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597)화 (597/1,004)

597화 저도 모릅니다

최씨 가문에서 파견한 사람들이 무사했던 이유는 그들이 당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은밀히 탐색하지 않았다. 규칙대로 명첩을 건네 수횡천을 만나려 했다.

수횡천은 명첩을 되돌려주고 그들을 만나 주지 않았다. 그들도 성과 없이 돌아오기는 마찬가지지만 사람들이 무사하고 상처도 입지 않았다.

수횡천이라는 살아 움직이는 살인 무기가 있어 누구도 마차에 접근하지 못하고 마차 안의 사람도 해칠 수 없었다. 점차 정탐꾼을 파견하는 사람도 적어졌다.

아무튼 월령안이 범씨 가문과 만나는 날짜도 가까워지므로 때가 되면 월령안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조운충이 이번에 청주를 떠나서 맡은 임무는 바로 월령안을 사전에 죽여 그녀가 살아서 청주에 도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 그는 마음만 있을 뿐 힘이 없었다.

황금당의 사람들이 그를 쫓아다니며 빚 독촉을 하고 있었다.

월령안을 '죽인' 보수 외에 배상금도 있었다.

천목신교 교주 남상권이 황금당이 유일무이한 마차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바로 조운충이 이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 준 것이라고 말했다.

황금당은 남상권에게서 큰 손해를 입었다. 안팎으로 체면을 깡그리 잃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상권은 무공이 높을 뿐만 아니라 천목신교의 세력도 컸다. 황금당은 결코 남상권과 천목신교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누구든 만만한 상대를 골라 괴롭히는 법이다. 황금당은 남상권과 천목신교를 어찌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밖에서 쏘다니며 곁에 일손이 제한된 조운충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조운충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황금당에서 월령안을 죽인 보수마저도 지불하지 않으려 했다. 외모를 알아볼 수 없는 머리만 가지고 월령안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월령안과 범씨 가문이 약정한 날이 지난 다음에야 보수 잔금을 전부 지불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황금당의 손실을 배상한다는 것은 더 말할 여지가 없었다.

황금당의 손실이 그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 무슨 비루먹을 마차에 대해서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 그가 어떻게 천목신교에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설령 그가 한 짓이라 해도 어쩔 것인가.

황금당이 재간이 없어 자기 물건도 못 지키면서 왜 그를 나무라는가.

황금당에서 남상권을 이길 수 없으니 그에게 화풀이를 하다니. 그를 무엇으로 여기는 것인가.

조운충도 한 성격 하는 편이었다. 더욱이 이런 일은 그와 그의 배후에 있는 청주의 체면과도 관련되므로 절대로 머리를 숙일 수 없었다.

그리하여 황금당과 조운충 사이에 싸움이 붙었다.

수횡천이 월령안을 호송하여 청주로 가는 동안, 조운충의 사사는 황금당의 살수들과 결투를 벌였다.

오늘 이쪽에서 사사 둘을 죽이면 내일은 저쪽에서 살수 셋을 죽였다. 그러다 보니 쌍방의 손실이 막대했다.

원래 황금당과 조운충은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맞서 싸웠던 것이다. 하지만 서로 싸우다 보니 어느샌가 불이 붙게 되었다. 죽기 살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결코 서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조운충은 황금당과 맞서 싸우다 보니 월령안의 생사를 돌볼 겨를이 전혀 없었다. 월령안이 진짜 죽은 것인지 아니면 거짓으로 죽은 것인지를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때문에 월령안이 청주로 가는 길은 태평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는 없었다.

최일은 손에 든 명첩을 보면서 수하의 보고를 들었다. 쌀쌀맞고 우아했던 얼굴에 봄바람같이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전에 월령안의 '사망 소식'이 전해 왔을 때 그는 마음속으로 믿지 않았다. 월령안이 죽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 마음은 자기만 아는 것이다.

사실 그는 마음속으로 당황하고 두려웠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 소식이 사실일까 두려웠다.

