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615)화 (615/1,004)

615화 금나라의 대황자 완안경

"우리 령안 조카가 역시 대단하군."

안 상인은 호칭마저 바꾸었다. 그는 얼굴의 사교적인 미소를 거두고 엄숙한 표정으로 집사 뒤의 호위들에게 읍했다.

호위는 덤덤한 시선으로 태연하게 인사를 받았다. 안 상인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이들은 절대 보통 병사가 아니다! 보통 병사에게는 이런 기세가 없지!'

집사 얼굴의 미소는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그는 이럴 줄 알고 있었다.

'백 명의 범상치 않은 호위가 있으니 오늘 연회의 준비가 어떻든 탁자 몇 개만 내놓아도 청주의 이 오만한 상인들의 기를 눌러 둘 수 있을 것이다!'

집사는 속으로 으쓱해졌지만 겉으로는 더욱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예의 바르게 안내하는 동작을 하면서 말했다.

"안 나리, 이리로 가시지요."

집사 뒤의 호원이 앞으로 다가와 안 상인에게 길을 안내하려고 하자 안 상인은 연신 손을 내저으며 거절했다.

"별말씀을, 나 혼자 들어가면 된다네. 령안 조카가 나를 숙부라고 부르니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라네. 내외할 것 없어. 내외할 것 없어."

"안 나리의 말씀이 맞습니다. 자……."

집사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한 하인을 시켜 안 상인에게 길을 안내하게 했다.

'큰아가씨께서 말씀하셨지. 우리 월씨 가문은 벼락부자가 아니라고. 위세를 부릴 수는 있어도 규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안 상인 뒤로도 많은 상인들이 도착했다. 그들 대부분은 청주 상회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월령안의 체면을 봐서 분위기를 돋우고 잠깐 앉았다가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고 나서 집사 뒤의 호위들을 보고 하나같이 안 상인과 마찬가지로 목소리조차 약해졌다. 월령안에게 다정하게 '령안 조카'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얼굴에 걸린 미소까지 진솔해졌다.

집사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나대지 않고 언행을 더욱더 공손하게 했다. 연회에 참가하러 온 손님들은 속으로 월씨 저택의 하인들이 역시 범상치 않다고 찬사를 보냈다.

월시 저택에 오는 상인들은 점점 많아졌다. 몇몇은 얼굴에 잔뜩 땀을 흘렸다. 급히 온 것이 분명했다.

집사는 보지 못한 척, 평소대로 접대했다.

골목에 숨어 월씨 저택을 감시하던 책임자는 월씨 저택에 손님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가 월씨 저택에서 소란을 피우게 안배한 사람들은 오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끝났구나! 오늘 일은…… 실책이다!"

책임자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는 요행을 바라지 않고 미친 듯이 뛰어서 월씨 저택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범씨 저택으로 갔다.

"큰도련님, 일이 잘못되었습니다!"

책임자는 한달음에 범씨 가문 대공자가 있는 서쪽 뜰로 갔다. 그는 월씨 저택의 상황을 범씨 가문 대공자에게 보고했다.

"네가 말하지 않았더냐! 네가 월씨 저택을 감시하여 월씨 저택에서 한 사람도 외출한 자가 없어 연회를 열 수 없다고. 그래서 오늘 연회도 반드시 취소할 것이라면서? 월씨 입구에 가서 소란을 피울 사람을 안배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 사람들은?"

범씨 가문의 대공자는 화가 나 어쩔 줄 몰랐다. 그는 벌떡 일어나 두 손을 탁자 위에 놓고 몸을 기울여 책임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책임자는 깜짝 놀라 몸을 흠칫, 떨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 그들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쓸모 없는 자식."

범씨 가문의 대공자는 책상 위의 문진을 잡고 책임자에게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책임자는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병신 같으니라고."

범씨 가문의 대공자는 욕을 하고 높은 소리로 말했다.

"여봐라. 이 병신을 당장……."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인이 달려왔다. 그는 다급히 말했다.

