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화 사망절(耍望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분분히 그녀더러 얼른 양문종을 받아들이라고 농담을 건넸다. 두 사람이 모두 아름다우니 낳을 아이도 분명 예쁠 것이라는 말이었다.
마을의 어린 낭자들은 그녀 앞으로 달려가 자신의 화환을 떼어내어 그녀에게 달아 주었다. 그리고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월 언니라서 문종 오라버니가 언니를 좋아하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 월 언니, 문종 오라버니와 아이를 낳으세요. 우리가 축복해 줄게요."
마을의 소년들은 상처받은 표정으로 그녀를 가로막았다.
"양문종이라서 우리는 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거예요. 그와 아기를 낳으세요."
월령안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왜 어디에서나 아이 얘기가 나오는 것이지?'
월령안은 머리가 아팠지만 양문종은 아무리 거절해도 소용이 없었다.
양문종은 근성이 강했다. 그는 거절당한 뒤, 실망하여 떠나갔다. 그러나 다음 날, 그의 열정은 그대로였다. 마치 월령안에게 거절당한 적이 없는 듯했다.
월령안은 계속해서 밖에서 돌아다녀야 해서 그를 완전히 피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집요한 소년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양 토사를 찾아가 그가 자기의 아들을 거두어 가기를 요청했다. 그녀는 어린애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양문종은 양 토사가 늘그막에 얻은 아들이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가장 작은 아이였다. 양문종은 그녀보다 한 살 어리기도 했다. 그녀의 눈에는 이 아름다운 소년이 아직도 어린애로 보였다.
양 토사도 아주 협조적이었다. 그는 그날 바로 양문종을 데려갔다.
그러나 하루뿐이었다!
이튿날, 양문종은 또 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양 토사도 변절하여 양문종의 편을 들어 그녀를 설득했다.
"예전에 너희 아버지가 편지에서 나에게 말한 적이 있었어. 우리 문종이를 네 짝으로 삼아 키워 주겠다고 말이다. 우리 두 가문에서도 구두 혼약을 한 셈인데 네가 만약 대장군과 합칠 생각이 없다면 우리 문종이를 데려가도 된다. 우리 집에는 아이가 많으니 문종이는 데릴사위로 들어가도 된다. 그때 가서 너희들이 만약 아이를 많이 낳는다면, 양씨 성을 가진 아이가 한 명만 있으면 된다."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우리 아버지 대단한데! 도대체 날 위해 혼약을 몇 개나 정한 거야? 왜 나는 도처에 예비 신랑이 깔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지?'
양 토사의 지지가 있자 월령안은 양문종을 더욱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양문종은 양 토사를 따라서 돌아간 후, 다시 돌아와서는 들이대는 정도가 많이 약해졌다.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지도, 먹을 것을 주지도 않았고 더 이상 그녀에게 노래를 불러 주지도 않았다. 월령안은 많이 편해졌다.
양홍엽은 월령안이 자기의 막내 삼촌의 구애에 놀란 것을 보고 깔깔, 웃었다.
"월 언니, 참 못났네요. 삼촌이 구애하는 것인데 왜 언니가 삼촌보다 더 긴장해요? 월 언니, 이래서는 안돼요! 우리 삼촌이 언니가 좋다고 구애하는 것은 그의 일이에요. 언니는 삼촌의 구애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요. 좋다면 우리 삼촌과 사귀는 것이고 좋지 않다면 무시하면 되는 거죠. 삼촌은 언니를 얻지 못하면 스스로 포기할 거예요."
"난 네 삼촌과 맺어질 가능성이 없어. 넌 네 삼촌이 상처를 받을까 걱정되지 않아?"
그녀는 상업계에서 온갖 요물들을 다 보아 온지라 당연히 양문종이 진심인지 가짜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아무리 봐도 진심이었다.
단순하면서도 뜨겁고 진지한 양문종의 감정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양홍엽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제 삼촌은 매일 많은 사람을 거절하는걸요. 상처받으려면 받으라죠. 어쨌든 나중에 다시 좋아질 테니까요."
