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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33)화 (633/1,004)

633화 육장봉 이 짐승!

양 토사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내 아들이 바보가 된 것이 아닐까?'

"문종아, 별은 딸 수 없는 것이란다!"

양 토사는 말을 마치고도 양문종이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또 한마디 덧붙였다.

"그녀는 널 동생으로만 생각한단다. 너에게는 기회가 없어. 알겠느냐?"

"전 그녀의 동생이 아니에요. 제가 그녀를 월 누님이라고 부른다 해서 제가 동생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제가 월 누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게 불러야만 그녀가 갖은 방법을 대서 절 피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양문종의 요염한 얼굴에 날카로운 빛이 어려 있었다.

"그녀가 하늘의 별이라서 딸 수 없다면 제가 그녀를 위해 하늘이 별이 되어 그녀와 함께 있을 거예요!"

말을 마친 양문종은 돌아서서 떠나갔다.

"문종아……."

양 토사는 돌아섰지만 양문종의 차갑고 날카로운 옆얼굴밖에 보지 못했다.

양 토사는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가? 내가 지금 아들이 월씨 조카를 좋아하는 것을 막아도 되는걸까?"

* * *

육장봉과 월령안이 달빛을 지고 느긋하게 옛 저택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람이 반절 정도 들어갈 만한 거리가 있었다. 가는 길에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아 분위기는 고요했다. 그러나 따스하기도 했다.

월령안은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 육장봉도 두 사람 사이에 모처럼 찾아온 고요함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밤이 깊어 바람이 불자 월령안은 한기를 느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몸에 두른 피풍의를 꼭 잡아끌었다.

"춥소?"

육장봉은 월령안의 행동을 보고 월령안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괜찮아요."

월령안은 손을 풀고 옆으로 한걸음 옮겼다. 그녀의 말투는 덤덤했다.

육장봉은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의 손을 잡더니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손이 이토록 차가우면서 괜찮다고 하오?"

"제 손은 항상 이랬어요. 손을 놓으세요!"

월령안이 몸부림을 쳤지만 손을 빼낼 수 없자 저도 모르게 육장봉을 흘겨보았다.

낙원에서 월 삼낭의 계략에 당한 뒤로 그녀의 손발은 항상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무더운 날에도 따뜻해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젠 익숙해졌다.

"놓지 않겠소!"

육장봉은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그의 말투는 약간 차가워졌다.

'당신이 다른 사람과 춤을 추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소. 당신이 다른 남자와 그렇게 가깝게 다가간 것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소. 당신을 마음껏 춤을 추게 한 사람이 내가 아니어서 기분이 좋지 않소. 무엇보다 당신이 가장 먼저 나를 보지 못한 것 싫었소!'

"대장군께서는 질투하시는 건가요?"

육장봉의 힘은 아주 셌다. 월령안은 손을 뺄 수 없자 몸부림치지 않고 육장봉이 잡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사람의 습관은 아주 무서웠다. 예를 들면 그녀는 육장봉의 횡포에 익숙해졌고 육장봉의 강경함에 익숙해졌다.

"어린애 하나일 뿐이오. 내가 어찌 질투를 하겠소!"

'질투는 할 리가 없지. 기껏해야 기분이 나쁠 뿐이지.'

"대장군께서 질투하신 것이 아니라면 제 손을 풀어 주세요."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그가 허릴 찔릴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내가'를 강조한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내가 질투를 하는 것과 당신의 손을 풀어 주는 게 무슨 상관이 있소?"

"제 마음이에요!"

월령안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육장봉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전례 없이 침착했다.

"손을 놓아 주세요, 대장군! 당신 자신도 보고, 저도 봐 주세요."

남녀 사이의 일에서 그녀는 한 번도 질척거린 적이 없었다. 그녀는 최일을 거절할 때도 깔끔했고 양문종을 거절할 때도 마찬가지로 깔끔했다.

유독 육장봉에게서 그녀는 한 번, 또 한 번 자기의 원칙을 깨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아직 육장봉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녀는 육장봉을 받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모든 최선은 이미 끝났다. 그는 더 이상 그녀의 진심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만약 내가 놓지 않는다면?"