"대공자, 나리께서 어서 준비를 마치시랍니다. 금나라의 대황자께서 곧 월씨 저택에 도착하니 얼른 옷을 갈아입으시고 월씨 저택으로 가시랍니다."

"금나라의 대황자가? 그가 언제 청주로 왔대?"

범씨 가문의 대공자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진작에 도착했답니다. 다만 조 수비를 제외하고 아는 사람이 없을 뿐입니다."

하인은 다급히 해명했다. 그리고 또 재촉했다.

"대공자, 이공자께서도 소식을 접하셨는데……."

"월씨, 운 좋네. 금나라의 대황자가 청주에 있을 때 마주치다니!"

범씨 가문의 대공자는 욕을 했다. 평범하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 * *

수비 조의박, 지주 동 대인은 거의 동시에 금나라의 대황자가 곧 월씨 저택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청주와 금나라는 적지 않게 협력했다. 금나라 대황자가 이번에 비밀리에 청주로 온 것은 조의박과 큰 거래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시기에 동 지주와 조의박은 모두 금나라 대황자의 체면을 봐줘야 했다.

동 지주는 화가 나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월씨 가문의 초대장은? 가서 초대장을 찾아오너라."

"대인, 대인께서는 초대장을 받으시자마자 공통(恭桶 - 변기)에 버리셨습니다."

사부는 낮은 소리로 귀띔했다.

동 지주는 숨을 내쉰 뒤,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됐다. 내가 초대장이 없다고 월씨 가문에서 설마 날 밖에 세워 두겠느냐?"

조의박은 아주 평온했다.

사실, 금나라의 대황자가 직접 청주로 와서 그와 거래를 한다고 했을 때, 조의박은 대황자가 월령안 때문에 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때, 대황자가 월씨 저택으로 갔다는 것을 알게 된 조의박은 침착하게 둘째 동생 조운천을 시켜 초대장을 가지고 그 대신 월씨 저택으로 가서 월령안이 개최한 연회에 참가하라고 했다.

* * *

금나라의 대황자가 곧 월씨 저택에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을 월령안도 알게 되었다.

소식이 이토록 제때 퍼진 것으로 보아 금나라 대황자가 직접 퍼뜨리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일부러 월령안의 체면을 세워 주려고 먼저 범씨 가문, 조의박과 동 지주에게 알렸다.

월령안은 연회청에서 연회에 참가한 상인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집사가 다급히 다가와 보고했다. 월령안은 잠깐 멍해졌다가 손에 든 술잔을 내려놓고 통쾌하고 대범하게 웃었다.

"금나라의 대황자 완안경(完顔璟)이 오신답니다. 여러 숙부님들, 우리 함께 맞이하러 갑시다. 어떻습니까?"

'그래도 한 나라의 황자니 체면을 세워 줘야 하겠지.'

"금나라의 대황자가?"

"금나라의 대황자가 청주로 왔다고? 난 못 들었는데. 월씨 조카, 자네가 부른 것인가?"

"월씨 조카, 자네는 금나라의 대황자를 초대하고는 왜 말을 하지 않았나? 미리 알았더라면 우리들도 준비했을 텐데."

상인들은 일제히 월령안을 바라보면서 말로는 원망했지만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들은 한순간도 지금처럼 이렇게 분명하게 월씨 가문이 일어서리라는 것을 느낀 적이 없었다. 월령안은 군부에도 세력이 있고 연회를 열면 금나라의 대황자가 와서 자리를 빛내 주는데 무슨 장사를 해야 망하겠는가?

월령안이 그들과 함께 성을 짓자던 말을 떠올리자 하나같이 마음속이 뜨거워졌다. 그들은 월령안이 지금 바로 자기들을 데리고 가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었다.

사람들의 질문에 월령안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여러 숙부님들, 가시지요."

