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화 이미 우리 손을 떠났구려
"배상금?"
전 토사는 월령안이 배상금 얘기를 꺼내자 눈에서 빛을 뿜었다. 살이 뒤룩뒤룩 찐 얼굴이 흠칫, 떨리더니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좋지! 얼마를 내서 이번 일을 마무리할 텐가! 난 네가 월 가주라는 것도 알고, 네가 돈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배상금을 적게 주면 난 절대 허락하지 않아."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 월령안의 호위는 보통 사람들이 아니에요. 배상금을 적게 준다면 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군인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에는 군인의 혈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뒤에는 철석같은 의지를 가진 철혈 군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월녕은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그들의 기세에 눌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기세에 교묘하게 어우러졌다. 조용히 앉아만 있는데도 용맹한 군대의 기운이 넘쳐났다!
전 토사는 이상하게 불안해져 뒤로 한걸음 물러서서 송 토사와 나란히 양 토사의 뒤에 섰다. 정말 양 토사의 졸개처럼 보이게 되었다.
송 토사는 싫은 내색을 하면서 옆으로 물러섰다. 그는 전 토사와 한데 묶이는 것이 싫었다.
월령안은 옆의 이마가 깨진 진주를 가리켰다.
"피를 본 사람들은 상처 하나당 천 냥씩 계산할게요. 전 토사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너, 너, 그게 무슨 뜻이야?"
전 토사는 눈을 부릅뜨고 월령안을 노려보았다.
"나더러 돈을 배상하라고?"
"당신네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내 사람들을 다치게 했는데 전 토사가 저한테 배상금을 줘야지, 그럼 제가 배상금을 드릴까요?"
월령안은 발치의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 토사, 잊으셨나 본데요, 여기는 양 토사의 영역이에요. 당신네 사람들이 경계선을 넘은 거예요!"
그녀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서남은 가난하여 사람들의 기풍은 사나웠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쉽게 경계를 넘지 않았다고 했다.
수로의 관개권을 위하여 서남의 산민들은 대대로 다른 쪽과 싸울 수 있었다. 그들은 해마다 수십 명의 사람이 죽더라도 싸웠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는 법. 서남에 이르면 그녀는 자연히 서남의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한다.
전 토사의 사람들이 경솔하게 양가촌으로 들어왔는데 양 토사는 자기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나서서 그들을 지켜야 할 것이다.
양 토사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전옹, 월씨 조카의 말에 맞네. 당신네 사람들이 경계선을 넘은 것이네."
월령안은 그가 데리고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녀가 서남에서 일이 생기면 그는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더구나 전씨 동문이 이 시기에 쳐들어와 소란을 피운 것은…….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용납할 수 없었다.
"저자들이……"
전 토사는 속이 켕겼다. 그러나 곁눈질로 바닥에 놓인 시체를 바라보자 순간적으로 용기가 생겼다.
"양씨, 이것 보게. 저들이 우리 전씨 가문의 사람을 죽였지 않나? 이 죄를 우리 전씨 가문에서는 꼭 따져야겠네!"
"제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전 토사께서는 줄곧 양 숙부님과 함께 계셨잖아요. 전 토사, 당신은 어찌 우리가 이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서남 산민들이 외부의 것을 배척하여 판을 짜도 신경을 쓰지 않았군. 이렇게 허점이 많은 판도 내놓을 수 있다니. 만약 밖이었다면 나는 전 토사를 제대로 혼내 줬을 거야.'
바로 이때, 사람들 뒤에서 눈에 띄지 않는 하인 하나가 추수에게 손짓을 했다.
추수는 바로 사람들의 뒤로 빠져 상대방과 얘기를 했다. 그러더니 그 하인의 손에서 죽통(竹筒 - 대나무로 만든 통)을 받고 힐끗 보더니 재빨리 손에 넣고 월령안에게로 걸어갔다.
추수는 다급히 돌아와 허리를 숙인 채, 월령안의 귓가에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였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전 토사는 당당하게 말했다.
