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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23)화 (623/1,004)

623화 열 명의 변절자

그녀는 모두 계약서 삼십 장을 내보냈다. 범씨 가문이 단번에 그중 열 장 빼앗아 갔으니 실로 대단했다!

그러나 거저 생긴 돈인 만큼 그녀는 사양하지 않았다.

돈은 벌기 쉬운 만큼 쓰는 것도 빨랐다.

월령안은 은표를 받자마자 스무 장을 세어서 육십이에게 주었다.

"이건 이만 냥이에요. 먼저 가지고 길을 따라 관계를 뚫으세요. 남는다면 나누고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하세요."

"월 누님, 이 돈을 남겨서 식량을 사지 않으시나요?"

육십이는 돈을 받았지만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이 돈도 너무 빨리 생겼잖아? 월 누님이 어제 돈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하루만에 이렇게 많이 생겼어? 돈을 버는 게 이렇게 쉬운 건가?'

"이만 냥에 내일 그들이 건네올 약정금까지 하면 식량 살 돈이 충분해요."

월령안은 탁자 위의 함을 가리키며 말했다.

"청주는 재해를 입지 않았어요. 청주 성안에 식량이 없는 것이 정말 없는 것 아니에요."

"그러나 청주의 모든 곳에는 식량이 없어요. 지금이 비록 햅쌀이 오를 시기긴 하지만 조정은 밖의 식량을 청주로 운반해 오지 않을 거예요. 월 누님, 어디 가서 식량을 사시려는 거예요? 만약 한 달 뒤에도 식량을 내놓지 못한다면 우리는 돈을 배상해야 해요."

육십이는 갑자기 손에 든 은표가 부담스러워졌다.

'내가 지금 월 누님에게 돌려줘도 되겠지?'

"걱정할 게 뭐가 있어요? 육십이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할 것도 아닌데. 제가 준 것을 그냥 마음껏 쓰기만 하면 돼요."

월령안은 계약서와 은표를 담은 함을 들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육십이는 은표를 가지고 새색시처럼 조심스럽게 월령안의 뒤를 쪼르르, 따랐다. 잘생긴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월 누님, 정말 괜찮을까요?"

월령안은 그의 긴장한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겨우 이까짓 규모의 장사에 긴장한 모습 좀 봐요. 일이 생긴들 뭐 어때요? 삼 할의 돈일 뿐이잖아요. 아무렇게나 손불사의 약을 내놓아도 오천 냥인데. 그러면 되지 않아요?"

"돈이 없어도 손 신의를 팔면 되는군요! 그럼 제가 마음이 놓이네요!"

육십이는 숨을 들이쉬고 앙증맞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멍청한 강아지 같았다.

월령안은 참지 못하고 육십이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잘해요. 대장군이 오기 전에 육십이 친구들이 아내를 맞이하고 자식을 키울 돈을 충분히 모아야죠."

육십이의 눈이 갑자기 반짝거렸다. 그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네, 월 누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잘 해낼 거예요."

월령안은 웃으며 떠나갔다.

진주는 옆에 서서 실의에 빠진 것처럼 멍해졌다.

"마님께서는 돈을 애들 장난처럼 버시네. 십이야, 대장군께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마님을 내치셨을까? 큰아가씨가 만약 우리 장군 마님이셨다면 우리가 아내를 맞이할 돈이 없다고 고민하는 일이 있었겠어?"

"우리 장군의 눈이 먼 것을 네가 처음 안 것도 아니고."

육십이는 우쭐거리며 대꾸했다.

'나는 월 누님의 좋은 점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라고. 장군은 나에 비하면 멀었어.'

진주는 육십이의 이 말이 이치가 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한참이나 생각해 보았지만 장군의 편을 들어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하자 한숨만 내쉬었다.

"십이, 마님의 다리를 꽉 잡고 있어! 내가 보기에 마님은 너를 남다르게 대하고 계시니까!"

그는 질투가 났다.

"그거야 당연하지! 내 월 누님이라고! 봤어? 이 은표는 소육자에게도 없어. 나한테만 있다고."

육십이는 손에 든 은표를 의기양양하게 흔들어 보였다.

