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화 제 작은 숙모가 돼 주세요
결정을 했으면 뜸을 들일 것이 없었다. 그날 양 토사는 자기의 큰손녀를 월령안 곁으로 보냈다. 양씨 가문의 성의를 보여 준 것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월령안이 비록 촌수는 높았으나 나이가 어렸다. 그의 가장 작은 딸은 월령안과 비슷한 또래였지만 진작에 시집을 가 버렸다.
그의 막내아들이 적합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의 막내아들은 미혼인데다 생긴 것도 괜찮아 만약 월령안 곁으로 보낸다면 육 대장군이 그의 아들을 죽일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손녀를 보낸 것이다.
양씨 옛 저택은 월령안의 손을 거친 후 완전히 달라졌다.
육중한 흙벽에 날카롭게 깎은 대나무 조각을 꽂으니 보기도 좋고 안전하기도 했다.
봉인된 창문은 베일로 가려 눈에 띄지 않게 하였고 햇빛을 가렸던 처마는 호위들에 의해 새롭게 단장됐다.
으스스하고 어두우며 햇빛이 들어오지 않던 집이 지금은 창턱이 훤해 집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옛 저택의 황폐했던 마당까지도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자리를 차지하는 낡은 나무들은 월령안에게 다시 이용되어 마당 한쪽에서 정자로 다시 태어났다.
곳곳에 쌓인 말뚝과 돌은 깨끗이 깎여 탁자와 의자로 되어 정자에 들어갔다. 아주 특색이 있었다. 말라 죽은 고목 뿌리까지 화분으로 변했다. 그 안에는 여러 꽃이 들어 있어 어두운 정원에 밝은 빛을 더했다.
"이게 우리 옛집의 정원이 맞긴 한가요?"
양 토사의 큰손녀는 서남 산민 특유의 옷을 입고 작은 광주리를 끼고 있었다. 그녀는 추수의 안내를 받으며 저택으로 들어섰다.
저택으로 들어선 양 토사의 손녀는 너무 놀라 길을 가는 것도 잊은 채, 두리번거리며 때때로 놀라움에 찬 소리를 질렀다. 추수는 옆에서 그녀에게 길을 안내하면서 이를 보고도 말리지 않고 묵묵히 옆으로 비켜섰다. 살짝 위로 쳐든 아래턱만은 그녀의 좋은 기분을 나타냈다.
'우리 집 아가씨는 이렇게 대단해. 아무리 엉망인 환경에서도 우리 아가씨는 아주 잘 지내실 수 있지. 전혀 자기 자신을 괴롭게 만들지 않는다니까. 육 대장군을 대하실 때 빼고 말이야!'
다행히 양 토사의 큰손녀는 자기가 온 의도를 잊지 않았다. 비록 옛집을 한 바퀴 쭉, 둘러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지만 결국 참고 순순히 추수를 따라 월령안을 만나러 갔다.
월령안은 지은 지 얼마 안 된 정자 안에서 차를 타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이 다가오자 고개를 들고 한번 보고는 상대방더러 앉으라고 했다.
"월 언니, 고마워요."
양 토사의 큰손녀는 서남 산민 특유의 순박함과 천진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활기가 넘치고 명랑하며 눈은 또렷하고 깨끗했다. 무엇을 보든지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녀는 월령안의 맞은편에 앉지 않고 스스럼없이 월령안의 앞에 바싹 다가갔다. 살아 움직이는 두 눈은 어리둥절하게 월령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쳐다보면 당황하지 않아도 다소 영향을 받았겠지만 월령안은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차를 타며 여전히 웃는 얼굴을 했다.
차를 다 탄 뒤, 월령안은 두 잔을 부어 그중 한 잔은 양 토사의 큰손녀의 앞으로 밀어 두었다.
"차를 마실래요?"
양 토사의 큰손녀는 생글거리며 대답하고 월령안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자기의 작은 광주리에서 미리 준비한 선물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월 언니, 이건 제가 직접 만든 꽃떡이에요. 드셔 보세요. 좋아하세요?"
