못했다. 옥 부분이 아주 작았다. 그런 데다 육장봉의 칼에 가운데가 잘려 버렸으니, 하나만 손바닥만 하게 크게 나왔고, 다른 조각은 손가락의 반절만 했고 또 다른 하나는 주먹만 했다.

옥 덩이들은 모두 크지 않아 큰 물건을 조각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팔찌 정도만 만들 수 있었다. 나머지 옥으로는 작은 물건 몇 가지 만들 수 있는 정도였다.

육장봉은 완전한 옥을 꺼낸 뒤, 깨끗하게 씻어 촛불에 비추어 보았다. 꽤나 만족스러웠다.

비록 옥의 품질은 보통이었고 잡티도 많았으나 그래도 돌멩이가 아닌 옥이었다.

고개를 들어 새근새근 자고 있는 월령안을 본 육장봉의 시선에는 옅은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월령안과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를 골라 먼저 팔찌를 조각했다.

나머지 옥에 대해서도 육장봉은 계획이 있었다.

월령안이 육가군의 호각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그는 이 옥으로 월령안에게 옥 호각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오직 월령안에게만 있는 호각을 말이다.

마음속에 계획이 생긴 육장봉은 칼을 다룰 때, 더 이상 머뭇거림이라고는 없었다.

육장봉의 동작은 아주 가볍고도 느렸다. 방 안에서 조각하는 소리가 났지만 월령안이 마신 약에 수면제의 성분이 들어 있어 그녀는 한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햇살이 방안을 비추는 시간이 되어서야 월령안은 조각칼이 옥을 긁는 소리에 깨어났다.

월령안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천천히 몸을 돌려 깨어났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창가에 앉아 있는 육장봉을 발견하고 자기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의심했다.

눈을 감았다가 뜨는 것을 서너 번 반복하고 나서야 월령안은 창가에 앉아 작은 칼을 들고 서툴게 옥을 긋는 사람이 그녀의 환상이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확신했다.

'육장봉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옥을 조각하고 있나?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면 육장봉 손에 들고 있는 건 나무를 조각하는 칼인데…….'

"뭘 조각하세요?"

월령안은 막 잠에서 깨어난 터라 아직 몸이 찌뿌드드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육장봉은 열심히 손에 든 옥과 씨름하는 중이어서 월령안이 깬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월령안의 목소리를 듣자 육장봉의 행동이 잠깐 멈칫하더니 손에 든 조각칼이 옥을 비껴 지나가며 손을 찍었다.

칼날이 생각 보다 깊게 손등을 그었다. 피가 철철 흘러 손에 든 옥을 물들었다. 육장봉은 미간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유유히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일부러 당신을 놀라게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손은 괜찮으세요?"

월령안은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지금 그녀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일어나려는 생각이 없었다. 단지 머리맡에 기대어 육장봉을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월령안의 얼굴에도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입으로만 하는 사과일 뿐이었다.

육장봉은 옥을 내려놓고 손을 높이 쳐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손에서 이렇게 피가 흐르는데 당신은 그다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군."

그는 월령안이 그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그에게 무심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예전 그가 쓰러졌을 때처럼 걱정하진 않더라도 그녀가 일어나 그에게 다가오기는 할 줄 알았다.

"이까짓 상처로 그렇게 호들갑을 떠실 건가요?"

월령안은 탁자 위의 조각칼을 가리켰다.

"한마디 일깨워 드리죠. 나무를 조각하는 조각칼은 옥을 조각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당신이 도구를 잘못 사용하고 조각칼을 제대로 잡지 않은 것이 다치게 된 주요 원인이에요. 제가 사과한 것은 예의 때문인데 당신은 이걸로 내 잘못이라고 우길 수 없어요."

육장봉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왜 월령안이 한 말이 아주 이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거지?'

월령안은 똑바로 앉아 탁자 위에 깨진 옥 더미를 보고 어젯밤 육장봉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심술궂게 한마디 보탰다.

