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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00)화 (600/1,004)

600화 우리가 큰 건 하나 했어요

웅 표사는 십이를 위시한 군인들에게서 몸에서 나는 악취를 전혀 꺼리지 않았다. 친절하게 그들을 따라오라고 불렀다.

"월 누님, 먹을 것을 좀 많이 준비해 주세요. 그동안 너무 어려웠어요."

육십이는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가 역겹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이 있다는 말에 곧 월령안을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육십이 일행은 수십 일 동안 동분서주하다 보니 배고프고 지쳐 있었다. 이제서야 안전한 곳에 이르러 배불리 먹고 마시자 자리를 옮기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쉬었다.

육십이도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월령안이 아직도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자 가까스로 기어 일어나 찾아갔다.

월령안은 육십이를 기다리기 위해 짙은 차를 몇 잔이나 마셨다. 정신이 말짱했다.

육십이는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월령안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직접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헤헤, 월 누님. 우리가 큰 건 하나 했어요."

육십이는 금세 정신을 번쩍 차렸다. 월령안 앞에 다가오더니 신비스럽게 말했다.

"월 누님, 우리가 청주 수비군의 창고를 털었어요. 그것도 가장 큰 양식 창고로요. 제가 그들의 양식 창고를 둘러보았거든요. 만약 다른 곳에 양식이 없다면 그곳에 있는 양식으로는 한 달 정도 버틸 수밖에 없더라고요."

월령안은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잔을 떨어뜨렸다.

"당신네 삼백 명이서 십만 대군이 지키고 있는 양식 창고를 털다니. 당신들 참 크게 놀았군요."

그녀는 자신이 충분히 대담하다고 생각했다. 오자마자 범씨 가문을 골라 자신의 위엄을 세웠다. 그런데 육십이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았다.

"저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월 누님, 청주 수비군이 얼마나 악랄한지 모를 거예요! 그 양식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세요?"

육십이는 비밀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월령안이 묻지도 않았는데 재잘재잘 말하기 시작했다.

"월 누님, 제가 말해 줄게요. 청주 지주 그들은 미쳤어요. 아니 글쎄 세금으로 구 할의 양식을 거둬들이는 거예요. 땅이 없는 산민(山民 - 산에 사는 백성)들도 그냥 넘어가지 않더라고요. 모두 일 인당 일 무(畝) 땅 표준으로 인두를 계산해 양식을 거두는데 양식을 내지 못하면 돈으로 받는다고 해요.

청주의 산민은 모두 산에서 살아요. 산에 기대 살아 평상시 배불리 먹기도 힘든데 어디에 바칠 양식과 돈이 있겠어요. 그런데 관아에서는 상관하지 않고 산민이 양식을 바치지 않으면 직접 군대를 보내 강제로 징수한대요.

제가 사람들을 데리고 청주로 왔을 때, 산민들은 배고파서 풀을 먹기 시작했어요. 월 누님은 보지 못했을 거예요. 산민들은 정말 불쌍해요. 이제 겨우 칠월인데 산 위의 풀을 몽땅 먹어 버려서 산이 벌거숭이가 되었어요. 게다가 산에 있던 많은 노인과 아이들이 굶어 죽었어요. 제가 보다못해서 형제들을 데리고 그들의 양식 창고를 털어 산에 가져다주었어요.

청주의 수비군이 우리가 양식을 산으로 가져다준 것을 알게 될까 걱정되어 산에 오래 있지 않았어요. 양식을 가져다주고는 흔적을 지우고 그 수비군들을 이끌고 청주를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어요.

그 개자식들은 우리를 반달도 넘게 쫓아다녔어요. 하지만 그들도 뭐 큰 이득을 보지는 못했어요. 저희 삼백 명의 형제들은 모두 그들 손에 있는 양식으로 버텼거든요. 며칠 전에 그들 수중의 양식도 다 바닥이 났어요. 저희는 배가 고파 어디 가서 먹을 것을 구할지 궁리하던 중에 오늘 아침 일찍 월 누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받게 되었죠.

헤헤, 소식을 받자마자 형제들을 이끌고 월 누님한테 찾아왔어요. 월 누님, 우리를 싫어하지는 않으시죠?"

육십이는 여기까지 말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이 대답하지 않자 곧 가슴팍을 두드리며 약속했다.

"월 누님, 저희 아주 능력이 있어요. 저희가 있으면 누구도 누님을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누님의 안전은 저희 형제에게 맡기세요. 그리고 우리는 그냥 먹을 것만 있으면 돼요.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월령안은 육십이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육십이가 안절부절못하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었다.

"당신들이 재간 있으면 저도 당신들을 공짜로 일 시키지는 않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까짓 삼백 명뿐이잖아요. 당신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몇 달간은 아무 문제도 없어요."

"월 누님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누님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육십이는 기쁨에 들뜬 나머지 하마터면 껑충 뛸 뻔했다.

"하긴 그때 월 누님은 우리 몇십만 대군도 먹여 살렸잖아요. 저희 몇백 명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죠."

월령안은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녀는 그 일을 꺼낼 생각이 없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이제 또 말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육십이가 그때의 일을 다시 말하지 못하게 월령안은 한발 앞서 먼저 말했다.

"청주에서 어찌 양식이 모자랄 수 있나요? 강남에서 계속 청주에 양식을 실어 나르잖아요?"

"글쎄요…… 월 누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육십이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어쩔 바를 몰라 했다.

월령안은 할 말이 없었다. 과연 육십이에게 기대를 해서는 안 되었다.

육십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했다.

더 물어봐도 큰 수확이 없을 것 같자 월령안은 육십이를 난감하게 하지 않고 내려가 쉬게 했다.

