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632)화 (632/1,004)

632화 그녀는 하늘의 별이다

양문종과 육장봉 사이에 서 있는 월령안을 보면서 양 토사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월씨 조카, 대장군께서 네가 여기에 있다는 말을 듣고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어. 내가 숨이 찰 정도로 쫓았지만 끝내 따라잡지 못했단다."

육장봉과 월령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양 토사는 또 양홍엽 등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너희 이 꼬맹이들, 모여 서서 뭐 하니? 홍엽아, 이들을 데리고 가서 놀거라."

양 토사는 역시 양 토사였다. 그는 말 몇 마디로 현장의 굳어진 분위기를 풀고 다시 달아오르게 했다.

그들의 뒤로 가무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모닥불을 둘러싼 소년들은 계속해서 젊은 몸을 움직이며 젊음의 땀방울을 뿌렸다. 마치 공작새 깃털처럼,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드러내 이성의 주의를 끌었다.

노인들도 이 일로 지장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집안의 얘기를 했다.

월령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그녀 때문에 사망절의 분위기가 망쳐지는 일은 없었다.

사망절에서, 젊은 소년, 소녀들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춤과 노래를 했다. 약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악기를 불고 집안사람들과 한담을 하거나 음식을 준비했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옆에 앉아서 먹고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소년들이 노는 모습을 기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육장봉이 오기 전에 월령안은 눈부신 소녀였다. 모닥불을 둘러싼 채, 걱정 없이 마음껏 젊음의 땀방울을 흩뿌리며 소년들의 추앙을 받던 소녀였다.

그러나 육장봉이 오자 월령안은 인기 많던 소녀에서 노년층과 어울리는 어른이 되었다. 그녀는 양 토사 등과 상석에 앉아 차를 마시며 한담하는 한편 모닥불 옆의 아름답고 활기가 넘치는 소녀들을 칭찬하기도 했다.

양 토사는 육장봉과 월령안을 상석으로 초대했다. 양문종도 월령안의 옆에 앉았다. 육장봉은 힐끗 보았지만 더 이상 도발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린애 하나일 뿐이었다. 월령안의 눈에 찰 리도 없으니 그도 양 토사의 체면을 봐서 어린애와 따지지 않기로 했다.

월령안은 육장봉이 전처럼 심술을 부리지 않고 조용해지자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망절에, 미혼인 소년과 소녀가 함께 춤을 추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사랑과 무관했고,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았다.

앞서 양 토사가 없을 때는, 육장봉이 양문종과 티격태격해도 어린애들 장난으로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양 토사와 양씨 가문의 사람들이 다 있는데 육장봉은 어른으로서 또 양문종과 따진다면 그가 너무 옹졸한 것이었다.

그러나 양문종 이 일은 반드시 빨리 해결해야 했다.

월령안은 그녀의 옆에서 입술을 꾹 다문 채, 고집스러운 얼굴을 한 아름다운 소년을 보자 후회되는 마음이 들었다.

앞서 춤을 출 때, 그녀는 너무 즐겁고 주변에 사람도 많은 탓에 일시적으로 양문종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잊었다. 물론, 거리를 유지할 수도 없었다.

모닥불을 둘러싼 소년, 소녀들이 너무 많아 그녀는 거리를 유지할 수 없었다. 육장봉이 왔기에 다행이었지 아니면…….

월령안은 자기가 또 생각이 과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닥불 옆에서 춤을 추던 사람은 그녀 혼자가 아니었다. 앞서 춤을 출 때, 몇몇 소녀들이 양문종을 에워싸고 있었다.

사망절은 원래 남녀들이 만남을 가지는 자리였다. 소년, 소녀들이 마음껏 춤을 추는 것은 바로 자기의 매력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가 따진다면 오히려 속이 좁은 티를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닥불 옆에서 노는 것도 아니고, 다 함께 춤을 추는 것도 아니었다. 월령안의 들뜬 기분도 가라앉았다.

양문종이 자꾸 따라다니자 월령안은 일부러 육장봉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어른의 말투로 양문종에게 말했다.

"양씨 동생, 어서 가서 자네 친구들과 함께 놀아요. 오늘 사망절이니 이렇게 노년층들과 함께 있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하는 얘기는 재미없는 얘기들이니 어린애가 듣기에는 아주 따분할 거예요."

"월 누님, 누님은 안 늙었어요. 그리고 저도 따분하지 않아요. 전 당신들이 얘기하는 것을 들을래요."

양문종은 마음이 긴장해졌다. 그는 자기의 성숙하고 듬직한 면을 보여 주고 싶었으나 입만 달싹이다가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그는 놀랍게도 자기와 월 누님이 같은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월령안은 웃으며 말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어른 곁으로 다가가기 좋아했죠. 어른들 옆에 있으면 저도 꼭 마치 어른이 된 것만 같았어요. 그러나 지금 나이가 드니 홍엽이 같은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좋네요. 그들과 같이 미친 듯이 놀다 보면 저도 어린애가 된 것처럼 걱정이 사라져요."

월령안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양문종과 말을 하지 않았다. 또 육장봉을 쳐다보지도 않고 웃으면서 양 토사 등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만약 지금 머리 위의 장식을 떼어내는 것이 실례가 아니었다면 월령안은 머리 위의 장식을 떼 버리고 싶었다.

서남에서 소녀들이 오색찬란한 깃털로 머리를 장식한 것은 더없이 정상적인 일이었다. 홍엽이 그녀에게 건네줬을 때, 그녀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에 홍엽이 그녀에게 준 깃털이 바로 양문종이 사냥한 것인 줄 알았다면 그녀는 절대 머리에 달지 않았을 것이다.

