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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81)화 (581/1,004)

581화 그 녀석은 해낼 수 있어

서 선생은 손불사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미약한 목소리로 신신당부했다.

"꼬마 령안에게 알리지 말게."

손불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미 알고 있을걸."

서 선생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괜찮네. 그 녀석은 모르는 척할 거야."

"당신들은 하나같이 참. 이러면 재미라도 있어?"

손불사가 화가 나서 말했다.

서 선생의 얼굴에 미소가 좀 더 짙어졌다.

"무척 재미있네."

손불사는 어이가 없었다.

"당신이 이겼네."

옳고 그름을 불문하고 언제나 서 선생의 편에 설 월령안을 떠올리자 손불사는 갑갑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낑낑거리며 그의 상처를 처치했다.

서 선생의 가장 심한 상처는 바로 허리 쪽 쇠뇌 화살에 적중된 곳이었다.

화살촉이 살에 박히고 갈고리 부분에 혈관이 끼었다. 그리하여 조금만 움직여도 피가 끊임없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것은 비를 맞으면서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피범벅이 된 원인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서 선생의 상처는 물에 오랫동안 노출되어서 상처 부위의 밖으로 뒤집힌 살갗은 아주 죽어 하얗게 되었다.

손불사는 살에 박힌 화살촉을 빼내야 할 뿐만 아니라 괴사한 피부와 살도 잘라내야 했다.

치료 과정은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손불사는 하인에게 마비산을 끓여 오라고 시켰으나 서 선생에게 저지당했다.

"그냥 뽑게. 마비산을 쓰지 말게나."

"당신 미쳤군……."

"조금 늦어 바로 또 입궁해야 하네."

서 선생은 어두운 표정을 하고서 손불사의 동의할 수 없다는 눈총을 받으며 천천히 말했다.

"변방의 철광석은 함정이고 그들의 목표는 육장봉이라네."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야."

손불사는 화가 나서 못 견뎠다.

서 선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은 확고했다.

손불사와 서 선생의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결국 손불사가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그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됐네. 당신들 하나같이 정말. 그래 내가 당신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게지. 이 연목(軟木 - 무른 나무)을 꽉 물게. 잘 기억하게. 아무리 아파도 움직이지 마시게. 알겠는가."

"걱정하지 마시게. 내가 가장 잘 참아 내는 게 바로 아픔일세!"

서 선생은 연목을 물었다. 파란만장을 겪은 눈동자는 냉담하고 평온했다.

그는 한평생 생이별, 사별, 바랄 수 없는 거…… 어떠한 아픔이든지 모두 견디어 냈다.

살 속에 박힌 화살촉을 빼내려면 상처 부근의 생살을 베어야 했다. 이 고통은 능지처참할 때의 고통과 비견되었다. 마비산을 쓰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견뎌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마비산을 마셔도 아픔 때문에 깰 정도였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서 선생은 얼굴이 창백하고 머리카락이 땀에 흠뻑 젖은 것을 제외하고는 한번 신음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손불사는 화살촉을 꺼내고 여전히 끄떡없는 서 선생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당신 정말 대단해!"

서 선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에 물고 있던 연목도 뱉지 않았다.

그는 대단하지 않았다. 그 역시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거듭되는 고문을 거쳐왔기에 이런 아픔에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살에 박힌 화살촉을 빼내자 이후의 처치와 봉합은 모두 작은 일이었다.

이번에 손불사는 연고를 아끼지 않고 병째로 서 선생의 상처에 발랐다.

손불사는 다 바르고 나서 빈 약병을 안고 아까워하며 말했다.

"내가 일 년 시간을 들여 겨우 백골고(白骨膏) 세 병을 만들었네. 반병은 육장봉에게 쓰고 나머지 반병은 월령안이 빼앗아 최일에게 주었네. 내 손에 딱 두 병 있는데, 좀 전에 자네에게 한 병을 다 발랐어. 다음부터는 좀 조심하게나. 이렇게 큰 상처를 입지 말란 말일세. 연고가 너무 많이 들잖아."

