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8화 고작 은자 백만 냥
월령안은 손뼉을 쳤다.
"과연 오공주 마마는 대범하시군요. 푼돈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으셔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를 수는 없죠. 오공주께서 진심으로 돈을 지불하시겠다고 하니 제가 잘 계산해 드릴게요. 아, 숫자로 말해드릴게요. 그래야 공정하고 투명하며 터무니없는 값을 부르지 못할 테니까요."
월령안은 한참 동안 계속 말했다. 목소리가 살짝 쉬어 가볍게 기침을 한 번 하고서야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
"최근 몇 해 동안 제가 푼돈을 좀 벌었어요. 멀리는 말고 제가 육씨 가문에서 가주 부인으로 있으면서 번 돈으로 계산해 봅시다. 그때 내가 비록 혼수를 가지고 육씨 가문에 시집갔지만 장사를 시작할 때는 내 혼수를 쓰지 않았어요. 후에 이혼당하자 나도 혼수를 도로 가져왔고요. 육씨 가문에서 자수성가 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 삼 년 동안 모든 가게와 돈은 모두 제가 벌어들인 거예요. 이에 대해 오공주께서는 이의가 있나요?"
야율아한은 눈썹을 찌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디에서도 잘못된 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없어요. 어서 계산이나 해 보세요."
"좋아요. 오공주께서 이의 없으니 그럼 이제 계산할게요."
월령안의 미소는 순식간에 환해졌다.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시집간 삼 년 동안 제가 국고에 바친 세금은 은 오십육만 냥이에요. 우수리는 떼고 오십만 냥으로 계산하죠. 이건 호부에 기록이 있으니 오공주께서 직접 조사하실 수 있어요. 삼 년 동안 애국 상인으로서 전선에 보낸 군량, 마초, 솜옷 등은 돈으로 치면 약 이백여만 냥이지만 이번에도 우수리를 떼고 이백만 냥으로 계산하죠. 이것도 병부의 기록을 보면 찾을 수 있어요. 얼마 전, 이혼당하기 전에 판 가게가 돈으로 계산하면 백칠십팔만 냥, 똑같이 백칠십만 냥으로 계산하죠. 모든 거래는 관아에 기록해 두었으니 오공주께서 마음대로 조사해 보세요.
그 외에 은양당에 기증한 미인방은 시가가 오십만 냥이에요. 오공주께서 알아보셔도 돼요. 그리고 일부 가게는 추밀원에 팔았어요. 싸게 팔아 십만 냥도 안 되는 금액이니 이건 계산하지 않을게요. 앞에 말한 그 몇 개 외에 정말 큰 게 하나 있어요. 황금 이십만 냥, 제가 그 돈을 귀국 남원대왕의 머리를 사는 데 썼어요. 이 돈도 오공주께서 조사할 수 있어요. 황금 이십만 냥, 은으로 환전하면 최소한 이백만 냥은 돼요.
이게 전부 다 합하면 칠백이십만 냥이에요. 제가 육씨 가문에 삼 년 동안 있었으니 환산하면 하루에 육천칠백오십 냥을 번 것으로 되네요. 이 시간은 제가 자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어요."
야율아한은 월령안이 하나하나 계산하는 것을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속이 떨렸다. 월령안이 그녀가 부담할 수 없는 천문학적 숫자를 계산해 낼까 두려웠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결국 하루에 은자 육천 냥이 좀 넘는 숫자를 계산해 내었다. 야율아한은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범하게 말했다.
"하루에 육천 냥이 좀 넘을 뿐이군요. 난 또 얼마라도 되는 줄 알았네요."
"공주, 계산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이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도 육천여 냥의 돈을 벌 수 있어요. 그런 제가 왜 당신과 한번 겨루면서 힘들게 그 돈을 벌겠어요? 그리고 오공주께서는 제가 금기서화를 배우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비록 배웠다 해도 그건 당신과 겨루기 위해 배운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만족시키려고 배운 거예요. 오공주께서 나와 그것들을 겨루려면 내게 그것들을 배운 데 쓴 비용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말하지 마세요."