"이 꼴을 보면 뻔하지! 내가 어찌 모를 수 있겠어?"
이 판은 그가 짠 것이었다. 사람 목숨 하나로 사람들을 서남에서 내쫓으려는 것이었다.
"전 토사께서는 정말 관찰력이 뛰어나시네요. 시체를 한번 보기만 하셨는데 우리가 때려죽인 것을 바로 아시는 걸 보니까요."
월령안은 웃는 얼굴로 비꼬았다.
"그럼 전 토사께서 그 눈으로 한번 보시면 당신의 그 귀염둥이 막내딸의 뱃속에 있는 아기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아시겠네요?"
"너, 네가 어떻게…… 아니, 내 말은 우리 막내딸이 아직 시집도 가지 않았는데 애는 무슨 애. 허튼소리 하지 말라고!"
전 토사는 당황하여 얼굴에는 땀으로 가득했다. 그는 목청을 돋우어 월령안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가 그럴수록 더 당황한 티가 났다.
"전씨, 어찌 된 일인가?"
이러자 양 토사뿐만 아니라 송 토사도 일제히 전 토사를 바라보았다.
전 토사의 얼굴은 땀으로 흥건하여 감히 양 토사와 송 토사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는 다급히 말했다.
"저년이…… 못된 마음을 품은 거야. 저년은 일을 저지르려고 우리 서남으로 온 거야. 양씨, 날 그래도 친구로 생각한다면 어서 저년을 내쫓게!"
"자네 막내딸이 어찌 되었다는 것인가?"
송 토사의 아들은 전 토사의 막내딸과 선을 보고 있었다.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두 사람의 혼사는 곧 정해질 것이다.
'만약 월령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 아들은…….'
여기까지 생각한 송 토사는 전 토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못했다.
"전씨, 이 일은 분명히 말해야 하네!"
"이 일은 우리가 돌아가서 말하자고. 우리 먼저 이 외지인을 내쫓고."
전 토사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는 남을 도와 외지인을 서남에서 쫓아내려다가 자기가 온몸에 구정물을 뒤집어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송 토사와 전 토사가 다투고 있을 때, 월령안이 다가와서 양 토사의 귓가에 낮은 소리로 몇 마디 했다.
양 토사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온몸의 근육이 팽팽해졌다. 그는 울화를 간신히 참으며 억지로 기품을 유지했다.
"이 일은 월씨 조카에게 고마워해야겠네. 월씨 조카, 걱정하지 말게. 이 일은 내가 반드시 만족할 만한 답을 하겠네."
"전 양 숙부님을 믿어요. 양 숙부님, 제 사람들이 다쳤어요. 다섯 명이 피를 보았고 다른 사람들도 적잖게 놀랐어요. 배상금은 적어서는 안 돼요."
월령안은 자기 몸에 있지도 않는 먼지를 털면서 종자(粽子 - 찹쌀로 만든 전통 음식)처럼 꽁꽁 묶인 전씨 동문을 경멸조로 훑어보았다.
"물론, 저는 서남 백성들이 생활이 어려워서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저는 아주 쉬운 사람이에요. 곡식이나, 약재나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전 다 받을게요."
"월씨 조카 걱정하지 말게. 네가 손해 보게 하지 않을 테니."
양 토사는 일어서서 험악한 시선으로 말했다.
"전씨, 당신네 사람들더러 어서 흩어지라고 하게!"
"양씨, 자네는 왜…… 자네, 이게 무슨 뜻인가? 자네는 이 외지인 때문에 자기 사람을 괴롭히려는 건가?"
전씨는 흠칫, 놀라더니 속으로 점점 더 불안해졌다.
'양씨가 알게 된 것은 아니겠지?'
"내가 사람들 앞에서 전부 말해도 되나?"
양 토사는 월령안의 사람들에게 한 줄로 묶인 전씨 동문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자네 체면을 지켜 주려고 했는데 자네가 체면이 필요 없다고 한다면……."
'양씨가 역시 다 알아 버렸구나!'