어쨌든, 이 세상에는 터무니없는 진실도 많았으니 말이다.

이 시각 최일은 명첩에 쓰인 글을 보자 정말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는 월령안의 글을 알아볼 수 있었다.

수횡천이 돌려보낸 명첩에는 월령안의 글이 적혀 있었다.

'령안은 과연 무사하군.'

월령안의 소식을 받은 최일은 좀 전의 쌀쌀함과 쓸쓸함을 털어 버렸다. 어둡던 눈동자는 순식간에 눈이 시릴 정도의 빛을 뿜어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일 뿐, 최일 눈 속의 빛은 곧 사라졌다. 그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없이 온몸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풍겼다.

월령안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도 사람들에게 월령안의 소식을 받았다는 것을 알려서는 안 되었다. 월령안에게 누를 끼쳐서는 안 되었다.

최일은 아주 신중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명첩을 태워 버렸다.

그는 여러 번에 걸쳐 자신의 얼굴 표정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황궁에 들어가 황제를 알현했다.

그는 태후를 강녕으로 호송하기를 자청했다. 동시에 강녕지부 직무를 이어받으려 했다.

최일이 황제를 만날 때 조계안도 함께 있었다.

황제가 입을 열기도 전에 조계안이 벌떡 일어났다.

"너 월령안의 소식을 받은 것이냐?"

조계안은 최씨 가문에서 수횡천에게 보낸 관리자가 귀성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최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황제에게 읍만 하고 약간 고개를 숙이고 공경을 표하며 조용히 황제의 명령을 기다렸다.

"최일, 내가 너한테 물어봤잖아!"

조계안은 앞으로 뛰어나가 최일의 멱살을 와락 잡고서 강제로 앞으로 잡아당겼다.

"너 월령안의 소식을 받은 거 아니야? 수횡천이 호송하는 그 소년이 바로 월령안이지. 맞아?"

최일은 조계안에게 멱살을 잡히다 보니 목이 졸려 숨쉬기가 어려웠다. 준수한 얼굴이 숨이 막혀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하지만 최일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고개를 약간 저었다.

"전하, 저의 사람은 수 맹주를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물어보는 문제에 대해 저도 모릅니다."

"최일, 너 지금 나를 상대로 잔머리를 굴리는 거냐?"

조계안의 눈에는 사람을 집어삼킬 것 같은 사나운 빛이 반짝였다. 눈 속의 사나움이 얼굴의 가면보다 더욱 험상궂고 무서웠다.

최일은 눈썹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차분하게 조계안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전하, 저를 심문하는 겁니까? 저를 황성사에 데려가시렵니까?"

"왜 내가 못 할 것 같으냐?"

조계안은 힘을 더해 최일을 무자비하게 잡아챘다.

"이 세상에서 내가 심문하지 못할 사람은 없어."

최일은 한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얼굴빛이 자줏빛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도, 버둥거리지도 않았다. 그냥 냉담하게 조계안을 마주 보았다. 마치 사람에게 목이 졸려 숨도 쉴 수 없고 숨이 막혀 죽기 일보 직전인 사람이 그가 아닌 듯했다.

황제는 조계안이 최일을 추궁하게 내버려 두고 줄곧 입을 열지 않았다.

최일은 눈을 감았다. 그의 차갑고 준수한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제야 황제는 소리 내어 꾸짖었다.

"계안, 그만하거라."

조계안은 고개를 돌렸다. 황제의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고 괴팍하고 냉혹하게 말했다.

"이는 저와 최일의 일입니다. 황형과는 상관없어요."

황제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얼굴에는 불만이 서려 있었다.

"최일을 목 졸라 죽여야 손을 놓을 것이냐?"

"그러면 어쩔 건데요?"

조계안은 또다시 힘을 더하며 최일을 더 세게 잡아당겼다.

"최일도 아무 말을 하지 않잖아요. 아닌가요?"