양 토사는 월령안을 추켜올렸다.

"월씨 조카, 몇 살인데 늙었다고 그래? 우리 몇몇 늙은이더러 어떻게 살라고?"

양 토사는 자기 집의 눈부시고 사람들의 중심이었던 아들이 육장봉과 월령안의 앞에서 자신감을 잃고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아들은 역시나 너무 젊었다. 육 대장군과 비하니 그냥 어린애였다. 눈이 있는 여인이라면 다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알 것이다.

'아들이 육 대장군에게 지는 것이라면 억울하지 않아!'

양 토사는 의기양양해졌다.

적어도 그의 아들은 육 대장군과 겨룰 용기가 있었다!

몇몇 어르신들도 함께 웃었다.

"맞아, 맞아. 우리는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걸. 만약 우리 집 마누라의 감시가 심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가서 춤 출 수 있어. 어쩌면 내가 저 젊은 녀석들보다 더 인기 많을 수도 있다고."

"월 가주가 방금 전에 춤을 출 때, 나는 내 손녀인 줄 알았네. 보기에는 열몇 살짜리 여자애 같은걸."

"월 가주는 아직 어려. 이 나이대의 소녀들은 자기가 늙었다고 말하기 좋아하지. 문종이 같은 애들처럼 빨리 자라고 싶어서 말이야."

월령안은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했지만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시원스럽게 말했다.

"양 숙부님의 아드님과 홍엽이야말로 진짜 어린애들이죠. 전 삼 년 전에 혼인도 했었어요. 어리지 않아요."

"음."

육장봉은 낮게 대답했다. 그의 차가운 눈매가 살짝 올라간 것이 입꼬리도 따라서 슬며시 곡선을 그렸다.

티가 많이 나지는 않았으나 사람들은 그의 분위기가 퍽 따뜻해진 것을 분명히 느꼈다.

양 토사와 몇몇 어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 육 대장군이 굳은 얼굴로 말을 하지 않으니 그들은 육 대장군이 기분이 나쁜 줄로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들이 월령안을 칭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양 토사는 육장봉이 자기네들이 월령안을 칭찬하는 말을 즐겨 듣는 것을 발견했다. 몇몇 노인들은 염치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말을 주고받으며 월령안을 추켜세웠다. 말마다 월령안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이 늙으니 염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온도는 그렇지 않았다.

모닥불이 옆에서 타고 있는데 그들이 얼음장 같은 분위기에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창피한 일이었다.

양 토사 등 몇 사람이 치켜세우자 월령안도 아주 협조적으로 양씨 가문의 집안 어른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양 토사와의 대화에서 월령안은 당당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앞서 모닥불 앞에서 마음껏 춤을 추던 소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양문종은 옆에 서서 양 토사, 가문의 어른들과 담소를 나누는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멍하니 있었다.

그는 이제서야 아버지의 말뜻을 알 것 같았다.

그와 월 누님 사이의 거리는 한 살의 나이 차이가 아니었고 출신과 신분의 거리도 아니었다. 인생 경험이 다른 것이었다.

월 누님이 그의 아버지와 담소를 나눌 수 있었고 그가 평소에 두려워하고, 존경하던 어른들 앞에서 자유롭게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모두 그가 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월 누님 앞에서 어린애였다.

"삼촌, 왜 여기 계세요? 얼른 우리와 함께 가요. 자하(紫荷) 언니가 아직 기다리고 있어요."

양홍엽은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보니 양문종이 보이지 않자 바로 뛰어왔다. 그는 양문종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억지로 끌고 갔다.

양문종은 가기 싫다고, 놀기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홍엽과 함께 놀지 않는다면 또 뭘 할 수 있겠는가?

월 누님을 따라다닌다는 말인가?

그들 '어른'이 하는 말들은 그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진정 큰일은 그의 아버지도 그가 듣게 하지 않을 것이다.

양문종은 실망한 얼굴로 마지못해 양홍엽을 따라 모닥불 옆으로 갔다. 그는 또래 소년과 함께 놀기 시작했다.

다만 이번에 양문종은 어떻게 해도 어울려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한데 어울린 친구들을 바라보는 양문종의 기분은 아리송해졌다.

그는 자기가 클 때가 되었고,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문종은 모닥불 옆에 서서 불빛을 통해 상석에 앉은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월 누님 머리의 공작새 깃털이 떼어진 것을 보았다. 그녀의 은관은 불빛 아래서 밝게 빛났지만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사망절은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육장봉도 충분히 예의를 지켜 사망절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다가 떠나갔다.

육장봉은 저녁에야 도착했다. 또 사망절에도 가야 하니 양 토사는 바쁜 나머지 육장봉에게 묵을 곳을 마련해 주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가 육장봉을 자기의 집으로 초대하려는 찰나, 완곡하게 거절당했다.

"괜찮습니다. 제 사람이 있어서요."

'서남의 이 꼬맹이들은 너무 철이 없어. 내가 왔으니 당연히 주권을 주장해야지. 눈이 안 달린 것들이 월령안을 노리지 못하게 말이야.'

양 토사는 월령안이 데려온 그 '몇 명'의 호위들이 바로 육장봉의 사람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육장봉과 월령안이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대장군을 옛 저택에 묵게 해도 되나요?"

모닥불 옆에서 소년, 소녀들은 아직도 놀고 있었다. 양문종은 월령안이 떠나자 바로 다가왔지만 결국 한발 늦고 말았다. 그는 월령안의 뒷모습밖에 보지 못했다.

"막내야?"

양 토사는 양문종이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녀를 잊거라. 그녀는 하늘의 별이다."

"저는 별을 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양문종은 꿋꿋한 시선으로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