야율아한은 월령안의 빙빙 돌려 하는 말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억지로 화를 참으며 말했다.
"그냥 내가 당신하고 한번 겨루려면 돈을 얼마 내야 하는지만 바로 말해 주세요."
월령안은 야율아한에게 직접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 있는 귀족 아가씨들한테 물었다.
"자리에 계신 낭자들은 금기서화를 배우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하루에 몇 시진을 배웠나요?"
아가씨들은 월령안이 자신의 삼 년 동안 수입을 일일이 계산하는 것을 들었다. 그녀가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하루에 육천여 냥의 은자를 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자 하나같이 눈을 반짝이며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당장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다리를 껴안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정도였다.
월령안의 말을 듣자 아가씨들은 협조적으로 너도나도 입을 열었다.
"전 십삼 년을 배웠어요. 하루에 적어도 두 시진씩 배웠어요."
"전 칠 년을 배웠어요. 하지만 전 매일 세 시진씩 연습했어요. 비록 매일 하는 건 아니지만 처음 배울 때 배우고 연습하는 시간이 적지 않았어요. 처음 삼 년 동안 매일 두 시진씩 배우고 또 두 시진씩 연습해야 했어요."
"저는 제대로 배우지 않아 겨우 오 년만 배웠을 뿐이에요. 배울 때 하루에 세 시진씩 연습하고 나중에도 생소해질까 봐 매일 한 시진 정도 연습해야 했어요."
"저도 팔 년 넘게 배웠어요. 매일 선생의 수업을 두 시진씩 듣고 나서 한 시진 이상 연습했어요."
영리한 낭자는 이렇게 말했다.
"월 언니, 언니는 저희와 다르죠. 언니는 춘일연의 화신이니까 금기서화 조예가 우리보다 높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언니가 거기에 쏟은 시간도 우리보다 많겠죠."
그녀들이 월령안과 사이가 좋든 나쁘든 야율아한 이 북요 공주를 대적할 때만큼은, 월령안은 그녀들과 한편이었다.
누군가 선두를 떼자 다른 아가씨들도 금방 알아차리고 곧 말을 이었다.
"월 언니, 언니가 영리한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금기서화는 재능을 아무리 타고나도 연습해야 해요. 북요 공주를 짓누르기 위해 연습하지 않고 타고난 재능으로 대강 배워도 된다고 말씀하시면 안 돼요."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월 언니, 우리 주나라는 예의지국이에요. 북요 공주는 어쨌든 손님이잖아요. 손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겸손해야 해요. 이럴 때 허세를 피워 타고난 재능이라고 하면 안 돼요."
야율아한은 들어서자마자 방자하게 굴면서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 북요인이 아니더라도 이런 행동거지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을 만했다.
자리에 있던 귀족 아가씨들은 그런 그녀를 모두 눈에 거슬려 했다. 그녀를 함정에 빠뜨릴 기회가 생긴 것을 보고 귀족 아가씨들은 이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월 언니, 겸손하세요! 큰소리를 쳐서는 안 돼요. 큰소리치면 우리가 언니를 폭로하고 체면을 남겨 주지 않을 거예요."
"내가 증언할 수 있어요. 월 언니는 장사 방면에서는 재능을 타고나서 배울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금기서화 방면에서는 재능이 보통 사람의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부지런함으로 부족함을 메울 수밖에 없죠. 월 언니가 춘일연에서 우리를 이기려고 금기서화를 배우는 데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게 분명해요."
"저도 증언할 수 있어요. 월 언니는 모든 재능이 상업에 있어요. 금기서화에는 거의 재능이 없는 편이죠. 춘일연에서 우리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몰래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일 거예요."
귀족 아가씨들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애교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말하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그녀들은 많은 이들 앞에서 남을 나쁘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당당하고 이렇게 즐겁기는 처음이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올해의 설개연에 참가한 것은 가치가 있었다.
