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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40)화 (640/1,004)

640화 우리는 주도권을 잃었네

기운이 없는 게 아니라면 월령안은 분명 육장봉을 때렸을 것이다.

"음……. 확실히 부러지지 않았군."

육장봉은 그제서야 자기가 지나치게 무례했다는 것을 깨닫고 어색하게 손을 거두었다.

"뼈가 부러지지 않은 걸 알았으면 이만 절 일으켜 세워 주세요."

월령안은 한 글자씩 말할 때마다 가슴팍이 심하게 아팠고 몸에도 힘이 전혀 없었다.

멧돼지가 그녀를 덮칠 때, 그녀는 이미 힘이 없었다. 게다가 멧돼지는 매우 무거웠다. 뼈가 부러지지 않고 폐부에서 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잠깐 깔렸던 것만으로도 심하게 다쳤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육장봉은 월령안을 다독이고는 일어나서 비수를 꺼내 아직도 꿈틀거리는 멧돼지를 찔렀다.

월령안은 조금 후회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마터면 저것들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잊을 뻔했네요."

예전이었더라면 그녀는 절대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 육장봉 탓이야. 나한테 의존하는 마음이 생겼잖아."

"음, 괜찮소. 내가 있잖소."

육장봉은 비수를 넣고는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조심스럽게 월령안을 안아 올렸다.

움직이자 월령안은 가슴팍이 또 매우 아팠다. 그녀는 숨을 고르다가 문득, 한 사람이 더 있는 것이 떠올랐다.

"참, 양문종이 아직 산에 있어요. 그가……."

"내가 암위를 시켜 그를 지켜보게 했소. 위험이 없을 것이오."

육장봉은 월령안을 안고 그들을 향해 걸어오는 송씨 남매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 빚을 당신이 갚을 것이오? 아니면 내가 갚았으면 하오?"

"제가요!"

월령안은 가슴이 아파 말을 많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시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괴로워진다면 내가 직접 나서겠소."

육장봉은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육장봉은 그녀를 너무 착하게만 생각했다. 그녀가 아무리 아이들을 아낀다 해도 상인이었다. 희생이 이렇게 크니 적어도 배로 얻어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밑지게 된다.

송옥성과 송옥기 남매는 아주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온몸이 축축히 젖은 채로 서로 부축하며 걸어왔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월 언니, 괜찮으세요?"

"너희들 생각에는?"

육장봉의 눈빛은 차갑고 살벌했다.

송씨 남매는 겁을 먹어 덜덜 떨고 있었다. 그들은 떨리는 입술로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눈에는 공포로 가득했다.

육 대장군은 마치 그들을 죽일 것처럼 바라봤다.

그들은 너무 무서웠다.

"쓸모없는 놈!"

육장봉은 송옥성을 훑어보고 월령안을 안은 채로 송씨 남매 곁을 돌아 떠나갔다.

'위험에 맞닥뜨려서는 여인의 보호를 바라다니. 이런 무능력한 녀석도 감히 월령안에게 구애를 한다고 말하다니.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모르겠군.'

월령안이 다치자 다음 일정은 자연스럽게 모두 취소되었다.

육장봉은 옛 저택으로 돌아온 뒤, 의원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저택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중에는 사죄하러 온 송 토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문밖에서 거절당해 문턱도 넘지 못했지만 송 토사는 감히 화를 내지 못했다. 그는 선물을 내려놓고는 무능력한 아들을 끌고 돌아갔다.

양홍엽은 말을 타고 돌아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자초지종을 모두 말했다.

송옥성이 산에서 멧돼지를 건드린 탓에 멧돼지에게 쫓기다가 당황한 나머지 길을 잘못 택해 멧돼지를 양홍엽과 송옥기에게로 이끌었다.

