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636)화 (636/1,004)

636화 여우 같으니라고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홍엽이의 이 귓속말은 소리가 너무 큰데? 홍엽이에게 다 들린다고 귀띔해 줘야 하나?'

송옥기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할아버지 진짜 미치셨나 봐. 대장군은 문종 오라버니보다도 못생기셨는걸. 이런 늙고 못생기고, 무서운 남자를 설사 네가 눈이 멀어도 좋아할 리가 없지. 월 언니만 불쌍해. 어쩌다 이런 늙고 못생기고, 무서운 남자에게 걸렸는지. 내가 들은 건데 이 대장군은 사람을 야채 썰 듯 죽이고 또 사람 피도 마신대. 정말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서워. 엉엉엉…… 난 정말 월 언니를 도와주고 싶어. 월 언니를 이 악마의 손에서 구해내고 싶어. 그런데 난 용기가 없어……."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런데 나도 용기가 없어……. 월 언니가 너무 불쌍해. 엉엉엉……."

뒤에서 이 두 여자애는 자기들이 한 말을 당사자가 모두 듣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채, 점점 흥분해서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더 키웠다.

월령안은 우스우면서도 또 걱정이 되었다.

변경에서 육장봉은 영웅이었다. 변경 전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육장봉을 신으로 보았다. 수많은 여인들이 육장봉에게 시집가고 싶어 했다. 그녀는 소녀가 육장봉을 '늙고 못생기고, 또 무섭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육장봉이 화를 내지는 않겠지?'

월령안은 몰래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오. 난 두 꼬맹이의 말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

월령안의 행동은 아주 조심스러웠으나 육장봉은 아주 빠르게 그녀를 마주 보았다.

"맞아요. 쟤들은 모두 꼬맹이예요. 어린애들은 말을 전혀 가리지 않고 하지요."

월령안은 갑작스레 육장봉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지만 대범하게 육장봉이 그녀를 보도록 내버려 두었다.

"앞의 저 둘은? 저 둘도 내가 아이로 여겨 아껴야 하오?"

육장봉의 시선은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양문종과 송옥성을 훑었다.

열일곱, 열여덟의 소년들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무모하나 예리하게 그를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감히 육 대장군에게 요리산에 가서 누가 더 많이 사냥하는지 겨뤄 보자고 한 것이다.

정말 하늘 무서운 줄 몰랐다!

'내가 저 나이 때…….'

그렇다, 그도 열네댓 살 되었을 때, 두려운 것이 없었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고 여겼다. 누구를 보아도 상대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북요에서 크게 봉변을 당하고 나서야 침착해졌다.

오늘 그는 이 두 어린애에게 성장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 줄 것이다.

월령안은 침묵하다가 말했다.

"저들에게는 교훈을 주세요."

소년의 감정은 진지하고 뜨거웠으나 충동적이었다. 육장봉더러 손을 써서 그들을 침착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좋소."

육장봉이 입꼬리를 당기며 가볍게 웃었다. 기분이 아주 좋은 것이 틀림없었다.

요리산은 양가촌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그들은 말을 타고 움직여야 했다.

양문종과 송옥성은 육장봉이 올 줄 모르고 말을 세 필밖에 준비하지 않았다.

마을 입구의 말을 보고 두 소년은 더없이 후회되었다.

원래 말 세 필은 그들이 각각 양홍엽과 송옥기를 데리고 타고 월령안에게 단독적으로 말 한 필 내주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육 대장군 한 명이 늘어나니 말 세 필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 것인가?

양문종과 송옥성은 눈을 마주쳤다. 원래 암암리에 경쟁하던 사이였지만 바로 동맹을 맺었다.

'절대 저 대장군 좋은 일을 하면 안 돼!'

송옥성은 반응이 아주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월 누님, 갑자기 저희 아버지께서 저더러 양 숙부님을 찾아가라고 하셨던 게 생각나네요. 먼저 가세요. 저와 옥기는 좀 늦게 쫓아갈게요."

말을 마친 그는 송옥기의 손을 잡고 뒤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언제……."

