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화 제 충언이 귀에 거슬리나요?
"입 다물어!"
황제는 화가 나서 조계안을 노려보았다.
"왜요? 황형은 제 충언이 귀에 거슬리나요?"
조계안은 난각 안에서 가면을 쓰지 않았다. 그가 눈꼬리를 치켜세우자 얼굴에 난 흉터도 따라 움직이며 사악한 기운을 풍겼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흥 콧방귀를 뀌었다.
"저는 황형이 저를 황궁에 억지로 잡아두는 것도 싫어하지 않는데, 황형은 무슨 낯으로 바른말을 하는 저를 싫어하시는 거예요?"
"넌 이제 꺼져."
황제는 조계안을 힐끗 흘겨보며 싫은 표정을 지었다.
육장봉이 비밀리에 변경을 떠난 뒤 조계안은 여전히 할 일 없이 놀고 있었다.
방법이 없었다. 그는 진왕 세자 등을 불구로 만든 혐의를 받고 있었다. 피의자로서 혐의가 다 밝혀지기 전까지는 관련 사건을 접할 수 없었다.
조계안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힘들게 여유가 생기자 그는 명월산장에 가서 월령안을 만나 보려 궁리했다.
하지만 그가 그런 의도를 살짝만 보였는데도 황제에게 꽉 붙잡혔다.
조계안은 화가 많이 났으나 월령안이 번거롭지 않게 하기 위해 갑갑한 대로 황궁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더러 조용히 황궁에 있으라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를 기분 나쁘게 만들어 놓은 황제가 혼자서 기분 좋아지도록 가만 놔둘 수는 없었다.
조계안은 황궁에 있는 며칠간 거의 하루 열두 시진을 황제의 곁에 붙어 있었다. 심지어 저녁에 잠잘 때도 놓아주지 않았다. 듣기 좋게 황제를 수발들며 보호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황제가 매우 기뻐했었다. 조계안이 성장한 뒤로 그와 이렇게 친근하게 보낸 적이 없었다. 모처럼 조계안이 형에게 달라붙겠다고 하니 황제는 기쁘기만 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하루밖에 가지 못했다.
다름 아니라 조계안은 너무 귀찮았다. 게다가 사사건건 그와 맞섰다. 황제는 스스로 성격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조계안 때문에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조계안은 손에 쥔 배를 한입 콱 베어 물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꺼지기 힘들어요."
조계안은 배를 두어 입에 다 먹어 치우고 씨를 황제 앞에 던지더니 연탑에서 벌떡 뛰어 일어났다.
"됐어요. 월령안이 알고도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는 걸 보면 철광산은 그녀와 아무 상관도 없어요. 제가 서 선생을 찾아가 명월산장으로 돌아가라고 할게요."
조계안은 탁자 위의 가면을 잡아 얼굴에 쓰고는 긴 다리로 성큼 내디디며 밖으로 나갔다.
"너 왜 이리 막무가내냐."
황제는 조계안의 씨 공격을 피하다가 그가 서 선생을 찾아간다고 말하자 급히 말했다.
"기다려, 지금……."
"됐습니다, 황형."
조계안은 걸음을 멈추고 멋있게 돌아서서는 염세적인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형은 이게 북요와 청주 사람들의 음모인 걸 분명 알잖아요. 왜 우리 편이 슬퍼하고 원수가 기뻐하는 일을 하려고 하세요. 월령안 이 일개 아가씨가 황형 눈앞에서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사람을 보내 철광산을 채굴할 재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설령 철광산을 월씨 가문에서 발견하고 월령안이 채굴했다고 해도 결국 이득을 본 건 황형이잖아요. 돈 한 푼도 안 쓰고 철광산을 채굴한 데다가 철기까지 만들어 군대에 바쳤죠. 말해 보세요. 황형의 운이 얼마나 좋은가."
황제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철광산을 발견하고 보고하지 않고 사적으로 채굴하는 건 태도 문제라는 말이다. 월씨 가문 사람들은 너무 똑똑해. 짐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어."
"황형, 잊지 마세요. 이 몇 해 동안 황숙께서 줄곧 월령안의 곁에 있었어요. 만약 월령안이 정말로 딴마음을 품었으면 황숙께서 그녀를 지금까지 살아 있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조계안은 성가신 얼굴을 하고 말했다.