최일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기절한 것 같았다.

황제는 조급한 표정을 하고서 후딱 일어섰다.

"계안, 빨리 손을 풀어라. 최일이 숨넘어가겠다!"

"무용지물."

조계안은 혐오하듯 흥, 콧방귀를 뀌었으나 결국 손을 풀었다.

바로 그때, 줄곧 눈을 감고 있던 최일이 갑자기 손을 뻗어 조계안의 팔을 잡았다.

그는 조계안이 미처 반응하기 전에 업어치기로 땅바닥에 메어꽂았다. 그러고는 한쪽 무릎으로 조계안의 얼굴을 내리눌렀다.

"전하, 죄송합니다."

조계안은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었다. 최일이 무릎으로 누르자 아파서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조계안은 갑자기 힘을 써 최일을 밀어내고 도로 그를 깔고 앉았다.

"여봐라, 여봐라!"

두 사람이 싸우는 순간, 황제는 큰 소리를 질렀다.

금군이 뛰어 들어왔다. 뒤엉켜 싸우고 있는 조왕과 최일을 보고 모두 멍해져 일순간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황제가 어서 두 사람을 갈라놓으라고 명령하고 서야 금군은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다가가 조계안을 잡아끌었다.

정말 싸운다면 물론 금군은 조계안의 적수가 안 되었다.

하지만 조계안은 거의 반항하지 않고 금군이 끄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최일은 손을 저어 금군의 부축을 거절했다. 스스로 땅바닥에서 일어서서 태연자약하게 옷의 주름을 툭툭 털면서 조계안에게 잡혔던 옷깃도 정리했다.

황제는 최일이 무사한 것을 보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개를 돌려 조계안의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그를 노려보았다.

조계안은 금군을 밀쳐 버리고 팔짱을 끼고서 오만방자하게 한쪽 옆에 서 있었다. 황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황제도 많은 이들 앞에서 조계안을 질책할 생각이 없었다. 경고 어린 눈빛으로 조계안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최일을 위로했다.

"최일, 계안은 줄곧 월령안을 걱정했단다. 오늘은 충동적으로 한 일이니 네가 마음에 담아 두지 말거라."

"폐하께서 과한 말씀입니다. 저와 조왕은 친구 사이입니다. 친구 사이에 장난치는 건 예삿일입니다."

최일은 미소를 지으며 황제에게 공수했다.

"폐하, 신이 예의를 잃었습니다. 폐하께서 신이 먼저 물러가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최일은 침착하고 품위가 있었다. 표정이나 거동은 처음 볼 때와 똑같았다. 조계안과 따지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

최일의 대범함과 비교하면, 팔짱을 끼고서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는 조계안은 생떼를 쓰는 어린애와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총애하여 제멋대로인 동생이었다. 그인들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황제는 최일을 위로하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강녕지부의 일에 대해서는 짐이 생각해 볼 것이다. 짐이 송 어의를 불러 네 목을 좀 보라고 할 것이다. 그 목의 상처가 좀 심하구나."

최일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작은 상처라……."

조계안은 최일의 말을 끊으며 그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작기는 뭐가 작아. 가자. 어의 보러 가자."

"전하."

최일은 조계안이 당기는 바람에 비틀거리다가 겨우 몸을 가누었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서 말했다.

"손 좀 놓으세요!"

최일은 조계안을 다독여 그의 손에서 옷을 빼내었다. 조계안은 그때, 바로 태도를 바꾸어 어깨동무하면서 한쪽 손을 최일의 어깨에 걸치고, 반강제로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고분고분하게 나와 함께 의원을 만나러 가자. 목 졸린 자국을 그대로 가지고 황궁 밖으로 나가려고? 왜 불쌍한 척하려고 그래?"

조계안은 최일을 윽박지르며 등 뒤의 황제에게 손을 저어 보였다.

"황형, 제가 최일을 데리고 송 어의한테 갈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