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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74)화 (574/1,004)

574화 무례해서는 안 돼

나머지 여정에서 두 사람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착실하게 차만 몰았다. 마부보다 더 착실했다.

월령안은 마차 안에 앉아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두 사람이 좀 성숙하고 철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설레발쳐서 사고 치지 말기를 바랐다. 하지만 두 사람이 정말로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또 괜히 마음이 또 쓰였다.

젊었을 때 경박하지 않으면 언제 경박하겠는가.

젊은이라면 젊은이다운 모습이 있어야 한다. 젊은 나이에 그녀처럼 고리타분하고 조금도 활기가 없으면 사는 게 얼마나 멋없는가.

'허국공부의 마차라?'

마부가 월씨 가문을 모욕하는가 하면 고의로 흙먼지를 날려 소육자와 소갑이 사레가 들게 했다. 이는 분명 마부의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라 마차 안의 주인이 묵인한 것이었다.

상대가 노린 것은 그녀였다.

다만 허국공부의 마차가 어느 규수를 태우고 있는지 궁금했다.

보아하니 오늘 설개연에서 그녀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정신을 바싹 차려야 했다.

월령안은 시간을 잘 가늠해서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도착했다. 한 무리의 규수들 틈에 섞여 결코 눈에 띄지 않았다.

최씨 가문의 식구들은 월령안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 그녀들은 귀족 아가씨들을 맞아들이느라 바삐 보내다 보니 잠시 월령안을 신경 쓰지 못했다. 월령안은 조용히 낙원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녀가 조용히 이목을 끌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모두가 가만히 내버려 둔 것은 아니었다.

최씨 가문 설개연에서 모든 식구는 두 열로 나뉘어 앉았다. 좌석마다 두 명씩 앉을 수 있었다.

월령안은 본래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으려 했다. 그런데 그녀가 연회석이 있는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노란색 옷을 입은 시녀가 다가와 예를 올렸다. 그러고는 웃으며 마님이 월령안을 만나 보려 하는데 같이 가 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오늘 낙원에 있는 하인은 모두 최씨 가문에서 안배했다. 시녀가 마님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월령안은 자연스럽게 최 부인이라고 생각했다.

월령안은 최일의 일을 떠올리자 최 부인이 그녀를 만나 보고 싶어 하는 게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시녀를 따라갔다.

그녀는 최 대학사를 '최 숙부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므로 그렇게 따지면 최 부인을 '최 숙모님'이라고 불러야 했다. 아랫사람이 웃어른을 뵈러 가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월령안은 노란 옷을 입은 시녀를 따라 사람들 속을 가로질러 천천히 앞으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석에 도착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길을 안내하던 시녀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울며 큰소리로 외쳤다.

"월 낭자, 이 자리에 앉으면 안 됩니다! 소인이 이렇게 빌게요. 소인을 난감하게 하지 마세요. 소인은 하인일 뿐이라 감히 결정할 수 없습니다. 낭자의 자리는 여기가 아닙니다."

시녀가 외치는 순간, 전체 정원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이미 자리에 앉은 규수, 미처 자리에 앉지 않은 규수, 심지어 금방 들어선 규수까지 일제히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정원에서는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인가요?"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누가 자리를 뺏은 건가?"

"그럴 수가. 누가 그리 뻔뻔해?"

"월 낭자? 월령안 그 여 상인이 아니겠지? 상석에 앉으려고 하다니? 거울을 안 보고 다니는 모양이군? 어찌 자기 위치를 저리도 모를까?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제가 어찌 감히 상석에 앉을 생각을 하지."

"참 뻔뻔스럽군."

"월 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허튼소리 하지 마세요."

"그만 하세요. 무슨 일인지 아직 잘 모르잖아요."

월령안은 어이가 없었다. 과연, 설개연에서 조용히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 순간 자신의 얼굴이 두꺼운 것이 다행스럽기 그지없었다. 거만하고, 주목받는 데 습관 되어 뭇사람들의 낯뜨거워하거나 걱정 어린 시선에도 전혀 압력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땅에 꿇고 있는 시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고는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시녀 앞에 냉담하게 걸어가 말했다.

"길을 안내해라."

"네?"

시녀는 잠깐 어리둥절해 하다가 급히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소인이 실례했습니다. 월 낭자 용서해 주세요."

월령안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자리를 안내하거라."

어쨌든 최씨 가문의 연회였다. 그녀는 최씨 가문의 체면을 봐서라도 될수록 소동을 일으키지 말아야 했다.

해명은? 무엇을 해명할 수 있겠는가.

멍청한 척하는 사람은 깨우치게 만들 수가 없다. 그녀가 해명하더라도 그녀에게 구정물을 끼얹으려는 사람은 여전히 끼얹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육씨 가주 부인도 아니고 시집갈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므로 명성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월령안은 해명할 필요도 못 느끼고 시녀와 따질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시녀는 그녀가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 것을 보고도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월령안이 몸을 돌리는 찰나, 땅에 꿇어앉아 있던 시녀는 갑자기 달려들어 월령안의 다리를 끌어안고 통곡했다.

"월 낭자, 낭자의 신분으로는 상석에 앉을 수 없습니다. 소인은 정말 방법이 없습니다. 월 낭자께서 소인을 용서해 주세요. 월 낭자……!"

월령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건 나를 꼭 악인으로 만들겠다는 건가?'

"됐다. 모든 일은 적당히 해야 하는 거다."

월령안은 다리를 잡히는 바람에 잠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는 시녀의 말을 듣고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시녀를 바라보며 허리를 굽혀 상대방의 턱을 잡고 말했다.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말은 위협적이었다.

