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화 철로 만든 선박
월령안과 상천은 매우 평온했다. 두 사람은 이상한 냄새를 맡지 못한 듯이 계속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육십이는 이를 악물고 뒤따라갔다. 하지만 동굴 입구에서 추수에게 막혔다.
"밖에서 기다리세요."
"하지만, 하지만……."
육십이는 동굴을 가리키며 조급해했다.
추수는 또다시 육십이에게 차가운 눈총을 쏘았다.
"월씨 가문 집안일입니다. 당신이 왈가왈부할 게 아닙니다."
육십이는 기가 꺾였다.
동굴 속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안에는 오히려 이상한 냄새가 없었다.
월령안은 동굴 안에 서 있었다. 표정은 평온했다.
그녀는 동굴 밖에서 맡았던 그 냄새가 그녀를 겁주려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었다.
십 년!
그들은 묵묵히 산에서 십 년을 지켰다. 응어리가 있는 것은 정상이었다. 이런 사소한 장난에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팍!
동굴 양쪽 횃불이 같은 시간에 점화되었다. 횃불이 켜지면서 동물 가죽을 입은 깡마른 모습의 남자들이 동굴의 다른 한쪽에서 걸어 나왔다.
앞장선 이는 수염이 희끗희끗한 한 노인이었다. 차림새는 아주 깔끔했지만 놀랄 정도로 너무나 말라 있었다. 밖으로 드러난 팔뚝은 마치 마른 장작처럼 거죽만 남은 듯 깡말라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생기가 있었다. 특히 월령안을 바라볼 때 두 눈은 마치 칼처럼 예리했다.
상천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지만 월령안에게 저지당했다.
월령안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모자를 벗었다.
불빛 아래에 월령안의 화사한 얼굴이 사람들 앞에 드러났다.
"월씨 가문 장인, 큰아가씨를 뵙습니다."
앞장선 노인은 월령안에게서 세 걸음 떨어져 무릎을 꿇었다. 그가 무릎을 꿇자 뒤를 따르던 남자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월령안에게 예를 올렸다.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자제력이 있었다. 어렴풋하게 울먹이는 소리가 섞여 있으나 이내 그들의 함성에 묻혀 버렸다.
월령안이 앞으로 다가가 노인을 부축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도 울먹임이 묻어 있었다.
"뇌(雷) 아저씨, 죄송해요. 제가 늦었네요."
그녀는 월씨 가문의 하인들이 청주에서 줄곧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떠나기 전에 노복들을 모두 잘 안치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일찌감치 떠났던 장인들은 줄곧 산속에 숨어서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부축하는 대로 일어서며 월령안의 손을 꽉 잡았다. 목이 메어 말했다.
"큰아가씨,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네요."
"당신들이 있을 줄 알았으면 더 일찍 돌아왔을 거예요."
월령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다행히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왔으니 앞으로 더 이상 고생은 없을 거예요."
"큰아가씨야말로 정말 고생했죠. 저희가 겪은 이 정도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월 나리는 그때 우리더러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라 했습니다. 저희들이 떠나기 싫어서 이곳에 남은 것입니다. 큰아가씨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눈길은 부드러웠다.
"당신들은 저 때문에 줄곧 이곳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찌 저와 무관하겠어요. 뇌 아저씨, 기다려 주십시오. 그 사람들이 월씨 가문에 진 빚을 제가 다 되갚아 줄 겁니다. 당신들이 지난 십 년간 겪었던 고통과 고난도 대신 갚아 줄 겁니다."
월령안의 시선은 노인의 뒤에 있는 동물 가죽을 입은 남자들에게도 옮겨졌다.
그녀는 그들의 눈에서 분노와 불만을 보아 냈다.
월령안은 모든 사람이 뇌 아저씨처럼 최근 십 년 동안 겪은 고통을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이 충성심을 굽히지 않는 한, 그녀는 결코 그들을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다.
월씨 가문 장인들이 피신했던 산은 월씨 가문이 음지에 숨겨 두었던 사적 재산이었다.
월씨 가문의 후계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다.
이 산은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하지만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 산의 다른 한쪽을 넘어서면 비로소 독특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 산의 다른 일면은 강에 잇닿아 있었다.
월씨 가문의 장인들이 만든 새 배는 이 강을 빌려 직접 강물에서 시행 운전을 할 수 있었다. 떠들썩하게 항구에 갈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배에 대한 소식을 최대한 숨길 수 있었다.
산속에는 월씨 가문의 정예 장인을 숨겨 두고 있었다.
오늘날 바다를 항해하는 배 중에서 구 할이 그들이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것은 모두 작은 배였다. 진정으로 바다에서 운행하는 큰 배는 항구에 있는 조선소에서 만들었다.
조선소의 장인들은 기예가 뛰어났지만 혁신과 연구를 모르는 데다 상선을 개선할 능력도 없었다. 그들은 설계도에 따라 만들 줄밖에 몰랐다.
범씨 가문이 월씨 가문의 사업을 인수하면서 자연히 조선소도 범씨 가문에게로 넘어갔다.
범씨 가문은 월씨 가문이 백 년 동안 쌓아 놓은 사업에 기대 수백 척의 상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해상 최대의 세력이었다. 해상에서 구 할의 장사는 모두 범씨 가문에서 도맡았다.
