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9화 월씨 가문의 큰아가씨가 돌아왔다
"큰아가씨에게 알려드립니다. 웅대(熊大), 웅이(熊二)가 미리 가서 추수 낭자와 상천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내일 저녁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결코 큰아가씨께서 입성하는 데에 늦지 않을 겁니다."
월령안의 곁에 있는 시녀와 하인도 모두 '낭자'와 '형제'로 불렸다. 월령안의 청표국에서 지위를 엿볼 수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저를 만나러 오라고 하세요."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 그제야 생각나는지 무심코 물었다.
"맞네요. 지금 청주 지주(知州)는 누구세요?"
"현임 청주 지주는 성이 동(董)씨이고, 그 아들이 조의박 심복의 딸에게 장가들었습니다. 조의박의 앞잡이입니다."
웅 표사는 월령안이 무엇을 묻는지를 알고 청주 지주 동 대인의 내력을 간단하게 들려주었다.
월녕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에게 편지를 보내 사흘 뒤 진시에 제가 찾아간다고 전해 주세요. 그 시간에 동 대인께서 저택에 계셨으면 한다고 말해 주세요."
월령안은 동 지주가 시간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청주에서 그녀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시간이 없어도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만약 만나지 못한다면?
만나지 못하면, 그녀가 본때를 보여 주는 것을 탓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십 년 만에 돌아온 터라, 그녀는 지금 위엄을 세울 기회가 필요했다.
월령안은 눈을 내리떠 그 속의 냉기를 감추었다.
월씨 가문의 큰아가씨가 돌아왔다.
이 소식은 마치 맑은 물방울이 뜨거운 기름에 떨어지듯이 순식간에 청주를 들썩이게 했다.
* * *
"결국 돌아왔구나."
청주 자사(刺史) 조의박은 가볍게 탄식할 뿐 전혀 놀랍게 여기지 않았다.
그때도 그는 월령안을 죽이지 못했다. 지금 월령안이 돌아오는 것을 막으려 해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청주에서 행정 사무를 주관하는 지주 동 대인은 월령안이 돌아왔다는 소식과 함께 월령안이 보낸 명첩을 받았다.
동 지주는 월령안이 조금도 예의를 차리지 않고 직접 만날 시간을 멋대로 정한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명첩을 던져 버렸다.
그의 뒤에 서 있던 고문은 그때 당시 월씨 가문의 청주에서의 권세를 떠올리고 한마디 일깨워 주려 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동 지주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월씨 가문 이 아가씨는 지금의 청주가 십 년 전의 그 청주인 줄 아는가 보다. 어린 아가씨가 나를 만나겠다고 하면 내가 만나러 찾아가야 한단 말인가? 아직도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가 보지? 옆에서 월씨 가문 큰아가씨라고 부르면 진짜 자기가 월씨 가문에서 큰 권세를 부리던 큰아가씨인 줄 아나?"
큰아가씨는 월령안의 아버지가 계실 때 대외적으로 그녀를 소개할 때 쓴 호칭이었다.
월씨 가문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여자애만 해도 아홉이나 되었다. 월령안은 막내였지만 가장 총애받는 아이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살아 있을 때 남들이 그녀를 구낭자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적장녀는 남다르다고 그녀가 월씨 가문의 첫째 아가씨이자 유일한 큰아가씨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녀를 참으로 소중하게 여겼다.
월령안이 갓 걸음마를 떼자마자 아버지는 그녀를 데리고 수하를 만났다. 그녀를 정중하게 수하들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녀를 큰아가씨로 부르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것처럼 그녀에게 충성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장사 거래를 할 때도 아버지는 그녀를 데리고 나와 동업자에게 월씨 가문 큰아가씨라고 소개했다. 그녀를 어린애로 취급해 어르지 않았다.
월씨 가문이 무너지기 전, 월령안은 청주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보석과 같은 존재였다. 아무도 그 빛을 막을 사람이 없었다.
