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화 가서 등불을 걸거라
청주 본지의 백성들은 구 할 정도 월씨 가문의 은혜를 입었었다. 누군가 월씨 가문에 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감사의 말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닌 게 분명했다.
월령안의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자들이 물러가게 호통을 두어 번 치거라."
"큰아가씨, 이자들은 줄곧 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아가씨가 나오자마자 달려 나왔습니다. 분명 일부러 아가씨를 가로막고 못 나가게 하려는 게 틀림없어요."
호위가 일깨워 주었다.
"먼저 예를 지키고 안 되면 무력을 행사하는 법. 먼저 두어 번 소리쳐서 안 되면 신고하거라."
'이런 치사한 방법은 범씨 가문이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아니면 청주의 그 노친네 세 명이 생각한 건지…….'
비록 사람을 다치게 하지는 못했지만 기분이 상하게 만들었다.
호위는 앞으로 다가가 그 사람들을 떠나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사람들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러 소리를 높여 고함을 질러 호위의 목소리를 눌러 버렸다.
호위는 그들을 부축해서 일으키려고 했다.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땅에 드러누우며 입으로는 월씨 가문의 호위가 사람을 친다고 소리를 질렀다.
"월 누님, 이 사람들은…… 정말 감사를 표하러 온 건가요?"
소육자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자기가 본 것을 차마 믿지 못했다.
'이게 감사를 표하러 온 것이라고? 이건 소동을 피우러 온 것이잖아.'
"그래요!"
월령안은 시선을 내려뜨렸다.
"월씨 가문은 확실히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었어요."
심지어 그녀의 아버지가 예전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그들 월씨 가문에 뭐로 보답했던가?
월령안은 눈을 꼭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제서야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누를 수 있었다.
그녀는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녀는 이 사람들에게 방해 받으면 안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월씨 가문이 한 선행의 가장 좋은 보답은 월씨 가문에 대한 좋은 명성이라고 했다.
다른 것은 모두 사치라고 했다!
호위는 이 백성들에게 시달려 머리가 아팠다. 그들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큰아가씨, 안 되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해도 떠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우리 먼저 물러갈까요?"
"내가 왜 물러나야 하는 것이냐? 그들이 무릎을 꿇겠다고 했으면 꿇으라고 하거라! 저자들이 도대체 언제까지 꿇은 채로 있을지 보자고! 나한테 머리를 몇 번이나 조아리는지 보자는 말이다!"
월령안은 차갑게 웃으며 소육자를 힐끗 보았다.
"사람을 시켜 탁자와 의자를 한 벌 가져오세요. 그리고 초대장과 필묵도 가져오세요. 오늘 여기서 일을 볼 거예요."
'나를 월씨 저택에 가두어 두려는 건가?'
그녀는 그녀를 가두어 두려면 잔머리나 꼼수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고 싶었다.
'재주가 있다면 정식으로 싸움을 해야지.'
"네, 월 누님."
소육자는 곧장 대답하고 사람들 앞에서 휙, 하고 사라졌다.
곧이어, 탁자와 의자, 필묵이 모두 입구에 놓여졌다. 마침 입구를 막고 월령안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하겠다는 백성들을 마주 보고 있었다.
월령안은 호위더러 두 열로 나뉘어 서게 했다.
"저자들이 손을 쓰지 않는 이상, 너희들은 절대 손을 쓸 수 없다. 알겠느냐?"
"네, 큰아가씨!"
호위들은 나무 몽둥이를 들고 온몸을 긴장시킨 채로, 월령안의 곁에 서서 경계의 눈빛으로 백성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일을 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월령안은 아주 덤덤하게 앉아 느긋하게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초대장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나가지 못하니 다른 모든 사람을 월씨 저택으로 오게 해야지.'
월령안의 머릿속에 온전한 명단이 떠올랐다. 그녀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붓을 들자마자 빈객들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을 삼 일 뒤, 그녀가 주최하는 월씨 가문의 술 시음회에 참가하라고 초대했다.