"네가 앞으로 날 따르면 돈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진주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얄미워, 때리고 싶어!'

소육자도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 * *

다음날 아침, 월씨 저택으로 와서 약정금을 지불하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계약서의 규정대로 그들은 삼백 냥의 약정금을 지불하면 한 달 뒤, 월령안의 식량이 도착했을 때, 남은 것이 있으면 그들에게 먼저 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격은 당시의 시세에 따라 오르되 오 할 이내로 오른다는 것이었다.

약정금을 낸 뒤, 한 달 후에야 돈을 환불할 수 있었다.

상인들은 이 조항들을 자세히 읽은 뒤,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즉석에서 약정금을 지불했다.

오전 동안, 월령안은 열다섯 부의 약정금과 계약서를 받았다.

그 전날, 월씨 저택에서는 계약서 서른두 부를 내보냈다. 찢어져 버린 두 부를 제외하고도 아직 다섯 부는 밖에 있었다.

월령안은 계약서와 돈을 받고 집사에게 말했다.

"남은 다섯 부는 받지 않겠다. 충분히 받았다고 하거라!"

'돈을 일찍 주지 않고도 돈을 벌 생각을 하다니. 꿈 깨라고 해.'

월령안은 이튿날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날 저녁 무렵에 육십이와 장병 백 명을 데리고 떠들썩하게 성 밖의 별장으로 갔다.

남은 계약서 다섯 부를 손에 든 상인들이 돈과 계약서를 가지고 급하게 월씨 저택으로 왔지만 문밖에서 거절당했다.

다섯 소상인들은 월씨 가문이 짐짓 거드름을 피워 약정금을 눈에 차지 않는 줄로 알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우리는 전액을 지불하겠소!"

"전액을 지불하셔도 소용없어요. 먼저 온 이가 먼저 얻는 법이지요. 우리 월씨 가문에는 더 이상 여유분의 식량이 없습니다."

집사는 사람을 문밖에서 거절했다.

"그럴 리가 없소. 우리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열다섯 집에서만 약정금을 냈다오! 계약서 서른 부를 내놓았으면서 어떻게 열다섯 부만 계약을 한 건가? 우리를 가지고 논 것이 아닌가?"

다섯 소상인은 끈질겼다.

집사는 경악한 얼굴로 말했다.

"모르셨어요? 어젯밤에 열 집에서 전액을 지불하고 오천 석의 식량을 구매했어요."

다섯 소상인은 크게 화를 냈다. 그들은 씩씩거리며 어제의 사람들을 찾아가 누가 전액을 지불하고 식량을 빼앗았냐고 따졌다.

"음…… 우리 집이야!"

"아니…… 난 식량이 부족할까 걱정되어서. 자네들도 알다시피 우리 집에는 사람이 많잖아. 절대 이 식량을 팔지 않겠다고 장담할게. 나 혼자 먹을 거야."

"맞아, 맞아, 맞아, 우리도 혼자 먹을 거야!"

열 상인의 변절은 가뜩이나 취약했던 동맹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약정금만 지불한 몇몇 집에서는 다급히 월씨 가문으로 가서 전액을 지불하여 먼저 식량을 가지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거절당할수록 그들은 은표를 들고 월 집사더러 받아 달라고, 계약서를 다시 쓰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가격을 더 올릴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월령안이 성 밖의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집사가 보내온 편지를 받았다. 월령안은 힐끔 보고 옆으로 던진 뒤,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상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녀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은 온통…….

"큰아가씨, 양 가주께서 만나 뵙기를 청하십니다!"

추수가 들어와 월령안에게 예를 올렸다.

'쌀을 가져온 사람이 도착했구나!'

월령안은 입꼬리를 올리며 살며시 웃었다.

'상천은 역시 상천이야. 한 번도 날 실망시킨 적이 없어.'

양 토사는 거의 쉰이 가까운 나이었다. 검고 우람한 데다 산민 특유의 우직하고 순박함까지 지녔다. 월령안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양 토사는 전혀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일어서서 월령안에게 포권했다.

"월 가주!"

"양 숙부님, 과하십니다. 절 령안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월령안은 앞으로 다가가 예를 올리고 열정적으로 양 토사더러 앉으라고 했다.