"다행스럽게 여겨야 될 거야. 난 오늘 낙원에서 피를 보고 싶지 않거든."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났어도 변경 여인들의 수단은 여전했다.

결혼한 부인이나, 결혼하지 않은 어린 아가씨들까지도 모두 그러했다.

전혀 새로운 게 없어 싸우고 싶은 마음조차 일지 않았다.

"월, 월 낭자, 소, 소인은……"

시녀는 놀라서 벌벌 떨었다.

"착하지. 다음번은 없단다."

월령안은 가볍게 움직여 사람을 밀치고 냉담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최씨 가문 하인에게 사람을 데려가라고 분부했다.

"잠깐만!"

최씨 가문 하인이 다가서려는 순간 차석에 앉아 있던 분홍색 옷을 입은 아가씨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정의에 찬 표정을 하고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허영심이 많은 거잖아요. 그리고 모든 이들 앞에서 시녀에게 폭로되니 모든 책임을 시녀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거고요. 월령안, 한마디라도 변명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

월령안은 코웃음만 쳤다. 더 말할 생각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월 낭자,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대접이 소홀했습니다."

최씨 가문의 집사인 어멈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혹시라도 일이 커질까 두려워 즉시 월령안에게 다가가 사과했다. 동시에 다른 시녀에게 노란색 옷을 입은 시녀를 데려가라고 손짓했다.

"월 낭자, 소인……!"

노란색 옷을 입은 시녀는 눈물범벅이 되어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녀를 제압한 시녀에게 입을 막히고 말았다.

분홍색 옷을 입은 아가씨는 대노해서 외쳤다.

"당장 가만두지 못할까! 이 시녀는 대쪽 같은 성격으로 강권도, 신분도 두려워하지 않고 월령안이 상석에 앉으려는 것을 제때 저지했어요. 지금 당신들은 그녀한테 상을 주지 못할망정 여 상인을 위해 그녀더러 진실도 말하지 못하게 하고 강제로 끌고 가다니요. 다른 이들을 실망시킬까 두렵지도 않으세요?"

최씨 가문 집사인 어멈은 하인에게 손짓해 노란색 옷을 입은 시녀를 끌고 가게 했다. 그러고는 앞으로 다가가 분홍색 옷을 입은 아가씨에게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사과했다.

"안(顔) 낭자, 이 시녀는 잠시 병이 들어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입니다. 안 낭자께서 신경이 쓰이도록 하여 죄송합니다. 잠시 뒤, 소인이 부인께 보고드리고 연회가 끝나면 반드시 후한 예물을 들고 댁에 찾아가서 안 낭자에게 사과하겠습니다. 안 낭자께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잘못을 저지른 게 최씨 가문도 아닌데 왜 당신들이 사과하나요? 정말 사과해야 할 사람은 월령안이죠."

분홍색 옷을 입은 아가씨는 최씨 가문 사람이 월령안 쪽에 서자 화난 얼굴로 말했다.

"월 낭자, 말해 보세요, 아닌가요?"

"오!"

월령안은 여전히 심드렁해서 대답했다.

"오는 무슨 오예요! 월령안, 바보짓 좀 그만하시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잖아요. 어서 빨리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으시고 뭐 하시는 거예요?"

분홍색 옷을 입은 아가씨는 갸름한 눈을 부릅뜨고 월령안을 호의 없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상대방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어멈을 바라보았다.

"안 낭자는 강녕지부(江寧知府) 안 대인의 여식인가요?"

"월 낭자께 알려드립니다. 맞습니다."

어멈은 고개를 숙였다. 얼굴에는 살짝 무기력함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집사로서 이렇게 작은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너무 무능한 것만 같았다.

월령안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길이 안 낭자와 같은 좌석에 앉은, 도도한 모습의 거만한 보라색 옷을 입은 아가씨에게 닿더니 다시 물었다.

"삼품지부의 여식이 차석에 앉았다. 그럼 그 옆에 저분은…… 허국공부의 여식인가요?"

최씨 가문 집사 어멈은 감히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여 확인해 주었다.

"알겠어요."

월령안은 보라색 옷을 입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보라색 옷의 여인은 거만한 표정으로 하찮다는 듯이 월령안을 흘겨보더니 눈길을 거두어들였다. 그녀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월령안은 허국공부의 아가씨가 왜 자신을 겨냥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는 길에 상대방의 마부가 고의로 먼지를 일으켜 그녀를 추태를 보이게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상대방이 고의로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녀도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빌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소용없기 때문이었다.

"여러분 자리에 앉으세요. 일어서서 서로를 거추장스럽게 하지 마시고요."

월령안은 담담하게 눈길을 거두어들였다. 안 낭자의 노기를 무시하고 뒤돌아서서 안 낭자의 맞은편 좌석 상석으로 갔다.

모든 이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월령안은 무슨 뜻이지?'

"월령안, 무슨 뜻인가요? 제 말을 못 들었나요?"

안 낭자는 울화통이 터져 당장 불을 뿜을 태세였다.

월령안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안 낭자의 맞은편 좌석 빈 상석에 앉았다. 그러고는 안 낭자에게 공수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월씨 가문 가법에는 바보하고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고 했네요."

"당신, 월령안, 무슨 뜻이에요? 지금 나를 바보라 한 거예요!"

안 낭자는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월령안은 웃으면서 탁자 위에 있는 찻잔을 잡더니 스스로 차 한 잔을 따랐다. 그리고 잔을 들어 보라색 옷차림의 여인에게 흔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허 낭자, 이 상석에 제가 앉았어요. 당신 심부름꾼을 이제 그만 불러들이지 그러세요?"

"월령안, 당신 지금 누구를……."

안 낭자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보라색 옷을 입은 여인은 경고 어린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아(雅雅), 무례해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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