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3화 청주상회의 회장
그때의 월씨 가문 큰나리는 청주 상인들의 기둥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들 청주, 심지어 그들이 오늘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그 월씨 큰나리가 이끌어 준 덕분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이 지긋한 대상인 몇몇은 마음속 자그마한 불만도 사그라졌다. 월령안을 보는 눈빛에도 흐뭇함이 배어 있었다.
호랑이 아버지에 역시 호랑이 딸이었다.
그들은 당시 월씨 큰나리가 이끌어 준 인정을 갚는 셈 치고 월령안이 회장이 되겠다면 지지하기로 했다.
좌우지간 이것은 겨우 하나의 기회일 뿐이었다. 일단 월령안이 능력이 부족하면 그들이 입을 열 필요가 없이 범씨 가문에서 그녀를 끌어내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상인들은 더 반대하려 하지 않았다.
범정은 미소를 띤 채 상석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기애애하고 사람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나서서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범정 얼굴의 웃음기는 살짝 옅어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월령안을 힐끔 쳐다본 뒤 잠깐 망설이다 먼저 입을 열었다.
"월씨 조카, 상회가 성립되었던 초기에는 확실히 그 규칙이 있었네. 하지만 청주상회는 우리 청주 상인들의 상회라네. 이 규칙은 내가 회장이 된 다음 이미 바뀌었네."
"바뀌었다고요?"
월령안은 탁자를 탁 두드렸다.
"어느 월씨가 바꾼 건가요? 앞으로 나오라고 하세요. 어느 개자식이 조상을 잊어버렸는지 좀 봅시다."
'개자식 범정……!'
누군가 참지 못하고 나지막하게 웃고 말았다. 범정이 차갑게 눈총을 쏘아도 그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고 말했다.
"흠흠…… 월씨 조카, 그 규칙은 범 회장이 바꾸었다네."
"범 회장요?"
월령안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가볍게 떨리는 목소리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범씨 아저씨, 아저씨가 바꾼 거예요?"
모두 천 년 된 여우이다. 피차 서로 다 알고 있었다.
범정은 월령안이 연기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짜증을 억누르고 월령안과 함께 연기했다.
"령안, 모든 건 시대와 더불어 발전해야 되잖느냐. 이 규칙은 상회 창립 초기에는 존재할 필요가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존재할 필요가 없단다. 아니냐?"
"범씨 아저씨, 그릇 들고 밥을 먹다가 그릇을 내려놓으면 욕하는 이런 일을 우리 청주의 상인들이 해서는 안 되죠."
월령안은 차가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범정의 체면을 추호도 봐주지 않았다.
"청주상회가 어떻게 창립되었는지 범씨 아저씨께서 잊으신 건 아니죠? 그때 당시 제 아버지께서는 함께 잘살자는 생각으로 여러분들을 상회에 모셨습니다. 여러분의 체면을 세워 주려고 상회를 청주상회로 명명한 것이에요. 그렇지 않았으면 월씨상회라고 불렀죠. 제 생각에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반대하지는 않으실 거라 믿어요. 그렇죠?"
월령안은 차가운 시선으로 자리에 모인 상인들을 쓸어 보았다.
몇몇 사람들은 정면으로 대답하고 싶지 않아 외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월령안의 위압에 눌리어 대답했다.
"그래 맞아."
청주상회는 월씨 가문에서 전적으로 창립한 것이었다. 월씨 가문에서 사람이고, 힘이고 모두 책임지었다. 그들은 월씨 가문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국이며 고기며 얻어먹었던 것이다.
"령안, 너도 말했잖느냐. 그건 그때야.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해상 사업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이젠 그때 그 시절도 아니다. 온 바다에 오직 월씨 가문 배만 떠 있던 때가 아니란 말이다. 네가 말해 보렴."
범정 얼굴의 미소는 바뀌지 않았다. 그는 찻잔을 들었다가 다시 천천히 내려놓으면서 소리 없이 월령안과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압력을 가했다.
월씨 대저택을 월령안에게 돌려준 것은 그가 그때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하지만 청주상회 회장 자리만은 선뜻 내주지 않을 것이다.
청주상회가 월씨 가문에서 전적으로 창립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 십 년 동안 여러 사람들을 이끌고 돈을 번 사람은 그였다.
바다에서 배가 가장 많은 것도 그였다.
지금은 십 년 전이 아니었다.
십 년 전 월씨 가문이 바다를 제패했다. 해상 사업은 거의 모두 월씨 가문에서 독점했다. 남들이 해상 사업을 하려면 월씨 가문과 친해져야 했다.
하지만 지금 십 년이 지난 뒤, 월씨 가문은 이미 상황이 좋지 못했다. 적어도 바다에서 월씨 가문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사업에서는 사업만 논해야 한다. 누구도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범정은 기세등등한 월령안이 두렵지 않았다. 그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 있는 대상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러분도 말해 보시오."
주 상인은 즉시 일어나서 범정을 위해 말했다.
"물론 회장님의 말씀을 들을 겁니다. 뭐 같이 돈을 벌게 해. 그때 너희 월씨 가문은 상선(商船)을 장악하고 바다에서 남이 상선을 띄우는 걸 허락하지 않았어. 우리는 할 수 없이 물건을 월씨 가문의 상선에 맡기고 삼 할이나 되는 비용을 내어야만 물건을 출항시킬 수 있었어. 듣기 좋게 말해서 우리를 이끌고 같이 돈을 벌었다고 하는 거지, 실제로 너희 월씨 가문에서 고기고, 국이고 다 먹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먹다 남은 뼈를 우린 물이나 받아먹었다."