황제는 잠깐 침묵하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짐과 월령안 사이에서 황숙은 반드시 월령안을 선택할 거다. 계안, 짐은 네가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아."
조계안은 반박하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주나라의 강산과 월령안 사이에서라면 황숙은 반드시 전자를 택할 거예요."
조계안은 말을 마치자 몸을 돌려 사라졌다. 시원하면서도 깔끔하게 황제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황제는 탄식하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조계안은 황제 앞에서 건방지고 잘난 척하며 안하무인격으로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하지만 연복궁에서는 불쌍한 모습으로 노인 앞에 고분고분 서서 바깥일을 보고했다.
"북요 오황녀가 령안을 찾아가서 철광산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령안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청주 사람들은 앞의 계략을 실패했습니다. 이번에는 육장봉이 없는 틈을 타 칠 년 전 구리파 사건을 빌려 령안의 명성을 더럽히려고 할 겁니다. 황숙, 제가 이미 황형께 이야기했습니다. 서 선생을 황궁에서 내보낼 수 있습니다. 령안이 원한다면 지금 움직여 청주로 가도 됩니다.
사람이 변경에 없으면 칠 년 전 일이 아무리 커져도 령안에 대한 피해가 제한돼 있습니다. 청주 사람들은 이익이 없는 것을 보면 인력, 물력을 낭비하지 않을 겁니다.
맞습니다. 황숙, 제가 시박사 제거의 부정부패 및 북요인과 거래한 증거를 황형에게 주었습니다. 황형은 이미 사람을 변경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변고가 없으면 허국공 일가는 빠져나갈 수 없을 겁니다. 시박사 제거라는 위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동안 줄곧 황형의 심복이 담임했습니다. 황형은 우리가 간섭하지 못하게 할 겁니다. 교환 조건으로 대신 우리는 황형과……."
"됐다. 됐어!"
노인은 태양 아래 앉아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조계안이 끝없이 보고하자 사정없이 중단시켰다.
"철광산 일은 폐하께서 조사하고 싶으면 조사하라고 해. 내버려두거라. 구리파 사건은……."
노인은 잠깐 멈추더니 화가 나서 말했다.
"이렇게 한참이나 지나도 일을 다 처리하지 못하다니. 너나 육장봉이나 하나같이 정말 무능하구나."
"황숙의 훈계 맞습니다."
조계안은 감히 반박할 수 없었다.
노인은 이제 더는 제자를 가르칠 의향이 없었다. 조계안과 더 길게 말하지 않고 직접 지시했다.
"너희들은 당시 사건 담당자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들이 일차 자료를 장악하고 사교가 벌인 일이라고 하면 이 일은 사교가 소란을 피운 것이다. 더 조사할 필요가 없어. 너는 무림맹의 수횡천과 천목신교의 남상권에게 전갈을 보내라. 내 뜻이라고 밝히고 조정에서 사교와 결탁한 조정의 관리들을 척결하려 하니 그들더러 잘 협력하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끝까지 목숨을 걸고 그들 모두를 죽여 버릴 거라고 전해라."
노인의 목소리는 가라앉고 암담하여 무기력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조계안은 노인의 말투에 묻어 있는 살기를 무시하지 않았다.
조계안은 착한 아이처럼 고분고분 대답하고 한마디도 더 묻지 못했다.
박력이나 결단력을 논하면 그는 황숙과 견줄 수 있었다.
하지만 뻔뻔스러움과 억울한 사건을 만드는 수완을 따지면 그는 황숙보다 많이 뒤처졌다.
역시 경험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노인은 조계안과 이야기를 나눌 인내심이 없었다. 분부를 마치고 조계안을 물러가게 했다.
조계안은 감히 노인한테 수다를 떨지도 못하고 눌러앉지도 못했다. 다만 떠나기 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황숙, 령안이 청주로 가는 일은요?"
노인은 화가 나서 그를 흘겨보았다.
"넌 그것밖에 안 되느냐? 육장봉이 령안과 함께 청주로 갈까 두려운 것이냐?"
"육장봉이 너무 소인배예요."
조계안은 억울해하며 말했다.
"그 자식이 말 못 할 손해를 당하지 않으면 제가 가슴이 갑갑하다고요."
"됐다. 네가 원하는 대로 될 거야."
노인은 짜증 어린 말투로 말했다.
"황숙, 고맙습니다."