월령안이 제때 나서서 멧돼지를 몰아가지 않았더라면 송옥성이 죽었든 살았든 양홍엽과 송옥기는 분명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송옥성이 멧돼지를 이기지 못해 도망치는 것은 잘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멧돼지를 여자애 두 명에게로 데려간 것은 잘못이었다. 좋게 말해 송옥성이 놀란 나머지 길을 가리지 않은 것이지 그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일부러 두 소녀를 향해 달려가 두 소녀로 멧돼지를 막아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려 한 것이 아닐까?'

양 토사는 자기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봐 온 아이를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월령안이 줄곧 송옥성더러 동남 방향으로 도망치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송옥성이 듣지 않고 양홍엽과 송옥기 쪽으로 달려갔다는 양홍엽의 말을 들은 양 토사는 달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를 푹 숙이고 아무런 책임감도 없는 송옥성을 보고 있던 양 토사는 끝내 참지 못하고 송옥성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송씨, 가문의 일을 신경 써야 하지만 애들도 잘 교육해야 한다네. 옥성이가 오늘 큰 사고를 저질렀네. 자네도 알고 있지?"

"오늘 이 일은……. 옥성이도 그녀와 함께 사냥하러 갔던 것이라네."

송 토사는 속으로 울적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변명했다.

양 토사는 화가 나 실소를 하였다.

"홍엽이가 월씨 조카를 초대해 나가 논 것이라네. 자네 아들딸을 부른 사람은 누구도 없었네. 그 애들이 스스로 굳이 따라가겠다고 우긴 것이네. 자네 무슨 염치로 남 탓을 하나? 월씨 조카가 그를 초대해 간 것이 맞다 해도 월씨 조카가 그더러 멧돼지를 건드리라고 했나? 그더러 멧돼지를 건드리고 무서워서 산에서 뛰어 내려오다가 다른 사람에게 위험을 떠넘기라고 했나?"

'송옥성 이 녀석이 왜 이렇게 됐나 했더니 자기 아버지가 오냐오냐하면서 키워서 그랬구먼. 드디어 알겠다.'

그의 문종이도 늦둥이었지만 그는 이렇게 애를 오냐오냐하지 않았다.

"이 일은…… 더 변명하지 않겠네. 어쨌든 우리 집 잘못이네. 그녀가 양식이 필요하다지 않았나? 이번에 그녀가 원하는 양식을 우리 송씨 가문에서는 시장가보다 이 할 낮은 가격으로 그녀에게 팔겠네."

송 토사는 아깝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청주의 양식 값이 올라 그들이 밖에다 양식을 판다면 못해도 시장가보다 두 배는 높이 팔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 적은 돈이 아니었다.

"자네는 그녀를 낮잡아 보았네. 그녀는 당신에게 배상을 요구하지 않을 거네. 심지어 작은 일이니 마음에 두지 말라고 되레 자네를 위로할 것일세."

양 토사는 월령안과 몇 번 교류를 한지라 월령안의 됨됨이를 잘 알고 있었다.

월령안은 상인이었다. 그녀는 이득을 원하는 것은 맞으나 그녀가 바라는 이득은 절대 작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이번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 작은 이득으로 이 일을 넘기려고 하다니. 송 토사는 월령안을 너무 얕보는구먼. 월씨 가문 큰아가씨의 목숨은 돈으로 책정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럼 어떡해야 하지?"

송 토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양 토사에게 도움을 바라는 눈길을 보냈다.

양 토사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녀는 서남에 온 뒤로 줄곧 나가 나들이했네. 내 생각에는 그녀가 아마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네. 우리는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면 될 걸세."

"뭔가를 찾는다고?"

송 토사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녀는 몽산의 물건 때문에 온 것이 아닌가?"

"몽산은 육 대장군의 목적이고 그녀가 서남에 온 것은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네!"

그는 월씨 가문의 가주가 심심해서 매일 그의 손녀와 도처에 놀러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반드시 찾는 물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찾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송 토사는 깜짝, 놀랐다.

"양식 때문만이 아니고?"

"양식 약간일 뿐이네. 월 가주가 직접 서남에 올 만한 가치가 있을까?"

