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화 반드시 식량이 있을 것이다
"너의 범 숙모는 너와 달라."
범 가주는 알아보아야 할 것을 이미 다 알아보았다. 그는 더 이상 월령안과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서 딱딱하게 화제를 돌렸다.
"식량의 일은 작은 일이 아니다. 난 일시에 그렇게 많은 돈을 꺼낼 수 없어. 령안 조카, 식량을 며칠만 더 남겨 줘서 내가 생각을 좀 하게 할 수 있나?"
"물론이죠. 육 대장군 쪽은 제가 시간을 끌고 싶은 만큼 끌면 되니 범 숙부님께서는 시름을 놓으세요."
월령안은 진심 어린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나 이 말에서 얼마가 진실이고 얼마가 거짓인지는 월령안 자신만 알았다.
범 가주는 대답했다. 그의 얼굴에 걸린 미소는 더욱 억지스러워졌다.
그는 줄곧 여인의 신분은 월령안에게 걸림돌일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보니, 한 여자가 강대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독립적이고 남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여인의 신분은 오히려 그녀의 가장 큰 힘이었다.
금나라 대황자 완안경을 생각해 보니 그도 월령안 때문에 먼저 행적을 노출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이 사적으로 저지른 일을 월령안이 발견하게 하여 그녀에게 반격할 기회를 준 것이다.
그리고 최 승상의 장남, 황성사의 지휘사 조왕 전하, 심지어 무림 맹주 수횡천…….
이 사람들은 모두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같이 월령안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내가 너무 월령안을 낮잡아 보았군. 월령안은 조정이 시간을 끌라고 떠밀어서 온 버리는 패가 아니었어. 월령안은 우리 범씨 가문의 강한 적이야! 미리 준비를 해야겠군…….'
범 가주가 떠나고 난 뒤, 월령안은 육십이와 진주를 불러왔다. 그들더러 범 가주가 뭘 하러 갔는지 잘 감시하라고 했다.
저녁 무렵, 범 가주를 감시하던 장병이 와서 보고했다. 범 가주는 월씨 저택에서 나선 뒤, 수비부로 갔다고 했다.
수비부는 수비가 삼엄하여 장병은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범 가주가 수비부에 들어가서 반 시진 있다가 나온 것밖에 몰랐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육십이더러 이틀 뒤에 서남 산지로 떠나겠으니 준비하라고 했다.
육십이는 씩씩하게 대답하고 눈치껏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월령안은 최근 이틀간 청주의 일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 이백 명의 병사들과 뇌씨 가문 사람들을 보낸 뒤, 육십이는 다시 소식을 보고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한마디 물어보았다.
"청주 쪽에서는 배의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나요?"
"포기하지 않았어요. 날이면 날마다 습격당할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요!"
육십이는 이 일을 떠올리면 화가 날 뿐이었다.
"월 누님, 청주 사람들은 아주 염치가 없어요. 그들은 매일 우리를 몰래 기습해요. 사람이 많으면 공격하는 척하고 사람이 적을 때면 진짜로 공격한다고요. 정말 규율이라고는 전혀 없어요. 우리는 쉴 수도 없어요. 곧있으면 우리도 당해 내지 못할 것 같아요."
육십이가 와르르 쏟아냈다. 진주가 그의 입을 막으려 해도 이미 늦었다. 억지로 존엄을 회수하려고 했다.
"큰아가씨, 일은 육십이가 말한 것처럼 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 버틸 만합니다!"
'우리는 육십이가 말한 것처럼 무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군에서 뛰어난 사람들이고 아주 능력 있고 걸출하다고요!'
진주는 뒤의 말을 큰소리로 하고 싶었다.
그러나 육십이가 미리 말한 게 있어 그는 도저히 말할 용기가 없었다.
진주는 화가 나 몰래 육십이에게 눈을 부릅떠 보였다.
'이 멍청이야! 마님께서 처음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큰일을 맡기셨는데 마님 앞에서 우리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은 것은 그렇다 해도 우리의 밑바닥까지 보인 것은 마님께 우리가 아주 무능하다는 것을 알린 꼴이잖아? 만약 마님께서 우리가 이까짓 작은 일도 처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면 앞으로 우리를 쓰시겠어?'