전 토사는 더 이상 요행을 바라지 않고 다급히 동문을 쫓았다.
"가, 가, 가, 얼른 돌아가! 얼른 흩어져."
전씨 동문들은 바로 흩어졌다. 전 토사와 송 토사도 양 토사가 데려갔다. 양씨 옛 저택은 다시 이전의 고요함을 회복했다. 단기간 내에 소란을 피우러 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월령안은 진주 등 몇몇에게 얼른 가서 상처를 처리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괘념치 말고 손을 써서 때리면 그만이라고 했다.
서남의 물이 흐려졌다. 서남의 이 땅에서 그들은 지금 가로질러 갈 수 있었다.
진주 등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아주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월령안도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이 일이 분명 추수가 갑자기 가져온 소식과 상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 토사의 막내딸은 아직 시집도 가지 않았는데 임신했다. 애는 나씨 가문 막내아들의 것이었다.
나 토사에게는 아들이 일곱 명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현임 아내가 낳은 막내아들이었다.
나 토사의 현임 아내는 조의박의 수양딸이었다. 나 토사의 막내아들은 그녀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이 막내아들은 나씨 가문과 조의박 사이의 가장 큰 연줄이기도 했다.
나 토사의 큰아들이 황명을 받들어 경성으로 아내를 맞이하러 간 뒤로, 나 토사는 막내아들을 줄곧 데리고 다녔다. 가업을 막내아들에게 물려주려는 기세였다.
전 토사의 막내딸이 혼인도 하기 전에 임신했고 그 씨는 바로 나 토사의 막내아들 씨였다. 만약 전 토사가 사정을 몰랐다면 양 토사와 송 토사는 단지 두 아이가 철이 없어 어른들 몰래 금단의 열매를 맛본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전씨 가문과 나씨 가문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달랐다. 전 토사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나 토사의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렇지 않으면 전 토사가 배신을 하고 판을 짜 월령안을 내쫓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송 토사는 진실을 알고 나서 화가 나 양 토사보다 더 모질게 나왔다. 그는 전 토사를 손가락질하며 크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전 토사는 인정하지 않고 월령안 이 외지인이 꾸민 계략이라고 딱, 잡아뗐다.
그뿐만 아니라 전 토사는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양씨, 송씨! 우리는 대대손손 친분을 쌓아온 사이 아닌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네들은 모르는 것인가! 자네들은 한낱 외지 여인 때문에 친구조차 믿지 않는 건가! 아주 좋아, 아주 좋아 죽겠어. 나 전씨는 자네들 같은 친구를 둔 적이 없네!"
전 토사는 말을 마치고 옷소매를 떨치며 가 버렸다. 그 당당한 모습은 마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양 토사와 송 토사인 것 같았다.
양 토사와 송 토사는 서로 마주 보았다. 그들은 모두 상대방의 눈에서 무기력감과 아픔을 읽었다.
양 토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씨는, 못 쓰겠구먼."
송 토사는 더욱 괴로워했다.
"전씨는 내 사촌 동생이라네. 난 그와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 왔었지. 난 그가 이렇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네. 그 나씨 가문이 어디 어울릴 만한 사람인가? 나씨 가문의 이득은 어디 쉽게 차지할 수 있는 것인가?"
"나씨 노친네는 아주 교활하지. 큰아들은 황제가 정한 사람과 혼인하고 막내아들은 청주의 그 몇몇 노친네들과 친분이 깊어. 양쪽으로 아부를 하고 있으니 나중에 어느 쪽이 이기든지 나씨 가문은 꿋꿋할 거야. 전씨는 나씨 가문을 따라 배워 당신과 나씨 가문 사이를 오가며 순조롭게 지내려고 했나 보군. 그런데 자기가 그럴 머리가 되는지는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네."
양 토사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이마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난 원래 월씨 가문에게 편의를 줄지, 아니면 월씨 가문과 한데 묶일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양 토사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이 일의 주도권은 이미 우리 손을 떠났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