월령안은 감사 인사를 하고 옆에 있던 손수건을 들고 손을 닦았다. 그리고 나서야 꽃떡을 집어 입에 넣었다.
"꽃향기가 가슴에 스며들어 달지만 질리지 않고 맛있네요."
양 토사의 큰손녀는 월령안의 일거일동을 바라보며 그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멍하니 생각했다. 그러다가 참지 못하고 말이 튀어나왔다.
"월 언니, 언니는 너무 예뻐요! 꼭 제 작은 숙모처럼 생기셨어요."
진주 등 몇몇은 옆에서 일을 하다가 어린 소녀의 말을 듣고 선의로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그들은 웃을 수 없었다.
양 토사의 큰손녀는 애를 쓰며 추천했다.
"월 언니, 우리 막내 삼촌이 아주 잘생겼어요. 삼촌을 좋아하는 낭자들이 아주 많아요. 그런데 막내 삼촌은 그녀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월 언니, 언니는 제가 원하는 작은 숙모와 똑같이 생기셨어요. 그러니 제 작은 숙모가 돼 주시면 안 되나요? 제가 매일 맛있는 꽃떡을 해 드릴게요!"
소녀는 온 얼굴에 열성이 가득했고 눈에는 월령안에 대한 호감이 가득 찼다. 그녀는 지금 바로 월령안을 집으로 빼돌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진주 등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찌 된 일이지? 우리들은 이렇게 함정에 빠진 건가? 우리는 지금 젊은 남자가 우리 마님께 다른 마음을 품을까 경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린 소녀가 우리 마님을 꼬드겨 데려가는 것도 경계해야 하는 건가? 대장군은 언제 오시지? 오지 않으신다면 우리의 마님은 꼬임에 빠져 버릴 수도 있다고,'
어린 소녀는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별빛이 반짝였고 온통 기대로 가득했다. 월령안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다면 삼촌의 손을 잡고 와서 혼인시키려는 기세였다.
월령안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소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그녀가 만약 바로 거절했다면 설령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뜻이 없더라도 소녀는 월령안이 자기의 삼촌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월 언니, 전 양홍엽(楊紅葉)이라고 해요. 절 홍엽이라고 불러도 돼요. 제 어머니 아버지도 다 이렇게 불러요."
소녀뿐만 아니라 진주 등 몇 사람들도 월령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월령안이 대답을 피하자 사람들은 실망이 극에 달했다.
소녀는 더욱 그러했다. 기운이 빠져 머리를 푹, 떨구고 있었다. 그러나 단념하지 않고 또 물었다.
"월 언니, 우리 막내 삼촌은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사람도 아주 좋아요. 월 언니와 어울릴 거예요. 월 언니, 먼저 우리 삼촌을 보시고 얘기해요. 네?"
"홍엽아, 넌 날 월 이모라고 불러야 한단다."
월령안은 이 어린애가 이토록 끈질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세상에는 똑같게 생긴 두 사람은 없단다. 너의 숙모가 아무리 날 닮아도 내가 아니야."
'다행히 마님께서는 맞선을 보실 생각이 없으시군!'
진주 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서로 마주 보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너무 힘들다고 느껴졌다.
'우리 마님은 참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가 많으시다니까. 어린 소녀조차 피해 가지 못하니.'
"월 언니, 저는……."
"월 이모!"
"하지만 월 언니는 젊고도 예쁜데요. 조금도……."
"이모라고 불러. 그러면 내가 첫 만남 선물을 줄게."
월령안은 마술을 부리듯 나무 상자를 꺼내 양홍엽 앞에서 흔들었다.
"앗, 옥천각(玉天閣)의 장신구네요."
양홍엽은 바로 말을 바꾸었다.
"월 이모! 정말 최고예요!"
옥천각은 청주에서 오랫동안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곳의 장신구는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달마다 장신구를 세 개밖에 팔지 않았다. 양홍엽은 양 토사의 손녀였지만 옥천각의 장신구는 하나도 가지지 못했다.
