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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82)화 (582/1,004)

582화 육 대장군이 걱정되지 않나요?

노인은 말문이 막혔다.

"이게 이제는 막 대드는 것이냐!"

노인은 노기 어린 모습을 했다. 하지만 눈에는 웃음기를 띠고 있었다.

서 선생은 소리 내어 귀띔했다.

"주인님, 잊으셨군요. 이제는 옛 주인님입니다."

"꺼져, 꺼져, 꺼져!"

노인은 일부러 화가 난 척하며 서 선생을 쫓았다.

하지만 서 선생이 떠난 뒤, 노인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신언은 여전히 황제를 생각하고 또 주나라의 사직을 걱정하는구나. 조씨 가문은 서신언에게도, 서원수부에도 미안하군…….'

서 선생은 황궁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노인과 만나고 나서 곧 출성하여 명월산장으로 돌아갔다.

월령안은 서 선생이 나간 후 줄곧 잠을 자지 않았다. 그가 무사하게 돌아온 다음에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서 선생에게 입궁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 묻지 않았다. 마치 사라진 며칠 동안 무엇을 했는가를 묻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서 선생에게 잘 휴양하라고만 말했다. 그리고 저녁에 무엇을 드시고 싶냐고 물었다. 직접 만들어 올리겠다고 했다.

말하면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그녀는 본래 간단한 고기구이만 만들 줄 알았다. 육장봉에게 시집간 뒤 직접 밥을 해 주고 싶어 특별히 주방장을 찾아가서 육장봉이 좋아하는 요리를 배웠었다.

그러나 배운 다음 그녀는 육장봉에게 직접 밥을 지어 줄 기회가 없었다.

육장봉,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것을 떠올리자 월령안은 탄식하고 말았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월령안은 곧 내려놓았다.

황제가 서 선생을 돌려보냈다. 그렇다면 육장봉에게서도 곧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서 선생은 월령안의 말을 듣자 사양하지 않고 요리를 한가득 시켰다. 월령안은 웃으며 일일이 승낙했다.

서 선생을 뜰로 돌려보낸 뒤 그분이 편히 쉬고 더는 이리저리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월령안은 집사를 찾아가서 집사에게 물건을 사도록 분부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인이 찾아와서 보고했다.

"아가씨, 북요의 삼황자 야율헌일이 만나기를 청합니다."

월령안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삼황자께 잠깐만 기다리라고 전해라."

북요 삼황자 야율헌일은 이번에 볼모로 주나라에 보내졌다. 그의 어머니는 한인이었다. 그는 총애를 받지 못하다 보니 북요에서 야율아한보다도 존재감이 낮았다.

그러나 월령안은 그가 악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 누구도 경시하지 않았다. 특히 황실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누구도 경시하지 않았다.

야율헌일은 오관이 부드럽고 키가 훤칠하고 마른 편이었다.

그는 북요인처럼 하지 않고 주나라 사람처럼 머리를 길게 길렀다. 복장도 주나라 선비들이 즐겨 입는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외모로 봤을 때는 주나라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월령안은 한눈에 북요에서 왜 자발적으로 야율헌일을 주나라에 볼모로 보내겠다고 제안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북요인들은 줄곧 주나라 사람을 증오하고 경멸했다. 야율헌일이 주나라 사람과 이렇게 닮았으니 북요인들은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볼모로 주나라에 보냈던 것이다. 어찌 보면 가치 있게 쓰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까이하게 되자 월령안은 곧 야률헌일의 주나라 사람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

그의 눈은 옅은 남색이었다. 아주 예쁜 연남색이었다.

이런 눈으로는 주나라도 그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월령안은 한눈만 보고 곧 눈길을 거두고는 야율헌일에게 예를 올렸다.

"삼황자를 뵙습니다."

"월 가주, 천만의 말씀입니다."

야율헌일은 부축하는 척했다. 연남색 눈동자에는 옅은 웃음기가 떠올랐다. 보건대 전혀 악의가 없어 보였다.

그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월령안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암시하듯 말했다.

"월 가주는 설개연에서의 선물이 마음에 들었나요?"

월령안은 잠간 생각하다가 곧 알아차렸다. 그녀는 야율헌일에게 공수하며 감사를 표했다.

"삼황자께서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야율헌일은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천만의 말씀을요. 외사촌 누이에게 보내는 첫 대면 선물일 뿐이에요. 좋아하면 됩니다."

'외사촌 누이?'

"삼황자의 어머니도 유씨인가요?"

월령안은 야율헌일의 맞은편에 앉았다.

야율헌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한의 어머니가 유씨인 것은 제 어머니의 시녀이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이름도 성도 없었는데 어머니께서 그분의 충성심을 보고 유씨 성을 하사한 겁니다."

월령안은 일어나서 야율헌일에게 공수하며 말했다.

"령안이 외사촌 오라버니를 뵙습니다. 전에는 이 같은 연고가 있는지 몰랐네요. 혹시라도 대접이 소홀했다면 나무라지 마세요."

외사촌 오라버니라는 호칭일 뿐이었다.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오공주가 너무 방자하지 않았더라면, 사실 외사촌 언니의 호칭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호칭일 뿐인데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는가.

"외사촌 누이는 정말 남달리 총명하군요. 그래서 그때 이모부님과 외사촌 형께서 집안일을 얘기하시면서 말끝마다 외사촌 누이를 얘기하셨나 봐요."

야율헌일은 무심코 월령안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언급하면서 기회를 빌려 서로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려고 했다.

하지만 월령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굴의 미소는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외사촌 오라버니께서는 제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만나셨었군요."

"십 년 전 북요에서 이모부와 외사촌 형을 만난 적 있었어요. 생각 외로……."