지금 청주에서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 중 대다수는 그녀가 어렸을 때 만났던 삼촌과 숙부들이었다. 비록 별로 친분이 없었지만 낯선 사람이 아닌지라 얼굴이 두껍게 숙부라고 부르면 그들도 어느 정도 체면을 봐주었다.

양 가주도 역시 월령안과 내외하지 않고 바로 물었다.

"령안 조카, 지금 시기에 식량으로 약재를 바꾸는 것은 무슨 의도인지 물어도 되겠나?"

"양 숙부님, 전 줄곧 높은 가격으로 각종 약재를 거두었어요. 지금 시기에 식량으로 바꾸는 것은 청주가 재해를 입어 식량이 귀하니 돈을 좀 적게 써서 좋은 약재를 많이 구하려는 것이지요."

월령안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또 상업계에 금방 발을 들인 신인다운 풋풋함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이득을 많이 취한 데 대해 쑥스러워하고 있었다.

"령안 조카는 이렇게 많은 약재를 거두어 무엇을 하려고 그러나?"

양 토사는 보기에는 무던해 보이나 실은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말할 때 줄곧 월령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사냥감을 노려보는 사냥꾼처럼 압박감으로 가득했다.

이때, 저력이 부족하거나 마음이 약하다면 양 토사 앞에서 빈틈을 드러내기 쉬웠다.

월령안은 오기 전에 준비를 마친지라 대범하게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양 숙부님께서 아시다시피 저와 약왕곡의 손 신의는 협력 관계입니다. 약왕곡은 약을 삼키는 도철(饕餮 - 상상 속의 짐승 중 하나. 탐욕이 많은 사람을 가리킴)입니다. 좋은 약재를 아무리 많이 넣어도 끝이 안 보이니 이 좋은 시기에 약재를 많이 거두어야겠습니다. 제가 범씨 가문과 십 년의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면 저한테는 더 이상 약재를 거두어들일 여윳돈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좋은 약재가 얼마가 되든 다 소화 가능한가?"

양 토사는 한참이나 살펴보았지만 빈틈을 발견하지 못하자 차라리 직접적으로 물어보았다.

"어제 식량 오천 석을 팔았는데 그렇게 많은 식량을 가지고 있다고?"

"없어요! 양 숙부님의 식량을 내놓으실 건가요?"

장사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성의였다. 월령안은 먼저 약점을 드러내며 성의를 보였다.

"지난 몇 년 동안, 식량을 사러 온 산민들과 먼 곳의 소상인들은 너의 사람들이지?"

양 토사의 분위기가 갑자기 돌변하더니 흉악한 살기를 띠었다. 마치 언제든지 폭발하여 월령안을 덮치고 그녀의 배를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문밖에서 지키고 있던 육십이는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월령안의 앞을 막아설 뻔했다.

월령안은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머뭇거리지 않고 대범하게 인정했다.

"양 숙부님의 혜안은 대단하십니다."

그녀는 전에 서남의 산민들과 먼 곳의 소상공인들을 시켜 서남에 가서 식량을 거두게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서남 네 토사들 손에 식량이 얼마씩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듣기 싫게 말하면, 서남 네 토사들이 식량을 푼다면 청주의 백성들은 누워서 십 년 먹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서남 토사들은 쉽사리 식량을 풀지 않았다. 그들은 식량을 거두어들이기만 할 뿐 풀지 않았다. 청주의 그 몇몇 노친네들과 사이가 가까운 나(羅)씨 가문을 제외하고 다른 세 집에서는 묵은 쌀을 내놓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산민들과 먼 곳의 소상인들에게 싼값에 팔면 팔았지 조정과 청주에는 팔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육장봉을 위해 식량을 찾느라고 갖은 속을 다 태웠다. 조금의 기회도 놓치려 하지 않았다.

"식량이 필요하다면 너한테 팔 수 있네. 시세보다 낮게 말이야."

양 토사는 자기의 기세를 거두지 않았다. 그는 지금에서야 자기의 진정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한 번도 순박한 산민인 적이 없었다. 그는 사나운 사람이었고 강도였다!

양 토사의 살기에도 월령안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양 숙부님께서는 뭘 원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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