"첫 만남 선물이야. 가지렴."
월령안은 소녀가 장신구를 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왠지 자기가 늙은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몇 년 동안이나 새 장신구나 새 옷 때문에 기뻐한 적이 없었던가?'
변경에서 그녀는 달마다 새 옷을 짓고 새 장신구를 만들었다. 그러나 옷과 장신구를 새로 맞출 때마다 그 이유는 가게를 홍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육 대장군의 신분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녀는 한 번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잘 꾸민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월령안은 이런 여인의 감성을 뒤로 젖혀 두었다.
'내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가 어디 있어.'
나씨 가문이 그녀를 서남에서 쫓아내지 못했기에 분명 또 다른 수를 쓸 것이다. 그녀는 시간이 촉박했다.
양홍엽은 장신구 함을 열고 옥란화(玉蘭花) 팔찌를 꺼냈다. 그녀는 기뻐서 폴짝, 뛰었다. 전의 의기소침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기쁘게 팔찌를 걸었다.
"월 언니, 언니는 정말 너무 좋아요! 제 숙모가 되기 싫으시면 저의 월 언니가 되시면 안 되나요? 월 언니, 언니는 제가 원하는 언니와 똑같이 생기셨어요."
"이모라고 불러!"
월령안은 한마디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추수더러 차를 치우라는 눈치를 주고 일어섰다.
"홍엽아, 난 처음 서남으로 온 것이니 네가 날 데리고 둘러보지 않겠니?"
서남의 옥은 그 몇몇 대상인들이 꽉 쥐고 있어 그녀가 끼어들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곳에서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서남에 하천이 있는데 강바닥에 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당시 서남에 옥광이 있어서 발견했어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을 것이다.
옥이 숨겨진 하천을 찾는 것도 그녀가 서남에 온 목적 중의 하나였다.
서남은 그녀의 지역이 아니었다. 찾기 전에는 그녀가 먼저 알릴 수 없었다.
그러지 않고 그녀가 먼저 정보를 흘리게 된다면 그 옥이 있는 강은 그녀와 상관이 없게 되는 것이다.
"좋아요. 월 언니는 어디 가고 싶으세요?"
양홍엽은 전혀 불만 없이 흔쾌히 대답했다.
"날씨가 더우니 강변에 가서 산책하자꾸나."
월령안은 밖을 바라보며 흘러가듯 말했다.
양홍엽은 햇살이 강하지 않은 데다가 월령안이 자기에게 준 만남의 선물을 떠올리자 기쁘게 응했다.
월령안은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아 추수와 다른 호위를 데려가지 않고 양홍엽과만 함께 밖으로 걸어갔다.
서남 지역의 백성들은 외부인을 극도로 배척하고 있었다. 월령안이 양 토사의 초대를 받고 왔다 해도 양씨 일족 백성들은 월령안 일행에 대해 경계심을 가득 품고 있었다. 그들이 외출하지 않았을 때에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문을 나섰다 하면 감시하며 많은 곳을 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양홍엽과 함께면 달랐다.
양홍엽은 양 토사의 손녀이고 서남에서는 공주 같은 존재였다. 사람들마다 그녀의 체면을 얼마간 봐주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바로 양홍엽이 출신은 좋으나 사람 됨됨이가 전혀 포악하지 않아 양씨 일족과 인맥이 매우 좋은 것이었다. 그들이 있는 양가촌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양홍엽을 알고 있었다.
월령안이 양홍엽을 데리고 다니자 양홍엽이 아는 사람들을 만났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숙모 등으로 부르면서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어린애를 만나도 열정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양홍엽은 사람과 인사를 할 때마다 월령안을 끌어당기며 양가촌의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이분은 제 언니예요. 할머니, 우리 언니 예쁘죠?"
문을 나서자, 양홍엽은 기를 쓰고 월령안을 이모라고 부르지 않고 달콤하게 언니로 불렀다. 월령안은 자기의 목적을 떠올리자 묵인하고 양홍엽이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게 내버려 두었다.
'어린애잖아, 예뻐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