월령안은 사람들에게 월씨 가문의 큰아가씨라고 불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정한 월씨 가문의 큰아가씨이자 월씨 가문의 핵심 권력을 잡고 있는 큰아가씨였다.
그렇지만 고문은 동 지주가 이런 말들을 귀담아듣지도, 믿지도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청주 사람이 아니면 청주의 월씨 가문이 청주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동 지주는 월령안이 돌아온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청주 상업계의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월령안이 이번에 청주로 돌아오면서 이목을 끌면서 의사를 밝혔다. 사흘 뒤에 청주상회 회원들을 만나야겠다고 했다.
이건 바로 청주 상인들에게 그녀가 돌아왔으니 청주의 하늘이 변할 것이라고 알려 주는 것이었다. 마치 십 년 전 월씨 가문이 무너지고 범씨 가문이 갑자기 급부상한 것처럼 말이다.
다만 십 년 전 갑작스러운 변고가 닥쳤을 때 청주 상인들은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수동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들은 사전에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변혁에 대처할 충분한 시간이 있고 심지어 변혁에 직접 참가할 기회까지 주어졌다.
그들 중에는 칼을 갈며 이 기회를 빌려 청주의 대상인으로 도약하려는 이도 있었다. 또한 전투태세를 취하고 고도로 경계하며 수시로 반격을 준비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든지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는 월령안을 막을 수는 없었다.
청주 상인들이 소식을 받은 그날, 청주표국은 월령안의 명의로 과거 월씨 가문 대저택, 현재 범씨 가문 대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범씨 가문 가주는 이곳에 살지 않았다. 이곳에 사는 사람은 범씨 가문에서 일을 책임진 도련님 몇 사람뿐이었다.
범씨 가문의 사람들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측문을 열어 안으로 청했다.
"우리 집 대공자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표국 사람은 들어갈 의향이 없었다. 그냥 입구에 서서 한마디 하고 가 버렸다.
"우리 집 큰아가씨께서는 내일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월씨 가문 대저택을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범씨 가문 대공자는 일찌감치 편청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표국 사람이 한마디만 던지고 갔다는 소리에 화가 나서 얼굴빛이 변했다.
"땅문서가 우리 손에 있어. 지금 이곳은 우리 범씨 가문 저택이다. 월령안이 무슨 이유로 우리보고 나가라는 거야?"
"그녀가 월령안이고 이 집이 월씨 가문 저택이니까."
그의 아래쪽에 앉아 있던 이공자가 한마디 대답하고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대공자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둘째, 너 이게 무슨 소리냐? 넌 도대체 누구 편을 드는 것이냐? 거기 서!"
이공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대공자가 노하여 쫓아가려 하자 다른 형제들이 막아 나섰다.
"둘째는 항상 좀 이상하잖아요. 특히 월씨 가문 일만 말하면 비정상이에요. 큰형님께서도 아시잖아요."
"큰형님, 이 일은 아버님을 찾아뵈어야 해요. 아버님께서 뭐라고 하시는지 들어 봅시다."
범씨 가문 다른 몇몇 도련님들도 화가 났다. 하지만 대공자가 대노한 데 비해서 그들은 훨씬 냉정했다.
대공자는 노기를 억눌렀다. 다른 형제들을 데리고 바로 옆에 있는 범씨 저택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범씨 저택은 바로 월씨 저택 옆에 있었다.
일찍 범씨 가문은 월씨 가문에 의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은 상회에서 서로 도우면서 상업계의 동업자였다. 월씨, 범씨 두 가문의 아이들은 소꿉친구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이익'에 미치지 못했다.
월씨 가문에 변고가 생긴 뒤, 청주의 상인들은 마치 피비린내를 맡은 사나운 개 같았다. 일제히 달려들어 미친 듯이 월씨 가문의 세력을 강탈했다.
그중에서 청주 군부의 지지를 받는 범씨 가문이 가장 심하게 강탈하고 이득도 가장 많이 챙겼다.
일부 소상인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범씨 가문은 청주에서의 월씨 가문 위치를 대체했다.
