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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21)화 (621/1,004)

621화 숙부님께서 먼저 하셨는걸요

적어도 시중에는 식량이 없었다.

육십이는 의아하게 말했다.

"월 누님, 성 밖의 마을에는 재해가 들지 않았어요. 제가 알아보니 청주는 연속 삼 년 모두 풍년이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청주에 어떻게 식량이 없는 걸까요?"

"그건 금나라의 대황자가 왔기 때문이죠!"

월령안의 얼굴에는 약간의 억지웃음과 근심이 배어 있었다.

"네?"

육십이는 멍해졌다. 그는 어리둥절하게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청주에 곡식이 부족한 것이 그 완안경과 무슨 상관이에요?"

"왜냐하면 청주에는 철광산이 없기 때문이에요."

월령안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육십이의 의아한 시선을 무시하며 이 화제를 멈추고 말을 돌렸다.

"밖에 제가 높은 가격으로 진귀한 약재를 사들인다고 퍼뜨리세요. 식량으로 대가를 지불할 수도 있다고요!"

육십이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난 왜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지? 월 누님은 방금 전에 식량 얘기를 하지 않았었나? 왜 갑자기 약재 쪽으로 흘러갔지?'

"월……."

"네, 큰아가씨."

육십이를 감시하는 장병 진주(陳州)는 육십이보다 앞서 먼저 대답했다. 그리고 육십이의 입을 틀어막고 육십이의 뜻에 반해 그를 끌어냈다.

육십이는 마치 괴롭힘을 당하는 억울한 소녀처럼 발버둥 쳐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하였다.

집사는 그녀에게 조정의 일에 개입하지 말라고, 특히 금나라의 일에 개입하지 말라고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월령안의 욕심 없이 담담한 눈매를 보는 순간, 집사는 입을 달싹이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장사에는 국경이 없었지만 장사꾼에게는 있었다.

그들 큰아가씨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하면 되는 것이다!

육십이는 진주에게 억지로 끌려나간 뒤, 한참 버둥거리다가 다시 자유를 되찾았다. 그는 불안하게 말했다.

"진주, 다시 전쟁이 시작되려는 건가?"

"이건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큰아가씨의 말을 그대로 편지에 써서 대장군께 알리면 돼."

진주는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석탄처럼 검은 얼굴에서 근심과 심각함이 흘러나왔다.

청주의 상황은 그들의 상상보다 더욱 복잡했다.

조정이 청주 하나를 손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려운 것은 그들이 일단 청주에 손을 쓰면 북요와 금나라는 모두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 가서 편지를 쓸게!"

육십이도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았다. 얼굴은 긴장으로 가득했고 엄숙하기 그지없었다.

육십이는 편지를 쓰고 난 뒤, 바로 암위의 손에 넘겼다.

"가장 빠른 속도로 대장군의 손에 전해 주거라. 편지에는 마님께서 대장군께 하시는 말씀도 있다."

암위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응한 뒤, 편지를 가지고 떠났다.

그때, 월려안에게 한 하인이 보고하러 왔다. 범 가주가 만나기를 청한다는 것이었다!

"만나겠다고?"

월령안은 이 말을 듣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내가 소식을 퍼뜨리자마자 범 가주가 찾아오다니. 이 소식은 참 빠르군.'

범 가주는 식량 때문에 온 것이었다.

월령안이 식량으로 진귀한 약재를 바꾸겠다고 말을 하자마자 범 가주가 찾아왔다.

그는 시장 가격의 두 배로 월령안 수중의 식량을 구매하겠다고 했다. 얼마든지 자기네 범씨 가문에서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월령안은 거절하지 않고 최고가를 불렀다.

"열 배!"

"령안 조카가 말을 잘못한 것이 아닌가?"

범 가주는 화를 내지 않고 여전히 웃고 있었다. 다만 얼굴에 걸린 미소에는 한기가 서려 있어서 보는 사람이 소름이 돋게 했다.

월령안은 활짝 웃고 비꼬았다.

"범 숙부님, 전 올해 열여덟 살이랍니다."