조계안은 뜻을 이루자 기쁨에 겨워 떠나갔다.
노인은 천천히 눈을 감으며 허공을 향해 냉혹하게 말했다.
"기왕 폐하께서 벼슬길을 열어 주었으니 돌아가거라. 다만 돌아가기 전에 조운충 그놈을 한번 혼내 주거라."
"주인님, 걱정 마십시오.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습니다."
어느샌가 서 선생은 노인의 옆에 서 있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다음 발끝으로 땅을 툭 치더니 연복궁에서 사라졌다.
노인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표정은 냉담했다.
* * *
비 오는 어느 날 밤, 서 선생은 장대비에도 채 씻기지 않은 핏자국을 지닌 채 명월산장으로 돌아왔다.
월령안은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 온몸이 피에 절어 의자에 주저앉아 있는 서 선생을 보고 놀라서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서 아저씨."
월령안은 다리에 힘이 빠져 서 선생의 발치에 꿇어앉았다. 입술을 어찌나 깨물었는지 피가 흘렀다.
"꼬마 령안."
서 선생은 가슴 쪽 상처를 감싸 쥐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괜찮아. 조운충의 피야."
"전 이제 어린애가 아니에요. 밖에서 비가 오고 있어요."
'서 아저씨는 온몸에 비를 맞았다. 조운충의 피라면 벌써 깨끗하게 씻겨 나갔을 것이다.'
서 선생의 미소가 살짝 굳어졌다.
"너 요즘 귀엽지가 않구나. 전에는 분명 옛 주인님이 뭐라고 하시면 다 믿었었잖아."
월령안은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서 아저씨는 아직 저를 놀릴 기분이 있으세요? 보아하니 상처가 정말 심하지 않은가 봐요. 제가 괜히 걱정했네요."
"꼬마 령안, 걱정하지 마. 서 아저씨는 괜찮아."
서 선생은 기운이 넘치게 한마디 외쳤다.
하지만 그가 소리치자마자 손불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왔다.
"좋긴 뭐가 좋아. 나잇살이나 있는 사람이 아직도 자기가 젊은 줄 아나 보지. 툭하면 목숨 걸고 싸우고 야단이야. 정말 내 약은 돈이 안 든다고 생각하는 건가?"
"저는 돈을 드렸어요."
월령안이 주의를 주었다.
"약을 절약하지 마세요. 감히 서 아저씨에게 약을 박하게 쓰면 약왕곡을 팔아 버릴 거예요."
"너, 너…… 좋고 나쁨도 가리지 못하는 계집애야! 이게 누굴 위해서야?"
손불사는 가슴팍을 감싸고 마음이 아픈 척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 너를 위해 돈을 아끼려는 게 아니냐."
"이런 돈은 절약하지 않아도 돼요. 됐어요. 농은 그만하세요. 먼저 서 아저씨를 봐 주세요. 많이 다쳤는지."
월령안은 손불사와 함께 농을 할 기분이 없었다. 손불사가 천천히 맥을 짚자 저도 모르게 한마디 재촉했다.
손불사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네 서 아저씨가 아직 말할 힘이 있는 것을 봐서는 장기가 상한 것 같지는 않구나. 모두 외상이야. 그저 보기에 험상궂을 뿐 사실은……."
손불사는 갑자기 멈췄다. 얼굴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서 선생은 표정도 변하지 않고 말했다.
"맞아. 오직 찰과상뿐이야. 괜찮아."
"그래. 찰과상일 뿐이야. 치료하기 쉬워."
손불사는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서 선생을 진맥하던 손을 거두고는 싫어하는 티를 내며 월령안에게 말했다.
"됐어. 외상을 치료할 거다. 너 같은 아가씨가 옆에 있으면 불편해. 먼저 나가 있어."
월령안은 서 선생을 흘끔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는 조금 침울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느긋한 미소를 떠올리며 서 선생과 손불사가 바라는 바와 같이 고분고분 물러갔다.
월령안이 나가자마자 손불사는 급하게 서 선생의 옷을 젖혔다. 그의 허리에 난 험상궂은 상처를 보자마자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이건 쇠뇌 화살 자국 아닌가? 어찌 된 영문인가. 지금 성을 공격하러 갔다 온 것이오? 이 상처는 노거(弩車 - 바퀴가 달려 옮길 수 있게 만들어진 거대한 공성용 쇠뇌)의 흔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