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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17)화 (617/1,004)

617화 얼마를 내실 건가요?

집사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다가가 조운천과 부딪힌 호위에게 예를 올렸다.

"병사 나리께서 억울함을 당하시게 했습니다. 이 일은 제가 반드시 사실대로 큰아가씨께 보고할 것입니다. 나리께서 억울함을 그냥 당하지 않게 말입니다."

"괜찮소."

호위는 어깨를 툭툭, 털더니 차가운 얼굴에 약간 잔혹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것도 마님을 보호하다 다친 것에 속하겠지? 마님께서는 분명 추가로 보수를 주시겠지?'

'소인배! 간상배! 염치없군!'

다른 호위들은 일제히 들이받힌 호위를 노려보았다. 그들은 이 기회를 놓친 것이 너무 분했다.

'우리도 들이받히고 싶다고!'

"허허!"

들이받힌 호위 얼굴의 미소는 더욱 커졌다. 어찌나 헤벌쭉 웃는지 어금니마저 드러났다.

인상이 험상궂어 그 웃음은 보는 사람들의 모골이 송연하게 했다. 조운천을 따라서 함께 온 하인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이 사람들, 너무 무섭잖아! 다행히 우리가 초대장을 가져와서 억지로 쳐들어가지 않았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하인은 겁을 먹은 채, 몸을 떨며 동 지주를 힐끔 바라보았다.

'역시, 갚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시기가 안 된 것이니라.'

동 지주가 월령안을 문밖에서 거절했을 때, 월령안이 어엿한 지주인 그를 문밖에서 쫓아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 지주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 * *

월씨 저택 대청.

조운천은 화가 잔뜩 난 채로 대청에 들어갔다. 몇몇 눈치 빠른 사람들이 그를 보고 분분히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청주에서는 조 백작의 체면을 세워 줘야 했다.

월령안은 대청에서 완안경과 말을 하고 있었다. 조운천이 들어온 것을 보자 월령안은 완안경에게 사과의 말을 하고 일어나서 조운천더러 자리에 앉으라고 인사했다.

조운천은 울화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완안경과 월령안이 비슷한 옷을 입은 것을 보고 안색이 변했다.

그는 몰래 이를 악물고 울화를 꾹 참은 채, 상석의 유일한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완안경에게 공수(拱手)했다.

"대황자."

완안경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은 하지 않았다.

연회는 진작에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완안경에게 말을 걸었지만 완안경은 월령안 말고 누구도 상대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이 연회에서 월령안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와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조운천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완안경이 자기를 상대하지 않자 체면이 깎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탁자 위의 먹은 흔적이 있는 술안주를 힐끔 훑어보더니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내가 늦게 왔나 보군!"

연회청은 침묵에 잠겼다. 월령안도 조운천을 도와 상황을 수습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가 입을 열지 않자 다른 사람들도 입만 달싹일 뿐, 결국 말을 꺼내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상석에 앉아 있는 범씨 가문에서 입을 열지 않았다.

범씨 가문은 금나라와의 거래를 따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조 백작의 체면을 세워 줘야 했으나 금나라 대황자와 월령안의 체면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라.'

연회청의 분위기는 아주 이상했다.

조운천은 화가 나 하마터면 상을 뒤엎을 뻔했다. 완안경은 금나라의 대황자였다. 그들은 지금 금나라에 바라는 것이 있으니 대황자가 그의 체면을 봐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월령안 이 계집애가 무슨 용기로 감히 나에게 무안을 주는 것이냐? 내가 오늘 월령안을 혼내지 않는다면 이 청주의 촌뜨기들은 우리 조씨 삼형제가 월령안을 무서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조운천은 분노를 억누르고 화가 난 채로 월령안을 노려보며 비꼬았다.

"그러나 이 일은 내 잘못은 아니네. 월씨 가문의 연회에 들어오기가 하도 어려운 것을 어찌하겠나? 월 가주, 동 지주는 아직도 밖에 있네. 월 가주께서는 내 체면을 봐서라도 동 지주가 들어오게 해 줄 수 없겠나?"

