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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91)화 (591/1,004)

591화 왜 여태 눈치채지 못했을까

수횡천은 부담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그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월령안은 두 눈을 반짝였다.

"정말이에요? 생선이 이렇게 좋은가요? 그냥 삶은 게 이렇게 맛있어요?"

수횡천은 낮은 목소리로 월령안에게 설명해 주었다.

"뒷산의 못은 물이 엄청 차가워. 물고기들이 추위를 막기 위해 지방이 특별히 많은 거야. 굽든 삶든 약간의 소금만 넣어 주면 맛이 끝내주거든."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매일 먹으면 질렸다. 적어도 수횡천은 이 물고기들이 별로 맛있는 줄 몰랐다.

"물고기 양이 많은가요? 길러도 될까요?"

월령안은 일찍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귀한 물건을 적지 않게 먹어 보았다. 그래도 이 물고기는 그녀의 구미에 딱 맞았다.

그녀마저 맛있다고 생각하는 생선은 틀림없이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것이다.

"이 물고기는 엄청 빨리 자라고 양도 많아. 나와 소육자가 날마다 먹어도 줄어드는 줄을 몰랐거든. 하지만 이 물고기는 아주 까다로워서 키우기 어려울 거야. 못을 떠나서는 그 못의 물로 키워도 한 시진밖에 살지 못해. 죽자마자 변해 버려 먹을 수 없게 되고."

수횡천은 월령안이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하면서도 걱정스레 말했다.

하지만 월령안은 개의치 않았다.

"양이 적고 맛있으며 보기 드물고 까다롭기까지 하다. 이 물고기는 잘만 하면 무림맹의 명물이 될 수 있어요. 수 오라버니, 부디 그 못을 잘 지키세요. 시월에 무림대회가 열리면 우리 이 생선으로 손님들을 대접해요. 그때를 기회로 잡아 생선을 선전해 무림맹의 명물로 만들자고요."

"가능할까?"

수횡천은 의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가능해요."

월령안은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더라도 되게 만들어야 했다. 무림맹에는 물고기 외에 명물이 될 만한 것이 없었다.

무림 마을이야 그녀가 돈을 내어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림맹은 꼭 자기만의 상품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남들이 쉽게 모방하지 못할 것이다.

"좋아."

월령안의 약속이 있으니 수횡천은 아무런 걱정도 안 되었다.

세 사람이 식사를 마친 후 월령안은 자발적으로 그릇 씻기를 도맡았다. 설거지가 끝나자 수횡천과 소육자가 앞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소육자는 수횡천에게 남상권과 황금당 당주가 사흘 밤낮을 싸운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월령안은 가까이 다가서자 소육자가 천년 유창목으로 만들어진 마차가 얼마나 귀한지를 자랑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가 뽐 내며 잘난 척하는 소리를 듣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감싸고 말았다.

이 일은 정말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분명히 대외적으로 그 마차가 무슨 재질로 만들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천목신교의 교주가 그 마차를 눈독 들이고 강호인들이 모두 그 마차를 알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령안아, 내가 남상권과 경성에서 맞붙은 적이 있어."

수횡천은 월령안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일어서서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경성에서요?"

월령안은 수횡천의 말 가운데 중점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수횡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이유를 찾아 소육자를 보내 버린 뒤에야 입을 열었다.

"령안아, 남상권이 곧 육장봉이야. 비록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내가 맞붙어 보았기에 확신할 수 있어."

"잠깐만요. 수 오라버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남상권이 바로 육장봉이라고요?"

월령안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수횡천을 바라보았다. 수횡천이 긍정적인 대답을 한 다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해요? 이 두 사람. 아니다……"

반쯤 말하다가 월령안은 갑자기 낯빛이 변했다.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멍해서 말했다.

"만약 육장봉이 남상권이라면, 남상권이 왜 그 마차를 눈독 들였는지 알 것 같군요."

그러니까 강호인이 까닭 없이 그 마차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남상권이 바로 육장봉이다. 그렇다면……

"천목신교가 오 년 전부터 재물을 긁어모으기 시작한 것은 바로……."

월령안은 말하다 보니 웃고 있었다. 다만 그 웃는 모습이 우는 것보다 더 보기 흉했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하하……! 그랬던 거였구나. 그랬었구나!"

지금까지 결국 그녀 자신이 어리석고 독선적이며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녀는 누구든 자신을 대신할 수 없고 자신이 특별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그녀가 없어도 육장봉은 마찬가지로 계속하여 싸울 수 있었고 승리할 수 있었다.

육장봉은 전혀 그녀가 필요 없었다. 시종일관 그녀가 필요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짝사랑에 빠졌고 자신을 너무 대단히 여겼으며 자신이 어리석은 줄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바로 웃음거리였다.

월령안은 웃음 끝에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녀는 정말 어리석었다.

정말 너무나 어리석었다.

육장봉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그녀 그리고 그녀가 선물한 것을 모두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분명하게 드러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왜 여태 눈치채지 못했을까.

왜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까.

월령안은 마치 큰 충격을 받은 듯 정신이 어지러워지고 눈빛이 풀어지며 발걸음이 비틀거렸다. 미처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월령안이 넘어지려 하자 수횡천은 부축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물었다.

"령안, 괜찮아?"

수횡천은 몰래 후회되었다. 월령안의 반응이 이렇게 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그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 전 괜찮아요, 저는 다만……."

월령안은 눈물범벅이 되어 수횡천을 밀어내고 억지로 홀로 굳건히 섰다.