달빛 아래서 월령안의 안색은 차가웠다. 그녀의 시선에는 피곤, 소원함, 짜증이 묻어 있었지만 유독 아쉬움만 없었다.

육장봉은 손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손을 놓기만 한다면 월령안은 진짜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당신은 저와 혼인을 할 수도 없으면서 이렇게 저한테 매달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요? 아니면, 대장군께서 정녕 원하시는 게 뭔가요? 제 마음인가요? 아니면 제 몸인가요?"

월령안은 육장봉보다 머리 하나가 작았다. 그러나 지금 육장봉 앞에 서 있는 그녀의 기세는 조금도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육장봉이 기세에서 조금 밀렸다.

그는 월령안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입을 열지 못했다.

'이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문제군.'

그러나 육장봉이 대답하지 않는다면 월령안도 그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육장봉을 비웃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마음은 제가 진작에 드렸어요. 몸밖에 남지 않았네요. 아니면 오늘 밤…… 대장군께서 원하시는 것을 얻으신다면 저를 놓아주실 수 있나요?"

"당신 마음속에서 나는 그런 사람이오?"

육장봉은 이를 깨물었다. 그는 월령안이 야속했다.

'나한테 마음을 줬다고? 령안, 당신은 그럼 왜 나를 밀어내는 거지?'

이 와중에도 그녀는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목덜미를 드러내고 사내의 음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는 월령안을 꽉 끌어안고 이 여자가 자신의 것이다, 자신의 아내다, 그렇게 외치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시달렸다.

"마음도 싫다, 몸도 싫다, 저랑 혼인도 안 할 것이다……. 그럼 대장군, 도대체 원하시는 게 뭔가요?"

월령안은 고개를 옆으로 갸웃하고 비꼬는 시선으로 육장봉을 비꼬았다.

"당신의 몸과 마음, 모두 다 가져야겠소."

육장봉은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월령안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내가 이번에 변방으로 가서 북요와 화담이 잘 되지 않았소. 북요에서는 우리 어머니를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소. 어머니도 이렇게 돌아오시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하오. 예외가 없는 한, 주나라와 북요는 전쟁을 한 차례 더 치를 것이오.

이번 전쟁을 마치고 어머니를 모셔오면 난 바로 사직할 것을 장담하오. 그때가 되면…… 난…… 월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될 것이오! 이번에는 당신이 날 맞아들이오. 이건 어떻겠소?"

육장봉은 말하면서 줄곧 월령안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 자 한 자 아주 느리게 말했다. 그러나 아주 진지했다. 마치 맹새를 하는 것 같았다.

월령안은 육장봉이 진지하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지하게 그녀더러 자기를 맞이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 하나를 위해서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이상하게 웃고 싶었다.

"당신……. 귀신이라도 들린 건가요?"

'육장봉은 오늘 미친 게 틀림없어. 그래서 나더러 자기를 맞아들이라는 말이나 하지. 육장봉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아는가? 어엿한 대장군이 데릴사위가 되겠다고?'

"맞소. 원귀가 들렸소!"

육장봉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영원히 당신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귀신이오."

육장봉의 시선은 다시 한번 월령안의 목에 떨어졌다.

"나 자신을 이제 더는 억제하지 못할 듯하오. 싫다면 지금 가시오."

그에게서 짙은 열망에 휩싸여 지독히 낮아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데일 것만 같은 강렬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월령안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또렷한 시선으로 육장봉을 마주 봤다.

이번에는 육장봉이 자기를 억제하지 못하고 월령안을 와락, 안은 채, 물어버렸다.

그의 속에서는 아까부터 뜨거운 열기가 들끓고 있었다.

오래도록 달래야 사그라들 그런 불길이 그를 잠식했다.

* * *

월령안은 목덜미 곳곳을 청자색으로 물들인 멍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육장봉 이 짐승! 한번 깨무는 것으로 모자라 이토록 심하게 깨물다니. 남긴 흔적이 분을 네댓 번 발라도 안 덮일 꼴이잖아. 나더러 어떻게 사람을 만나라는 거야? 이 더운 날에 목에 수건이라도 두르라는 거야?'