월령안도 웃었다.
그녀는 귀엽고 영리한 아이를 좋아했다.
"여러 낭자들, 감사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신용을 지키는 훌륭한 상인이에요. 결코 제 작은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일부러 허풍을 치지는 않을 게요."
월령안이 웃으며 낭자들을 한마디 위로하자 아가씨들은 너도나도 애교 섞인 웃음을 웃었다. 그녀는 또 몸을 돌려 야율아한에게 말했다.
"오공주, 들으셨죠. 아가씨들은 저마다 재능이 뛰어났지만 그래도 날마다 부지런히 연습해야 해요. 금기서화에 허비하는 시간이 하루에 적어도 두 시진, 대다수는 모두 십여 년을 이야기했어요.
저는 게으르고 모든 정력을 장사에 쏟았어요. 여러 아가씨들처럼 부지런하지 않지만 그래도 매일 하루에 한 시진, 십여 년을 연습했지요. 십 년 동안 매일 한 시진씩 계산하면 삼천육백오십 시진이고 하루에 열두 시진, 즉 삼백사 일이에요. 북요 황실 출신이시니 우수리를 떼고 삼백 일간으로 계산할게요. 내가 하루에 육천칠백여 냥을 버는 셈이니 삼백 일이면 적어도 이백일만 냥은 돼야겠군요."
"당신…… 당신…… 이건 공갈이에요."
야율아한은 계산에 능하지 못했다. 월령안이 하나하나 계산하자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월령안이 이백일만 냥이라는 숫자를 말하는 순간 그녀는 어쩔 줄을 몰랐다.
"오공주, 제가 비록 상인이지만 가서 상업계에서의 제 평판을 알아보세요. 저는 절대 공갈, 기만하지 않고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부르지도 않아요. 제 가격은 항상 정직해요. 제가 당신에게 부른 가격은 터무니없는 게 아니에요. 하나하나 공을 들여 계산한 것이에요. 오공주께서 의문이 있으면 조사해 보셔도 돼요."
월령안은 얼굴에 냉기가 돌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숨을 고르며 성격 좋게 말했다.
"물론, 오공주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어요. 저도 오공주께서 이백일만 냥을 내놓아야 겨루겠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필경 내가 금기서화를 배운 것도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지 남과 겨루어 돈을 벌기 위해 배운 건 아니거든요. 오공주께서 저랑 겨루려면 그 돈을 다 줄 필요는 없어요. 절반, 백만 냥만 주면 돼요."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 잠깐 기다렸다. 야율아한이 화가 나서 말문이 막히자 그녀는 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겨루는 데 드는 돈을 이미 말했어요. 장사라는 게 서로 뜻이 맞아야 거래가 성사되는 거예요. 가격은 여기 있어요. 오공주께서 겨루고 싶으면 언제든지 환영해요."
야율아한은 월령안에게 한방 크게 먹고서 더는 미소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사납게 월령안을 쏘아보고 말했다.
"고작 금기서화를 겨루는데 백만 냥을 내놓아야 한다고요? 월령안, 완전 돈에 미친 거 아니에요?"
월령안은 다시 차가운 얼굴을 하고 사정없이 말했다.
"공주, 그 말은 틀렸어요. 먼저 겨루자고 한 사람은 당신이에요. 저는 값을 불렀지만 강요하지는 않았어요. 공주께서 돈을 지불할 수 없다고 해서 저에게 화풀이하면 안 되죠. 그건 또 무슨 도리인가요? 제가 당신네 북요 황실의 빈곤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하나요?"
야율아한은 그녀를 지목해 짓밟고 이름을 떨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반격하면 안 되는가.
다른 낭자들도 듣자마자 삽시에 흥분하여 덩달아 비웃기 시작했다.
"고작 은자 백만 냥밖에 안 되잖아요. 월 언니는 척 내놓으면 황금 이십만 냥이라고요. 그깟 푼돈을 신분이 고귀하시고 당당한 북요 황녀 오공주께서 내놓지 못하는 건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