"한마디 더 일깨워 드리죠. 옥은 나무와 달라요. 옥은 재질이 단단하여 우리는 보통 돌로 옥을 조각하죠. 칼로 옥을 조각한다 해도 당신처럼 억지로 칼을 들고 옥 위에 새기지는 않아요. 적어도 약물에 옥을 담가 옥이 부서지는 것을 방지하죠."

육장봉은 갑자기 자신의 다친 손과 탁자 위의 부서진 옥들이 눈에 거슬렸다.

미리 알았더라면 그는 진작에 증거를 인멸하여 월령안의 그의 실패작을 보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월령안은 그의 성공한 면만 보면 되었다.

"기술도 전공이 있죠. 대장군의 손은 사람을 죽이는 데 어울릴 것 같네요."

옥을 조각하는 일은 정말 육장봉처럼 손발이 서툰 사람이 할 일이 못 되었다.

육장봉은 손수건을 들고 손에 묻은 피를 닦았다.

"당신 역시 나를 싫어하는 것 아니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은데 증거가 없군."

육장봉은 이런 작은 상처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손을 쳐든 것은 월령안이 마음이 약해지기를 바란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마음이 단단한 못된 소녀였다.

"의심할 것 없어요. 전 정말로 당신을 싫어하니까요."

월령안은 부드럽게 웃었다.

"대장군, 저는 씻어야겠네요."

'당신은 이만 나가 주셔야겠어요.'

"내 시중을 받겠소?"

육장봉은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에는 웃음기가 반짝거렸다.

월령안이 웃으며 대답했다.

"좋죠!"

육장봉은 월령안이 이렇게 순순히 응할 줄 몰라 눈썹을 치켜떴다. 그러자 월령안이 생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수고스러운 대로 대장군께서 물을 떠 주세요. 전 평소에 산천수로만 입을 헹구고 세수를 하니 대장군께서 절대 틀리지 마시고요."

"내가 물을 길어야 한다는 말이오?"

'내가 좋아하는 이 낭자는 왜 이렇게 심술궂지?'

그러나 그는 화를 낼 수 없었다.

"대장군, 싫으신가요?"

월령안이 되물었다.

"부인이 좋다는데 내가 어찌 싫겠소? 산천수 말이지? 지금 가서 길어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산천수일뿐이잖아. 월령안은 하늘의 별을 가지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어려울 게 뭐가 있어.'

육장봉은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일어나 월령안에게 산천수를 길어 주러 떠났다.

육일과 진주는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잠을 잔 뒤, 그들은 이미 평소대로 기운을 회복했다.

육장봉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 두 사람은 의기양양해서 마당 안 가득 채운 광주리를 가리켰다.

"대장군! 이것이……."

"돌아와서 다시 얘기하지."

육장봉은 손을 들어 육일의 말을 잘랐다. 그는 물통을 든 채로, 쉬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대장군은 지금……."

육일과 진주는 육장봉 손에 든 물통을 발견하고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대장군께서는 물을 길으시려면 우리를 시켜서 보내면 되잖아?'

진주가 대담하게 추측했다.

"아마도 마님께서 쓰실 건가 봅니다."

육일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십이가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아느냐?"

"십이는 마님 댁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마님의 허락이 없이는 육일 장군께서도 월씨 저택에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진주는 사적으로 육삼에게 물어 육일 얼굴의 상처가 어찌 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가 육십이를 도울 수 있는 것도 이것뿐이었다.

육일은 돌아서서 물었다.

"십이가 청주에서 마님을 도와 양식을 판다고 했지?"

진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육일은 입꼬리를 올려 잔혹한 미소를 띠었다.

"마침 오늘 내가 할 일이 없으니 양 토사를 도와 그들에게 양식을 전해 주러 가야겠군."

진주는 묵묵히 뒤로 물러서 길을 내주었다.

이제는 그도 십이를 도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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