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8화 미풍, 햇살, 꽃, 미인
양홍엽은 월령안과 함께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마을의 사람들은 이제 월령안을 알게 되었고 몇몇은 열정적으로 월령안더러 저녁에 자기 집에 가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
"월 언니, 전 그들과 언니가 제 언니라고, 제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앞으로 나오고 싶으면 나오시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세요. 보세요, 제가 우리 할아버지보다 더 대단하죠?"
"정말 대단해. 고마워, 홍엽아.'"
'양 토사의 이 배상금을 잘 받았어.'
양홍엽은 그녀를 데리고 양씨 가문의 영역을 둘러보는 것이 양 토사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 나았다.
양 토사가 나서서 그녀를 그곳의 촌민들에게 소개해 주면 그건 바로 정식 소개였다. 그녀의 신분은 월 가주로서 서남으로 장사를 하러 온 것이 된다. 이러면 무의식적으로 그녀와 서남 촌민은 사이가 벌어져 그녀가 뭘 알아내고 보고 싶어도 매우 힘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양홍엽이 소개하면 달랐다.
양홍엽은 언니라고 부르면서 촌민들에게 그녀를 소개시킨다면 그녀는 무슨 청주에서 온 월 가주가 아니라 보통 소녀였다. 그녀가 아무 곳에나 가고 보아도 그녀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월령안은 양홍엽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마을 밖의 강으로 걸어갔다.
양홍엽은 걸으면서 월령안에게 소개했다.
"월 언니, 이 강은 대망하(大望河)라고 하는데 서남의 전체 지역을 둘러싸고 있어요. 지류가 백여 개나 되는데 우리 서남 사람들은 모두 이 강에 의지하여 먹고 마셔요. 아버지께서 우리는 모두 대망하가 키운 것이라고 했어요. 우리는 꼭 대망하를 아껴야지 절대 강이 마르거나 더러워지게 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지류가 백 개 넘는다고?'
월령안은 양홍엽의 말을 듣자 머리가 아파졌다.
'나한테는 시간이 많지 않아. 이 며칠 동안 나는 서남의 백 개가 넘는 지류를 다 다닐 수 있을까?'
서남은 아주 컸다. 대망하의 지류도 아주 많았다. 거기에 월령안의 운은 별로 좋지 못했다.
그날 그녀는 양홍엽과 온종일 걸어 다니며 적어도 대여섯 개의 지류를 살폈지만 월령안은 아버지가 말한, 강바닥에 옥이 숨겨진 강을 찾지 못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자 월령안은 양홍입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돌아가자고 했다.
양홍엽은 하루 종일 걸었더니 진작에 다리가 시큰시큰해졌다. 하지만 월령안의 가뿐한 얼굴을 보자 그녀는 자기가 먼저 피곤하다고 말하기 난감했다.
바로 이때, 월령안이 돌아가자고 말하니 양홍엽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살 것 같았다.
양홍엽은 바로 원기를 회복하여 월령안을 양가촌까지 바래다주었다.
마을 입구에서 양홍엽은 월령안을 기다리는 추수를 만났다. 월령안은 추수더러 양홍엽을 데려다주라고 했다.
양홍엽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싫다고 했다. 월령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착하지, 착한 소녀는 말을 들어야 해. 추수가 널 데려다주게 해. 아니면 내가 걱정할 거야."
양홍엽은 얼굴을 붉히더니 거절하는 말을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쑥스럽게 말했다.
"월 언니, 제가 내일 또 언니에게 놀러 와도 되나요?"
그녀는 한 번 더 시도해 보고 싶었다. 막내 삼촌을 데려와 월령안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만약, 만약에 월 언니가 삼촌을 마음에 들어 한다면? 그럼 완전 이득이지. 월 언니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도 괜찮아. 막내 삼촌은 남자니까 손해 볼 것이 없지.'
월령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되지. 혼자 오지 말거라. 내일 아침 일찍 추수를 보내 널 데려오게 하겠다. 날이 곧 어두워지겠으니 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게 어서 돌아가."