월령안이 자기의 규칙을 깨뜨리고 동 지주가 들어오게 한다면 그에게 굴복하는 것이었다.

월령안은 미소를 띠고 급히 말을 하지 않았다.

월씨 가문의 하인은 상황을 알아채고 바로 앞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월령안에게 바깥의 일을 보고했다.

월령안은 듣고 나서 얼굴의 미소를 거두었다.

"동 지주께서 우리 월씨 가문의 초대장을 잃어버리신 것은 틀림없이 저 월 아무개가 연 연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조 백작 나리께서 왜 동 지주께 난감하게 구시는지요?"

"월 가주, 내 체면을 봐주지 않겠다는 말인가?"

조운천은 술 주전자를 들고 거세게 내팽개쳤다. 술이 튀면서 월령안의 얼굴에도 몇 방울 묻었다.

완안경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월령안은 그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녀는 도움이 필요 없었다!

월령안은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가볍게 닦았다. 술을 닦고 나서야 그녀는 고개를 들어 조운천은 바라보았다.

"조 백작 나리께서는 무슨 자신감으로 저한테서 체면을 찾으시는 겁니까? 저 월령안이 나리의 체면을 봐줘야 합니까?"

"월 가주, 방자하기 그지없군! 월 가주에게 한마디 일깨워 주지. 여긴 청주지 변경이 아니야. 당신이 여기에서 죽어도 변경의 사람들은 상관할 수 없다고."

조운천은 완안경이 입을 열지 않자 망설이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협박했다.

'내가 오늘 월령안의 기세를 꺾어 놓지 않는다면 앞으로 청주에서 누가 우리 삼형제를 안중에 두겠어?'

월령안은 냉소를 지으며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조 백작 나리, 저도 한마디 일깨워 드리지요. 실력이 비슷해야 체면을 논할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니면 제가 적선하기를 구걸하는 것이지요!"

'조운천의 체면을 봐달라고? 이 몇몇 노친네들은 이미 날 여러 번 죽이려고 했으면서 나한테서 체면을 찾아? 왜 죽으러 가지 않고?'

황제에게 떠밀려 청주의 이 세 노친네와 겨루게 된 월령안은 진작에 청주의 이 조씨 삼형제와 원수진 사이였다.

특히 조운충이 살수를 매수해 그녀를 죽이려고 한 뒤부터 월령안은 청주의 이 세 늙은이와 겉으로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뒤에는 황제와 조정의 지지가 있어 조씨 삼형제를 무시하고 조운충을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청주의 상인들은 그럴 수 없었다. 특히 범씨 가문은 더욱 그랬다!

월령안을 낮잡아볼 수 없고, 또 금나라 이 상업 영역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범 가주는 조씨 삼형제와 더욱 끈끈해질 것이다.

조씨 삼형제의 배후에는 북요의 지지가 있었다. 만약 금나라에서 장사를 하지 못한다면 범씨 가문은 장사 중심을 북요로 옮길 수 있었다.

그래서 월령안이 사정을 봐주지 않고 조운천의 체면을 짓밟고 난 뒤, 범 가주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바로 상황을 수습하러 나섰다. 그는 자기가 늦게 왔다는 이유로 벌주를 받았다.

나라에서 가장 높은 관직인 승상이라도 직속상관보다는 못한 법. 다른 상인들도 월령안과 함께 돈을 벌고 싶었지만 청주의 토황제에게 밉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범 가주가 먼저 입을 열자 하나하나 각종 이유를 대서 홀로 벌주를 마셨다. 그들은 월령안과 조운천 사이의 갈등이 두루뭉술 넘어가게 하려고 애썼다.

다행히 월령안도 정성껏 준비한 연회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분위기를 타서 잔을 들고 사람들과 함께 술을 나눠 마셨다. 또 따로 조운천에게 술을 권했다.

"조 백작 나리, 미래를 위하여."