물론 이것은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월씨 가문은 청주에서 백 년간을 경영했다. 짧디짧은 십 년 사이에 철저하게 대체할 수는 없었다.
범씨 가문은 월씨 가문을 밟고서 일약 청주의 제일 갑부가 되었다. 당연히 월씨 가문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특히 월령안이 이처럼 기세등등하게 오자마자 저택을 빼앗으려 하는 것을 범씨 가문 도련님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받아들이는지 아닌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들은 범씨 저택에 도착하자 부친의 얼굴도 못 보고 즉시 물건을 정리하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월씨 가문 대저택을 원상 복귀해서 내일 날이 어둡기 전에 돌려주라고 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냐?"
대공자는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월씨 대저택의 땅문서는 우리 손에 있다. 지금 우리 범씨 가문의 세력으로 월령안 이 일개 여인네를 무서워해야 한단 말이냐? 설령 그 여자의 배후에 조정이 있다고 해도 어떠냐? 최근 십 년 동안 우리 범씨 가문도 역시 조정을 위해 일해 왔잖느냐. 약속대로 매년 세금을 상납했어. 공로가 없어도 노고가 있잖느냐. 정말로 다투게 된다면 조정에서 누구를 도울지 모르는 일이 아니냐."
"큰도련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곳은 월씨 대저택입니다."
범씨 부친의 옆에서 일을 보는 관리자가 허리를 살짝 숙였다. 하지만 거절을 용납하지 않는 강한 말투였다.
"큰도련님, 나리께서 이렇게 하시는 건 분명 그분만의 생각이 있을 겁니다. 협조만 해 주시면 됩니다."
범씨 가문 가주가 명을 내렸다. 누가 감히 거역하겠는가.
범씨 가문 사람들은 그날로 월씨 저택에서 나왔다. 동시에 저택에서 범씨 가문의 흔적을 모두 지워 버렸다.
이튿날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하인들이 낡은 현판을 메고 월씨 가문 대저택으로 왔다.
붉은 천을 걷어내자 낡은 현판에 새겨진 '월택(月宅)'이라는 두 글자가 보였다.
그 두 글자는 세월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색상도 많이 옅어졌다.
하지만 누구도 감히 그 작은 현판을 경시하지 못했다.
'월택'이라는 현판이 월씨 대저택 정문에 걸렸다.
청주의 모든 사람은 월령안과 범씨 가문의 첫 대결에서 월령안이 이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주상회의 회장을 다시 선임해야 할 것이다.
월령안이 청주 성 밖에 나타난 그 날 밤, 곧바로 누군가 찾아왔다.
찾아온 이는 청주의 상인도, 관리도 아닌 육십이였다.
육십이는 삼백 명의 장병을 거느리고 한밤중에 표국에 찾아왔다.
표국의 모든 이들은 경계 태세를 취했다.
육십이가 빨리 소리쳤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싸울 뻔했다.
육십이는 월령안을 보자마자 와락 달려들어 안고서 울음을 터뜨렸다.
"월 누님, 끝내 찾았군요. 찾지 못했으면 굶어 죽을 뻔했어요."
"어서, 빨리 손 좀 놓으세요."
월령안은 육십이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에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 그녀는 코를 움켜쥐고 연신 물러섰다.
"이건 무슨 냄새인가요?"
"네? 저 냄새 나나요?"
십이는 월령안을 놓아 주고 옷소매를 들고 냄새를 맡았다. 얼굴에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네. 그 냄새로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거 같아요……."
월령안은 코를 움켜쥐었던 손을 놓았다. 썩은 냄새와 시큼하고 구린 냄새가 뒤섞인,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 다시 입과 코를 가리고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웅 아저씨, 먼저 저들을 목욕시키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세요. 몸을 깨끗이 한 다음에 다시 말해요."
"큰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바로 그들을 데리고 가서 깨끗이 씻기겠습니다."
웅 표사는 월령안의 말을 듣고 긴장된 마음을 풀었다.
보아하니 큰아가씨는 정말 이 사람들을 아는 듯했다. 찾아온 이가 친구라면 그들에게는 좋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