범씨 가문에서는 남들이 이 업계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우선 먼저 바다의 날씨가 변덕스러워 전문가가 아니면 바다에 나가면 그냥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선은 아무나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바다에서 운행하는 상선은 크고 안전해야 했다. 현재 조정 공부를 제외하면 상선을 가장 잘 만드는 곳은 예전의 월씨 가문 조선소, 지금의 범씨 가문 조선소였다.
범씨 가문 조선소는 매년 일이 끊이지 않았다. 범씨 가문의 수요도 가까스로 맞추기에 다른 상가의 배를 만들어 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공부의 조선소는 군함만 만들었다. 상인들을 도와 상선을 만들 겨를이 없었다.
설령 조선소에서 예약을 받는다 해도 일반 상인들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상선 한 척이 만들기 시작해서 물에 들어가기까지 적어도 이삼 년이 걸렸다.
그리고 상선 한두 척으로는 상단을 이룰 수도 없어 대상단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받아먹어야 했다. 마치 청주상회의 상인들처럼 말이다.
모두 콩고물인데 큰 대가를 치르면서 얼마나 쓸 수 있을지, 언제 풍랑에 뒤집어질지 모를 배를 만들 수는 없었다.
차라리 물품을 범씨 가문 상선에 맡기고 삼 할의 이문을 범씨 가문에 주면서 그냥 콩고물을 받아먹는 게 나았다. 그런대로 돈을 벌면서도 밑지지는 않을 테니까.
무릇 해상 사업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상 사업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월령안은 수중에 배가 없었다.
십 년 동안 준비했다 해도 배를 백 척이나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가 해상 사업을 하려면 역시 범씨 가문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콩고물이나 주워 먹어야 하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월씨 가문은 해상 사업의 전문가로서 이 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월령안은 청주에 오기 전에 범씨 가문과 해상 사업으로 경쟁하는 것을 포기했다.
자신의 상선이 없다면, 그녀는 범씨 가문을 이길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육십이를 만나 월씨 가문 최정예 장인들이 아직 산에 남아 배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범씨 가문과 겨룰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배를 만드는 시간이 너무 길고 원가도 비쌌다. 그녀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 월령안은 강에 정박해 있는 철선(鐵船)을 보자 해상에서 범씨 가문과 한번 겨루어 보려는 신심이 생겼다.
그녀는 범씨 가문보다 더욱 선진적인 상선을 가지고 있었다.
배를 만드는 사람은?
돈이 있으면 그녀는 사람을 찾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았다.
정 안 되면, 그녀는 천궁각에 매달릴 것이다.
"뇌 아저씨, 이 철선은 가라앉지 않을까요?"
월령안은 두 눈을 반짝이며 뇌 선생을 바라보았다.
자기가 익숙한 배에 대해 말하자 뇌 선생은 금세 정신을 바싹 차렸다.
"큰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강에서도 운항할 수 있으니 바다에서는 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 띄워 봐도 되나요?"
월령안은 물론 뇌 선생을 믿었다.
다만 그전까지 그녀는 철로 된 선박이 가라앉지 않고 수면에 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직접 시험해 보지 않고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럼요. 며칠 전에 비가 내려서 강의 수위가 배를 띄울 만합니다."
뇌 선생은 자기가 직접 만든 배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다. 곧바로 다른 사람들을 불러 배를 강으로 밀어냈다.
산속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장인들이어서 하나같이 힘깨나 셌다.
게다가 철선은 보기에는 무거워도 사실 속이 텅 비어 있어 나무배보다도 가벼웠다.
사내 열몇 명이 기합을 두어 번 넣더니 철선을 수면으로 밀어 넣었다.
월령안은 여덟 살 전에 아버지를 따라 상선이 출항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상선을 바다에 밀어 넣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배의 크기와도 관련되었다.
뇌 선생을 비롯한 장인들이 만든 이 철선은 강물에서 운행하기에 적합한 작은 배였다. 크기가 상선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단지 열몇 명 정도의 사람만으로도 밀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은 그녀를 충분히 놀라게 했다.
이 철선은 만들 만했다.
월령안은 뇌 선생의 요청으로 철선에 올라 한번 둘러본 뒤에야 선원들에게 철선을 운행하게 했다.
철선은 강 위에서 평온하게 운행했다.
빈 배의 흘수 눈금은 표준 범위 내에 있어서 전혀 문제가 없었다.
"뇌 선생, 이 배는 만들기가 어렵나요?"
월령안은 철선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이 철선이 지금 있는 상선보다 백 배 더 낫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쇠가 나무보다 단단하므로 바다에서 폭풍을 맞아도 더 오래 버틸 수 있었다.
그녀는 방금 전에 배를 한 바퀴 돌았다.
선박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선체 내부를 최대한 간략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공간이 더 넓어지고 물건을 더 많이 실을 수 있었다.
상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적량이었다. 지금 배보다 일 할이라도 더 많이 선적할 수 있으면 더 많이 버는 것이었다.
"어려워요."
뇌 선생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철을 찾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령 철을 찾았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일반 철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조선에 사용되는 철은 정련된 철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수백 명이서 십 년을 매달려 그리 크지 않은 이 배를 만들었습니다."
뇌 선생 눈 속의 빛이 조금씩 사그라졌다.
"이런 철선은 상인 가문에서 만들면 안 됩니다. 그때 나리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고집을 부려 철선을 만든 것입니다. 나리께서도 더는 얘기하지 않으시고 저에게 인력, 양식, 철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와서야 이 배를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게 단지 꿈이고, 현실에 맞지 않는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배도 만들었으니 제 꿈도 깰 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