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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20)화 (620/1,004)

620화 굶어 죽게 하려는 속셈인가!

"어쩌면 대장군께서는 이것이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시녀는 현음 장공주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필요 없다!"

현음 장공주는 눈을 감고 갖은 고초를 겪은 시선을 숨겼다.

"주나라의 수호신에게는 북요인에게 몸이 더럽혀진 어머니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장공주 마마!"

시녀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마마,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건 사실이다!"

현음 장공주는 눈을 뜨고 시녀를 바라보며 굳센 시선으로 말했다.

"난 내 과거를 부정하지 않는다. 내 선택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난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지도 않고 그들이 날 모욕하는 것은 더욱 신경 쓰지 않아."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 아이를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내 아이를 모욕하는지는 신경 쓰인다.'

현음 장공주는 뒤의 말을 하지 않았고 연약함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굳센 의지로 말했다.

"나는 주나라의 공주다. 주나라가 나의 버팀목이 되어 준단다. 난 누구의 동행도 필요 없어. 내가 선택한 길을 홀로 가겠다."

"장공주 마마……."

시녀는 울면서 옆에 쓰러졌다.

현음 장공주는 울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에는 굳센 의지뿐이었다!

육장봉은 몰래 숨어서 쓸쓸하게 돌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도도하고 매몰찬 모습은 처음과 똑같았다. 사람들 앞에서나 뒤에서나 항상 허리를 꼿꼿이 펴고 완벽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조각상처럼 감정이 없이 차가웠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차가움 아래에 자기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육장봉은 지하 궁전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현음 장공주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서둘러 북요를 떠나갔다.

주나라의 영역에 들어선 육장봉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곧 어머니가 영광스럽게 주나라로 돌아오는 것을 맞이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찬사를 받을 자격도, 가장 큰 선물을 받을 자격도 있었다.

"대장군!"

육일은 진작에 사람을 데리고 양국이 교섭하는 곳에서 육장봉을 맞이했다.

"북요에서 아직 담판을 위한 사신을 새로 파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모든 것이 장악된 상황입니다. 십이가 소식을 전해왔는데 마님께서는 무사히 청주에 도착하셨고 수 맹주도 마님에게 쫓겨나 경성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마님께서는 청주에서 모든 것이 순조로웠답니다."

"그래."

육장봉의 발걸음을 갑자기 멈추더니 육일을 바라보았다.

"장군?"

육일은 전혀 무방비 상태였던지라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다. 육일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서신."

육장봉은 굳은 얼굴로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네, 마님의 회신입니다."

육일은 다급히 편지를 꺼냈다. 체온이 묻어 있는 편지였다.

육장봉은 눈살을 찌푸리고 급히 열어보지 않았다. 그는 편지를 품 안에 넣고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가 훌쩍, 말에 올라탔다.

"돌아간다!"

육일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장군께서 급히 서신을 달라고 하신 건 왜지? 어쨌든 돌아가서 보실 건데 돌아가서 달라고 하시면 안 되나? 놀라 죽을 뻔했네.'

"형님, 속상해하지 마세요!"

육삼이 앞으로 다가가 육일의 어깨를 다독였다. 육일이 반응도 보이기 전에 육삼은 훌쩍 떠나갔다.

육일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방금 전에 육삼이 한 말은 무슨 뜻이지?'

병영으로 돌아온 뒤, 육 대장군은 그들이 경각심을 잊었다고 질책하면서 전원이 무거운 짐을 진 채, 십 리를 뛰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육일은 이십 리를 뛰어야 했다. 육일은 그제서야 육삼이 말한 '속상해하지 마세요'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뜻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정말 너무 힘들다!'

육장봉은 병영으로 돌아온 뒤, 월령안의 회신을 급하게 보지 않고 목욕하고 식사를 마친 뒤에야 월령안의 회신을 열어 보았다.

그는 편지에 쓰인 짤막한 내용인 '읽었음.'을 보고 표정의 변화가 없는 얼굴로 편지를 잘 접어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책상 위의 나무 함에 넣었다.

