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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01)화 (601/1,004)

601화 월씨 가문 사람들이 뭔데?

월령안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아버지께서 그녀의 손을 쥐고 청주표국에 들어서서 표국 모든 사람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알려주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령안, 기억해라. 이 사람들은 그 가게 주인들과는 다르단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월씨 가문 직계다. 이들이 있는 한, 우리 월씨 가문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손가락은 구리거울 속의 소녀의 눈매를 스쳐 지났다.

"아버지의 말씀이 맞아요. 저희 월씨 가문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다시 떴다. 눈에는 투지가 넘쳤다.

"추수, 우리 가자꾸나."

월령안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몸을 돌리면서 치맛자락이 흩날리더니 다시 탁, 하고 내려앉았다.

그 소리는 매우 가볍고도 무거웠다.

추수는 그녀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등을 꼿꼿이 펴고 있는 모습이 마치 금방 칼집에서 뽑아낸 보검처럼 전의가 흘러넘쳤다.

"아가씨!"

상천은 마당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월령안이 나오는 것을 보자 즉시 옆으로 물러서서 그녀에게 예를 올랐다. 그제야 추수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월령안은 표국 밖까지 걸어 나갔다.

표국 입구, 웅 표사와 표국의 무사들이 검은 옷을 입고 숙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들 곁에는 모두 덩치가 큰 말이 한 필씩 있었다. 그 말들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분위기는 자못 무거웠다.

"큰아가씨."

월령안이 나오자 모든 이들이 포권하여 예를 올렸다.

사람들 속에서 앳된 육십이는 단연 눈에 띄었다. 그는 웅 표사의 곁에 서서 망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맑은 눈동자는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아무도 그에게 의혹을 풀어주지 않았다.

월령안이 나오자마자 마부가 마차를 몰고 다가와 그녀가 마차에 오르기를 기다렸다.

육십이는 의혹투성이였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억지로 참으며 웅 표사 등과 함께 좌우에서 월령안을 보호하는 수밖에 없었다.

표국은 성문 입구에서 멀지 않았다. 한 시진 뒤 그들 일행은 성문 입구에 도착했다.

때마침 성문이 열렸다.

월령안 일행이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줄을 서서 입성하던 사람들은 마차 위의 월씨 가문 표지를 보자 군말 없이 모두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들 일행이 먼저 지나가게 자리를 내주었다.

월령안 일행은 사양하지 않고 곧장 맨 앞으로 갔다.

육십이는 마차 곁에 서서 이 광경을 보자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옆으로 물러선 백성들을 보았다. 잘생긴 눈썹을 저도 모르게 찌푸리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왜 자발적으로 월 누님에게 길을 양보하지? 월 누님이 관리도 아닌데 말이야.'

육십이는 이해되지 않았다. 더욱 이해 안 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성문을 지키는 관병들은 심지어 그들을 조사하지도 않았다. 마차를 흘끔 바라보더니 한쪽으로 물러서서 웅 표사 등을 입성하라고 했다.

육십이는 저도 모르게 눈을 커다랗게 떴다.

월 누님은 청주에서 제멋대로 할 수 있었다. 그들 대장군보다 훨씬 더 위세가 컸다.

월령안은 청주 영역으로 들어선 후 월씨 저택에 바로 가지는 않았다. 길을 에돌아 월씨 가문 묘지로 먼저 찾아갔다.

월령안은 묘지에 이르자 모든 이들을 산기슭에 남겨 두었다. 묘지기의 동반 하에 홀로 묘지에 들어갔다.

월령안은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묘 앞에 꿇어앉아 비석에 새겨진 글귀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아버지, 오라버니, 당신들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제가 돌아왔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월씨 가문 자제의 책임을 떠맡을 거예요. 월씨 가문 모든 이를 집으로 데려올 거예요. 당신들이 채 이루지 못한 일을 저에게 맡기세요. 제가 꼭 해낼 거예요!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나는 스스로를 잘 챙길 거니까요."

월령안은 무덤 앞에 꿇어앉아 이 말 저 말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그녀는 묘지에 오래 있지 않았다. 반 시진도 안 되어 산에서 내려왔다.

월령안은 눈시울이 약간 붉어진 것 외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묘지에 들어갈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추수든 상천이든 침묵을 지키면서 감히 말하지 못했다. 심지어 숨쉬기도 조심스러워했다. 괜히 월령안이 상심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마음이 넓은 육십이조차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역시 고분고분 침묵을 지키며 마음대로 눈길을 돌리지도 않았다.

반 시진 뒤 월령안은 내성(內城)에 도착하였다.

내성은 마차가 꼬리를 물고 다니고 사람들로 붐비는 것이 번화한 정도가 변경과 견줄 수 있었다.

거리에는 행인들이 많았다. 모두 옷차림이 깔끔하고 색깔도 산뜻한 것이 살림이 넉넉함을 알 수 있었다.

거리의 행인과 행상들은 모두 신수가 훤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근심과 고생으로 찌든 이는 극히 적었다. 이것만으로 보면 청주의 백성들은 변경의 백성보다 더 부유했다.

육십이는 청주에 온 지 여러 날이 되었지만 처음으로 내성에 들어왔다. 청주가 이렇게 번화한 것을 보고는 한참 동안 눈알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웅 표사는 어느새 말을 몰아 육십이 옆에 왔다. 육십이의 바보 같은 표정을 보고 웃으며 말해 주었다.

"청주가 지금 보기에는 변경보다 더 번화한 것 같죠. 예전에는 사실 이곳도 작고 허름한 마을이었어요. 이곳은 경작지도 부족하고 다른 장점도 없잖아요. 산에 의지해 밥을 먹다 보니 매년 굶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어요.