송옥기는 미처 반응을 하지 못한 채, 송옥성에게 끌려 뛰어갔다. 해명하는 말도 바람에 날려 흩어졌다.

그러나 육장봉과 월령안이 어떤 인물인가?

두 사람은 마을 입구의 말을 보는 순간부터 송옥성과 양문종의 꼼수를 눈치챘다.

어린애들 눈에 큰일도 어른의 눈에는 작은 일에 불과했다. 월령안과 육장봉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양홍엽은 멍한 얼굴로 말했다.

"옥성 오라버니가 우리 할아버지 찾으러 갔어요? 아까 우리 할아버지를 만났잖아요?"

"흠흠, 홍엽아, 내가 널 태울게. 우리 가자."

양문종은 조심스럽게 월령안을 힐끔 보았다. 월령안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싫어요! 전 삼촌 뒤에 타지 않을 거예요!"

양홍엽은 질색하며 월령안의 옆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월령안의 팔을 안으려던 손을 갑자기 도중에 거두더니 불안하게 옷자락을 잡아 비틀며 낮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월 언니, 언니가 절 태우면 안 돼요? 삼촌은 이럴 때면 매번 절 뒤에 실어서 간단 말이에요. 마치 물건이 된 기분이 든다고요."

"좋아."

월령안은 말을 타고 양홍엽에게 손을 내밀었다.

"말에 먼저 타렴. 내가 널 태우고 갈게."

"월 언니, 고마워요!"

양홍엽은 기쁜 마음을 얼굴 가득 드러내고 월령안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말채찍이 하늘에서 나타나더니 양홍엽의 허리를 감쌌다. 그녀는 갑자기 하늘로 날아올랐다.

"꺅!!"

양홍엽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양홍엽은 안전하게 양문종의 말 등에 착석했다.

"깜짝 놀랐잖아요! 막내 삼촌, 저 진짜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

양홍엽은 양문종을 안은 채, 넋이 나가 있었다.

"길을 안내하거라."

육장봉은 말채찍을 거두고 말을 몰며 앞으로 향했다. 그는 강압적으로 양문종과 월령안의 말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린애들은 자기 집의 어른들이 교육해야지. 왜 나의 령안을 귀찮게 하는 거지? 령안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애를 봐주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죠, 대장군."

양문종은 육장봉과 시선을 마주하며 마치 흉악한 아기 늑대처럼 속으로는 당황했으나 억지로 버티며 시선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이 아이, 꽤 고집스러운걸. 어쩐지 월령안이 골치 아파한다 했어.'

육장봉은 비웃고 시선을 거두었다.

월령안은 상대방이 어린애라고 했다. 그는 성숙하고 듬직한 남자로서 또 어찌 어린애하고 유치하게 굴겠는가?

'요리산에 도착하면 실력으로 가르쳐 주지. 어린애는 어린애라고.'

반 시진 뒤, 네 사람은 요리산 산기슭에 도착했다. 말을 세운 뒤, 네 사람은 걸어서 산으로 들어갔다.

요리산은 비록 산이라고 불리나 높지 않았다. 산보다 밀림에 더 가까웠고 환경도 좋았다. 서남의 소년, 소녀들이 소풍 가기 좋은 곳이었다.

송씨 남매는 함께 오지 않았다. 양홍엽은 함께 수다를 떨 친구가 없자 대장군의 '죽음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월령안 옆으로 와서 불쌍하게 입을 열었다.

"월 언니, 아까 저 정말 깜짝 놀랐어요.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대장군께서 너에게 장난치신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월령안은 양홍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양홍엽이 진짜로 그때 겁을 먹었던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양홍엽은 일부러 그녀 앞에서 육장봉을 고자질하는 것이었다.

여자애들은 서러움을 당하면 보통 다 참지 못했다.

양홍엽은 투덜거리더니 낮은 소리로 물었다.

"월 언니, 저 얄미운 대장군은 언제 가시나요?"

월령안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육 대장군의 청각이 아주 좋으니 귓속말도 들을 수 있다고 홍엽이에게 알려 줘야 하나?'