추수는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차마 자기의 아가씨가 또 어린 소녀를 우롱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우리 아가씨가 남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다면 아가씨의 이 수로 얼마나 많은 소녀들이 그녀를 위해 죽네 사네 했을까?'
양홍엽은 아쉬운 듯, 수시로 고개를 돌리며 되돌아보았다. 월령안이 줄곧 마을 입구에 서서 그녀가 떠나가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을 보자 양홍엽의 얼굴은 발그레해졌다. 얼굴의 미소도 옅어지지 않은 채로 고개를 돌리며 월령안에게 손을 저었다.
월령안이 답하자 양홍엽은 멍하니 바보 웃음을 지으며 입으로 중얼거렸다.
"월 언니는 참 좋아. 만약 우리 막내 삼촌이 월 언니를 집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 참 좋겠네요. 어휴, 우리 삼촌이 무능해서 탈이야. 쓰려고 할 때면 보이지 않아. 그래서 월 언니의 마음에 들지 못한 거지. 내가 월 언니라면 나도 눈에 차지 않을 거야."
추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어떻게 양 낭자에게 그녀의 삼촌이 아무리 유능해도 소용없다고, 우리 아가씨는 아무나 장가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해 줄 수 있을까? 그러나 양 낭자의 막내 삼촌이 만약 월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오겠다고 한다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월령안은 양홍엽을 눈으로 배웅했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비로소 돌아갔다.
몸을 돌려 마을 사람들과 마주친 월령안은 상대방의 얼굴에 피어난 다정한 미소를 보자 자기도 먼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예외가 없이 월령안은 마을 사람들의 열정적인 접대를 받았다.
옛 저택으로 돌아온 월령안의 손에는 과일과 야채가 가득했다. 심지어 꽃도 두 송이 있었다.
길에서 월령안에게 물건을 주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월령안도 그 꽃 두 송이는 누가 준 것인지 몰랐다. 심지어 그 꽃 두 송이가 언제 그녀의 손에 쥐여진 것인지도 몰랐다.
월령안이 한 아름 가득 안고 옛 저택으로 돌아와서 소육자에게 넘겨주었다. 소육자더러 먹을 수 있는 것은 부엌으로 가져가고 꽃은 병에 넣어 방 안에서 키우라고 했다.
진주 등 몇은 월령안이 하루 만에 서남 산민들 사이에 섞여 들어간 것을 보고 기뻐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마님께 선물을 준 남자는 없기를 바란다."
진주는 지금 이렇게밖에 자신을 위로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남녀의 혼사가 이루어지려면 부모의 명령도 있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서남에서 자기의 마음에 드는 낭자를 만나면 서남의 소년들은 열정적으로 구애하고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것이다.
'우리가 자만하는 것이 아니라 서남에서의 우리 마님은 빛나는 보석처럼 온몸의 빛을 감출 수가 없는걸. 서남의 총각들은 눈만 멀지 않았다면 우리 마님의 매력을 몰라볼 수가 없어.'
진주가 걱정하고 있는 순간, 특별히 새 옷으로 갈아입은 서남 소년이 밀과(蜜瓜 - 멜론) 한 광주리를 업고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진주는 눈을 부릅뜨고 상대방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묵념했다.
'마님께 드리는 게 아니다. 우리한테 주는 것이다…….'
그러나 진주의 환상은 곧바로 깨지고 말았다.
소년은 붉은 얼굴로 밀과를 안고 저택으로 뛰어왔다. 진주가 폭발하기 전에 소년은 밀과를 내려놓고 높은 소리로 말하고 도망쳤다.
"월 누님 드시라고 주는 거예요."
'이건 너무 노골적이잖아!'
진주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서남 여기는 우리와 팔자가 안 맞군!'
다른 사람들도 이 장면을 보고 걱정했다.
"장군께서는 언제 오시는 거야? 진주, 어서 십이더러 장군을 재촉하는 편지를 쓰라고 해. 오지 않으시면 마님께서 여시같은 저놈들한테 홀라당 넘어가겠어!"