서 선생은 떨리는 손을 들어 입안의 연목을 빼냈다. 내친김에 입가의 핏자국을 닦아 내고는 힘겹게 말했다.

"나머지 한 병은 나를 주게나."

"꿈도 꾸지 말게!"

손불사는 약병을 안고 한 걸음 뒤로 뜀질했다.

"죽더라도 주지 않을 거야."

서 선생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손불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폐하께서 당신 손에 이렇게 좋은 연고가 있는데 본인한테는 없다는 것을 아시면……."

"입 닥치게! 반병만 줄 수 있어."

손불사는 서 선생을 크게 노려보았다.

서 선생은 허약한 표정으로 빙긋 웃었다.

"거래 성공."

"당신 정말…… 간사한 놈이야!"

서 선생이 시원스럽게 대답하자 손불사는 자신이 꾐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라 무릎을 꿇고라도 약속을 지켜야 했다.

손불사는 살을 저미는 듯한 아까움을 참아 가며 연고 반병을 덜어내어 서 선생에게 주었다. 그러면서 낭비하지 말고 아껴 쓸 것을 신신당부했다.

손불사는 서 선생이 그가 많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백골고를 낭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손해 보면서도 또 설옥고 여러 병을 주었다. 그러면서 가벼운 상처에는 설옥고만 써도 된다고 일깨워 주었다.

서 선생은 웃으면서 받아 두었다. 마음속으로는 과연 꼬마 령안이 밑지는 장사를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몇 해 동안 꼬마 령안은 손불사에게 수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시장 가격의 수십 배를 넘겨주면서 손불사의 약을 사고 손불사를 청해 병을 치료했다. 보건대 꼬마 령안이 손해를 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이 이익을 본 것이었다. 그것은 돈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 시진 뒤에 서 선생이 나왔다.

서 선생은 상처를 깨끗이 처치하고 의복을 갈아입자 입술 색이 창백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손불사든 월령안이든 이건 그냥 눈가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불사는 직접 서 선생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기에 당연히 그의 상처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고 있었다.

월령안은 비록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눈과 머리가 있었다.

서 선생이 입궁하려 한다는 얘기를 듣자 월령안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음에 가면 안 되나요? 아니면 제가 가면 안 돼요?"

"어른들 일에 어린애는 그만 걱정해."

서 선생은 월령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새 둥지로 만들었고 이는 손불사의 비웃음을 받았다.

월령안은 조용히 손불사를 노려보았다.

"약왕곡!"

"아휴, 생각났다. 나는 또 일이 있어. 먼저 갈게!"

손불사는 한시도 더 머무르지 않고 의료함을 들고 도망가 버렸다.

월령안은 서 선생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다만 탄식하며 말했다.

"서 아저씨, 마차를 타고 가세요. 소육자를 데리고 다니세요."

서 선생은 거절하지 않았다. 월령안의 물불, 칼창을 막아 낼 수 있는 마차에 올라 입성했다. 그리고 날이 밝기 전에 황궁의 대문을 두드렸다.

서 선생은 직접 황제를 찾아뵙고 그가 조운충에게서 얻은 소식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폐하, 철광석 소식은 미끼였습니다. 북요와 청주가 손잡고 변방에 물샐틈없이 경계망을 쳐 놓았습니다. 그들은 현음 장공주를 미끼로 육 대장군 홀로 북요에 가기를 강요할 겁니다. 육 대장군의 이번 길은 아주 위험합니다. 조운충이 염명경 귀시에 간 건 사실이나 철광산 소식을 산 게 아닙니다. 황금당 살수에게 황금 십만 냥을 주고 월령안이 청주에 들어가기 전에 암살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조운충은 우리 군의 장령들과 왕래가 있는 것으로 의심됩니다. 소인은 그를 추격하다 성을 공격하는 데 사용하는 노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폐하께서 엄격하게 조사하여 처리해 주십시오."