양문종은 활을 메고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는 뒤돌아서 보니 육장봉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년의 어여쁜 눈매에 불만스러운 기색이 드리웠다.

"대장군, 우리 곧 산에 들어갈 것인데 대장군의 수하는 언제 활을 가져오나요?"

"필요 없다."

육장봉은 손을 들어 월령안의 앞을 가로막는 싸리와 잡초를 치워 그녀가 편히 앞으로 가게 길을 터 주었다.

육장봉의 살뜰한 행동을 본 소년의 아름다운 눈매에는 후회가 가득했다.

'난 왜 내 길만 걷고 월 누님을 보살피는 것을 잊었을까? 정말 바보야. 저런 늙다리에게 선두를 빼앗기다니.'

양문종은 속으로 불쾌하여 얼굴에도 화난 티가 저절로 묻어났다.

"활도 없이 대장군께서는 어떻게 사냥을 하실 건가요? 우리는 대장군이 활을 쓰지 않았다고 봐주지 않아요."

"응."

육장봉은 대충 대답하고 조심스럽게 월령안을 부축했다.

"땅에 이끼가 있소. 조심하오."

"고마워요."

월령안은 미처 발밑을 조심할 생각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육장봉이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넘어졌을지도 몰랐다.

양문종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여우 같으니라고!'

양문종은 화가 나 눈이 벌게졌다. 그도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을 위해 길을 안내하고 싶었다. 그러나 월령안의 오른쪽에는 그의 조카가, 왼쪽에는 육 대장군이 서 있어 그가 설 곳이 없었다.

양문종은 답답했지만 속도를 높여 조용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곧, 그들은 요리산 안의 옥대하(玉带河)옆에 도착했다.

"월 누님, 여기가 바로 요리산에서 경치가 제일 좋은 곳이에요. 이 강은 옥대하라고 하는데 강에는 아름다운 돌들이 아주 많아요. 홍엽이와 친구들은 평소 여기서 예쁜 돌을 찾아 팔찌를 만들기 좋아해요. 월 누님, 누님과 홍엽이는 여기에서 산책하세요. 저와 대장군은 산으로 들어가 사냥할게요. 월 누님은 점심에 뭘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사냥해 올게요!"

먼 길을 걸은 소년은 드디어 자기의 실력을 펼칠 기회를 찾았다.

그러나 바로 이때, 육장봉이 손수건 하나를 꺼내 월령안 앞으로 다가가 세심하게 그녀 얼굴과 목의 땀을 닦아 주었다.

"당신, 땀이 났소."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장군, 가지가지 하시네요.'

월령안은 퉁명스럽게 육장봉을 노려보았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띤 얼굴로 육장봉을 바라보며 그가 땀을 닦아 주도록 내버려 두었다.

양홍엽은 옆에 쪼그리고 앉아 턱을 괴고 부러운 듯이 말했다.

"왜죠? 왜 이 나쁜 장군과 월 언니가 함께 서 있으면 이렇게 예쁜 거죠? 나쁜 장군도 무섭지 않아져요. 참 이상해요."

양문종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화가 난다! 나도 월 누님을 위해 땀을 닦아 주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나!'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오."

땀을 닦은 육장봉은 손수건을 넣고 돌아서서 양문종을 불러들여 함께 산으로 들어갔다.

월령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양문종의 눈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그는 속으로 더없이 서러웠다.

그도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에게 말하고 싶었으나 감히 그러지 못했다. 결국 그는 갑갑한 마음을 품고 육장봉과 함께 산으로 들어갔다.

'내가 꼭 대장군을 이길 거야! 그래서 반드시 월 누님에게 내가 어린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거야!'

양문종은 투지를 불태우며 산으로 들어갔다. 입산하자마자 그는 깊은 산으로 뛰어갔다.

육장봉은 이를 보고도 저지하지 않았다. 다만 암위에게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냈다.

"지켜봐라. 죽게 하지 말고."

"네, 장군."

나무 그림자가 살짝 움직이더니 암위는 양문종을 뒤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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