양 토사는 일부러 '가주'를 강조해서 발음했다. 그는 월령안이 비록 매일 애들과 놀았지만 월령안이 애가 아니라 그들과 마찬가지로 가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송 토사에게 일깨워 주었다.

심지어 월령안이 움켜쥐고 있는 세력이 그들보다 더 컸다.

송 토사는 이마를 탁, 치면서 말했다.

"내가 멍청했구려. 그녀가 어리고 매일 홍엽이같은 애들과 놀러 다닌다고 그녀도 어린애인 줄로 여기고 신경 쓰지 않았네."

양 토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청주에 오자마자 청주를 발칵 뒤집어 놓았지. 청주가 혼란스러워지자 내 아들이 이상한 독에 당했고 말이야. 자네가 정말 그녀를 어린애로 여긴다면 그녀에게 물어뜯겨 뼈도 추리지 못할 것이야."

"자네 말은……."

송 토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양 토사를 바라보았다.

양 토사는 고개를 저었다.

"증거가 없어서 난 모른다네. 물론, 알아보고 싶지도 않고."

알아본들 무엇 하겠는가?

그가 월령안과 협력하지 않으면 누구와 협력하겠는가? 선택을 한 이상 이미 돌이킬 수가 없었다.

왜 굳이 자신을 불쾌하게 만들겠는가?

"만약 정말 그렇다면 이 여자애는 속이 시커먼걸! 서남에 와서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말끝마다 '삼촌'이라고 자네를 부르고 말이야!"

송 토사는 숨을 들이쉬었다.

"나도 짐작뿐이지 아무런 증거도 없네. 또 그렇다고 한들 어떡하리? 우리가 월씨 가문이나 육 대장군과의 협력을 중단할 수 있나?"

양 토사는 말을 마치고 무기력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에게는 이미 다른 선택지가 없네. 나씨 가문이 배신하고 전씨 가문이 나씨 가문으로 넘어갔던 그 순간, 우리는 주도권을 잃었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도 그저 월령안에게 탄복할 뿐이었다.

속은 시커멓고 얼굴도 두꺼웠다.

이런 사람과 협력한다면 큰 확률로 크게 벌 것이다.

"전씨 그 녀석은……."

송 토사는 이를 악물고 험악한 얼굴을 했다.

양 토사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 일은 결국 내가 잘못한 거네. 난 월령안이 서남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어야 했네. 그녀가 서남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우리 서남의 구체적인 상황을 몰랐을 것이고 서남의 내막이 어떤지 몰랐을 것이네. 우리도 이렇게까지 수동적이게 되지도 않았을 테고."

한 걸음을 잘못 내디디면, 걸음마다 잘못되는 법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돌아갈 길이 없었다.

송 토사는 줄곧 양 토사를 믿고 따랐다. 양 토사가 풀이 죽은 것을 보고 다급히 위로했다.

"이건 자네 잘못이 아니네. 월령안이 육 대장군의 사람들을 데리고 서남에 들어오게 한 것은 우리가 함께 내놓은 성의였네. 그들을 서남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성사시키지 못했을 것이네."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도 변화시킬 능력이 없지."

양 토사는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송옥성을 보면서 안색을 흐렸다.

"송씨, 오늘 이 일에서 옥성이는 너무 실망스럽게 처사했네. 오늘, 옥성이가 조금이라도 책임감이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래도 월령안과 잘 담판을 했을 것이네. 이렇게 수동적인 위치가 아니고 말이야."

송 토사는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은 그들의 대화가 옛 저택에 있는 육장봉의 귀에는 잘 들린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보아하니, 양 토사가 당신을 의심하고 있소."

육장봉은 침대 옆에 앉아 월령안에게 한 술, 한 술, 약을 떠먹이고 있었다.

약은 써서 삼키기 힘들었다. 월령안은 한 입씩 먹을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약을 단숨에 들이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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