그녀는 완안경이 왜 나타났는지 정말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비록 어렸을 때, 완안경을 본 적이 있었지만 월씨 가문과 금나라는 단순히 장사 거래만 했을 뿐,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다.

'완안경이 지금 나타난 것은……."

월령안은 금나라의 황제가 늙은 것을 떠올리자 속으로 알 것 같았다.

황제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들 월씨 가문은 황위를 걸고 도박하는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금나라의 전임 황제가 형제들을 물리치고 황위에 오를 때 월씨 가문의 금전적 지지가 큰 힘이 되었었다. 물론, 그 뒤로 금나라 황제는 월씨 가문에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월령안은 머리를 빠르게 굴리면서도 얼굴에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그녀는 대범하게 사람들 앞에서 상인들을 거느리고 월씨 저택 밖으로 금나라 대황자 완안경을 맞이하러 갔다.

월령안은 금색 긴 치마를 입었다. 치맛자락이 땅에 끌려 마치 봉황의 꼬리처럼 붉은색 융단에 펼쳐졌다.

월령안이 대문으로 나서자 때마침 완안경의 마차가 도착했다.

월령안이 앞으로 다가가 맞이하려는 순간, 금색 비단 장포를 입은 완안경이 마차에서 내려왔다.

'같은 금색이네?

우연인가?'

월령안의 눈동자로 한 줄기 경계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발은 가장 빨리 앞으로 성큼, 내디디며 얼굴에는 사교적인 웃음을 띠었다.

"대황자 전하!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다른 상인들도 따라서 불렀다. 그러나 완안경은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월령안에게만 고개를 끄덕였다.

"월 누이, 별말씀을! 누이를 보러 오는 길이라 아주 즐거웠다오."

완안경은 환하게 웃으며 그녀와 인사했다. 그의 얼굴에 드리운 미소는 퍽 진실되어 보였다.

월령안을 따라서 나온 상인들은 이 장면을 보고 속으로 더욱 월령안이 이 금나라 대황자를 모셔온 것이라고 확신을 내렸다.

"대황자께서 오셔서 광림하시니 참으로 영광스럽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월령안 얼굴의 미소도 환해졌다. 그러나 시선에 드리운 경계심은 옅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줄곧 아버지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금나라는 타국이다. 우리들은 금나라의 돈을 벌 수 있고 금나라에서 철기를 살 수 있지만 금나라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는 없다.'

월령안은 속으로 딴생각을 하고 있다가 돌아설 때, 발걸음을 작게 뗀 탓에 뒤의 치맛자락이 따라오지 못했다.

월령안이 발견하고 뒤로 물러서서 다시 치맛자락을 옮겨오려고 했다.

바로 그때, 완안경이 허리를 숙이더니 월령안의 치맛자락을 잡아 주었다.

"월 누이, 조심……."

'완안경이 어디 아픈가?'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자기의 신분을 모르는 건가? 어엿한 대황자가 직접 치맛자락을 잡아 주다니. 우리 주나라의 황제의 월씨 가문에 대한 경계심이 아직 덜 깊다고 여기는 것인가? 금나라의 대황자! 뭘 하려는 거지?'

호위복을 입고 호위들 중에 끼어 있던 육십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가 난다! 저 사람을 죽이고 싶다! 이 완안경도 너무하네. 감히 우리 마님의 치맛자락에 손을 대다니! 우리 장군도 아직 손을 대지 못하셨는데! 이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육이는 살기등등하게 소매를 걷고 뛰쳐나가려 했다. 그러나 뒤에 있던 동료에게 저지당했다.

육십이가 욕하려고 하는 순간, 동료가 목소리를 깔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침착해! 마님께서 주관하시는 연회 중이야. 지금은 움직일 수 없다. 밤에 몰래 마대를 씌우러 가자!"

육십이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도 할 수 있어?'

육십이는 침묵하고 물러갔다.

그는 마님이 자기네를 데리고 돈을 벌기 바라야 했다. 그는 마님의 체면을 세워 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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