육십이가 간 뒤 월령안은 또 사람을 시켜 웅 표사를 불러오게 했다. 웅 표사에게 청주의 양식 상황과 청주 수비군이 식량이 모자라는지에 대해 알아보라고 시켰다.

"청주 수비군이 양식이 모자란다고요?"

웅 표사는 월령안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그런 소문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혹시 가짜 소식은 아닐까요?"

"진위를 막론하고 우선 알아보세요."

월령안은 육십이의 능력을 믿었다. 그는 삼백 명을 거느리고 청주의 십만 수비군 수중에서 양식을 빼앗아 갈 수 있었다. 그가 알아낸 정보는 거짓일 수 없었다.

웅 표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곧바로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아보게 했다.

저녁 무렵이 되어도 소식을 알아보러 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월령안은 가슴이 내려앉으며 은근히 불안감이 들었다.

바로 그때 하인이 와서 추수와 상천이 돌아왔다고 보고했다.

월령안이 일시에 크게 기뻐했다.

그녀의 수족이 돌아왔다.

월령안과 추수, 상천 이 주종 세 사람은 수개월 동안 만나지 못했다. 당연히 할 말이 많았다

추수와 상천은 월령안이 내일 입성하여 한차례 접전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들이 북요에서 처리한 일을 일일이 간단하게 보고했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그곳은 우리가 깔끔하게 처리했습니다. 폐하께서 어떻게 조사하셔도 북요인들과 우리와의 관계는 조사해 낼 수 없을 겁니다."

"저희는 이번에 북요에서 신임 남원대왕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그 남원대왕의 세력을 빌려 십 년 전의 일들을 조사해 냈습니다. 그때 나리와 큰도련님은 누군가에게 연루되어서 북요에서 횡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연루되었는지 저희가 한동안 조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현음 공주까지만 조사하고 거기에서 소식이 끊겼습니다."

추수는 싸움에 능하고 상천은 일 처리를 잘했다. 추수는 평소 말이 없었다. 업무 보고 같은 것들은 모두 상천이 했다. 지금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천은 월령안의 곁에 다년간 따라다녔다. 십 년 전의 일이 월령안에게 준 상처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월령안이 이겨 내지 못할까 두려워 이 일을 보고하면서 내내 몰래 그녀의 감정 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월령안은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분노와 비통함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상천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넌지시 물었다.

"아가씨, 저와 추수가 돌아올 때 현음 공주는 북요 수도에 있지 않았습니다. 북요 측의 소식에 따르면 주나라가 북요와 암암리에 합의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변이 없으면 현음 공주가 주나라로 되돌아간다고 하네요. 그 일에 대해 계속 조사해야 하나요?"

계속 조사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현음 공주를 상대하게 될 것이다.

월령안은 상천의 속뜻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조사해라."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이미 죽었지만, 그녀는 그들이 왜 죽었는지를 반드시 알아내고 싶었다.

"예, 아가씨."

월령안이 명령을 내리자 상천은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계속하여 북요의 일을 말했다.

얼마 안 되어 상천은 말을 마쳤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한쪽에 서서 월령안이 묻기를 기다렸다.

"북요의 황제는 지금 어떤 상황이냐?"

월령안은 삼황자 야율헌일을 떠올리면서 속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상천은 북요 황제의 정황을 보고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한마디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상천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아가씨는 무엇을 묻는 건가요?"

"몸 상태를 묻는 것이다."

야율헌일은 급급히 북요로 돌아가려 했다. 북요의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아가씨, 그건……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상천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월령안은 상천을 나무라지 않고 한마디 분부했다.

"북요로 간 상단더러 지켜보라고 해라. 북요 황제의 몸 상태가 안 좋은 거로 의심되는구나."

"예, 아가씨."

상천은 대답하고서 자발적으로 죄를 청했다.

"아가씨, 저와 추수가 직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북요 황제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가씨께서 벌을 내려 주십시오."

아가씨는 주나라에 있으면서도 북요 황제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와 추수는 참으로 무능했다.

"나도 그냥 짐작할 뿐이야. 먼저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아보거라."

월령안은 손을 드는 척하다가 추수와 상천의 얼굴이 초췌한 것을 보고 말했다.

"너희들도 오느라 피곤할 거다. 먼저 내려가서 쉬어라. 내일…… 우리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예, 아가씨."

추수와 상천은 함께 대답했다. 두 사람의 눈도 순간 아름다운 빛을 반짝였다.

그들은 아가씨와 함께 자랐다. 월씨 저택은 그들의 집이기도 했다.

월씨 저택에는 이미 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십 년 만에 돌아왔다. 이는 월령안에게 있어서 큰일이었다.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월씨 가문 자제로서의 책임을 져야 했다.

* * *

이튿날 이른 아침, 월령안은 일찍 깨어났다.

추수는 그녀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아가씨!"

추수는 흰색 긴 치마를 받쳐 들고 들어왔다. 옷을 내려놓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월령안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시중들었다. 조금도 생소하지 않았다. 마치 여태껏 월령안의 곁을 떠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역시 네가 나를 아는구나."

월령안은 소복 차림인 추수를 보면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월씨 저택에 돌아가는 첫날이었다. 아버지, 오라버니와 월씨 가문 먼저 간 자제들의 제사를 지내야 했다.

"소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추수는 월령안이 옷을 갈아입은 다음 또 그녀의 머리를 빗겨 주었다.

월령안은 흰옷 차림으로 복잡하게 머리를 올릴 필요가 없었다.

추수는 그녀에게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주었다. 십 년 전의 그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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