범 가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월령안은 자기의 머리를 가리키며 생글생글 웃었다.

"전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았어요. 저한테는 식량이 있고 숙부님께서는 식량이 부족하시지요. 진귀한 물건은 가격이 오를 때까지 쌓아 둘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가격을 높게 불러 돈을 벌지 않으면 언제 벌겠어요?"

"너희 월씨 가문은 항상 선행과 적선을 즐겨 했지. 이번에 청주는 재해를 입었으니 범 숙부 나는 네가 식량을 낮은 가격에 팔 줄 알았어. 그러나……."

범 가주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나가는 말처럼 흘렸다.

"만약 청주의 백성들이 령안 조카 네 손에 식량이 있는데도 낮은 가격으로 팔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 우리 범씨 저택 대문 앞에 모인 사람들이 너희 월씨 저택 대문을 둘러싸지 않겠나?"

"그래서 제가 지금 범 숙부님께 알려 드리는 것이잖아요. 전 올해 열여덟 살이지 쉰여덟 살이 아니라고요!"

월령안은 가볍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제가 낮은 가격으로 식량을 청주에 백성들에게 판다면 대체 왜 당신네 범씨 가문의 식량 창고를 통하겠어요? 저에게 스스로 가게를 열지 못할 이유가 있나요? 우리 월씨 가문이 청주에 가게가 없다고 해도 노점을 열지 못하겠어요? 왜 식량을 낮은 가격으로 숙부님께 팔아야 하죠?"

범 가주는 올해 쉰일곱 살이었다. 월령안이 나이를 들먹인 것은 범 가주를 비꼬는 것이 분명했다.

범 가주의 얼굴의 미소가 굳어졌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는 자세를 취했다.

"령안 조카의 이 말이 있으니 시름이 놓이는군. 지금 밖의 사람들에게 말을 하겠다. 령안 조카 네 손에 식량이 있고 낮은 가격에 팔겠다고 한다고."

"그럼 저는 범 숙부를 배웅하지 않겠어요."

월령안은 의자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범 가주의 위협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녀가 입성한 날, 수많은 눈들이 그녀가 식량을 가지고 입성하는지 아닌지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범씨 가문에서 말을 한다 해도 밖의 사람은 믿을까?

보통 백성들은 어쩌면 맹목적일 수도, 어쩌면 우롱하기 쉬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식량에 관계된 일에 대해 백성들은 절대 범씨 가문이 말하는 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

백성들이 믿는다 한들 또 어떡하리?

그녀가 식량을 조금 내놓는다고 청주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을까?

없었다!

관부와 범씨 가문이 대량의 식량을 내놓아 청주의 백성들이 식량이 부족하지 않다고 믿게 하지 않는 이상, 청주의 백성들은 계속해서 두려워할 것이고 필사적으로 식량을 저장할 것이다.

청주는 여전히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월씨 가문은 청주에서 이 저택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청주의 혼란은 그녀에게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범씨 가문은 달랐다. 그 몇몇 노친네는 달랐다.

청주는 그들의 뿌리였다. 청주가 흔들리면 그들도 끝나는 것이었다.

후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들은 절대 청주가 혼란에 빠지게 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식량을 풀어 혼란을 잠재울 것이다.

애초부터 맨발인 사람은 신발을 신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월령안은 범 가주의 협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월령안에게 아무런 수단도 통하지 않자 범 가주도 조급해졌다.

"령안 조카, 뭘 원하는 것인가? 네 조건을 말해 봐!"

"범 숙부님의 건망증은 너무 심하네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제 손에 있는 식량은 시장 가격의 열 배로 팔겠다고 말했어요."

범 가주가 그녀를 나이가 어리다고 괴롭히니 그녀가 자기를 나이가 많다고 괴롭혀도 탓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령안 조카, 장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란다! 네가 이 가격에 팔면 시장 가격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월령안이 가격을 딱 잡아떼는 것을 보자 범 가주의 말투는 오히려 부드러워졌다.

'보아하니, 월령안은 우리가 정말로 식량이 부족하여 자기 손에 있는 식량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군.'