회신이 있다는 것은 월령안이 그의 편지를 봤다는 의미였다.

이건 진보였다.

육장봉은 한기를 안고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육장봉은 옷을 단정히 입고 병영을 순찰했다. 활기가 없는 병사들을 보자 육장봉은 두말하지 않고 한 바퀴 더 뛰도록 벌을 내렸다.

이번에는 짐을 짊어지고 행군하게 하지 않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게 했다.

다른 사람들은 소식을 듣고 하나같이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육장봉은 상벌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활기차게 잘 해내자 그도 트집을 잡지 않았다.

물론, 육일을 제외하고 말이다.

육장봉이 병영을 순찰하고 돌아오다가 기운이 넘치는 육일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육일을 힐끔 훑어보고 말했다.

"기운이 좋아 보이는구나. 연습장으로 가자. 나와 몇 수를 겨뤄 보자."

육일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장군, 제가 잘못했어요! 전 마님의 서신을 품에 두고 있지 말았어야 했어요. 제발 놔주세요!'

퍽!

연습장에서 육일은 육장봉에게 한 번, 또 한 번 뒤엎어졌다.

정면으로 넘어지고, 뒤로도 넘어지고 옆으로도 넘어지고 또 여러 가지 방식으로 넘어졌다.

매번 넘어질 때마다 육일은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바로 대장군에게 끌려가 계속해서 넘어졌다.

"대장군, 이제는 정말 안 되겠습니다!"

또 바닥에 엎드린 육일은 이미 절망 상태였다.

"아니, 넌 할 수 있다."

육장봉은 앞으로 다가가 육일을 끌어서 일으켰다.

"자, 계속하자!"

육일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대……."

바로 이때, 육삼이 나타났다.

"장군, 청주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육장봉은 육일을 풀어 주고 육삼의 손에서 편지를 받았다. 보낸 사람이 육십이인 것을 보고 육장봉은 바로 편지를 찢었다.

* * *

월령안은 상인들이 반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연회가 끝난 다음 날, 청주에서 가장 큰 객잔과 다루 밖에는 월씨 가문에서 만 칠천팔백육십이 냥을 모금했고 피해를 입은 청주의 백성들에게 기부한다는 종이를 붙였다.

종이에는 육장봉의 이름이 단독으로 한 열을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굵은 글씨로 특별히 강조했다. 육 대장군의 마음이 청주에 묶여 있어서 청주가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에 사적으로 청주의 백성들에게 만 냥을 기부한다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금나라 대황자 완안경의 천 냥, 조운충 백작의 천 냥, 범씨 가문 천 냥, 월씨 가문 천 냥이었다. 기부한 다른 사람들은 금액을 쓰지 않고 이름만 있었다.

번화가에 종이를 붙이는 것 말고도 월씨 가문에서는 많은 돈을 뿌려 심부름꾼들더러 이 일을 떠벌리게 했다. 좋은 말로 육 대장군과 조 백작 나리의 선행을 칭찬하고 반드시 돈을 기부한 일을 사실화시키라고 했다!

완안경 쪽은 월령안이 이미 사람을 데리고 두어 마디 일러두었다. 주나라와 금나라는 아직까지 우호적이었다. 월씨 가문과 금나라는 최근 몇 년 동안에도 거래가 있어 정으로나, 도리로나 모두 이런 시기에 완안경에게 밉보일 수 없었다.

종이가 붙자 청주 전체가 들끓었다.

"청주 성 밖의 촌에 재해가 들었어?"

"난 왜 못 들었지? 언제 일이래? 봄 농사에 문제가 생겼나? 이번 계절의 벼를 거두지 못하나?"

"어쩐지. 새 벼를 심을 시기인데 햅쌀이 시중에 올라오지 않았지. 아마도 재해를 입었나 보군."

"왜 전에는 소식이 전혀 새지 않았지? 틀림없이 관부에서 소식을 잠재우고 말하지 못하게 했을 거야!"