생각 밖에 다음 순간 그녀는 갑자기 피를 토했다.

수횡천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몸이 무너져 내리더니 바로 쓰러졌다.

"령안!"

수횡천은 긴 팔로 월령안을 안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소리쳤다.

"월령안. 날 놀라게 하지 마!"

하지만 월령안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수횡천은 월령안을 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문득 좀 전에 발견한 네 번째 기척을 떠올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나와라!"

수횡천은 다만 시도해 본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소리를 지르자마자 사람이 나왔다.

"수 맹주, 저희 마님께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암위는 수횡천이 그의 존재를 발견할까 두려워 수횡천이 나타나자마자 줄곧 멀리 숨어 있었다. 때문에 수횡천과 월령안의 대화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월령안의 몸에 피가 묻은 것을 보고, 암위는 차갑게 물었다.

"자네가 육장봉의 암위인가?"

수횡천은 상대의 호칭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네. 저희 마님께 무슨 짓을 하신 것은 아니겠지요?"

암위가 재차 물었다. 그러고는 마음속으로 손을 써 수횡천의 수중에서 월령안을 빼앗아 가는 데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지 묵묵히 가늠해 보았다.

어떻게 가늠해도 성공 확률이 일 할밖에 안 되었다. 암위는 수횡천의 수중에서 월령안을 빼앗아 갈 계획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횡천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즉시 육장봉에게 전갈을 보내라. 내가 령안에게 그가 바로 남상권이란 사실을 알려 주었다. 령안은 그 소식을 듣고 피를 토하고 쓰러졌어."

말을 마치고 수횡천은 월령안을 안고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암위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서 미칠 듯이 복잡해진 생각을 정리했다.

잠깐 동안 좀 멀리 있은 것뿐인데 어찌 이렇게 큰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이번에는 내가 끝장날 차례인가?'

육장봉은 사람을 거느리고 가서 황금당의 사람들과 한바탕 싸우고 막무가내로 마차를 빼앗았다. 황금당은 완전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하지만 육장봉은 결코 기쁘지 않았다.

그 마차는 본래 월령안이 그에게 선물하려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쫓아가서 빼앗아 왔다. 빼앗아 왔다고 한들 어떠한가.

월령안이 직접 선물한 것이 아니라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때문에 마차를 빼앗아 온 후, 육장봉은 사람들에게 마차를 봉하라고 했다. 더는 쓸 생각이 없었다.

그는 월령안이 직접 마차를 선물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천년 되는 유청목이 아니라도 괜찮았다. 월령안이 선물하는 것이면 다 되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월령안이 선물하는 마차를 기다려 내지 못했다. 그보다 먼저 월령안이 그의 또 다른 신분을 알게 되었으며 또한 이로 인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는 소식을 받게 되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육장봉은 탁자 모서리를 분질러 버렸다. 그러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

"내가 전생에 필히 수씨 가문의 조상 묘를 팠던 게 분명해."

그가 남상권이라는 사실을 수횡천이 월령안에게 말해 줄 필요가 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가 입이 없는 것도 아니고 때가 되면 스스로의 입으로 말해 주려고 했다.

수횡천은 더 이상 그와 맞붙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반드시 천목신교의 교주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지 보여 줄 것이다.

월령안은 몸이 워낙 약했다. 이에 대해 육장봉은 잘 알고 있기에 그녀가 피를 토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곧바로 천목신교의 사의(邪醫)를 이끌고 박차를 가해 무림맹으로 달려갔다.

귀신 가면을 쓴 육장봉은 잠시 멈추더니 무림맹의 반쪽 남은 경계비를 향해 말채찍을 휘둘렀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림맹의 남은 경계비 반쪽이 순식간에 부스러기가 되어 누런 흙 속에 흩뿌려졌다.

육장봉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하여 말에 채찍질하여 무림산장으로 달려갔다.

육장봉에게 무작정 잡혀 온 사의는 벌벌 떨면서 최대한 몸을 웅크리다 보니 몹시 가련해 보였다. 강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사의의 풍모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반 시진 뒤 육장봉과 사의는 산장에 도착했다.

말이 멈추기도 전에 육장봉은 말 등에서 몸을 날려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산장의 허름한 나무문에 발길질을 하여 나무 부스러기로 만들었다.

소육자가 인기척을 듣고 나왔을 때는 나무 부스러기들이 날아다닐 때였다. 욕을 퍼부으려는 순간, 붉은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귀신 가면을 쓴 육장봉이 산장 안에 나타났다.

소육자는 당장 기가 꺾여 한쪽에 찌그러져 나약하고도 무기력하게 불렀다.

"교, 교…… 남 교주!"

"수횡천은? 당장 나오라고 해!"

육장봉이 걸친 붉은 옷은 바람 없이도 휘날렸다. 등 뒤에 먹빛 같은 긴 머리도 함께 휘날리자 위압감이 무척 강해 보였다.

아니, 아니. 아니었다. 강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위압감이 강대하고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위압감을 한껏 드러낸 육 대장군, 남 대교주 앞에서 풀이 죽은 소육자는 전혀 반항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대뇌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묵묵히 뒤뜰을 가리키며 몸을 비켜 육장봉에게 길을 내주었다.

육장봉은 소육자 곁을 성큼성큼 걸어 지나갔다. 소육자는 무서워서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자신을 누에고치처럼 말아 존재감을 없애고 싶었다. 육장봉이 멀리 가서야 그는 자신이 다시 살아난 것만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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