월령안은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범 숙부님께서 먼저 값어치가 별로 나가지 않는 약재를 터무니없는 가격에 파셨는걸요. 숙부님에 비하면 저는 아직 멀었죠."

"령안 조카, 나는 그때 너에게 강요한 적이 없다. 네가 원해서 산 것이지."

'여자애는 여자애구나. 눈앞의 이까짓 이익밖에 보지 못하고. 돈을 아무리 잘 벌어도 큰일은 못 할 것이다. 그래서 월씨 가문이 조정을 위해 이토록 오랫동안 목숨을 걸었지만 여전히 소상인이지.'

"저도 범 숙부님에게 강요하지 않았어요! 장사는 말이죠. 자진해서 사려고 하는 사람과 자진해서 팔려고 하는 사람이 만나 하는 것이지요. 저는 가격을 불렀으니 숙부님께서 가격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면 사시고 적당하지 않다고 여기시면 사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거래가 성사되지 않아도 인의(仁意)는 남아 있죠. 앞으로 적합한 거래가 있다면 저를 보살펴 주세요."

월령안은 장사꾼의 입담을 보이며 뭐든 듣기 좋게 말했다. 그러나 가격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범 가주도 더 이상 치근거리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말했다.

"령안 조카의 손에 식량이 얼마나 있나? 적다면 내 눈에 들지 못해."

"삼십만 대군이 이 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은 숙부님 눈에 들 수 있을까요?"

월령안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까발렸다.

범 가주의 눈이 순간 반짝거렸다.

"령안 조카에게 어떻게 그렇게 많은 식량이 있나?"

월령안은 두 손을 늘어뜨리고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는 육장봉이 돌아오자마자 절 내칠 줄 몰랐죠. 식량을 잔뜩 쌓아두고 팔지 못하고. 전 이 식량들을 제 손에서 썩힐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 보니 높은 가격에 팔 수 있겠네요. 범 숙부님께서 제 손에 있는 이 식량이 눈에 차지 않으신다면 전 육 대장군께도 팔 수 있어요. 그가 청주의 상황을 아니 꼭 살 거예요."

월령안은 그녀가 청주와 금나라의 거래를 알고 있는 사실을 범 가주가 알게 되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보통 백성들은 사정을 모른다지만 그녀는 '재해'의 주동자로서 청주가 재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청주는 연속 풍년을 거두었으나 성에는 식량이 없었다. 이 식량이 어디로 간 것인지 그녀는 짐작하지 못할 수 없었다.

"령안 조카와 육 대장군의 관계는 아주 좋은 것 같던데? 이번에 데려온 사람들은 모두 육 대장군의 사람이지?"

범 가주는 월령안의 일거일동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는 월령안을 꿰뚫어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월령안이 한 말도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었다.

"미모는 여인의 가장 큰 무기지요. 범 숙부께서는 육 대장군께서 저에게 예물을 다시 보내 주시고 저 때문에 장씨 가문과의 혼인을 거절한 것을 모르시나요?"

월령안의 목소리는 가볍고도 맑았다. 눈을 위로 치켜뜬 것이 소녀 특유의 호탕함과 당당함을 지녔다.

범 가주는 일부러 가볍게 농담을 했다.

"령안 조카, 왜 바로 육 대장군에게 시집가지 않았나? 대장군께서 보호해 주시는데 무슨 일을 못할까?"

"범 숙부님께서 지금 저를 비웃으시는 것이지요. 제가 정말 육 대장군께 시집간다면 대장군께서 절 이토록 아끼시겠어요? 사람을 보내 저를 보호하시겠어요? 제가 밖에서 함부로 소란을 피우게 내버려 두시겠어요? 전 범 숙모님께서도 과거 상업계에서 여장부처럼 가업을 홀로 이끄셨죠. 그러나 범 숙부님께 시집가신 뒤로, 전 상업계에서 다시는 숙모님을 뵌 적이 없어요."

월령안은 아랫사람의 자세로 반은 진지하게, 반은 농담처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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