진주는 이 밀과를 담은 광주리를 보면서 분노를 먹는 양으로 바꾸어 월 낭자가 발견하기 전에 그들이 다 먹어 치우려고 했다.
월령안은 방 안에서 오늘 다녔던 곳을 모두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자세하게 대략적인 거리와 주변의 환경을 표기했다.
서남은 외부의 것을 배척하여 외지인이 한 번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다. 들어왔다 해도 서남에서 함부로 다닐 수가 없었다. 서남의 사람이 규정한 범위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다.
마치 청주의 그 몇몇 노친네들이 파견한 관졸도 그저 몽산에만 묵을 수 있지 다른 곳에는 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곳에 갔다가 서남의 토박이한테 발견되기라도 하면 죽음뿐이었다.
그녀는 모처럼의 광명정대하게 서남 지역을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월령안은 한참 지나서야 오늘 걸은 곳을 그려 냈다. 그녀가 나오자 진주를 비롯한 몇몇은 이미 밀과를 전부 먹어 버렸다. 심지어 과일 껍질까지 깨끗이 청소했다.
월령안도 모르는 새에 복숭아꽃 한 송이가 피어 보지도 못하고 진주와 그 몇 사람에게 꺾여 죽고 말았다.
그러나 서남에서도 진주를 위시한 몇 사람이 막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마치 양홍엽의 막내 삼촌 같은 사람이었다!
양홍엽은 전날 밤 집으로 돌아온 뒤, 집에서 말끝마다 '월 언니가 얼마나 좋고, 우리 언니가 얼마나 뛰어나고, 얼마나 대범한지…….'하며 월령안을 자랑했다.
양씨 저택의 사람들은 너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지만 저지할 수 없었다.
양홍엽은 신이 나서 낮에 있었던 일을 크든, 작든 막론하고 말했다. 특히 월령안이 그녀에게 선물을 준 일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양 토사는 싱글벙글 웃으며 들었다. 월령안이 밖에서 하루 종일 걸어 다녔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양 토사는 말이 없었다. 양홍엽이 내일 꼭 막내 삼촌과 같이 월령안을 만나러 가겠다는 말에도 양 토사는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에게 가주의 예의를 잘 행하고 월령안을 잘 접대하라고 일렀다.
양홍엽은 자기의 아주 잘생긴 막내 삼촌을 데려갈 생각에 밤새 잘 자지 못했다. 날이 밝자마자 삼촌을 깨워 억지로 새 옷으로 갈아입게 하고 또 머리도 감게 했다.
추수가 데리러 오기도 전에 양홍엽은 막내 삼촌을 데리고 지름길을 걸어 옛 저택으로 갔다. 그렇게 자기를 데리러 오던 추수와 길이 어긋나고 말았다.
양씨 막내도 그녀를 어찌하지 못했다. 전날 밤, 아버지가 일러둔 말을 떠올리고 양홍엽이 하는 일을 받아들이고 그녀를 따라 옛 저택으로 뛰어갔다.
두 사람이 옛 저택에 도착했을 때, 태양이 마침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옛 저택의 문이 열려 있었다. 양홍엽과 양씨 막내는 다른 사람을 보지 못했다. 양홍엽은 자신이 월령안과 친하다고 자부하여 번거롭게 문을 두드리고 사람을 부르지 않고 바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그들이 본 것은…….
정자에는 꽃이 가득 깔려 있었고 흰 발이 바람에 가볍게 날리고 있었다. 수수하고 우아한 긴 치마를 입은 월령안은 꽃밭에 앉아 머리를 숙인 채, 앞에 있는 꽃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미풍, 햇살, 꽃, 미인이 어우러져 더없이 아름다운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입구의 소리를 들은 월령안은 고개를 들고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드는 순간, 바람이 불어와 하얀 발을 들어 올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나게 했다.
빛을 등지자 월령안의 늘 맑은 눈동자에 황홀함이 드리웠다.
양씨 막내는 입구에서 꽃밭에 앉아 있는 월령안을 보고는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