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화 청주의 월씨 가문
"폐하, 신 이만 물러갑니다."
최일은 예의를 지켜 황제에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난각에서 나가서도 조계안은 최일을 놓아 주지 않았다. 정말로 그를 태의원에 데리고 가서 송 어의더러 보게 했다.
"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목의 흔적은 바로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송 어의는 최일에게 연고 한 병을 가져다주었다.
"이 연고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붓기를 없애는 것입니다. 대인께서 하루에 세 번 바르면 사흘이면 없어질 겁니다."
"무슨 이런 형편없는 연고를 주고 그래? 설옥고를 가져오너라."
조계안은 연고를 받아 한 번 보고는 바로 던져 버렸다.
"전하, 소인의 손에는 설옥고가 없습니다. 또한 최 대인의 이 상처는 설옥고를 발라도 하루가 지나야 없어질 겁니다."
송 어의는 약을 주우며 성격 좋게 설명했다.
'그깟 작은 부상에 설옥고를 쓰다니. 조왕 전하는 정말로 아랫사람들의 처지는 아무것도 모르는군.'
"이반반을 찾아가서 설옥고를 한 병 가져오거라."
조계안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송 어의는 조계안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소홀히 할 수 없어 즉석에서 대답했다. 하지만 최일이 저지했다.
"필요 없습니다. 저에게는 령안이 전에 선물한 약이 있습니다. 외상 치료에 아주 좋다고 하니 집에 돌아가서 바르면 됩니다."
송 어의는 감히 제멋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조계안을 살펴보았다.
"됐다. 최일의 말대로 해라. 그냥 물러가거라."
조계안은 차가운 얼굴로 싫은 티를 내며 송 어의를 내쫓았다.
송 어의가 떠나간 뒤, 조계안은 최일을 단단히 노려보았다.
"월령안이 언제 너에게 약을 선물했어? 난 왜 몰랐지? 그리고 이제 됐으니까 말해. 월령안이 너에게 소식을 전했지? 괜찮은 거래? 어디에 있다고 하냐?"
"음."
최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변이 없으면 아마 청주에 도착했을 겁니다."
"그래서 너도 강남에 가려고 하는 거냐?"
조계안의 눈은 침울한 데다가 붉은빛이 서려 있었다.
최일은 조계안을 바라보며 가볍게 탄식했다.
"방금 전 일은 감사해요."
조계안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최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최일, 월령안은 너를 거절했어."
"그녀는 모든 사람을 거절했습니다."
거절당한 건 그 혼자뿐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직 단념하지 않았다는 것이냐?"
조계안은 최일을 음침하게 노려보았다.
"죽기 살기로 매달려 월령안을 감동시키려고?"
"그녀가 감동할 수 있을까요?"
최일은 웃으며 되물었다.
조계안은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니."
"당신도, 저도 알고 있잖아요. 제가 강남에 가는 건 다만…… 령안에게 힘이 되고 싶어서예요."
최일은 말투가 평온하고 표정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눈빛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가 죽기 살기로 매달려 봤자 월령안에게는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월령안이 쉽게 감동하지 않을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월령안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리는 다 알지만 실천할 수가 없었다.
"흥, 힘이 돼 준다고?"
조계안은 하찮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왜 황형이 꼭 월령안을 쓰려고 하는지 알아? 왜 꼭 월령안을 청주에 보내려 하는지 알아? 그리고 조운충이 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변경으로 잠입해 월령안이 청주로 가는 것을 저지하려 했는지 알아?"
"왜인가요?"
최일은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줄곧 담담하던 얼굴에 차갑고 엄숙한 기운이 서렸다.
조계안은 최일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얇은 입술을 가볍게 열었다.
"왜냐하면 청주에서는……."
* * *
"청주에서는 우리 월씨 가문이야말로 왕이야."
같은 시각, 월령안은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청주성을 가리키며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월씨 가문은 청주의 왕이다.
월령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표정은 마치 '오늘 날씨가 좋네요'를 말하는 것과 같았다. 전혀 패기와 위협감이 없어 무심코 내뱉은 말 같았다.
수횡천과 소육자도 물론 지나가는 말로 들었다. 월령안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육자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월 누님, 우리 지금 청주에 도착했어요. 어떻게 들어가야 하나요?"
"물론 걸어 들어가야죠."
월령안이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이 대답했다.
소육자의 준수한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당황한 듯 되물었다.
"그냥 이렇게 직접 걸어 들어가요? 지금요?"
'맞아 죽지는 않을까?'
그들에게는 맹주가 있지만, 맹주는 손이 한 쌍밖에 없었다. 길에서 습격당하는 일이 있으면 맹주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청주, 남의 영역에 오면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소육자를 흘겨보았다.
"물론 이렇게 직접 들어가면 안 되죠."
"제 말이……."
소육자가 방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마자 월령안은 또 말했다.
"제가 청주로 돌아왔는데 어찌 아무 규모도 갖추지 않을 수 있어요. 그냥 이대로 입성하면 청주 그 몇 노친네들은 아마 저도 제 셋째 언니처럼 맘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으음…… 규모요? 무슨 규모요?"
소육자는 아리송해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수횡천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만 관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령안아, 내가 무엇을 하면 되느냐?"
청주 영역에 도착하자 월령안은 이미 소년 분장을 그만두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수횡천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청주에 도착했어요. 수 오라버니는 더는 걱정하지 마세요. 누구도 감히 저희를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갑시다. 우리 돌아가서 잠이나 한숨 푹 자자고요. 기운을 번쩍 차리고 입성해야죠."