시간이 충분하니 월령안도 초조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아주 자세하게 썼다. 중간중간 집사더러 다과를 가져오라 하고 쓰다 지치면 멈춰서 쉬기도 했다. 어찌 보아도 느긋해 보였다.
눈 깜짝할 새에, 한 시진이 지나갔다.
월령안은 앉아 있으니 괜찮았지만 꿇어앉은 사람들은 버티기 힘들었다.
그들은 줄곧 꿇어앉아 있었을 뿐만 아니라 머리를 조아리며 월씨 가문에 감사하다는 종류의 말을 해야 했다. 한 시진이 지나자, 다리가 아픈 것은 물론이고, 목도 쉬었다.
"언제까지 꿇어앉아 있어야 하는 거야?"
몇몇은 나이가 많아 이미 버티기 힘들었다.
"이 월 가주는 언제까지 앉아 있을 건가? 우리 같은 나이는 더 이상 꿇어앉아 있을 수 없어."
"벌써 한 시진이야. 우리 계속해서 더 꿇어앉아 있어야 해?"
나이가 많은 사람은 버틸 수 없었고 몇몇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도 버틸 수 없었다.
총명한 여인이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다.
"안돼! 이건 원래 합의했던 것과는 다르잖아. 돈 받은 만큼은 이미 일을 했어. 추가금 없이는 이 이상 안 할거야."
말하면서 이 몇몇 여인들은 일어나 떠나가려는 자세를 취했다.
누군가 처음으로 그 이야기를 꺼내자 눈치를 보던 다른 사람들도 돈을 추가하지 않으면 가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급해하지 마. 더 준다고. 더 준다고 약속하면 될 거 아닌가!"
사람들 중에 섞여 있던 우두머리는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지라 한순간 조급해졌다. 그는 연신 사람들을 위로하며 돈을 꼭 더 줄 테니 계속해서 무릎을 꿇고 소리를 지르라고 했다.
사람들은 돈을 더 준다는 소리에 억지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또 무릎을 꿇었지만 입으로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해서 중얼거렸다.
"월 가주는 이게 무슨 뜻이지? 왜 계속 앉아 있지? 계속 앉아 있으면 우리는 계속 꿇고 앉아야 하는 건가?"
"잠시만 기다려. 내가 가서 물어보고 오겠네……."
우두머리도 짐작이 가지 않아 사람들을 다독인 뒤, 몰래 뒤로 움츠린 채, 달음박질로 뛰어갔다.
그가 떠났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러나 전처럼 열심히 소리를 지르지 않고 하나같이 대충했다.
호위는 계속해서 이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기운이 빠지고 머리를 조아리는 행동도 대충하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큰아가씨, 저자들은 아마도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월령안은 붓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힐끗 보더니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그들에게 말하거라. 만약 정말 우리 월씨 가문에 감사하다면 마음을 받았으니 이제 그만 흩어지라고 하거라. 만약 저자들이 한 번 꿇고, 두어 번 머리를 조아린 게 부족하다면 나도 그들을 막지 않을 테니 마음껏 꿇고, 마음껏 조아리라고 하거라. 그들에게 감사를 표할 기회를 주기 위해 난 오늘 계속해서 여기 앉아 있을 테니 그들더러 시름을 놓으라고 하거라!"
"네, 큰아가씨!"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억울해 미칠 것 같았었던 호위는 이제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집 큰아가씨는 정말 나빴어. 그러나 이런 망나니들을 대하려면 이럴 수밖에 없지!'
호위는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입구에 앉아서 월씨 저택의 길을 막은 백성들에게 월령안의 말을 전했다.
"뭐라고?"
"하루 종일!"
"월 가주는 이게 무슨 뜻이람?"
"왜 여기서 하루 종일 앉아 있지?"
"월 가주가 일부러 이러는 거지?"
바닥에 꿇어앉아 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가 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호위가 또 이렇게 말했다.