육십이는 억울한 얼굴에 의아한 시선으로 진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진주가 왜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다.
월령안은 웃고 싶었지만 생각해 보다가 결국 꾹 참았다. 그녀는 먼저 진주를 위로했다.
"전쟁이 아닌 일에서는 모두 억지로 버틸 필요가 없어요. 청주의 그 사람들에게 세게 나갈 것도 없고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목숨을 걸고 억지로 버틸 필요가 없어요."
월령안은 잠깐 생각하다가 물었다.
"진주, 당신네 이 사람들은 각지의 주둔군과 관계가 좋나요?"
진주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모두 알고 있고 몇 마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도움을 받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말을 할 수 있으면 됩니다. 청주를 벗어나면 그 노친네들은 손을 그렇게 길게 뻗을 수 없어요. 이틀 동안 전 방법을 대서 돈을 마련할 거예요. 돈을 가지고 각지의 주둔군을 뚫으세요. 그들이 당신들을 길을 따라다니며 보호할 수 있게 하세요."
병사는 이백 명뿐이었다. 매복한 사람들은 기습하는 전술로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넣은 뒤 손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그들에게 끊임없이 생기는 일손이 있다면?
"이러면 돈이 아주 많이 들 거예요."
진주는 불편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돈 쓸 곳이 없어서 원래는 뜻밖의 횡재 기회가 있어도 벌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러나 지금 전 그 돈을 벌려고 마음 먹었어요!"
월령안은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휘며 사악하게 웃었다.
'누군가 골탕을 먹겠군!'
육십이와 진주는 서로 마주 보고 묵묵히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범 가주는 월씨 저택에서 나온 뒤, 월령안의 손에 식량이 있다는 소식을 몰래 상업계에 퍼뜨렸다. 이튿날 아침, 상인이 찾아와 식량을 구매하겠다고 했다.
월령안은 거절하지 않고 시세의 두 배를 내놓았다. 그리고 사람마다 오백 석만 살 수 있고 먼저 돈의 전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달 뒤, 그녀의 식량이 도착하면 돈을 지불한 순서대로 식량을 나누어 주며 약속을 어겨서 가지지 않겠다고 할 시에는 월령안에게 전체 가격의 삼 할 되는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약속된 날짜가 되었는데 월령안이 식량을 내놓지 못한다면 전액 환불하고 또 추가로 전체 가격의 삼 할 되는 위약금을 지불한다는 것이었다.
몇몇 상인들은 월령안의 각박한 조건을 듣더니 화가 나 욕설을 퍼부었다.
"령안 조카, 당신네 월씨 가문은 대대손손 선행을 해 왔는데 령안 조카는 월씨 가문의 명성을 망치고 재난을 이용해 횡재를 하려는 것인가?"
"우리는 거래를 하는 것인데 저더러 선행을 들먹이시네요? 제가 선행을 한다면 여러분들과 무슨 장사를 하겠어요? 그냥 주고 말지요."
월령안은 계약서를 상대에게 던졌다.
"저한테 있는 식량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먼저 온 사람이 임자예요. 늦게 왔는데 식량을 사고 싶다면 먼저 저한테 약정금을 줄 수밖에 없어요. 있으면 팔고 없으면 약정금을 돌려 드릴게요."
월령안을 말을 바치고 상인들을 집사에게 맡긴 뒤, 떠나 버렸다. 더는 얘기할 것도, 양보할 것도 없다는 의미였다.
몇몇 성질이 나쁜 사람은 여러 사람 앞에서 계약서를 찢어 버렸다.
"먼저 전액을 지불하고 한 달 뒤에야 식량을 받을 수 있다니. 이런 장사를 하는 사람은 멍청이지."
남은 상인들은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청주의 시중에는 식량이 없었다. 지금은 손에 식량이 있는 사람이 갑이었다.
하루 만에 시중 식량 가격은 세 배로 뛰었다. 그들이 두 배의 가격으로 산다고 해도 팔 때는 손해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들은 시간을 더 끌었다가 가격이 더욱 높아진 뒤에 팔면 더 많이 버는 것이었다.