양홍엽뿐만 아니라 양 토사도 이렇게 생각하고 오히려 월령안을 위로했다. 그는 월령안더러 부담을 가지지 말라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구애하다가 실패 몇 번 겪는 것은 다 작은 일이라고 했다.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럼 나 혼자 걱정한 거야?'
양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양문종의 마음이 다칠까 걱정하지 않으니 그녀도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말로는 걱정하지 않는다 해도 월령안은 양홍엽의 말처럼 속없이 양문종의 구애를 즐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최대한 냉담하게 대하며 양문종에게 희망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는 한 사람을 짝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씁쓸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령안은 양문종의 일을 내려놓고 더 이상 일부러 양문종을 피하지 않았다. 양문종도 한동안 열렬한 구애를 펼친 뒤, 식었다. 그는 월령안을 만나면 누님이라고 부르며 더 이상 구애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이를 본 월령안은 몰래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내가 과하게 긴장한 것이었군.'
각지의 풍속이 다 달랐다. 서남의 소년들은 눈을 맞추며 열렬히 구애하는 것은 예삿일이고 성공하지 못하면 포기하는 것도 빨랐다.
그녀는 이제 정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다음 며칠, 월령안은 양문종과 양홍엽의 인솔하에, 송씨 일족의 땅을 모두 한번 둘러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던 옥이 감춰진 강을 찾지 못했다.
양씨, 송씨 두 가문의 산봉우리를 모두 돌아다녀 보았다. 다음 순서로 월령안은 전씨 가문의 산봉우리를 가 볼 생각이었다. 여전히 양문종과 양홍엽이 그녀와 함께했다.
그러나 전씨 가문의 산봉우리를 가기 전에 그녀는 양씨 일족의 사망절에 참가해야 했다.
곡식이 풍년이 들면, 서남의 산민들은 모닥불 피우고 야회를 열어 축하했다. 사망절은 양씨 가문이 풍년을 축하하는 명절이었다. 양홍엽은 며칠 전부터 그녀를 초대했고 그녀도 응했다.
다른 지역에 왔다면 그 지역의 풍습을 따라야 하는 법. 월령안은 아침 일찍, 서남 현지의 옷을 준비했다.
사망절 밤에, 양씨 일족의 소년, 소녀들은 분주해졌다. 하나같이 일은 전혀 하지 않고 밤의 명절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월령안도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옛 저택에서 손으로 그린 지도를 완성했고 추수더러 상천에게 가져가라고 했다.
여기는 결국 서남, 즉 서남 사람들의 영역이었다. 서남에서는 그녀가 물건을 숨길 곳이 많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가능성 때문이라도 밖으로 내가는 것이 좋았다. 그러지 않고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녀와 양 토사 사이의 '우정'은 끝나고 말 것이다.
청주의 그 몇몇 노친네들은 무슨 생각인지 요즘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그들의 간섭이 없자 월령안은 그동안 만사가 순조로웠다.
청주 성안에서 십이 등이 매일 양식을 팔자 청주의 백성들은 차츰차츰 안정되었다. 그들은 예전에 비해 그렇게 불안해하지도 않았으며 양식 가격도 점차 안정되어 갔다.
몽산 쪽에서 진주와 몇몇은 연속 수십 날을 지켜보다가 드디어 순찰하는 병사들의 규율을 파악했다. 어젯밤에는 한번 잠입해 보기까지 했다.
진주를 비롯한 이들은 청주의 몇몇 노친네가 몽산에 양식을 심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심었는지는 아직도 조사가 필요했다.
그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월령안이 강에서 옥을 찾고 난 뒤, 또 양 토사, 송 토사와 다음 합작 상황에 대해 얘기를 한다면 그들은 서남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월령안은 다음에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써 두고 보면서 마음속으로 새겼다. 그리고 종이를 불에 태웠다.
다른 사람의 영역에서는 아무리 세심해도 과하지 않는 법이었다.
시간이 얼추 되자 월령안은 홀로 머리를 크게 땋은 뒤, 서남 소녀들이 자주 하는 머리 모양으로 쪽진 머리를 하고 은으로 만든 머리 장식을 했다.