"감사 인사를 다 했으면 물러나시오. 우리 큰아가씨께서 당신들의 마음을 받았소."
'우리 월씨 가문이 이 사람들더러 무릎을 꿇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이자들은 왜 불만인 거지?'
"어……. 그게, 난 아직 감사 인사를 다 못했어요."
"맞아요, 맞아, 우리 아직 감사를 다 표하지 못했어요. 우리는 월씨 가문에게 감사하고, 월 가주께 감사해요. 이건 짧은 시간 안에 다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요, 그래요, 우리 아직 더 꿇어야 해요."
사람들은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겉으로는 여전히 감격스러운 모습을 하고 끊임없이 월령안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럼 계속하시오. 우리는 모두 보고 있을 테니."
호위는 비웃고 돌아갔다.
월령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늘이 지은 죄는 살 수 있어도 스스로 지은 죄는 살아남지 못하는 법. 저자들이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하겠다면 내가 동정할 필요는 없지.'
월령안은 계속해서 붓을 들고 초대장을 썼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나운 눈매와 오뚝한 콧날, 금나라 복장을 한 남자가 그 광경을 보고 매서운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십 년을 보지 못했는데도 월씨 가문의 꼬맹이 여동생은 여전히 이렇게 귀엽구나.'
월령안은 입구에 앉아 하루 종일 초대장을 썼다. 밖에서 무릎을 꿇는 사람들이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월령안은 꼼짝도 하지 않고 날이 저물 때까지 앉아 있었다.
밖에서 무릎을 꿇어앉아 고개를 조아리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은 월령안이 일어난 것을 보자 하나같이 눈을 반짝거렸다.
'하늘이시여, 우리가 드디어 끝을 보는구나. 이미 한 시진이나 꿇었는데 더 꿇었다간 우리 다리가 다 불구가 되겠어.'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월씨 가문에 아주 감격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니 정말 갑갑했다.
월령안은 비록 일어났지만 가지 않았다. 그녀는 침착하게 분부했다.
"가서 등불을 걸거라. 날이 저물었으니 밖에 있는 촌민들이 잘 보지 못할 수 있으니."
'뭐라고? 아직도 안 간다고?'
밖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사람들은 다 울고 싶어졌다.
'월씨 가문의 이 큰아가씨는 너무 끈질긴 것 아니야?
하루 종일 앉아 있었는데 지치지도 않나?'
"그리고 진한 차 한 주전자 타 오너라. 밤에 졸리지 않게."
월령안은 사지를 움직이고서 또 한마디 덧붙였다.
"네, 큰아가씨!"
호위가 대답하는 소리는 유난히 크고 행동도 아주 빨랐다. 밖의 사람들이 속으로 원망하자마자 월씨 저택 입구에 크고 빨간 등불이 걸렸다. 등불은 입구의 길을 붉고 환하게 비추어 그들의 얼굴에 나타난 근심과 놀라움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호위들은 얼굴에 티만 내지 않았을 뿐, 속으로는 한마디씩 했다.
'쌤통이야!'
월씨 저택 입구에 등불이 걸리고 또 월령안이 손발을 움직인 뒤, 다시 앉은 것은 것을 보고 드디어 누군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 돈 난 안 벌겠어! 전에 그 한 시진은 거저 꿇은 거로 해. 돈 안 가지겠어!"
"내가 이런 더러운 돈을 벌려고 나쁜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되었어. 월씨 가문이 우리 집안에 베푼 은혜가 있는데 전에 내가 꿇은 한 시진은 속죄하는 셈 쳐야겠어."
"맞아, 맞아, 맞아. 월씨 가문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었었어. 우리가 월씨 가문의 은혜로 돈을 벌다니. 우리는 정말 인간이 아니야. 나도 꿇지 않을래."
한 시진 동안 꿇으면서 머리도 조아리고, 울부짖기까지 하니 아무리 체력이 좋더라도 태반의 사람들은 버티기 힘들었다. 그들은 날이 저물 때까지만 억지로 버티려고 했었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