월 나리 일가가 청주에 이사 오면서 우리 청주가 번화해졌어요. 한 가문이 성 하나를 먹여 살렸다. 이게 바로 월씨 가문을 말하는 거예요. 청주성의 백성들은 모두 월씨 가문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월씨 가문에서 우리에게 살길을 터 준 것이에요."

"성 하나를 먹여 살리다니. 월 누님의 가문은 참으로 대단하군요."

육십이는 탄복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편 한마디 거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 대장군에 못지않군요."

웅 표사는 얼굴의 미소를 거두었다. 육십이를 힐끔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했다.

육십이는 어리둥절해졌다.

'내가 뭘 잘못한 거야?'

월씨 대저택은 내성 중심에 위치했다. 일행은 거침없이 재빨리 월씨 대저택에 도착했다.

월씨 대저택은 부지 면적이 백 무였다. 사방은 벽돌로 쌓은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져 있었다.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마차가 채 멈추기도 전에 월씨 저택의 대문이 열렸다.

노복들이 우르르 나와서 월령안에게 예를 올린 다음 맞아들였다.

월씨 가문의 노복은 행동거지가 침착하고 표정이 평온했다. 마치 월령안이 십 년 동안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월령안 역시 담담하게 마차에서 내려 하인들에게 에워싸여 월씨 대저택에 들어섰다.

월씨 대저택에 들어서자 월령안은 잠깐 멈추었다. 얼핏 쳐다보고는 눈길을 거두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월씨 대저택은 십 년 전과 똑같았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모두 그녀에게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녀가 꿈속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는 조계안과 만난 다음 반드시 청주로 돌아가 범씨 가문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머릿속, 꿈속에서 한 번, 또 한 번 그녀가 월씨 저택에 돌아오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꿈속에서, 환상 속에서 그녀는 흥분하기도, 슬퍼하기도 하고 웃기도, 울기도 했다.

그녀는 꿈속에서 온갖 감정을 모두 한 번씩 맛보았다. 그리하여 정말로 월씨 저택에 다가왔을 때 그녀의 마음은 평온하기만 하고 아무 파문도 일지 않았다.

필경 집으로 돌아온 것은 첫걸음에 불과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했다.

월령안이 월씨 대저택에 돌아온 건 진시까지는 아직 반 시진이 남은 시각이었다.

월령안은 하인에게 뜨거운 물을 가져오라 하여 다시 단장했다. 그러고는 금실을 밑바탕으로 한 반달 모양의 겉옷을 갈아입었다.

"마차를 준비해라. 지주부로 가야겠다."

진시까지 아직 일각이 남았다.

월령안은 문을 나서며 느긋하게 분부했다.

"예, 아가씨."

마당 밖에 있던 나이 많은 하인이 월령안을 바라보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들 월씨 가문의 큰아가씨가 돌아왔다. 그들 월씨 가문은 무너지지 않았으며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진시 월씨 가문의 마차가 지주부에 이르렀다.

상천은 월령안의 심복으로서 그녀를 대신해 명첩을 올려 보냈다.

지주부의 관졸은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하네만 우리 대인께서 저택에 안 계신다."

상천은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게 명첩을 거두어들였다.

"우리 집 아가씨께서 이틀 전에 동 대인께 명첩을 보냈습니다. 오늘 진시에 찾아뵙겠다고 했었습니다."

지주부의 관졸은 거짓 웃음을 지으며 상천을 흘겨보았다.

"아무 명첩이나 다 우리 대인께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인 알겠습니다."

상천은 표정도 변하지 않고 지주부의 관졸에게 공수했다.

"그건 우리 집 아가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명첩이나 다 우리 집 아가씨 앞까지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이 많았습니다."

지주부의 관졸이 낯빛을 바꾸기도 전에 상천은 한마디 하고 마차 쪽으로 물러갔다.

지주부의 관졸은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지주보다 더 격식을 차린 월령안을 보자 관졸도 감히 나서서 막지는 못했다. 그저 급하게 저택으로 들어가 동 지주에게 이 일을 알렸다.

"월령안, 정말 대단하군."

동 지주는 새 관복을 입고 상석에 듬직하게 앉아서 월령안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월령안을 갈취할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 놓고 있었다. 좋기는 그녀의 몸에서 크게 한몫을 챙기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월령안은 그냥 가 버렸다. 비천한 상인으로서의 자각이 전혀 없었다.

동 지주는 탁자를 잡아 두드리며 노하여 외쳤다.

"앞으로 월씨 가문 사람들이 만나 달라고 하면 절대 만나지 않을 것이다."

"대인……!"

고문은 뒤쪽에 서 있었다. 잠깐 생각을 거쳐 참다못해 설득했다.

"월씨 가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한미하지 않습니다. 월씨 가문은 청주에서 각 분야의 사람들과 모두 친분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월씨 가문 사람들이 청주에 없어서 괜찮았지만 지금은 그들이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월씨 가문의 체면을 봐주지 않으면 월씨 가문에서 우리를 괴롭힐 겁니다. 올 가을 세금도 아직 거두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월씨 가문의 미움을 사는 것은 정말로 현명한 판단이 아닙니다."

"하!"

그러나 동 지주는 마이동풍(馬耳東風 -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흘려 버림)이었다. 그는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월씨 가문 사람들은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보다? 황제라도 되는 거냐? 청주에서는 내 말이면 다야. 가을 징수는 내가 징수하고 싶은 만큼 징수할 것이다. 월씨 가문 사람들이 뭔데?"

"대인……!"

고문은 여전히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동 지주는 사정없이 그의 말을 끊어 버렸다.

"청주상회 상인들에게 내 뜻을 전갈해라. 누가 월씨 가문과 왕래하면 곧 나와 맞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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