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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84)화 (584/1,004)

584화 저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소함연은 그때 정말로 잘못했다.

그때 정말로 월령안을 죽이지 않고 그녀를 지금까지 살게 한 게 바로 잘못이었다.

월령안은 그녀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말을 마치고 그만 발을 거두고는 냉담하게 말했다.

"소함연, 언제부터 그렇게 천진난만했어? 정말로 순진하게 절 몇 번을 하고 몇 번 빌면 지난날의 모든 걸 지워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바보가 된 것도 아니고."

"나한테 보복하면 되잖아! 예전에 우리가 너에게 대했던 그대로 똑같이 되돌려 주면 되잖아. 나를 네 마음대로 유린해도 돼."

소함연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애써 평온을 유지하면서 월령안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월령안에게 빌어서는 소용없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수해 되돌려 주라고?"

월령안은 코웃음을 치며 한쪽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내가 그럼 짐승하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녀는 짐승 같은 소씨 남매를 혐오했다. 그러니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노인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마 소함연, 소여방 남매와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노인이 그녀의 삶에 나타났다.

마치 십 년 전, 육장봉이 그녀의 운명 속에 나타나 그녀를 심연의 끝자락에서 끌어올려 그녀로 하여금 심연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해야 나를 도와줄 수 있어?"

소함연은 다시 월령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알고 있어. 네가 나를 밖으로 내던지지 않은 건 내가 아직 이용할 가치가 있다는 거잖아. 맞아?"

친구들은 당신을 잘 알지 못할 수 있지만, 적수는 반드시 당신을 잘 안다.

소함연은 원래 타고나길 둔하지 않았다. 다만 응석받이로 키워졌을 뿐이었다.

"소씨 가문의 큰 아가씨께서 이제야 순진하게 굴지 않는군."

월령안은 비웃으며 말했다.

"나한테 무엇을 시키려고. 말하기만 해. 꼭 해낼 수 있어."

소함연은 일어섰다.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은 확고해졌고 더는 좀 전의 여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월령안은 소함연에 대한 혐오를 숨긴 적이 없었다. 그녀는 소함연에게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직 소영화와 연락하고 있어?"

소함연은 잠깐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연락하고 있어!"

"아직도 그를 좋아하는 거야?"

월령안이 되물었다.

"아니. 그냥, 복수하려고."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망친 남자를 좋아할 리 만무했다.

만약 그 남자가 없었다면 그녀와 그녀의 오라버니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이 지경까지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순조롭게 육장봉에게 시집갔을 것이고 그녀의 아버지는 여전히 주나라의 승상이며 그녀의 오라버니는 앞날이 창창했을 것이다. 그리고 월령안은…….

소함연은 월령안을 힐끗 바라보고는 눈을 감았다.

한때 그녀는 하늘의 구름이고 월령안은 땅바닥의 흙이었다. 그녀는 월령안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월령안을 미워할 자격조차 없었다.

"좋아하지 않으면 됐네."

월령안은 소함연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거절을 용납하지 않는 말투로 말했다.

"너는 무슨 방법을 쓰든지 반드시 소영화를 설득해야 해. 그더러 볼모를 바꾸라고 해. 대황자 야율융진을 주나라에 볼모로 남기라고 해."

"나는……."

소함연은 본능적으로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열자마자 월령안에게 저지당했다.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 이것조차 할 수 없다면 내가 왜 너를 도와줘야 하지?"

소함연은 혀끝까지 밀려왔던 말들을 도로 삼킨 다음 이를 악물고 말했다.

"할 수 있어!"

그녀는 월령안이 결코 좋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함연은 갑갑한 대로 물었다.

"또 있어?"

월령안은 허리춤의 옥구(玉扣 - 옥으로 된 가락지 모양의 장식품)를 만지작거리며 무심코 말했다.

"두 번째는 더 간단해. 폐하의 의동생이 되어서 공주 신분으로 서남 토사의 아들과 결혼하면 돼. 시집간 다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내가 가르칠 필요가 없겠지?"

"나는 육비우와 혼약이 있어. 육비우가 비무에서 중상을 입은 상황에 내가 먼저 그 혼약을 어길 수는 없어. 반드시 육씨 가문에 시집가야 해."

소함연은 예전에 육비우와의 혼약을 정말 싫어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혼약이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바로 이 혼약이 있기 때문에 그녀는 경성에 자리를 잡을 수 있고 기사회생의 가능성이 있었다.

소함연은 시선을 내려 눈 속의 날카로움을 감추었다.

그녀가 계속 이렇게 비참하게 지내지는 않을 것이다.

육비우에게 시집가 관리 부인이 되면 월령안이 그녀에게 보복하려 해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그녀에게 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월령안은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넌 할 수 있어."

"너, 나더러 파혼하라는 거야?"

소함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월령안을 쳐다봤다.

"나더러 오명을 뒤집어쓰라고?"

"그건 소씨 큰 아가씨 일이지."

월령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나보고 서남 토사의 아들에게 시집가라고? 내가 시집가서 서남 토사와 연합해서 너를 죽일까 두렵지 않아?"

소함연은 입에 꼭 깨물고 원망 어린 눈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지금 그녀의 일생을 망치려 했다.

월령안은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시원스레 일어나 소함연 곁에 다가가더니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내 성의를 보여 주기 위해 먼저 손 신의더러 네 아버지를 진료하도록 해서 잠시 목숨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지. 그리고 한마디 더 해 줄게. 내가 오늘 손 신의더러 네 아버지를 구하게 할 수 있다면, 내일 독왕 아포를 보내 네 아버지와 조카에게 독을 쓸 수도 있어. 심지어 너를 독살할 수도 있지."