누구도 멍청이가 아니었다. 밖의 식량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르는데 월령안은 두 배의 가격으로만 팔았다. 이 가격은 아무리 높아도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지금 전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적은 돈이 아니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돈이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돈은 유동적인 것이었다. 모두 장사에 돈을 투자해서 돈 놓고 돈을 벌었다. 이렇게 큰돈을 꺼내서 무상으로 월령안이 한 달간 쓰게 한다고 생각해 보니 그들은 배가 아팠다.
몇몇 상인들은 계약서를 들고 몰래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일제히 계약서를 들고 갔다. 집으로 돌아가 고려해 본다는 것이었다.
집사는 예의 바르게 배웅했다.
"우리 큰아가씨께서는 성안이 너무 시끄럽다고 성 밖의 주택에 가서 묵으실 것입니다. 모레 아침에 가서 단기간 안에는 돌아오시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께서는 될수록 모레 아침 전까지 생각을 마치시기 바랍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저희들도 식량을 준비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사람들을 입구까지 바래다준 집사는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듯 또 한마디 덧붙였다.
"아참, 어제 범 가주께서도 우리 큰아가씨를 찾아오셔서 식량을 사겠다고 하셨습니다. 범 가주께서도 돌아가서 생각해 보시겠다 하셨고요."
'간상배!'
상인들은 집사의 말을 듣고 화가 나 욕을 퍼붓고 싶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충분히 간사하다고 자부했으니 월씨 가문이 더욱 간사했다!
'이건 우리를 핍박하는 거잖아!'
하필 그녀의 손에 그들이 원하는 식량이 있었으니 그들은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돈을 안고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화가 난다!'
상인들은 웃는 얼굴조차 내보이지 못하고 하나같이 무거운 기색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비록 말로는 집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겠다고 했으니 실은 월씨 저택을 떠난 뒤, 몰래 한곳에 모여 대책을 상의했다.
"월령안 손에는 반드시 식량이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없다고 해도 식량을 살 방법이 있겠지. 몇 년 전에 그녀가 높은 가격으로 식량을 사들여 식량의 가격을 일 할 높였던 적이 있어."
"내가 알아보았는데 우리 청주는 재해를 입지 않았어. 그러나 범씨 가문의 식량 창고는 비어 있고! 우리 청주가 정말로 식량이 없는 건 맞아. 적어도 반년 안에 우리 청주는 식량이 부족해질 거야. 만약 우리가 미리 식량을 손에 넣고 있다가 가격이 높을 때 판다면 틀림없이 많은 돈을 벌게 될 거야."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전액을 지불하고 한 달 뒤에 식량을 가지는 것인지 아니면 먼저 약정금을 내고 시세를 살피는 게 맞는지야."
"지금 월씨 가문이 식량을 움켜쥐고 있어 발언권도 세지. 우리도 좋기는 동맹을 이루어 월씨 가문과 단독으로 거래를 하지 않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은 반드시 우리일 것이야."
상인들은 모여서 서로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결국 상인들은 동맹을 이루어 모든 사람들이 전액이 아닌 약정금을 지불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하면 그들은 큰돈을 먼저 투자할 필요도 없이 식량을 받게 될 것이고 때가 되어 누가 먼저 식량을 받게 되어도 똑같게 나누면 되었다.
상인들은 사적으로 상의한 뒤, 약정금만 내고 월령안에게 그들의 돈으로 돈을 낳을 기회를 주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그날 저녁, 월령안은 계약서 열 부와 계약서와 함께 보내온 전액을 받았다.
지금 식량의 시세는 일 석에 세 냥이었다. 오백 석은 천오백 냥이었다. 월령안의 가격은 한 배를 뛰어 오백 석이면 삼천 냥이었다.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죠. 이 오천 석 식량은 분명 범씨 가문이 주문한 거예요. 다행히 제가 한 사람에 오백 석만 살 수 있다는 한계를 걸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이 수법때문에 그렇게 많은 식량을 내놓지 못했을 수도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