월령안은 말을 끝내고 되돌아서 마차로 걸어갔다.
소육자는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따라갔다.
"월 누님……!"
"아무것도 묻지 말아요."
월령안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마차에 뛰어오르며 말했다.
"내일이면 알게 돼요. 지금은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거예요. 말해도 둘 다 믿지 않을 거니까요."
변경에서는 누구나 괴롭힐 수 있는 월씨 가문이 청주에서는 얼마나 대단한 권력을 갖고 있는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물론 마찬가지로 변경에서는 칠 품 벼슬아치를 상대해도 웃는 얼굴을 보여야 했던 월령안이 청주에서는 공주와 같은 존재였다는 것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예전의 월씨 가문, 예전의 그녀가 청주에서 얼마나 잘나가갔든지 그건 모두 지나간 일이었다. 그녀는 지난날의 영광으로, 조상의 공적으로 살 수는 없었다.
그녀는 반드시 자신만의 영광을 이루어 내야 했다.
월령안은 수횡천과 소육자를 거느리고 한 표국(鏢局)을 찾아갔다.
마차는 표국 입구에 멈춰 섰다.
소육자는 의혹이 어린 표정으로 왜 표국에 왔는지 궁금해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표국의 대문이 열렸다. 간편한 복장을 입은 무사(武師)들이 우르르 나오더니 두 열로 나뉘어 입구에 섰다.
무사들이 서자마자 위풍당당하고 힘세 보이는 남색 경장(勁裝) 차림을 한 중년 사내 셋이 정문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들은 재빨리 마차 옆으로 걸어갔다.
그중 한 사람이 앞으로 다가가 마차의 문을 열고 월령안을 맞이했다.
월령안이 나타나자 셋은 한쪽 옆으로 피해 서서 예를 올렸다.
"큰아가씨!"
"큰아가씨께서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양쪽에 서 있던 무사들도 높은 소리로 외쳤다. 모두 포권하여 월령안에게 예를 올렸다.
소육자는 이 정경에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는 마차에서 뛰어내린 다음 한쪽 옆에 서서 의혹이 담긴 눈빛으로 수횡천을 바라보았다.
수횡천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 역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 청주에서 월씨 가문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이리 몇 해가 지났는데도 웅(熊) 아저씨 여러분은 전혀 변하지 않았군요."
월령안은 마차에서 내린 다음 급히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를 마중하러 온 세 사람과 인사하고, 고개를 들어 '청주표국(靑州鏢局)'이라는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얼굴의 미소가 다소 옅어졌다.
"큰아가씨께서는 성인이 되셨군요. 저는 큰아가씨께서 요만큼 컸을 때가 기억납니다."
월령안에게 차문을 열어주던 표사(鏢師)가 자기 아랫다리 쪽을 가리키며 웃어 보였다. 그 미소는 너무나 험상궂어 어린애가 놀라서 울 정도였다.
"그래요. 제가 커서 돌아왔어요."
월령안은 차가운 표정에,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찬 한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침착하고 차분하게 표국으로 걸어갔다. 부드러워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 치맛자락이 그녀의 발걸음에 따라 등 뒤에서 보기 좋은 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그 곡선은 마치 대검처럼 냉랭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웅씨 등 세 사람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셋 모두 체구가 크고 얼굴에 살기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월령안의 존재감이 커서 그들은 오히려 호위병, 똘마니 같았다.
소육자는 한쪽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 슬그머니 수횡천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맹주, 제가 월 누님 뒤에 따라다니면 저들과 같이 똘마니 같아 보이나요?"
"똘마니 같아 보이지 않아."
수횡천은 소육자를 흘겨보았다.
"넌 그냥 똘마니야."
소육자는 금세 화가 나서 방방 뛰었다.
"맹주, 이 말씀은……."
그러나 그가 입을 열자마자 두 무사가 다가오더니 정중하게 말했다.
"수 맹주, 남 도련님, 이쪽으로 오세요."
소육자는 제삼자가 곁에 있자 마음속 한가득한 불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무사를 따라 대청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은 대청에 들어서자마자 월령안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웅 아저씨, 사람을 보내 월씨 가문 고택을 되찾아오세요. 그들에게 월령안이 돌아왔다고 알리세요. 내일까지 본래 모습을 되찾은 월씨 대저택을 보고 싶다고 전하세요."
월령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수횡천이든 소육자든 모두 그녀의 말에서 거절을 용납하지 않는 강한 기세를 엿볼 수 있었다.
수횡천을 걸음을 멈추고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월령안은 상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온몸의 기세는 변경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이 순간의 그녀는 침착하고 대범하며 차분하고 냉정했다. 기세등등하지도 않고 애써 거드름을 피우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 담담하고 차분하게 앉아만 있어도 믿음직하고 강대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큰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오늘 당장 가서 처리할 겁니다. 반드시 월씨 대저택을 되찾아오겠습니다."
웅 아저씨라고 불리던 표사는 고개를 숙이고 월령안 앞에 서 있었다. 무척이나 자세를 낮춘 모습이었다.
월령안은 전혀 뜻밖으로 여기지 않았다. 계속하여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청주상사의 각 상가에 편지를 보내 사흘 뒤에 제가 귀성한다고 전하세요. 그리고 월씨 저택에서 만나 청주상회 회장 인사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싶다고 말해 주세요."
"네, 큰아가씨."
웅 표사가 또 대답했다.
월령안은 옆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야 비로소 느긋하게 물었다.
"추수와 상천은 언제 도착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