주 상인은 바른 기운이 넘치는 표정에 목소리도 아주 컸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고서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무 의견도 내지 않고 그저 월령안을 바라보며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월령안은 이 사람들이 그녀가 이익을 내놓기를 기다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누가 주는 이익이 많을지를 보고 누구를 지지할지 결정하려는 것이다.
상업계의 사람들은 이익만 추구한다. 토끼가 보이지 않으면 결코 매를 풀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월령안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전적으로 발탁했던 사람들이 짧디짧은 십 년 사이에 아버지의 은정을 잊은 것을 보고 실망을 느꼈다.
문인, 대유학자들이 상인을 깔보는 것은 이유가 없는 게 아니었다.
월령안은 뭇사람들의 반응에 실망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뭇사람들을 바라보며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청주는 서남과 인접해 있습니다. 군사 요충지임에도 불구하고 일찍 조정의 중시를 받지 못했습니다. 백 년 전 청주는 오지로 주둔하고 있는 군대를 빼면 백성이 삼만 명도 안 되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이 산민이었죠.
청주는 편벽하고 가난해서 조정의 관리들도 오기 싫어했어요. 그때 조정의 관리들이 청주에 임직되면 그건 좌천된 것이고 청주에 주둔하는 장병들은 유배되었다고 했죠. 조정에서 보낸 관리들은 청주에 오면 갖은 방법을 다해 떠나려고 했어요. 청주 현지인들도 어떡해서라도 떠나려고 했었고요.
청주에서는 그냥 연명할 수밖에 없었어요. 조그마한 재난에도 온 가족이 굶어 죽어야 했고요. 밖에서는 비록 빌어먹더라도 살 수 있는데 말이죠. 이는 당시 대부분 청주 사람들의 생각이었어요."
월령안은 다급하게 약속하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뭇사람들과 지난 일을 이야기했다. 비록 짧은 몇 마디이지만 모두가 예전의 청주를 뒤돌아보게 했다.
그들은 모두 청주 현지인이었다. 어려서부터 청주에서 자랐으므로 당시의 청주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월씨 가문이 없으면 현재의 청주도, 현재의 그들도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그 당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그들이 아니었다. 월씨 가문의 은혜에 감사하다고 하여 월씨 가문과 운명을 함께할 수는 없었다.
나이 든 몇몇 대상인은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월씨 조카, 회장 이 일은 좀 더 얘기해 보면 안 될까?"
"여러분께서 농담하시는군요. 여러분은 모두 제 아버지와 함께해 온 분들이십니다. 우리 월씨 가문 사람들의 성격을 아직도 모르십니까? 청주상회에 우리 월씨 가문의 위치가 없으면 청주상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범씨상회죠."
월령안은 찻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여러분들께서 여전히 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하군요. 저는 오늘 여러분께 이 월령안이 청주상회의 회장이 되겠다고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누가 반대하는가요? 반대하는 사람은……."
월령안은 차가운 시선으로 여러 사람을 바라보았다.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 위에 홱 뿌려 던졌다. 그러고는 한 글자 한 글자 강하고도 냉랭하게 내뱉었다.
"모두 청주상회에서 꺼져 주세요. 월씨 저택에서도 꺼져 주시고요. 월씨 가문의 땅을 더럽히지 말아 주세요."
월령안이 갑자기 안색을 바꾸었다.
뭇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스스로 신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저도 모르게 표정이 어두워지며 음흉하게 말했다.
"월씨 조카, 아직 날개가 채 여물지도 않았는데 날려는 것인가?"
월령안은 냉소로 대답했다.
"당신들의 의견을 묻는 게 아닙니다. 갈 테면 가십시오. 문은 저쪽에 있습니다."
"월씨 조카, 지금 무슨 뜻인가?"
어린 아가씨에게 체면이 깎이자 설령 그녀가 월씨라고 해도, 많은 대상인들은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 그들은 확실히 월씨 가문에 의지해 일어섰다. 어느 정도에서 말하면 월씨 가문은 그들의 절반 주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그들은 일어섰지만 월씨 가문은 망했다.
더 이상 낡은 관점으로 문제를 볼 수 없었다.
"글자 그대로의 뜻입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돈을 벌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제는 한배에 타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영역에 다른 목소리가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생각건대……."
월령안은 잠깐 숨을 고르고 범정에게 위선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범씨 아저씨도 마찬가지죠?"
범정은 월령안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되물었다.
"령안, 청주상회가 애초에 창립된 것은 해상 무역 때문이었다. 네가 따로 나가면 해상 사업은 아예 안 할 작정이냐?"
그렇지만 월령안은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탁자를 짚고서 윗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서슬이 퍼런 차가움과 도도함을 띠고 있었다.
"범씨 아저씨, 연세가 있으셔서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시군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회장이 되겠습니다. 당신들 중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청주상회에서 퇴출하세요."
"퇴출하면 해상 사업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범정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월령안은 차갑게 웃었다.
"물론 각자 능력에 달렸죠."
해상 사업은 그들 월씨 가문에서 먼저 시작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해상 사업의 이윤은 놀라울 정도로 높아서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독점 장사는 벌이가 좋다. 하지만 충분한 뒷배가 없이 독점 장사를 하면 과유불급이 되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월씨 조카의 이 말이 있으면 나는 걱정하지 않겠네."
범정은 대답하고 일어나서 월령안에에 공수했다.
"우리 두 가문은 앞으로 같은 배를 탈 수는 없겠구먼. 월씨 조카 다음에 또 만나지."
월령안도 일어서서 범정에게 공수했다.
"범씨 아저씨 천천히 다녀가세요. 그러면 배웅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