월령안은 분을 들고 구리 거울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짜증 나!'

"아, 아가씨…… 누가…….?"

추수는 물을 들고 들어오더니 월령안 목덜미의 흔적을 보고 놀라서 안색이 크게 변했다. 손에 들고 있던 구리 대야가 '콰당'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소인이 그자를 죽이러 가겠습니다!"

월령안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추수를 바라보더니 숨을 돌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괜찮다!"

"그, 그러나 아가씨……."

추수는 상천처럼 능력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상천보다 추수가 더 단순하고 직설적이었다.

그녀는 모든 일에서 월령안을 중심으로 삼았다. 월령안이 뭐라고 말한다면 추수는 뭐라고 여겼다. 그녀는 자기의 생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월령안의 말에 반박했다. 월령안 목덜미의 흔적이 얼마나 눈에 띄는지 알 수 있었다.

월령안은 분을 탁자 위에 던지고 무기력하게 말했다.

"벌레가 문 것이라고 한다면 믿을래?"

'육장봉이라고 하는 사람 잡아먹는 커다란 벌레 말이지.'

추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소인이 깜짝 놀랐습니다. 소인은 아가씨께서 어젯밤에…… 흠흠, 아가씨, 소인이 아가씨의 머리를 빗겨 드릴게요."

추수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바닥 위의 흔적을 치우고 다시 물을 떠다 월령안의 머리를 빗었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오늘 그녀의 옆에 있는 것이 추수여서 다행이지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그녀는 해명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추수가 떠난 뒤, 월령안은 목의 흔적을 봐도 그렇게 짜증이 나지 않았다.

추수가 그녀 목의 흔적이 벌레에 물린 것이라고 믿어도 다른 사람들도 믿겠는가?

믿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목의 흔적은 그래도 처리해야 했다.

월령안은 자기에게 절세 운금(雲錦 - 색채가 아름답고 구름무늬를 수놓은 중국의 고급 비단)으로 만든 긴 치마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원래는 서남에서 쓰일 장소가 있을 것 같아 특별히 준비했으나 서남에 와서야 소박한 운금은 서남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월령안은 줄곧 입지 않았는데 지금에서야 쓰일 용도를 찾게 되었다.

월령안은 단색의 운금 긴 치마를 찾아냈다. 그녀는 가위로 두어 번 가늠하다가 선녀의 옷처럼 정교한 운금 긴 치마를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천 쪼가리로 잘랐다.

"아, 아, 아가씨……."

추수가 들어와서 값비싸고 사려는 사람이 많으나 사기 쉽지 않은 절색 운금 치마가 월령안에게 잘리는 것을 보고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구리 대야를 또 엎지를 뻔했다.

"운, 운금이잖아요!"

"알고 있다."

월령안은 추수의 모습을 보고도 계속해서 잘랐다. 스무 쪼가리가 넘게 나온 뒤에야 비로소 손을 멈추었다.

추수는 월령안이 가위질을 한번 할 때마다 자기의 마음을 베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녀의 마음은 지금 그 단색의 운금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아가씨, 뭘…… 하시려는 건가요?"

추수는 그제서야 자기가 줄곧 물을 들고 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다급히 대야를 한쪽으로 두고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경대(頸帶 - 목에 둘러매는 스카프와 비슷한 느낌의 천 장식) 몇 개를 만들려고. 단색의 운금은 서남의 화려한 옷과 잘 어울려."

월령안은 단색의 운금을 긴 쪼가리로 베고 옆을 살짝 수선했다. 또 크기가 다른 꽃잎을 여러 개 베었다.

월령안은 이 꽃잎을 겹쳐서 중간에 작은 보석으로 장식했다. 한층, 한층 겹쳐진 것이 멀리서 보면 진짜 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또 조금도 번잡해 보이지도 않았다.

월령안은 쉬지 않고 크기가 다른 꽃을 세 송이 만들었다. 또 이 꽃 세 송이를 천에 메었다. 이렇게 하니 목의 흔적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다.

경대를 다 만든 월령안은 구리 거울을 보며 경대를 매었다. 목의 흔적을 전부 감출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나서야 월령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창피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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