조운천은 자기 손녀보다 몇 살 많지도 않은 월령안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경에도 칼을 잡을 수 있으니 좋은 환경에서는 빛을 발할 수 있겠구나. 염황은 역시 염황이야. 그가 키운 사람은 역시 남다르군. 어린 황제가 월령안을 좋게 본 것도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야.'

조운충은 가슴이 갑갑했지만 완안경의 체면을 봐줘야 했다. 월령안이 판을 차렸으니 그도 협조적으로 잔을 들어 이 일을 넘겨야 했다.

'앞날이 길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오래 구른 상인인 만큼 요물이었다. 바로 화제를 돌려 조운천과 월령안이 다시 마주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월령안도 의도적으로 협조했다. 연회청의 분위기는 무척 매끄러웠다. 연회청 밖에서는 악사와 무낭(舞娘 - 춤 추는 여인)들도 열심히 공연을 하고 있었다.

술이 세 바퀴 돌자 연회의 분위기도 고조되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월령안은 오늘 연회를 연 이유를 말했다.

청주가 재해를 입어 백성들이 고생하고 있었다. 그녀는 상인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쌀과 곡식을 내놓아 피해를 입은 백성들을 돕자고 했다.

월령안이 말을 마치자 연회청은 또 고요해졌다. 자리에 있는 상인들은 하나같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특히 상석에 앉은 몇몇 상인들은 몸을 잔뜩 긴장시켰다.

'월령안은 지금 동 지주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건가? 의연금까지 모은다면 청주는 재해를 입지 않아도 입은 것이 되는 거다. 그리고 지주는 알면서 보고하지 않은 것이 된다. 동 지주는 끝장난다!'

월령안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지 못한 듯, 계속해서 말했다.

"저도 여러 숙부님들께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며칠, 많은 사람들이 우리 월씨 가문이 예전에 베풀었던 작은 은혜에 감사하며 한낱 어린 여자애인 제 앞에 무릎을 두 시진씩 꿇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지금 재해의 피해를 크게 입어 자식까지 팔아야 할 지경에 이른 사람들을 떠올리자 제 마음은 너무 괴로웠습니다. 저 혼자만의 능력은 한계가 있어 많은 사람을 돕지 못하니 이렇게 염치를 무릅쓰고 여러 숙부님들을 모아 함께 쓸만한 방법을 상의하려는 것입니다."

말을 마친 월령안은 일어서서 먼저 범 가주에게 예를 올렸다.

"범 숙부님, 숙부님께서는 저와 이웃이고, 또 요 며칠 사람을 많이 보내 우리 집 상황을 보셨으니 저를 이해하실 수 있으시죠? 또 저를 지지해 주실 거죠?"

많은 상인들은 큰돈을 들여 관리를 매수하면 했지 작은 돈을 들여 선행을 하여 좋은 명성을 얻는 것은 싫어했다.

그녀가 오늘 사람들더러 돈을 지원하라고 핍박하는 것이니 이 사람들은 속으로 썩 내키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바로 범씨 가문을 끌어내야 했다.

범씨 가문이 그녀를 괴롭혔으니 그녀 대신 뒤집어쓰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닌가?

범 가주는 월령안이 사람들 앞에서 두 가문의 사적인 악연을 까발릴 줄 몰랐던지라 잠깐 굳어졌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령안 조카가 선행을 하는 것인데 이 범 숙부가 당연히 지지해야지! 다만, 우리 청주에 무슨 재해가 있다고 그러나?"

"범 숙부님은 가문도 크고 사업도 크게 하시니 당연히 재해를 입지 않으셨겠지요."

월령안은 한가하게 범 가주와 청주의 재해에 관해 얘기를 할 틈이 없었다. 그녀는 완안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황자께서 방금 전에 청주 백성들을 위해 천 냥을 내놓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범 숙부님께서는 얼마를 내실 건가요?"

그녀는 원래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권세를 빌려야 할 때는 절대 사양하지 않았다.

완안경이 오늘 특별히 찾아와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치맛자락을 들어 준 것은 바로 그녀가 주도권을 잡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준 것이었다. 그녀가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낭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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