"내 일곱째 이모가 계시는 이향진(夷香镇) 아래의 미향촌(米香村)에는 큰 재해가 들었다더라고. 논이고 산이고 할 것 없이 전부 말라 죽었다던데. 일곱째 이모가 말하기를 마을 밖에서 관리 나리가 사람이 못 나가게 지키고 있대. 사람이 나가면 재해를 입은 일을 숨길 수 없을까 두려워한 거지.

이모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대. 집에는 금방 돌이 지난 애가 둘이나 있었으니. 어른들은 풀을 먹고 나무껍질을 뜯어도 되었지만 애들은 풀을 먹을 수가 없잖아. 이모는 산나물을 캐는 틈을 타 산으로 숨었다가 산 두 채를 넘어서 성에 들어와 나한테서 곡식을 꿔 갔다니까. 그 모습은 참…… 불쌍했어!"

"정말 재해를 입은 건데 관부에서는 여태껏 말하지 않고 숨긴 것이라는 건가?"

구경하던 백성들은 심부름꾼들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안색이 창백해졌다.

"관부에서 어떻게 말을 하겠어? 우리 여기 부모관들은 매일같이 우리들더러 세금이나 내라고 핍박하는데 돈이 아까워 어떻게 재해를 구원하겠어? 만약 재해 정황을 보고한다면 세금을 징수하지 못하잖아."

심부름꾼들은 종이 앞에 서서 고개를 저으며 마음 아픈 모양새를 취했다.

바로 이때, 거리에는 갑자기 자루와 광주리를 든 백성들이 몰려왔다.

"어서, 어서 가서 쌀을 사! 몇 군데 식량 가게의 쌀이 다 떨어졌어!"

"어서 집으로 돌아가 쌀 자루를 가져야겠어. 더 늦었다가는 쌀 부스러기도 사지 못할 거야."

"하늘이시여! 어쩐지 요즘에는 쌀을 아예 살 수 없고 심지어 잡곡도 한 번에 두 말밖에 살 수 없다 했어. 무슨 일인가 했네. 우리 청주가 재해를 입은 것이었구먼. 그 개 같은 관리들이 숨기고 보고하지 않았다니. 이건 우리를 굶어 죽게 하려는 속셈인가!"

대다수 백성은 종종 맹목적으로 대중의 의견을 따른다.

그들은 사건의 진실을 모르고 또 진실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주변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행동까지 하는 것을 보자 대다수 사람들은 거기에 따랐다. 남들은 다 하는데 자기만 못하면 손해를 볼까 봐 몹시 두려웠던 것이다.

특히 식량 사재기는 그 누구도 늦출 수 없었다. 늦으면 식구들이 굶어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종이가 붙은 지 반나절 만에 청주 식량 가게는 소문을 듣고 온 백성들로 가득했다.

커다란 식량 가게는 배열해 놓은 식량 말고도 남은 식량이 거의 없었다. 식량 창고도 텅텅 비었다.

식량 창고에 식량이 없었다. 수많은 백성들은 돈이 있어도 식량을 사지 못했다.

이건 청주가 재해를 입어서 더 이상 식량이 없다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증명하는 것이었다.

청주성 전체의 백성들은 모두 미친 듯이 방법을 대서 사람을 끌고 가서라도 식량을 구매했다. 더욱 분노한 백성들은 범씨 가문과 지주부를 둘러쌌다.

청주에서 가장 큰 식량 상인은 범씨 가문이었다. 청주의 식량 가게의 구 할은 범씨 가문의 것이었다. 백성들은 밖에 둘러싸서 범씨 가문과 동 지주더러 해명을 하라고 했다. 그들은 진실을 알고 싶고 또 식량도 사야 한다고 소리를 쳤다.

종이가 붙자 월령안은 사람을 시켜 성안의 기척을 살폈다. 성안의 상황을 알게 된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청주는 역시 식량이 없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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