야율헌일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월령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의 미소를 거두었다. 소리 없이 그에게 자신의 불쾌감을 드러냈다.

야율헌일은 비로소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히 말했다.

"외사촌 누이, 미안합니다. 일부러 말한 건 아니에요……."

"외사촌 오라버니, 과분한 말씀입니다. 다 지나간 일이에요."

월령안은 담담하게 대꾸하며 물었다.

"외사촌 오라버니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는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이용하는 모든 이를 싫어했다.

야율헌일은 물론, 육장봉도 안 되었다.

야율헌일은 월령안이 소원해지는 것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외사촌 누이, 믿든 안 믿든 절대 일부러 말한 건 아니에요. 이번에 저는 진정성을 갖고 찾아온 거예요."

"외사촌 오라버니의 말을 믿어요."

월령안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여전히 친근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야율헌일은 곧 월령안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이용해 그녀와 가까워지는 길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비록 실망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서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다 자란 그들은 옅은 혈연관계가 현실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야율헌일은 곧바로 혈육의 정 같은 것을 포기하고 직접 월령안의 이름을 불렀다.

"령안, 알고 있나요? 육장봉이 변방에 가서 철광산 일을 조사하는 것은 북요와 청주가 주나라 황제의 의심 많은 성격을 이용해 육장봉을 일부러 유인한 거예요. 북요는 변방에 빈틈없는 경계망을 늘어놓았어요. 육장봉이 이번에 변방에서 돌아온다면 아마 구사일생일 거예요."

"네. 짐작할 수 있었어요."

이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육장봉이야말로 북요의 가장 큰 원수였다.

북요가 청주와 합작한 게 단지 그녀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정말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가 육장봉이라면 이해되었다.

야율헌일은 월령안이 금방 알아차리자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주나라의 황제가 당신을 믿지 못하는 게 참 안타깝군요. 그게 아니었으면 육장봉도 이처럼 당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에요."

"군주가 신하에게 죽으라 하면 신하는 죽지 않으면 안 되죠."

월령안은 북요와 청주의 목표가 육장봉일 것이라고 짐작했을 때 이미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재빨리 냉정해졌다.

육장봉은 이미 변방으로 갔다. 일은 그녀의 걱정으로 인해 호전되지 않을 것이다. 무작정 애만 태우기보다 차분하게 대책을 생각하는 게 더 나았다.

"육 대장군이 걱정되지 않나요? 구사일생은 좋게 말한 거예요. 북요의 계획대로라면 육장봉은 이번에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간 것이라 아마 살길이 없을 거예요."

야율헌일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령안, 저를 믿으세요. 일부러 과장되게 말하는 거 아니에요. 또한 이를 빌미로 당신과 거래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모두 진실이에요."

"저도 걱정해요."

월령안은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만 무릎 위에 올려놓은 두 손을 무의식중에 꼭 쥐었다.

야율헌일의 남색 눈동자에는 의구심만 가득했다.

"당신의 모습은 걱정하는 것 같아 보이지가 않네요."

그는 그녀의 약점을 찾아낸다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월령안은 마치 입을 꼭 다문 조개 같았다.

"저도 걱정해요. 하지만……."

월령안은 코웃음을 치더니 비웃듯이 말했다.

"삼황자께서는 저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남자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여자로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사랑을 위해 죽네 사네 하는 여자로 보시나요? 삼황자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면 우리 사이에는 할 말이 없을 것 같네요."

그녀가 육장봉의 생사를 걱정하든 안 하든 야율헌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오지랖이 어지간히 넓네.'

"령안, 그런 게 아니라 저는 그저 당신을 걱정하는 겁니다."

야율헌일은 자신이 월령안의 약점을 알아내려 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월령안이 알아차렸다 해도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게 된다면 뒤에 일은 더욱 말할 수가 없었다.

"제가 걱정할 게 뭐가 있나요? 육장봉이 죽든 살든, 저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 제가 그분을 국경 쪽으로 보낸 것도 아니잖아요."

야율헌일이 바보인 척하자 월령안도 그를 폭로하지는 않았다. 다만 차가운 얼굴로 비웃으며 말했다.

"다시 말해, 육장봉이 변방에서 죽으면 가장 큰 손실을 보는 건 폐하이세요. 걱정해도 폐하께서 걱정해야지 제가 왜 걱정하겠어요?"

"이젠 육 대장군을 좋아하지 않나요?"

야율헌일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남색 눈동자에는 침울함뿐이었다.

"좋아해요!"

월령안은 대범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그냥 좋아할 뿐이에요. 그 사람이 죽으면, 한바탕 울어 주고 일 년간 지켜 줄 거예요. 그리고 시간이 길어지면 언젠가는 슬픔에서 벗어나겠죠. 삼황자, 아닌가요?"

"제가…… 생각이 많았던 모양이군요."

야율헌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고민되었다.

월령안은 그가 접촉했던 주나라 여인들과 전혀 달랐다. 현음 장공주나 그의 어머니와도 달랐다.

'내가 방심했어!'

상업계는 전쟁터와 같다.

상업계에서 갖은 고비를 넘기고 자기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여자라면 분명 남자보다 더 빼어나고 독할 것이다.

월령안을 대함에 있어서 그녀를 능력과 수단이 있는 여인으로 여기지 말아야 했다. 그녀의 성별을 무시하고 그녀를 과단성 있고 오로지 이익만 생각하는 성공한 대상인으로 대해야 했다.

이 점을 깨달은 후, 야율헌일은 다시는 감히 독선적으로 월령안을 얕보지 못했다.

그는 경건하게 앉아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월 가주, 저는 북요 삼황자의 신분으로 거래를 제안하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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