서 선생은 황제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간단명료하게 소식을 보고했다. 그리고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소식이 사실인 것이냐?"

황제는 졸음이 일순간에 달아났다.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서 선생을 보았다.

"소인은 명월산장 십 리 밖에서 황금당 살수 세 명을 죽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월령안에게 피투성이가 된 모습을 보여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황제는 숨을 한껏 들이쉬고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짐은 알았다. 물러가거라!"

하지만 서 선생은 자리를 뜨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폐하, 소인이 중상을 입어 월령안의 안전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됐다. 짐이 알겠다."

황제는 마음속 초조함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말했다.

서 선생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몸을 굽혀 물러갔다.

그는 난각에서 나와 성큼성큼 연복궁으로 걸어갔다.

그가 연복궁에 이르렀을 때 날이 마침 밝았다. 그는 누구도 놀래지 않고 스스로 자리를 찾아 쉬었다. 노인이 일어나 식사할 때에야 들어와서 시중들었다.

노인은 손을 흔들어 말렸다.

"자네는 이제 내 사사가 아니다. 앉아라."

서 선생은 잠깐 망설이다가 노인의 맞은편에 앉아 조용히 앞에 놓인 음식을 들었다. 식사가 끝난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꾐에 빠졌습니다. 철광산 소식은 구실이고 북요와 청주의 목표는 육장봉입니다. 그들은 현음 장공주를 미끼로 삼았습니다."

노인은 엄숙한 얼굴에 미소를 떠올렸다.

"좋은 소식이군."

서 선생은 어안이 벙벙했다.

'주인님께서 진실로 그리 여기시는 건가?'

그는 몰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육장봉도, 장공주도 모두 위험할 수 있습니다."

"현음은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현음의 가치를 북요인들은 잘 알고 있어. 현음은 살아 있어야 가장 가치가 있지. 북요인들은 감히 현음을 건드리지 못할 거야. 그리고 육장봉은."

노인은 눈을 반쯤 감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군주가 신하를 죽으라고 하면 신하는 죽어야만 하는 거야. 그가 죽는다면 그건 폐하의 의심이 많은 성격 때문에 죽는 것이다. 폐하께서 자신의 의심 많은 성격 때문에 직접 유능한 장군을 죽였다. 이거 좋지 않느냐?"

"주인님……!"

서 선생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주인을 불렀다.

"됐다!"

노인은 갑자기 눈을 떴다. 눈동자에는 찬 기운이 서려 있었다.

"이 일에 너는 끼어들지 말거라. 폐하께서는…… 자신의 의심이 많은 성격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네, 주인님."

서 선생은 가슴이 철렁하여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잠깐 숨을 고르고서야 말했다.

"황금당에서 령안을 암살하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황금당 말이냐?"

노인은 코웃음을 치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 꼬마 령안이 혼자서도 알아서 잘 처리할 수 있어."

서 선생은 잠시 멈칫하더니 대답했다.

"네, 주인님."

노인은 눈을 들어 서 선생을 힐끗 바라본 뒤 가볍게 한숨을 지었다.

"신언, 그 녀석도 다 컸어. 우리 그 녀석 스스로 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자고. 자네도 무슨 일이나 다 떠맡으려고 하지 마. 우리 둘 다 나이도 많잖아. 즐길 때는 즐겨야지. 젊은 애들처럼 걸핏하면 목숨을 걸고 그러지 말자고. 우리 이제 싸우기 힘들어. 그리고 내가 자네를 령안이 곁에 보낸 건 그냥 령안이 곁을 지키라는 거야. 자네는 령안이 곁에 있기만 하면 돼. 다른 건…… 자네는 령안이를 믿어야 해. 그 녀석은 해낼 수 있어."

"주인님, 가슴에 손을 얹고 지금 이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서 선생은 가볍게 소리 내어 웃었다.

"주인님, 우리 이제 나이도 많으니 체면 좀 챙깁시다. 그 말씀을 하실 때 제가 대신 낯 뜨거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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