"너……!"

소함연은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는 듯 겁에 질려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월령안에게 도움을 청한 게 옳은 건지 잘못된 건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황제에게 있어 명월산장은 비밀이 없었다.

황제는 명월산장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을 가장 빠른 시간에 알 수 있었다.

월령안은 이에 대해 줄곧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소식은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그녀는 점심때 야율헌일과 소함연을 만났다.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 황제가 그녀를 훈계하는 성지가 내려왔다.

훈계하러 온 사람은 그녀의 지인이자 황제의 심복인 이반반이었다.

월령안은 땅바닥에 꿇어앉아 귀로는 이반반의 한마디 한마디 엄한 훈계를 듣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재빨리 명월산장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그녀는 줄곧 하인들이 수발드는 것을 싫어했다. 그녀가 야율헌일, 소함연과 말할 때도 문밖에 호원 두 명과 시녀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과 말할 때 애써 목소리를 낮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크지도 않았기에 적어도 밖에 사람들은 들을 수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이 돌아간 뒤, 그녀는 그 네 사람을 의도적으로 약방에 보냈다. 그녀는 그 네 사람이 오늘 오후 줄곧 약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다른 행동도 없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네 사람뿐만 아니라 명월산장의 다른 하인들도 각자 자기의 직책을 다했다. 어느 누구도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비둘기 따위는 더욱 불가능했다.

그녀는 줄곧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황제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면서 몰래 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관찰해 그녀를 감시하는 사람을 찾아내려고 했다.

지난번까지 황제의 반응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월령안은 그녀를 감시하는 자가 너무 신중하고 일 처리 하는 게 너무 세심하여 아무런 허점도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황제의 비정상적으로 빠른 반응을 보고 감시하는 자가 과연 명월산장의 사람인지를 의심하게 되었다.

명월산장의 모든 하인들은 모두 그녀가 월씨 저택에서 데려오고 또한 서로 지켜보게 했다.

그녀는 산장에 있는 사람들이 오늘 오후에 외출하지 않고 바깥으로 소식을 전하지도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황제는 어떻게 알았을까.

월령안이 깊은 사색에 잠긴 사이, 이반반의 날카로움에 떨림까지 더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월 낭자, 알아들었느냐?"

'이반반이 무슨 말을 했지?'

월령안은 이반반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반반은 흠칫 떨고는 아무도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허리를 굽혔다. 목소리를 낮추어 가련하게 사정하며 말했다.

"월, 월 낭자…… 소인은 명을 받고 일하는 것이니 절대로 소인을 나무라지 마세요. 소인도 별수가 없습니다. 월 낭자, 소인을 협조하여 빨리빨리 넘어갑시다. 되겠어요?"

월령안은 멍해 있었다.

'내가 뭐라 했나? 이반반은 언제 이렇게 기가 죽었지?'

이반반은 월령안이 한참을 대답하지 않자 진땀을 뺐다. 두 눈을 좌우로 굴려 황궁에서 온 호위들이 모두 밖에 있어 자신의 기가 죽은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사정하며 읍했다.

"월 낭자……."

'이렇게 나오는데 거절할 수 없는 거겠지?'

월령안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반반은 안면 바꾸기가 아주 빨랐다. 즉각 걱정에서 기쁨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기쁜 기색은 잠시 머물기만 했다. 곧 이반반은 얼굴을 굳히고 내시 총관의 기세를 내세우더니 등을 꼿꼿이 펴고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월 낭자, 폐하의 말씀을 들었느냐?"

"네. 들었습니다."

월령안은 장단을 맞추어 대답했다.

이반반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는 네가 잘못을 알고 고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소인은 꼭 고치겠습니다."

월령안은 또다시 협조해 대답했다.

이반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황궁 내관 일인자의 기세를 유지하면서 거만하게 말했다.

"일어나거라."

"폐하께 감사드립니다."

월령안은 땅바닥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이반반이 건네는 성지를 받아 열어 보았다. 저도 모르게 화가 나서 웃고 말았다.

"육 대장군의 생사가 저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제가 그분의 누구길래요?"

황제는 그녀가 야율헌일에게 육장봉의 생사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해서 성지를 내려 그녀를 엄하게 꾸짖었다.

'폐하께서는 오지랖이 너무나 넓은 거 아니야.'

"월 낭자, 폐하께서는 줄곧 대장군을 아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말을 삼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반반은 월령안의 협조를 떠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충고했다.

"번거롭지만 이반반께서 대신 물어봐 주세요. 육 대장군의 생사가 이혼당한 저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월령안은 성지를 손에 쥐고 냉소했다.

이반반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방금 전에 그녀에게 말을 삼가라고 알려 주었다. 월령안은 그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한 듯했다.

'관두자. 관두자. 하나같이 모두 어르신들이잖아. 상대하기 어려우면 피하면 되지.'

"월 낭자의 말을, 소인이 꼭 전하겠습니다. 성지는 이미 전했으니 소인은 이만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이반반은 급급히 월령안에게 예를 올리고 월령안이 답례하기 전에 빠른 걸음으로 떠나갔다.

이곳은 명월산장이다. 명월산장의 모든 사람과 일은 모두 황제의 감시 하에 있으므로 그는 아무래도 월령안과 멀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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