치장만 달리했을 뿐인데 월령안의 분위기는 확 바뀌어 서남 소녀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월령안은 치장을 마치고 나가려고 하는데 양문종과 양홍엽이 왔다.
두 사람은 월령안과 함께 사망절에 참가하려고 데리러 온 것이었다.
사망절은 서남에서 그 의미가 아주 컸다. 양문종과 양홍엽도 오늘 아주 화려하게 치장했다.
양홍엽은 보라색 위주로 꾸며진 치마를 입었고 상의는 중간 소매여서 팔꿈치 아래를 드러내고 있었다. 하의는 짧은 치마와 가죽 구두를 받쳐 신어 담황색 종아리를 드러냈다.
그녀의 몸에는 은으로 만든 장식품이 주렁주렁 걸렸고 머리 위 은관에는 색색의 깃털이 장식되어 있어 햇살 아래 빛나고 있었다.
양문종은 평소에 수수하게 입었지만 오늘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옷을 입었다. 머리 장식도 똑같이 색색의 깃털로 장식하여 본래의 아름다운 얼굴에 야성을 더하였다.
두 사람의 화려함에 비해 월령안은 많이 수수했다. 심지어 그녀의 치마는 여전히 긴 치마로 온몸을 꽁꽁 감쌌다. 머리 장식도 아주 간단했는데, 작은 은 조각 하나였다. 양홍엽과는 비할 것도 없었고 양문종과 비교해도 수수한 차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양홍엽은 월령안의 차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녀는 월령안이 너무 수수하게 입었다고 투덜거렸다.
"월 언니, 오늘은 사망절이에요. 다들 가장 좋은 옷을 꺼낸다고요. 이렇게 입으면 안 돼요. 제가 언니가 입을 새 옷을 가져와서 다행이에요. 보세요. 공작새 깃털까지 가져왔는걸요."
월령안은 웃으며 거절했다. 그녀는 눈에 띄게 치장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양홍엽의 사탕발림과 으름장에 지고 말았다.
월령안이 최종적으로 타협한 이유는 양홍엽의 애교뿐만이 아니라 양문종의 말도 있었다.
"월 누님, 오늘 다들 가장 화려한 옷을 입는데 누님이 이렇게 수수한 차림을 하면 분명 아주 이목을 끌 거예요."
월령안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녀는 사망절에 대해 얼마간 알고 있었다.
사망절은 양씨 일족이 풍년을 축하하는 명절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소년, 소녀들이 맞선을 보는 자리기도 했다. 혼인을 했던 여인으로 월령안은 사망절에서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월령안은 양홍엽의 호의를 받아들여 그녀가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고 공작새 깃털을 꽂았다.
양홍엽이 월령안에게 가져온 치마는 자신이 입은 것과 비슷했다. 똑같이 화려하고 화사했으며 똑같이 중간 소매에 짧은 치마였다.
그러나 월령안은 양홍엽보다 키가 좀 더 크고 팔다리가 더 긴지라 같은 치마를 입어도 월령안의 팔과 종아리가 조금 더 많이 드러났다.
양홍엽의 담황색 피부와 달리 월령안은 아주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화려한 의상 아래로 드러난 그녀의 피부는 하얗게 빛이 났다.
양홍엽은 이를 보더니 부러워하며 예쁘다고 난리를 쳤다. 그녀는 자기가 만약 남자였더라면 반드시 월령안을 아내로 맞이해 집에 데려갔을 것이라고 했다.
월령안은 웃고 나서 말했다.
"시간이 거의 된 것 같으니 가야겠구나.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지."
"헤헤, 전 오늘 월령안을 안은 첫 번째 사람이에요. 모두들 분명 부러워 죽으려고 할 거예요."
양홍엽은 월령안의 팔을 끌어안고 밖으로 걸어갔다.
문밖에서, 양문종은 입구에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월령안이 걸어 나오는 순간, 소년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는 눈 속의 경이로움과 뜨거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